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repasseuses (Women Ironing)
1884 (200 Kb); Oil on canvas, 76 x 81 cm (29 7/8 x 31 7/8 in); Musee d'Orsay, Paris
Edgar Degas.
Woman Ironing. c.1869. Oil on canvas. Neue Pinakothek, Munich, Germany.
Edgar Degas. Woman Ironing. 1882.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USA.
In a Laundry. Edgar Degas; circa 1884 pastel. Glasgow Art Gallery and Museum, Scotland
Laundress Carrying Linen 1876
2011/05/06 ~ 2011/05/26
가든파이브 아트홀 만 11세이상 100분
오아시스세탁소,
허름한 세탁소 간판과 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다량의 세탁물들, 실밥 먼지 풀풀 날리는 수선대, 대형 세탁기,
스팀 빵빵한 다림질대 하며 무대 셋트들이 매우 리얼하게 들어서 있다. 이 세탁소의 이름은 오아시스 세탁소.
세탁소 사장은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강태국, 옷 상태만 보고도 주인의 건강상태와 기분까지 알아 맞추는
그야말로 세탁의 달인되시겠다. 어머니가 맡겼던 40년전 세탁물을 찾아 삶의 희망을 찾게 되는 걸인,
무대의상 마련은 꿈도 못꾸는 가난한 연극배우,허다히 사고 치는 세탁배달부, 돈 없는 부모탓하는 철없는 딸,
돈에만 눈이 먼 경우없는 자식들.
당장 더러움을 씻어내야 하는 세탁의 주인공은 빨래감, 바로 그들의 고된 삶과 욕망에 찌든 마음일지 모르겠다.
골드러시를 전후하여 서부에 몰려 든 광부들에게 빨래는 큰 골칫거리였다. 백인 남성인 이 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인디언이나 멕시칸 여성들에게 빨래를 맡기거나, 아예 빨래감을 대도시로 내보내어 처리했다.
이 시장을 중국 이민자들이 뚫었고 1880년대 가주 세탁업자의 4분의 3은 중국인이었다. 이에 흑인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텍사스 주에서는 이들이 파업을 벌였고,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는 급기야 중국인 세탁소를
습격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러움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고된 일 중에 하나다.
세탁소는 아시안 이민자들에게는 꿈을 이루는 발판이기도 하였으나 그 안에서 종일 사회와 고립되며 중노동을
해야만 했던 고된 삶의 현장이었다. 사회는 그런 이들을 국외자로 취급하며 천대했다. 19세기 후반 대불황 속에서도
상류층의 삶은 여전히 흥청 망청이었다. 이 시기 인상주의 화가 드가는 세탁부와 발레리나 등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을 주제로 그렸다. 정확한 소묘능력 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감각을 표현하였다.
사실적인 면에 중점을 둔다거나 고발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자연스런 동작, 찰나의 사실적인 움직임을 사진을
포착하 듯 담아내었다. 형편이 괜찮았을 때는 사진으로 더 나중에는 마네킹을 이용하여 신체의 동선과
순간을 잡아 그렸다.
드가는 세탁부들의 다양한 동작을 끊임없이 관찰하여 생전에 총 14점의 세탁부 그림을 남겼다.
주로 두 세탁부나 혹은 한 명으로 등장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맨 위에 그림 ‘다림질 하는 여인들'에서는
하품하며 와인병을 들고 있는 여인과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해 물을 뿌리고 다림질에 몰두하는 여인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성적인 은유와 복선을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휴식과 노동, 긴장과 이완의 대비가 잘 어우러진 수작이라 평한다.
뜨거운 다림질과 끝도 없는 빨래, 탁한 공기와 더운 열기 속 고단한 노동의 땀내를 풍긴다.
극을 보며 드는 생각. 나의 고단한 삶도 세탁기에 돌리고 빨아 쨍한 햇빛에 보송보송 말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