아침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교실에는 7시 50분에 닿는다.
내가 맨 먼저 교실에 들어섰다.
음악을 틀어놓고 창문을 두 개 연다.
창 밖 풍경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파트가 버티고 섰고, 찻길에서는 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보내온다. 노인 교통 봉사대원의 호각소리도 들린다.
금일 월송리의 보리밭이 보이던 이맘 때의 풍경이 그립다.
난 무엇을 보며 얼마나 많이 걸어왔는가?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배구를 한다.
스승의 날 다음이라 나의 선생님뻘인 선생님들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드리려고, 공격수도 하게 하며
땀을 흘렸는데, 상대편의 선생님께는 송구하다,
나의 점프나, 나의 숨가뿜은 또 변해 갈 것이다.
비가 오는 길에 운전하고
소태역 환승주차장 3층에 차를 세우고 지하철을 탄다.
금남로 4가역에 내려 계단 오르는 길에서 우산을 편다.
광주극장에는 정각 6시에 도착하는데 20분에 '숨'이라는 영화를 한단다.
무슨 영화를 한들 어떠랴며 천천히 올라간다.
사형수인 남자 주인공은 말없이 죽으려만 하고
상처를 안은(그 상처가 남자의 바람인가, 어릴 적의 5분간의 죽음경험인가?)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노래한다.
왜 찾아간 걸까?
무작정, 그 안의 그 무엇이 시켜서 그냥
자기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이 죽은 이는 편히 눈을 감았을까?
그가 죽어가며 흘린 눈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장 안에는 젊은 남자들 몇이 일행인 듯하고 혼자인 여자 몇
또 혼자인 남자 몇, 그리고 연인 몇
몇 천석의 극장안에 10여명이 영화를 보고 나온다.
봄비인지 여름비인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들을 맞은 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온다.
어제 산행 후의 피곤함인지, 오늘 배구의 피곤함인지
내가 무엇을 희망하지 못함이 피곤한지
텔리비전에 눈을 주다 방에 들어가 잠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