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안녕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라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의 마음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을 때 도시에서 유혹의 손길이 뻗어 왔습니다. 시청에 일자리가 생겼다며 고모부가 부른 것입니다.
‘좋아,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자.’
아이들의 교육 문제도 있고, 직장도 생겨서 잘 된 일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축하해 주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밝은 빛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 가는 마음이 들것입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땀 흘려 가꾸어온 논밭을 팽개치고, 어릴 때부터 자라온 정든 고향 산천을 떠나려고 결심한 것은 혁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혁명은 어머니의 바람 즉 전통적인 유교의 가정에 기독교의 새바람을 불어넣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봄비가 내렸습니다. 앞산 뒷산 눈이 다 녹고 개울의 얼음도 다 녹았습니다. 봄비는 길바닥에 내리고, 사람들의 우산 위에도 내리고,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들의 머리에도 내리고, 이삿짐을 실은 트럭 위에도 내렸습니다. 무지개 성을 떠나는 것을 슬퍼하듯.
“이제 모두들 들어가세요.”
아버지는 목에 힘을 주어 말하지만 목소리가 자꾸 기어 들어갔습니다. 나는 끝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할머니는 담담히 차에 올랐습니다. 민욱이가 제일 슬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여리어 집 떠나는 것도 슬프겠지만 복슬이와 헤어지는 것 때문에 더 눈물을 흘렸습니다. 복슬이는 우리와 같이 가지 못하고 숙이네 집에서 맡아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오빠는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웃음을 띠우고 밝은 목소리로 사람들과 헤어짐을 인사하였으며, 오빠는 웃지는 않았지만 희망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습니다. 고맙게 고모부가 승용차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빼고는 모두 승용차로 고향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당분간 무지개 성은 빈집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무지개 성은 빗줄기 저 쪽에서 묵묵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지개 성아, 안녕!”
나는 마음속으로 이별을 하였습니다. 차는 빗속을 뚫고 신나게 달렸습니다. 기다란 차들의 행렬 틈에 끼어 두어 시간쯤 달려 우리가 살 도시에 닿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기만 합니다. 하늘을 가린 높다란 집들이 금세 넘어져 내릴 것 같고, 골목에 늘어서 있는 차들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습니다. 민욱이는 겁이 난 눈으로 새로운 풍경을 조심스럽게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새로 들어가는 집은 5층짜리 아파트입니다. 우리 집이 아니라 전셋집입니다. 방이 세 개라서 오빠와 동생이 한 방을 쓰고, 나와 할머니가 같이 쓰기로 하였습니다. 방들은 깨끗하고, 넓어서 지내기가 편했습니다. 우리 집은 4층이라 전망도 좋았습니다. 나는 창 밖을 보며 다시 우리 집의 이름을 짓느라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금빛나라 성!”
아파트 벽면이 금빛으로 칠해져 있고, 유리창이 많아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입니다. 높다란 건물에 비해 뜰은 너무 좁았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주차장으로 쓰이고, 나무들은 몇 그루 되지 않아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금빛나라 성에는 우리가족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족이 산다는 것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버지, 이 아파트를 금빛나라 성으로 정하면 어떻겠어요?”
“너는 이름도 잘 짓는구나.”
아버지는 무지개 성 이름 지을 때처럼 맞장구를 쳐주지 않고, 시들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지개 성을 마음에 담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집의 이름을 짓는 게 달갑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하고 대화를 나주기도 싫을 겁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아버지를 성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아파트에는 별별 사람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시골처럼 농사만 짓는 한 가족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벽을 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뭐, 우리 아버지가 성주가 되어도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나는 아버지를 성주로 삼기로 혼자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에 있을 때보다 아버지는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성도 훨씬 커졌습니다. 똑똑한 딸을 가진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 되는 것입니다. 자손이 훌륭해야 조상이 덕을 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뒷날, 나는 가람 초등학교 4학년 4반에 입학하였습니다. 시골학교는 4학년이 한 반뿐인데 이 학교는 4학년이 9반이나 되었습니다. 같은 4학년이라도 다 사귀려면 1년은 걸릴 것 같았습니다. 엄청난 숫자에 기가 질렸습니다. 와글와글 시장 바닥 같았습니다.
며칠을 개미 쳇바퀴 돌 듯 학교와 집으로만 다녔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자리만 꼭 지키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 곳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과 달라 처음 보는 아이에게도 친절했습니다. 말을 걸어오고, 같이 놀이도 하자고 권했지만 내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나를 새침데기로 여기고 며칠이 지나자 처음 보는 친구에게 보이던 관심이 사라져 조용해졌습니다. 그래도 나는 보름이 채 못 되어 우리 반 마흔 다섯 명의 어린이 이름을 다 알아버렸습니다.
먼저 남자아이들부터 소개해볼게요. 안경을 끼고 키가 큰 강정민, 뚱뚱하고 입술이 두툼한 박광원, 앞니가 커서 윗입술이 앞으로 나온 곽영진, 실수하면 머리를 잘 긁는 키가 작은 꼬마 김창민, 말씨가 부드러워 여학생에게 인기가 있는 이준형, 앞이마가 많이 나온 조경훈, 볼이 붉은 박성규, 뒤통수가 납작한 김준태, 들창코인 김재성, 말을 더듬는 손영표, 눈이 부리부리한 서건열, 코끝에 점이 있는 임지헌, 부끄럽게 웃는 귀여운 김경락, 말할 때 얼굴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는 박기회, 입이 늘 벌어져 있는 이현명, 유달리 엉덩이가 큰 이호근, 볼에 주근깨가 있는 남영현, 목이 가는 최진수, 갈매기 목소리를 내는 김민호, 얼굴이 검은 조선우, 귀 뒤에 흉터가 있는 김현학, 교실에서 고함을 잘 지르는 이상훈, 남을 잘 괴롭히는 장훈, 말없이 조용히 책을 잘 보는 강전욱,
이번에는 여자아이들 이야기를 해 보겠어요.
눈이 크고 꽝 마른 권효미, 말이 빠르고 성미가 급한 김선영, 머리를 땋아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김나은, 일주일내 분홍색 바지를 입고 다니는 성현아, 얼굴이 네모지고 볼웃음을 웃는 이수경, 웃을 때 잇몸이 예쁜 변지현, 안경너머 눈초리가 날카로운 조성림, 눈썹사이를 잘 찡그리는 전은희, 눈썹이 시커먼 박주미, 유달리 머리가 노란 김유승, 몸이 약하여 개미허리 같은 황은경, 얼굴이 둥글고 입이 작은 윤서희, 안경을 낀 얼굴이 동그래서 시계 같은 권미연, 노래를 잘 부르는 박영화, 그림을 잘 그리고 눈썹이 예쁜 한민정, 키가 작고 말이 없는 방은실, 글씨를 예쁘게 잘 쓰지만 손가락을 입에 넣는 버릇이 있는 임은주, 입술이 예쁜 정나욱, 살결이 뽀얀 권현미, 웃으면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미윤,
내가 이 아이들과 저녁마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그 아이들 중에는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합니다.
“그 전학 온 아이 있잖아.”
나를 두고 이렇게 말을 주고받습니다. 내 이름도 모르는 바보들! 그래 가지고 너희들이 4학년이라고?
나는 특별히 친한 친구를 갖지 앉습니다. 너무 친해지면 부담스럽습니다. 집에도 따라와 내 시간을 뺐기 때문에 귀찮아집니다. 그리고 친구란 두루두루 사귀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느 한 친구를 친하게 지내면, 다른 친구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하고나 선을 그어두고 사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이 도시에 오고 보니 어느 틈에 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 아이는 친절하게 나를 데리고 다니며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다 가리켜 주었습니다. 우선 우리 학교 근처의 건물들, 이를테면 빵집, 분식 집, 소아과 병원, 학원, 은행, 약국, 전자오락실, 문방구, 비디오방, 서점, 따위를 그 아이의 도움으로 다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가 좋아졌습니다. 그 아이 이름은 한민정입니다. 이제 끝까지 사귀고 싶은 아이입니다. 민정이 때문에 이 도시 생활이 즐거워졌습니다.
“민정아, 한 가지 물어도 돼?”
“무언데?”
“너는 내가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니?”
“어디라기보다 그냥 네가 다 좋아. 특히 너 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해 져서 좋아.”
나는 민정이와 점점 친해졌습니다. 민정이가 다니는 미술학원에도 가보고, 민정이 집에도 가 봤습니다. 민정이네 집은 슈퍼마켓을 하고 있었습니다.
“민정이가 자랑하던 새로 전학 온 친구구나. 네가 여욱이니?”
“예.”
“참 귀엽고, 영리하게 생겼구나.”
민정이 어머니 눈은 예리했습니다. 나를 보고 영리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영리한 사람은 영리한 사람을 알아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민정이 어머니는 음료수와 과자를 방에 들여 주며
“우리 민정이와 친하게 지내거라.”
다정하게 웃어주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민정이 집을 자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숙제도 같이 하고, 시골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며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내가 도시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할까 염려하였습니다. 오빠나 동생은 잘 사귀는 편인데 내가 유독 고집스런 점이 있어 따돌림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정이란 예쁘장한 아이가 날마다 집에 들락거리니까 어머니는 안심을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민정이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어쩌면 민정이가 우리 어머니 때문에 우리 집을 찾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집에 왔으니까 민정이가 좋아하는 시골 이야기를 해주어야겠지요?
“민정아, 오늘은 무지개빛 성 이야기를 해 줄게.”
“무지개 성이라니? 시골에 성이 있었어?”
“응, 그 성은 일곱 개의 방과 일곱 개의 마차가 있지. 성주는 인자하여 백 성을 잘 다스리고, 그 성주의 딸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공부도 잘했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야.”
“그 성주의 딸은 바로 나야.”
“뭐라고? 얘도. 호호호.”
도시에 오니 민정이 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이에 나는 점점 무지개 성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16. 할머니의 눈물
이 도시로 올라온 지 꼭 일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아버지는 서툰 도시 생활을 잘도 견디어 내었습니다. 직장이 변변치 못한 관계로 생활비가 늘 모자라 어머니까지 우유 배달원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을 다른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게 키우려고 애쓰시는 것을 잘 압니다. 어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일터로 나갑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는 어머니의 밝은 표정에 비해 아버지의 모습은 파김치처럼 지쳐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언짢은 기색 없이 언제나 다정히 대해 주시는 아버지는 우리들의 밝은 등불이요, 든든한 기둥입니다.
추석날 아침이었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 아버지께서
“조상님이 이 먼데까지 오시기는 오실까? 그리고 이 복잡한 도시에 우리 집을 찾아내실까?”
혼잣말처럼 걱정을 하였습니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더욱 발톱이 빠진 호랑이처럼 어깨가 처지고 말수가 적어진 걸 나는 눈치 챘습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지개 성을 판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아버지는 한심한 면이 있습니다. 팔 때는 왜 팔아 놓고, 지금은 또 후회하다니. 그러나…….
물론 어머니도 시집 와서부터 우리들을 키우시며 손끝마다 정이 든 집을 팔았을 때 서운한 마음이 왜 안 들었겠습니까만 아버지의 마음에는 비길 바가 아니었습니다. 조상들이 물려 준 어릴 때의 추억까지 송두리째 앗아갔으니 얼마나 마음이 허전할까 짐작이 됩니다.
겨우내 고구마를 넣어 두고 먹던 벽장이 붙은 큰방, 문을 열면 항상 인절미 냄새가 났던 안청, 여름이면 봉창으로 비 내리는 대밭을 구경하던 작은방, 할머니가 비벼주던 보리밥을 솔가지 깔고 앉아 먹던 부엌, 커다란 암소가 새김질하며 내다보던 외양간 등이 소롯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른 봄 하얀 꽃밭을 이루던 배나무, 여름이면 아버지가 올라가 놀았다던 은행나무, 가을이면 노란 등불을 켜던 유자나무, 동짓날까지 빈 가지에 홍시를 달아놓았던 감나무, 이런 것들이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간 것입니다.
집을 팔았을 때만 해도 아버지는 빈 가슴을 결코 우리에게 내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서운해 할까 봐 위로까지 하던 아버지.
“빈집으로 그냥 두는 것보다 집 관리 잘하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좋다. 아 마 우리 집도 관리를 못하는 우리보다 새 주인을 좋아할 거야.”
그러던 아버지가 요즘 들어 부쩍 고향 집 판 것을 후회하는 눈치입니다. 고향집이 꿈만 꾸면 나타나서 그리움이 물밀 듯 가슴을 파헤치고, 뒤늦게 돌아갈 보금자리를 잃은 아버지의 처지가 쓸쓸해서도 그렇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딴 데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숫자를 몰라 시내버스를 탈 줄 모르고, 아파트 호수도 찾지 못하는 까막눈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절대적인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도 감히 할머니 말씀을 거역 못했습니다. 이 도시로 이사 올 때만해도
“어머니, 도시로 이사 가는 것이 어떻겠어요? 아이들도 크고, 농사를 지어 봐야 뾰족한 수도 없고, 마침 좋은 직장이 나타나 갔으면 합니다만.”
할머니는 또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벌써부터 도시로 가고 싶어도 자신 때문에 못 가고 있다는 것을.
“길을 두고 뫼로 갈 수야 있나. 자식을 떠나 어찌 혼자 여기에 살겠다고 고집하겠는가?”
할머니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고향을 떠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아버지는 부닥쳐 보지도 않고 혼자 몇 달을 끙끙 앓았는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는 새 땡볕에 그을렸던 얼굴엔 귀티가 나고, 손톱 밑의 검은 때도 가시어져 할머니도 도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토끼장 같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지 못했습니다. 가져 온 모시를 삼으면서 종일토록 집안에서 갇혀 살았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집이 걱정이 되고, 논밭에 자라는 곡식이 보고 싶었습니다. 꿈을 꾸어도 고향집만 나타났습니다.
“내일은 시골에 내려가 볼게.”
어느 날, 할머니는 참고 참았던 마음을 조용히 열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펄쩍 뛰었습니다.
“이제 뭐 하시려고 가렵니까? 집도 논밭도 다 부탁하고 가 봐야 아무 할 일도 없습니다.”
“그게 아니다. 가면 내 할 일이 있다. 사흘만 있다가 올게.”
어머니와는 반대로 아버지는 할머니 뜻대로 다녀오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내려가신 할머니는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된 어머니가 모시러 갔지만 혼자만 돌아왔습니다.
“글쎄, 산골 밭은 어머니가 부친다고 하시면서 안 오시겠대요.”
다시 아버지가 내려가시더니 간신히 모셔왔습니다.
“어머니, 요 약수터 가는 길목에 묵정밭들이 많이 있어요. 그걸 일구어 배 추도 심고, 파도 심어 농사를 짓도록 합시다.”
아버지는 할머니 마음을 돌리려 애썼습니다.
“어머니, 골목을 돌아가면 경로당이 있어요. 거기 나가세요. 친구 분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가서 노래도 부르고, 맛있는 것도 사 잡숫고 그러세요.”
하며 어머니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삼던 모시만 떨어지면 고향에 갈 궁리를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향수병에 걸렸나 봅니다. 고향 가는 날 아침 할머니의 표정은 생기가 돕니다. 우리들이 소풍날 아침에 기쁨에 들뜬 그런 표정입니다. 곧 오겠다던 할머니는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오실 생각을 안 하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생각 끝에 고향집을 팔아버리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은행에서 대부 낸 돈을 다달이 갚는 것은 아버지의 월급으로 빠듯했습니다. 아니 늘 모자랐습니다. 고향집을 팔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 한 가지는 빚을 갚아 생활에 여유가 생길 것 같았고, 나머지 하나는 할머니가 고향에 머물 수 없는 방법이 될 것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살 사람이 나타났을 때 팔아 버립시다. 요즘 농촌에는 빈집이 많아 거래 도 안 된다는데요.”
어머니가 권하고 나서자 아버지는 먼저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강욱아, 너 생각은 어떠니?”
“아버지, 너무 옛것에 집착하시면 지금 살기가 어렵습니다. 시골집이 소중 해 보여도 거기에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가보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파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오빠는 제법 중학생이라고 조리 있게 말했습니다.
“여욱이 너는?”
“저도 파는 게 좋아요.”
나는 어느 새 무지개 성을 잊어 먹은 도시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나라도 반대를 했더라면 아버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집이 그대로 남아 있었을 줄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집안 식구들의 마음이 팔자는 쪽으로 기울자
“그렇지만 촌에 가서 어머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듣고 흥정해야 되오. 만 약 어머니가 반대하면 흥정 자리에 앉지도 마시오.”
하며 할머니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어머니를 내려 보냈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설득에 넘어 가셨는지 아니면 가족의 결정사항이라고 여기셨는지
“내사 모르겠다. 네 알아서 삶아먹든지 구워먹든지 해라.”
하며 허락을 한 겁니다. 어머니는 당연하듯 흥정 자리에 앉고, 집은 쉽게 팔려버렸습니다.
막상 집이 팔리자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받았습니다. 설마 팔리겠나 하던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자 꿈만 같았습니다. 그날 밤 홀로 있게 되자 할머니는 다리를 뻗어 놓고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먼 바다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운 후로 이렇게 슬피 운 일은 없었습니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여든 살이 가깝도록 살아온 집입니다. 해마다 혼령이나 따나 할아버지가 찾아오던 그리운 집입니다.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할아버지의 혼령이 찾아와서 얼마나 더 슬퍼할까 생각하니 그게 더 마음이 아픕니다.
할머니가 집이 팔려 몹시 애통해 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부랴부랴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머니, 그렇다면 집을 팔지 말라고 하시지요.”
“누가 그렇게 쉽게 집이 팔릴 줄 알았나?”
“손해를 봐도 도로 집을 물리겠습니다.”
“산 사람이 이게 어디 장난이냐며 손톱도 안 들어가더라. 이왕 그렇게 된 것을 어쩌겠니? 대신 우리 집 아래채 방 한 칸에 나를 있게 해다오.”
아버지는 할머니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려고 집을 산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 해 여름을 그 곳에 보낸 할머니는 곡식을 거두는 가을까지만 있겠다며 자꾸 기간을 늦추었습니다. 추석 무렵 아버지가 다시 내려갔습니다.
“아범아, 우리 대추가 올해는 너무 많이 열렸다. 몇 개 따올까?”
“놔두세요. 이제 우리 것이 아니잖아요?”
“남새밭에 파도 어찌 잘 되었는지 심술조차 난다. 내가 길에 보이는 쇠똥 이랑 미나리꽝의 뻘이랑 넣어 땅 힘을 돋워 놓은 땅인데.”
할머니는 아깝다는 듯 아버지보고 넋두리를 하였습니다.
겨울이 지나자 할머니는 또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며칠 전부터 아버지께 귀띔을 했습니다.
“이제 제발 편안히 여기 계십시오.”
“거기 가면 이제 집이 있나 절이 있나. 내가 오죽하면 내려가려고 하겠나. 여기 있으면 오만 데가 아프고, 심장에 불이 나려는데 어떡하니? 시원하게 바람이나 쏘이고 올게.”
그래놓고 내려가신 할머니는 봄이 다 가도록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가 없는 곳이지만 사립 밖만 나서면 아는 얼굴들이 말을 걸어 주는 고향이 좋았습니다. 가스레인지 대신 장작불을 지펴도 마음이 편했습니다. 방 한 칸에 때 묻은 이부자리지만 고향 하늘 밑이 좋았습니다. 쇠고기 국에 따스한 밥이 아니더라도 힘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익은 산봉우리들, 거짓말을 모르는 논밭의 곡식들, 할머니는 이곳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챈 아버지는 도시로 온 것을 후회했고, 더구나 집을 판 것은 발등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만 어렵게 되었습니다.
“무슨 농사를 지어 수지맞겠어요. 모두 도시로 못 나와 야단인데.”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빠는 중학교 2학년이라 공부하느라 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1년이 지나자 다시 무지개 성이 보고 싶어 서쪽 산 너머를 바라보곤 합니다. 무지개 성은 꿈에도 나타납니다. 맑은 아침을 여는 참새 소리도 듣고 싶고,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던 건너편 참나무 숲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생과 같이 가재 잡던 개울, 아버지와 오르던 천왕산, 오빠와 같이 달리던 오솔길, 어머니와 콩잎을 따던 우리 집 텃밭 모두가 그립게 다가오다가 사라져갑니다.
‘무지개 성아! 용서해 줘. 내가 왜 그때는 팔자고 했는지 모르겠어. 떠 나온 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것도 미안해. 그런데 이제 너는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으니 어쩌지?’
17. 할아버지의 비밀
나는 압니다. 아버지가 추석 같은 명절에 왜 고향에 가기를 꺼리시는 가를.
이 도시로 올라온 지 이년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 집은 넉넉하지가 못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새 우리 가족은 도시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올 여름 그토록 고향이 좋아 그리고 어머니의 신앙 때문에 도시 생활을 거부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마음을 돌려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연세가 여든을 넘어섰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오시자 아버지는 단연 힘이 났습니다. 말수가 많아지고, 행동이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허세 같기만 하고 더욱 초라해져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아버지의 직업을 물을 때는 왜 그렇게 부끄럽고 쑥스러운지.
“아버지가 무엇을 하시지?”
“시청에 다녀요,”
이 대답을 할 때면 마냥 가슴이 할딱거립니다. 그리고 주눅이 들어 모기만한 소리로 변합니다.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해지지 않을까요.
“그래 직책이 무엇이지?”
이렇게 물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 했는데 역시 물어왔습니다.
“몰라요.”
“6학년이 아버지 하시는 일도 모른다니.”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십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었습니다. 그 자리도 얼마나 어렵게 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감지덕지해야 합니다. 처음으로 시청에 출근하는 날 아버지는 가슴이 울렁거렸을 겁니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얼굴인 아버지가 제복을 차려 입으니 내가 봐도 그럴 듯 하였습니다. 온 가족의 축하 속에서 아버지의 직장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퍽 자랑스러웠습니다. 학교에 와서도 일하는 아버지 모습을 그려보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직장을 묻자 떳떳하지 못하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버지가 첫 봉급을 받아왔을 때일 겁니다.
“어째 봉급이 쥐꼬리만큼 적어요?”
“처음이니까 그렇지.”
“그래도 너무 적다. 이 돈으로 어떻게 한 달을 살아간단 말이에요?”
“그냥 두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 버릴까?”
“이 양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시골은 안 돼요. 겨우 빠져 나왔 는데 또 지긋지긋한 농사를 짓는단 말이에요?”
“아유, 차라리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농사를 짓고 싶어요. 시원 한 바람을 쏘이며, 싱싱하게 자라는 곡식들과 같이 살고 싶어요.”
“허리 휘도록 농사지어야 남는 것이 뭐가 있어요? 조금만 참아 봅시다.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 않겠어요?”
“내 자리는 오르막도 없이 평생을 가야 청소하는 것뿐인데 뭐가 달라지겠 소?”
거기까지 들은 나는 아버지가 불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앞날은 잿빛 하늘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년이 지났지만 우리 집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이 세월만 흘러가고 그 흔한 승용차도 없이 고향에 가자니 자꾸 망설여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주차장에 가 봐서 복잡하면 되돌아올게요.”
아버지는 억지 춘향이가 되어 문을 나서며 발뺌을 할 수 있는 틈을 만들었으나
“어떻게 하든 가서 산소에 성묘할 생각은 않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할머니는 엄하게 나무라며 그 틈을 막아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두 시간 동안 서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고향에 다녀와야만 합니다. 아버지는 호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으니 주눅이 드는 마음으로 가기 싫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사정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2학년 때라고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작은할아버지이지요. 무덤을 산골 밭 한쪽으로 결정하자 아버지는 언짢아하셨습니다. 반대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혼자서만 꿍꿍 앓으며 애를 태웠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 설날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작은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내려가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산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초라한 무덤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자리가 좁아서 조금만 벗어나도 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숲 속이었습니다. 묘 축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우리 세 사람이 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산소의 봉분은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서 시뻐 보였습니다. 거기다가 한쪽에는 잔디가 살지 못해 흙이 파인 채 자손이 돌보지 않은 그런 묘 앞에서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눈길로 우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여기가 너희 할아버지 산소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분명했지만
“예엣?”
나와 오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물었습니다. 이 볼품없는 무덤이 할아버지의 산소라는 것도 실감이 가지 않았지만 이때껏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랄 수밖에요.
“어째서 할아버지 묘가 이렇게 작아요? 작은할아버지 묘는 크고 멋진데……”
나는 아버지의 뜬금없는 말에 파임을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거짓말이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오빠도 내 마음과 같았을 겁니다. 그런데 오빠는 말없이 아버지의 얼굴과 무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 어서 내 옆으로 서거라. 절을 해야지.”
아버지는 우리를 재촉하였습니다. 울적한 모습의 아버지 곁에 서자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내 눈앞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모습이 이렇단 말인가. 아버지는 왜 여태 무덤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숨기고 있었을까? 아버지는 물론 할머니, 어머니마저 할아버지 묘에 대해서는 전혀 입을 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내 머리를 스치는 기억의 한 가닥이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 있어요?”
대여섯 살쯤 되었을 겁니다. 어느 날, 나는 느닷없이 물었습니다.
“저 배타고 멀리 갔다.”
할머니는 그 말을 한 후 갑자기 치마폭으로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미안하고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더 이상 물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할아버지 일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이 산 속에 묻혀 있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에 대한 어떤 비밀을 오늘 아버지는 별안간 털어놓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이제 할아버지 묘에 손을 좀 써야겠다. 묘 축도 반반히 쌓고, 묘 떼도 입히고…….”
절을 마친 아버지는 후회하는 눈빛으로 묘를 들러 보았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왜 이때까지는 돌보지 않으셨어요?”
오빠는 아버지 따라 분위기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 묘 앞에 오고 싶지 않았단다.”
“그런데 오늘은 왜 오셨어요?”
“이제 그럴 수 없단다. 봐라. 작은할아버지 묘소가 바로 저 아래인데 어떻 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니? 작은할아버지 묘에 오면 자연히 이 쪽으로 와 내가 불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와 다투셨어요?”
“다투긴? 아버지는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철이 들고 보니 아버 지가 안 계시더라.”
가엾은 아버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크셨구나.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리웠을까? 남들이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그 마음이 또 어떠하셨을까? 어딘지 모르게 숫기가 없어 보이시던 우리 아버지!
산 속이라 그런지 아버지의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서 그런지 겨울이었는데도 추운 줄을 몰랐습니다. 청푸른 소나무와 말라진 잎을 달고 있는 떡갈나무도 귀 기울이는 듯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때껏 할아버지 산소를 돌보시지 않으셨어요?”
“할아버지가 미워서 그랬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가 겪은 고생은 이 루 말할 수 없었단다. 남들은 멋진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다니는데 나는 매일 산에 나무하러 가야만 했단다. 나뭇짐을 지고 오다가 친구들을 만나 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는 줄 아니? 그때는 똑 죽고만 싶더라.”
“…….”
“할머니는 명절 때마다 산소에 가라고 했지만 나는 갔다 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가지 않았단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기 싫었지.”
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심쩍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이제 어른이 된 아버지가 이렇게 자손도 없는 묘처럼 내버려두었다니. 그러나 그날 분위기가 너무 숙연해서 그런 질문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할머니는 나에게서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래, 아버지랑 같이 갔었단 말이제? 잘했구만.”
“그런데 작은할아버지 묘는 큰데 할아버지 묘는 너무 작았어요.”
“그 쪽에 묘를 써도 막을 수 없었제. 곁에 있으니 너의 할아버지 묘소가 초라하게 보여 마음이 궂다.”
“그럼 지금이라도 묘를 키우는 것이 어때요, 할머니?”
“묘는 함부로 손을 대는 법이 아니야.”
설날이라고 저녁까지 농악소리가 신나게 들리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구경이라도 갔는지 집에 없고, 어머니만 있을 때, 할아버지의 무덤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렸습니다. 세상에 그럴 수가!
“할아버지 산소에는 아버지가 가자고 하시던?”
“예.”
“빈 무덤에는 찾아가 어쩌자는 걸까?”
“빈 무덤이라뇨?”
“시신이 없으니까 빈 무덤이지.”
“왜 시신이 없어요?”
“할아버지는 먼 바다에 고기잡이하러 가서 실종이 되신 거야. 시신을 아무 리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해서 나무로 깎은 인형을 대신 묻어 두었단다.”
오빠와 어머니의 대화를 나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수수께끼의 고리가 풀렸습니다. 할아버지의 묘가 왜 초라했는지,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묘에 왜 가기 싫어했는지, 그리고 여태껏 우리에게 할아버지 묘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지.
아버지는 오늘 같은 추석에도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는 것이 속상할 겁니다. 어쩌면 아직도 할아버지가 그 어느 하늘 밑에 살아 있을 것을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8. 돌아가마, 무지개 성
할머니가 오자 시골에 있는 무지개 성이 옮겨 온 듯하였습니다. 방안에 앉아 있으면 고향집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민욱이의 기쁨이 가장 컸습니다.
먼저 오는 민욱이를 맞이하는 것은 늘 찬바람이 도는 빈집이었습니다. 너무 쓸쓸했었는데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우리 민욱이 인제 오는감? 공부하느라 힘들지?”
“아니에요! 재미있는 걸요.”
“어서 온. 내가 먹을거리 해 놓았다.”
그러시면서 뜨끈뜨끈한 부침개나 김이 솔솔 나는 죽을 내놓습니다. 민욱이는 할머니가 해 주는 요리들이 참 맛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할머니 이야기는 참 재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옛날이야기도 그렇고, 처음으로 들어보는 이상한 낱말들도 참 재미있습니다. 놀러왔던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자꾸 놀러 오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할머니는
“너 동무들은 하나같이 모두 잘 생겼구나.”
하며 흐뭇해합니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민욱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그 중에서 누가 제일 잘 생겼어요?”
“그래도 모두 너 보다는 못해. 민욱이가 제일 잘 생겼지.”
하며 볼을 꼬집습니다. 민욱이는 그 말을 듣자 기분이 삼삼하였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볼 때는 마음이 딱 맞습니다. 내가
“채널 바꿔. 연예가 중계 보자.”
그러면 할머니가 나서서 말립니다.
“그냥 두어. 지금 이것이 더 재미있다.”
할머니는 어린이들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서도 잘해요’ 같은 유치원 프로를 즐겨 봅니다. 어른들 보는 것은 수준이 높아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 있거든요. 때문에 가족들도 웃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텔레비전 앞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기가 찬다는 듯 말합니다.
“저 최부람이는 또 각시를 바꾸었네. 세상에 각시가 몇갠고?”
“어머니, 저건 진짜 사는 이야기가 아니고 연극이에요. 극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바뀌는 거랍니다.”
“아무리 연극이라도 그렇지.”
어머니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지만 할머니는 불평입니다. 오빠는 최부람이를 알아보는 할머니가 신기했습니다.
“오잉, 할머니께서 최부람을 다 아시네. 하하하.”
그러자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겠냐는 듯
“나를 바보라 아는감? 핸철이도 안다.”
“우와, 우리 할머니 대단하시네.”
나는 감탄을 하였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민욱이가 치켜세우는 바람에 할머니가 난처해졌습니다.
“할머니는 강타도 알고, 에이치오티도 아는데.”
할머니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대답을 안 하는 수가 있거든요. 할머니는 잠잠히 있다가 위기를 벗어나려고 다른 곳으로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저 사람이 아까 많이 맞아 이마에 피가 흐르더니 금세 깨끗이 나았네.”
“에이, 할머니도 저건 며칠 지난 거예요.”
“뭐? 며칠 지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아이가, 저 사람은 어제 죽었는데 또 나왔다.”
“아이구, 할머니는 못 말려.”
오빠는 어처구니가 없어 천장을 보고 소리 없이 웃습니다.
그러나 민욱이와는 죽이 척척 맞습니다.
“민욱아, 박첨지 나오는 거 틀어라.”
“박첨지가 뭐예요?”
나와 오빠는 호기심에서 눈이 동그래집니다.
“박첨지가 나오는 것이 이 시간대에 있나?”
“글쎄 뭘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할머니를 바라보지만 민욱이는 서슴지 않고 리모컨을 뿅뿅뿅 하고 누릅니다.
“거기 나왔네.”
“하이고, 인형극을 말하는구나.”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민욱이와 둘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욱이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동생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에는 가스 켤 줄도 몰랐으며, 변기 누를 줄도 몰랐습니다. 그걸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도 세탁기를 돌릴 줄 모르며, 채널 바꾸는 것도 서툽니다. 그것 보다 더 큰 문제는 한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숫자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화할 줄을 모를 수밖에.
“민욱아, 고모한테 전화 걸어라.”
민욱이의 날렵한 동작에 할머니는 흐뭇한 얼굴이 됩니다. 고모와 전화를 하는 동안 민욱이는 물끄러미 할머니를 바라봅니다. 어쩌다가 글자를 배우지 않았을까? 글자를 모르고 산다니 참 답답할 겁니다.
“할머니는 왜 학교를 안 다니셨어요?”
“그때는 세상이 궂어서 어른들이 학교에 보내 주지 안 했다. 나만 다니지 않은 것이 아니고 순덕이, 섭섭이, 봉순이, 끝녀, 두레도 안 다녔지.”
“그 애들이 누구예요?”
“애들이라니? 내 동무들이지.”
“그 할머니들도 글자를 몰라요?”
“그중 순덕이는 글자를 알제. 나도 받침 없는 글은 읽는다.”
“어디 봐요.”
그러면서 민욱이는 가방 속에서 읽기책을 꺼내왔습니다.
“이거 읽어보세요.”
할머니는 부끄러운 듯 돋보기를 쓰시고 더듬거리며 읽는데 영 서툽니다.
“우루누 사로 이하나이 도아다.”
“우리는 새로 이학년이 되었다예요.”
“전에는 잘 읽었는데 이제 까묵었다.”
그러면서 책을 탁 덮습니다. 민욱이는 할머니가 1학년 책은 잘 읽을 거라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1학년이다. 훗훗 나는 2학년인데.
“그런데 할머니 신통해요. 버스는 어떻게 알고 타요?”
“아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탄다.”
“아는 사람 없으면요?‘
“그때는 운전기사를 보고 물어보면 되지. 입 놔두고 뭐하냐?”
“그래도 여기 올 때는 복잡해서 어려웠을 텐데 혼자 찾아오셨잖아요?”
“그래서 택시를 탄다.”
민욱이는 할머니가 글자를 몰라도 슬기롭게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할머니는 민욱이가 참 기특하다고 여겼습니다. 어떤 아이는 할머니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같이 방을 쓰지 않으려고 떼를 쓴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이 집에 오기까지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민욱이는 불평은커녕 좋아하고 잘 때는 꼭 안고 잡니다. 나 혼자 윗목에서 자고 할머니와 민욱이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며 같이 누워 잡니다.
사실 나는 할머니가 오시자 내 방을 같이 쓰게 되어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또 민욱이가 오빠와 함께 쓰던 방을 떠나 같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방이 비좁아졌습니다. 그래도 불편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같이 지내니까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심하지가 않습니다. 시골에 있을 때 같으면 나 혼자 방을 쓰고 싶어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는 많이 변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민욱이는 학원에 안 다니나?”
“학원 안 다녀도 공부 잘 해요. 할머니하고 지내는 것이 더 좋아요.”
그러면서 오후는 할머니 손잡고 약수터도 가고, 공원에도 놀러 갑니다.
“할머니, 저곳은 경로당이어요. 나중 할머니도 저곳에 놀러 가세요.”
하며 안내도 하고
“이것 돌릴 줄 아세요?”
그러면서 훌라후프 돌리기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하루는 할머니와 밖으로 산보하러 나왔다가 민욱이는 짐짓 할머니를 놀려주고 싶어서 집에 다 올 무렵 숨어버렸습니다. 할머니가 집을 찾아가는지 알아보려고. 그런데 할머니는 머뭇거림 없이 층계를 올라갔습니다. 헐레벌떡 뒤따라오는 민욱이를 보고
“너, 나를 놀리려고 숨은 것 내 다 안다.”
하며 휘적휘적 자신 있게 올라갔습니다.
‘와, 할머니는 우리 통로를 알고 계시구나. 숫자도 모르면서.’
민욱이는 신통방통하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할머니는 숫자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 집을 알까요?”
“할머니는 요술할머니거든.”
아버지는 그래놓고 웃었습니다. 어머니도 따라 웃었습니다. 민욱이로 인해 웃음꽃이 자주 핍니다. 어머니는 열심히 교회에 다닙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정성껏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는 어머니도 돕습니다. 다툼이 없이 평화롭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시골이 좋아요, 이곳이 좋아요?”
“이곳이 좋다. 누가 간섭을 하나, 욕을 하나? 농사짓지 않아도 밥 먹여 주 지, 손에 흙 묻히지 않아도 돈 나오지 얼마나 좋냐?”
아버지가 변했을까요? 아니면 깊숙이 숨겨둔 마음을 꺼내 보이기 싫어서일까요? 이제 할머니까지 오셔서 마음이 놓여졌을까요. 아무튼 아버지가 대답을 그렇게 하니 나는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서운함도 있었습니다.
“할머니, 시골이 좋아요, 여기가 좋아요?”
“너희들이 있는 여기가 좋지.”
할머니도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할머니가 계속 시골에 남기를 원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게 된 것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넌지시
“할머니, 제가 커서 돈을 많이 벌면 시골에다 멋진 집을 사 드릴게요.”
“그렇게 된다면야 오죽 좋겠냐만 그때까지 내가 살겠니?”
할머니의 쓸쓸히 웃는 모습을 보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할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언젠가는 고향에 뿌리를 내리러 가야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비록 지금은 남의 집이 되었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무지개 성은 우리 집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소망은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내 마음속에 무지개 성을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