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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40~87)
● 01 목차와 머리말
01. 머리말 · 9
02. 뭐든지 전부 봉투에 · 12
03. 소품(小物)에 집착하는 남자들 · 16
04. 인사 각도 측정기 · 21
05. 명함과 라벨 · 27
06. 가라오케식 커뮤니케이션 · 33
07. 매번 시끄럽게 하여 죄송합니다 · 37
08. 메뉴가 필요 없는 식당 · 42
09. 슬리퍼의 규칙 · 47
10. 사자의 포즈 · 51
11. 남자도 여자도 금세 삐친다 · 55
12. 어질러 놓기 자랑 · 62
13. 상투적인 말 “힘내!” · 67
14. 왜 나이를 묻는 걸까 · 72
15. 옆 건물에 양치하러 가다 · 76
16. 5·7·5와 계절감 · 82
17. 남자가… 남자가… · 88
18. 자기주장보다 기술 · 92
19. 흡연과 서서 소변 보기 · 97
20. 다음 주에 또 전화해 · 101
21.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105
22. 로마자 남용의 기묘함 · 109
23. 외국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 · 112
24. 머뭇거리는 여자들 · 117
25. 균형 감각과 감점주의 · 122
26. 베이비 파우더 · 126
27. 일구이언 · 131
28. 아첨이 아니라 · 135
29. 술에 취하다. 141
30. 대결을 싫어한다 · 145
31. 선물 천국 · 151
32. 민주주의 흉내 내기 · 155
33. 순혈주의를 좋아한다 · 159
34. 환영받지 못하는 비판 정신 · 165
35. 집단적 사디즘 · 169
36. 여성용은 왜 작을까 · 173
37. 목욕 좋아함과 반짝이는 자동차 · 177
38. 벌의 한 방 · 180
39. 현금과 카드 · 184
40. 방향치 · 189
41. 양손 예절 · 193
42. 게으른 전업주부 · 197
43. 쇼핑을 너무 좋아해 · 203
44. 기자회견 · 207
45. 맺음말 · 212
46. 해설: 나카야마 치나쓰(中山千夏)
(쇼와 63년 3월 작가) · 213
01. 머리말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에서는 날씨가 좋은 계절의 주말이 되면, 코미디언 지망생들이 산책 나온 사람들을 잔뜩 모아 놓고 1인극을 선보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유명 스타의 흉내를 내기도 하고, 뉴욕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툭하면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가게 점원과의 말다툼을 재현해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곤 한다. 그들의 레퍼토리 가운데 뉴요커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이른바 ‘에스닉(ethnic:인종)물’이라 불리는, 각 인종을 흉내 내는 연기다. 그중에서도 나는 한 흑인 남성이 연기하던 장면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태극권(太極拳)을 수련하는 중국인 남성, 작은 숄더백을 어깨에 걸고 멋을 잔뜩 부리며 걷다가, 앉을 때조차 일부러 폼을 잡는 레즈비언 여성(이 역시 하나의 ‘인종’처럼 취급된다), 그리고는 갑자기 털썩 땅바닥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하다가, 이따금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힐끔거리며 살피는 유대인 여성까지 연기해 보인 뒤였다. 그는 허리를 낮추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윗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넣어 이를 훤히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걷기 시작했다.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오자, 그는 가슴에 카메라를 메고 있는 흉내를 내며, 웃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시늉을 했다. 순식간에 터져 나온 폭소, 그리고 “어, 재패니즈 맨!”이라는 합창. 아아, 시각적으로 떠올리는 일본인의 이미지로서는, 아마도 이런 모습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장면을 보고 “일본인을 우습게 본다”며 진지하게 화를 내는 일본 신사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일본인 남성들 가운데에는 외국인 여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도 꽤 있고, 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일본인 여성도 적지 않다. 다만 일본인을 집단으로 바라볼 때에는, 워싱턴 스퀘어의 코미디언이 보여 준 모습이 비교적 잘 들어맞는다는 뜻일 것이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저마다 여러 가지 버릇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인은 특히 버릇이 많은 국민이라고들 한다. 그 버릇 가운데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도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동양인 공통의 특징도 있고,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일본인 특유의 버릇도 있다.
일본의 기후와 풍토가 낳은 오래된 버릇도 있고, 근대 국가가 된 이후에 형성된 버릇, 패전 이후 몸에 밴 버릇, 혹은 아주 최근에 생겨난 버릇도 있는 듯하다. 나의 친구들과, 특히 가까이 지내는 동업 언론인들의 약 절반이 우연히도 비일본인이다 보니, “아, 전형적인 일본식 대응이네”라든가 “그건 일본인답지 않잖아” “그게 바로 일본인의 방식이야” 같은 말을 수시로 듣게 된다.
그래서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는 그다지 볼 수 없는, 일본인의 행동 양식과 관습, 최근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태도들, 그리고 외국인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언행 가운데 몇 가지를 골라 보았다. 이 책에는 그중 마흔세 가지를 실었다. 국제 사회에서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쳐야 할 일본인의 태도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계속 지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본인의 특질도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게이 탤리즈(Gay Talese)가 말한 “많은 저널리스트란, 세상의 오점이나 사람과 장소의 불완전함을 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관음증 환자다” ('권력의 왕국')라는 기자의 속성을 십분 갖춘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라고 느껴지는 지점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가.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
● 02. 뭐든지 전부 봉투에
우체국에서 엽서를 몇 장, 혹은 우표를 몇 장, 아니면 그 둘을 함께 사면, 그것들을 넣어 주는 얇은 비닐 봉투를 받게 된다. 이 봉투에는 아예 "우편 엽서·우표 봉투" 라고 인쇄되어 있다.
이런 봉투에까지 제대로 된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부터가 놀랍다.
게다가 그 위에는 이런 문구들까지 인쇄되어 있다. 매월 23일은 ‘글쓰기의 날’입니다. 편지로 마음을 나누세요! 우편은 정성이 담긴 선물입니다. 받는 이의 주소는 정확하고 또렷하게.
우편번호는 주소의 일부입니다. ― 우체국
그리고 더 아래쪽에는, 그 지역 상점들의 광고 같은 것까지 실려 있다.
이것들이 전부 가로쓰기라는 점도 재미있다.
‘우표 봉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면, 왠지 세로쓰기가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엽서나 우표를 위해 그때그때 봉투를 우체국이 준비해 주는 나라가 과연 또 있을까. 뉴욕에서는 우표를 많이 샀을 때
“봉투 하나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받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이런 일은 우체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유난히 봉투를 잘 주는 나라다.
그것도 그냥 봉투가 아니라, 무언가가 꼭 인쇄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인 듯하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 백화점이든 어디든 상관없지만, 신용카드로 물건을 살 때를 생각해 보자.
보통 세 장 한 벌로 된 전표에 서명을 하면,
점원이 마지막 장을 떼어 내어 작게 접은 뒤,
아주 조그만 봉투에 넣어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고 내밉니다. 실제로 꽤 기다리게 되기 때문에, 급할 때는 “봉투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주세요” 하고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조그만 봉투에는 ‘전표 보관 봉투(伝票お控袋)’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그렇게 인쇄까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백화점 이름과 함께 말이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서명한 사람이 마지막 장이든 처음 장이든 한 장을 휙 떼어 “땡큐” 하고 나머지 전표를 점원에게 건네고, 자기 몫인 사본은 주머니나 가방에 그대로 넣습니다. 이쪽 방식이야말로 시간도 아끼고 봉투도 아끼는 방법인데, 일본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혼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얼마 전에도 일본바시(日本橋)의 마루젠(丸善: 서점·출판·문구 회사)에서 수입서를 한가득 사면서, 그동안 영어로 생각하고 있었던 탓인지, 무의식중에 서명을 하고(나는 크레디트카드 등의 서명은 로마자로 한다. 한자보다 빨리 쓸 수 있으니까), 전표의 마지막 장을 떼어 내어 나머지를 점원에게 건넸더니, “떼지 말아 주세요! 저희가 합니다!” 하고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쪽에서 자르게 되어 있습니다” 라며 으스대듯 말하더군요. 이 ‘되어 있습니다(なっております)’라는 표현도 참 이상한 이야기지요. 그쪽에서 반드시 잘라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혹시나 또 봉투에 넣어 주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쓸데없는 종이 사용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봉투에는 넣지 않아 줘서 다행이었지만, 전표는 네 번이나 접혀 버렸습니다. 이것도 정말 싫습니다. 나는 이 전표를 그대로 파일에 꽂아 두기 때문에, 접혀 있으면 곤란하거든요. 일본인은 참 쉽게 ‘접고 싶어 하는’ 민족이지요. 책에는 꼭 커버를 씌우고 말고요.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왜 전표의 사본을 ‘전표 보관용 봉투(伝票お控袋)’라는 작은 봉투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현금으로 물건을 샀을 때 받는 영수증은, 결코 봉투 같은 데 넣지 않고 그냥 그대로 건네주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봉투에 넣어 주는 쪽이 더 공손하다고 여겨지는 걸까요. 그런데 말이죠, 일본인은 봉투에 넣지 않고, 서양인은 봉투에 넣는 물건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베개입니다. 에이, 설마요? 진짜라니까요.
젓가락 봉투 같은 건 보통 중국인은 쓰지 않고,
우산 봉투라는 것도, 아주 고급 우산이 아닌 한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 않을까요.
외국에서는 대학생 하면, 두꺼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아주 흔한 풍경인데, 일본에서는 책을 맨손으로 들고 다니는 대학생,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책들은
알파벳 글자가 줄줄이 찍혀 있는 그 보스턴백이라는 이름의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
● 03. 소품(小物)에 집착하는 남자들
일본 남성만큼 소품에 집착하는 남자들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요. 점심을 메밀국수 한 그릇으로 대충 때우는 샐러리맨이라도, 양복 가슴주머니에는 몽블랑 볼펜 하나쯤 꽂고 있는 풍경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으니까요.
외국인 중역을 인터뷰하러 가면, 설명을 위해 종이에 그림을 그려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가슴주머니나 서류가방에서 나오는 필기구를 보면, 정말 대부분이 백 엔도 안 할 것 같은 볼펜이나 사인펜입니다.
게다가 색도 검정이나 남색이 아니라 초록, 주황 같은 눈에 띄는 색을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문이나 잡지 기사, 복사 문서에 표시를 하기엔 그런 색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겠지요. 간단한 메모에는 분홍이나 갈색 사인펜을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공식 서한을 타자기로 치기 때문에, 필기구는 서명할 때만 사용합니다. 서명에는 역시 검정이나 남색 잉크의 볼펜이나 만년필이 쓰이지만, 가끔은 초록이나 빨간 볼펜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주 유별난 사람을 제외하면, 보통은 필기구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기자들만 봐도, 타자기를 살 때는 여러 대를 시험해가며 신중하게 고르지만, 필기구에 집착하는 기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인은 대단합니다. 글을 많이 쓸 것 같지도 않은 분이 몇천 엔짜리 볼펜이나 몇만 엔짜리 만년필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만년필의 경우엔 잉크까지 따져서, 국산이 아니라 미국산이나 서독산을 쓰는 분도 많다고 하더군요. 필기구에서 시작해 메모지 케이스, 수첩, 정기권 지갑, 명함 지갑, 열쇠고리. 그리고 넥타이핀, 커프스 단추, 벨트, 시계, 지갑과 동전지갑까지. 이런 소품에 공을 들이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남자 얘기만 하는데 여자는 어떠냐”고요? 여자들은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세세한 데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서, 일본 여성만의 특징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본 남성은 분명 외국 남성과 다릅니다. 세계 정치의 향방에 관심을 갖는 사람보다, 멋진 소품을 갖는 데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일본 남성의 소품 애호벽은 세부에 집착하는 성향의 표현일 겁니다. 사소한 데만 눈이 가다 보니, 주거 환경 개선이나 도시 재개발 같은 큰 사업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것이겠지요. 정말로요.
마을 전체, 국가 전체, 더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한 관심은 낮고, 머릿속엔 자기 가족과 회사 일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소유물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합니다. 골프를 시작하기도 전에 고가의 골프 용품을 사고, 테니스를 시작하기 전에 라켓은 물론 테니스복까지 전부 갖춰버리는 식이죠.
이런 비판을 하는 건 저뿐만이 아닙니다. 다카야마 연구소 소장 하라 마코토(原真1936~ 2009 의사-등산가) 씨도 1983년 1월 14일자 마이니치신문에 '피켈과 일본도' 라는 글을 실어 이런 일본인의 경향을 비판했습니다.
ㅡ "칼이 무사의 혼이라면, 피켈은 등산가의 혼이다" 라는 말이 일본 등산가들 사이에는 흔하지만, 외국 등산가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살인 도구일 뿐인 칼을 주인의 혼으로 숭배하는 풍습도 일본에만 있을 것이다.(중략)
세부에 집착하기 쉬운 일본인은 전쟁이든 등산이든(혹은 평화운동이든) 전략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전략의 가치를 인정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거나, 전략적 행동을 감당할 정신력이 부족한 것이다.(중략)
일본 등산가의 피켈 집착은 사무라이의 칼 집착과 닮아 있으며, 이는 비전략성의 지표라 할 수 있다. 미숙함과 나약함의 징후일 뿐, 결코 정신력의 상징은 아니다.(후략)
홍콩의 기성복 수출업자가 했던 말도 떠오릅니다. 유럽·미국 바이어들은 디자인·색·소재가 마음에 들면 곧바로 가격 협상에 들어가지만, 일본 바이어는 옷을 뒤집어 박음질이 고르지 않은지, 울지 않았는지를 철저히 검사하고, 조금이라도 문제 있으면 반품해 버린다는 겁니다.
일본인 입장에선 당연한 태도겠지요. 일본 소비자는 그런 점에 까다로워서, 박음질이 엉성한 옷은 사지 않으니까요. 미국 소비자라면 “누가 안쪽을 신경 써?” 하며 그냥 입어버릴 겁니다. 이런 일본 소비자의 ‘세심함’이 수입 장벽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소비재 수입은 늘기 어렵고, 앞으로도 크게 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세부 집착은 일본인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가전, 시계, 카메라 등 일본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 건 철저한 품질 관리 덕분이겠지요. 이것이야말로 일본 제품의 강점입니다.
외국인들은 일본인의 이런 꼼꽁함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좋든 나쁘든 아주 일본적인 성향인 건 틀림없습니다. 일본어에 ‘찬합 구석에 남은 밥알 하나까지 챙긴다(重箱の隅をつつく)’라는 표현이 있는 것도, 스스로 그런 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영어의 nit-pick(좀스럽다)는 훨씬 경멸적인 뉘앙스를 풍깁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
● 04. 인사(각도) 측정기
‘인사 측정기’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건 원래 긴테쓰(近鉄) 백화점 사장이 고안한 것이라더군요. 점원의 예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사의 좋고 나쁨을 ‘객관적으로’ 재는 방법을 생각해낸 겁니다.
처음엔 간단한 금속 틀에 나무판을 붙여, 인사의 깊이에 따라 판이 움직이게 한 장치였다고 합니다. 15도는 동료 인사, 30도는 손님용, 45도는 윗사람에게 ‘특별한 경의’를 표할 때로 정해졌죠.
하지만 허리 위 각도만 재서는 실전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전동식 장치를 개발합니다. 옆모습 전신에 적외선 램프 7개, 다리와 등을 감시하는 ‘전기 눈’까지 달린 기계입니다.
스위치를 30도로 맞추면, 패널 램프가 인사의 깊이가 맞는지 알려줍니다. 반복 연습을 하면 15도·30도·45도가 자연스레 몸에 밴다더군요
예를 들어 스위치를 30도 인사에 맞추면 패널의 램프가 인사의 깊이가 올바른지 알려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기계로 여러 번 연습하면 15도, 30도, 45도의 인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익힐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자세'를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자세를 정돈함으로써 정신을 가다듬거나, 정신의 고양을 자세로 나타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형식주의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백화점 직원의 인사 훈련도, 그런 일에 시간을 쏟을 바에는 상품 지식을 채워 넣는 쪽에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점원이 없는 슈퍼마켓에서의 쇼핑과는 달리, 백화점에서 살 경우에는 관리 방법이라든가, 고장났을 경우의 수리 조건이라든가,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요. 그런 질문에 척척 대답해 주시는 것이, 30도 인사를 받는 것보다 훨씬 소비자에게는 중요합니다.
게다가, 인사는 30도 정도로 하는 점원이 손님에게 들리는 곳에서 큰 소리로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많아서, 그걸 보면 손님은 자신이 소중히 여겨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겁니다. 깊은 인사라는 것은 대체로 거짓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뒤돌아서는 순간, 그 사람은 혀를 내밀고 있을 것만 같지 않습니까. “머리만 숙이면 그만 아니냐”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법한 태도 말입니다. 정말로 상대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다면, 그 마음은 눈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고개를 숙여버리면, 상대는 그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게 되지요.
사회에 고정적인 계급이 존재했던 시대에는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의 인간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현대 일본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신을 표방하고 있을 것입니다. 봉건 시대의 흔적처럼 깊은 인사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겠죠.
가벼운 목례야말로 현대적인 인사가 아닐까요? 일본인의 이러한 "자세를 숭배하는 버릇"에 대해 외국인과 이야기하면, 쉴 새 없이 예를 이야기해 줍니다. 이 버릇은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것 같습니다. 미국인 기자는 달력으로 여름이 되기 전에 반팔 옷을 입고 출근하면 만나는 일본인 열 명 중 여덟 명은 "춥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고 말했습니다.
"덥게 느껴지는지 춥게 느껴지는지는 개인마다 다를 텐데, 일본인들은 지금도 어느 날 일제히 옷을 갈아입는 것 같아요." 확실히 미국에 가면 여름밤 같은 때 젊은 사람들은 옷인지 드레스인지 모를 옷을 입고 있는가 하면, 나이 든 여성 중에는 모피를 걸친 사람도 있어서 각자 체온에 맞춰 입을 옷을 고르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인의 한 임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본인 고객을 위해 도쿄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파티 전에 그의 회사 일본인 대표와 미팅을 했고, 파티는 6시부터 시작해서 6시 45분에 그가 인사를 하고 8시에 폐회하기로 했습니다.
그 미국인이 놀란 것은, 아직 손님이 많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6시 45분이 되기 1분 전에 일본인 대표자가 마이크 앞에 서서 그의 소개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파티라면 손님이 일찍 도착하는지, 아니면 늦게 오는지를 보고, 대부분의 손님이 회장에 들어간 틈을 타 연설을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게다가 그가 깜짝 놀란 것은, 분명히 파티 초대장에 "6시부터 8시까지"라고 써 놨지만, 8시 1분쯤 되니, 회장에 있던 손님들이 전부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제시간에 대화를 끝낼 수 있을까?" 하고 그는 몹시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문득 떠올린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길 모퉁이까지 왔다고 해봅시다.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눈 뒤에 헤어집니다. 그런데 상대가 일본인일 경우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든 간에 대화를 끊고 작별 인사로 들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길 모퉁이에 이르면 헤어진다”는 형식이, 대화의 내용보다 우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인 친구들이 들려준 옷차림 이야기나 시간에 관한 이야기 역시 모두, 개인의 취향이나 기분보다 “계절별 복장”이나 “시간 엄수”라는 형식이 우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1983년 1월 7일과 8일자 아사히 신문에 실린
"미즈코 쿠요(水子供養: 죽은 아기 공양), 이질적인 활황", "주형으로 대량생산 되는 지장보살 상" 이라는 기사를 보고, 일본인의 ‘형태를 숭배하는 버릇’을 장사로 삼아 돈벌이를 참 잘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임신중절을 한 여성이나 그 파트너는 자신들의 행위를 뉘우쳐서라기보다는, 공양을 하지 않으면 화가 미친다는 속설에 겁을 먹고 공양에 나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평소에는 전혀 종교적인 생활을 하지 않던 남녀가, 이런 때가 되면 단번에 불교에 입문해 버리는 것도 우습지만, ‘미즈코 쿠요’를 선전 문구로 내세운 절(寺)은 대단한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높이 33미터의 순금 대관음이라니, 이야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절의 주지라는 사람이 본업은 임대업자이고, 고야산(高野山: 和歌山県소재)에 한 달 틀어박혀 자격을 땄다는 것이니, 어딘가 너무 손쉬워 보입니다. 공양을 위해 지장을 봉납하게 하는 절도 있는데, 그 지장이라는 것이 목제·금속제·플라스틱제로, 공장에서 거푸집에 끼워 넣어 잇따라 대량 생산되고 있다더군요.
급조 자격으로 된 주지에게 공양을 받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지장(보살상)을 모셔 두기만 하면 화가 사라진다고 정말로 믿고 있다면, 그건 또 대단히 소박한 신앙심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쨌든 형식대로만 해 두면 안심”이라는 형식 숭배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 형식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법 해석에 있어서도 종종 ‘샤쿠시죠기(杓子定規: 국자와 자는 어울리지 않음의 비유)’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을 위해 법을 만들었을 터인데, 오히려 법에 인간이 얽매여 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1983년 2월 17일자 뉴욕발 시사통신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욕주 법원의 오언스 판사가 인종적 편견으로 흑인 소년을 습격한 백인 소년 두 명에게, 흑인의 역사에 관한 논문을 제출하면 형을 가볍게 해주겠다고 판결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형을 내리는 것보다 이 쪽이 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논문 제목은 "독립 전쟁 전부터 시민권 운동에 이르기까지의 미국 내 비참한 체험"이며, 기한은 약 한 달이다. 일본 판사님도 이 정도 탄력적이면 재판 기사 읽는 것도 재밌어지겠네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
● 05. 명함과 라벨
사람과의 만남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명함’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대개의 일본인은 상대방의 이름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명함에 인쇄된 회사 이름과 직함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듯합니다.
그래서 헤어진 뒤 그 사람을 화제로 삼을 때도
“저기, 지난주에 네가 소개해 준 ○○은행 사람이잖아”
라는 식으로, 개인의 이름보다는 소속 조직의 이름이 기억되고, 정작 본인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야마다 미치오(山田道夫)나 다케시타 요코(竹下洋子) 같은 개인의 이름보다도, ○○상사 영업부장이라든가 ××백화점 신주쿠지점장 같은 직함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지요.
일본경제신문 1983년 3월 9일자 문화면에는 스기하라 다미타케(杉原民剛)라는 ‘명함 장인’이 '명함이 만들어내는 명사의 풍격' 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기고한 바 있습니다. 그 글 속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네댓 명의 손님이 우르르 매장에 들어와서는, 명함에 인쇄할 이름과 직함까지도 정해 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내가 사장이 될 테니 너는 전무를 해라.” “아니, 나는 영업부장이 더 좋아.” 이런 식으로 왁자지껄 의논을 벌이다가, 한 시간 코스로 완성된 명함을 들고 돌아간다는 것이지요. 일본에서는 무슨 일을 꾸미든 명함이 필수품이기 때문에, 이런 ‘한 시간 코스’ 같은 서비스도 크게 유행하는 것일 테지요. 또 이분의 회고에 따르면, 예전에 직함이 단 두 글자, ‘농업(農業)’뿐인 명함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명함의 주인은 어느 지방의 명사로 여러 단체의 임원을 맡고 있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사람의 인품이 은근히 떠올라 마음이 훈훈해졌던 적이 있다고 그는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직업상, 지나치게 직함에 집착하는 사람들만을 상대해 온 탓일지도 모르겠지요.
한편 내 경우를 보자면, 외국인 동종 업계 사람들 가운데는 명함에 ‘라이더(Rider)’라든가 ‘저널리스트(Journalist)’라고만 적고, 그 아래에 자기 이름과 일터의 주소, 전화번호만 인쇄한 명함을 쓰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저널리스트’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면, 대개는 어딘가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건 실제로 내가 약 8년쯤 전에 직접 해본 일이니 확실한 이야기입니다. 설마 나를 총회꾼(기업을 협박하는 브로커)으로 착각했던 건 아니겠지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신문과 잡지 이름을 명함 한쪽 구석에 줄줄이 적고, 직함은 ‘코레스폰던트(correspondent, 특파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명함을 새로 만들 때는, 뒷면에 저서명을 쭉 늘어놓아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일본 비즈니스맨들이 만나자마자 명함부터 내미는 습관을 세계로 수출한 덕분에, 외국 비즈니스맨들도 일본인과 만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명함 가게들 역시, 주문만 하면 한쪽 면을 일본어로 인쇄한 명함을 만들어 주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소개받자마자 명함지갑을 더듬는 습관까지 외국에서 채택된 것은 아니라서, 거기서는 여전히 악수가 먼저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명함이 중요할까요? 외국인들끼리의 경우를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를 말로 설명하고, 상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관찰하고, 중간에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서로의 사람됨을 알아가려 합니다. 명함은 어디까지나 리마인더(reminder), 즉 잊지 않기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일본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말투가 몹시 딱딱하고, 표정 변화도 적으며, 복장에서도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개인이 발산하는 정보’가 적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함이라는 ‘인쇄된 정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일지도요. 이유가 무엇이든, 일본인에게는 인간의 내면보다도 겉에 붙은 라벨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명함을 매개로 한 정보로 상대와 나의 관계를 먼저 설정한 뒤에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비즈니스를 떠난 파티 자리에서도 다짜고짜 명함부터 내미는 사람이 있어 진저리가 날 때가 있습니다. 입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사람을 출신 학교라는 라벨로 판단하는 일본인의 버릇이 원인인 셈입니다.
일본 남성들 가운데에는 스즈키 겐지(鈴木健二) 씨처럼, 입시 전쟁의 원흉을 고등교육을 받고도 한가하게 지내는 교육 엄마들과 ‘여성 특유의 허영심과 계산, 편협한 시야’에 돌리며
모든 책임을 여성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도 많은 듯합니다 ("배려의 권유", 고단샤, 1982년).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시험관들이 지원자의 출신 학교를 지나치게 문제 삼기 때문에, 어머니들이야말로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는 데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기업에 들어갈 때만이 아니라, 출신 학교라는 것은 평생 따라다니는 법입니다. 사회에 나온 뒤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고작 4년을 보낸 대학이 어디였느냐가 여전히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되며, 그 사람의 가치를 재는 기준으로 사용됩니다.
참으로 불공평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열일곱, 열여덟 살 무렵의, 단 하나의 능력이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한다니 말입니다.결국 일본인은 개인의 능력을 스스로 판단하려 하지 않고, 출신 학교라는 자(尺)에 대어 버리고, 개인의 인물을 직접 가려 보려 하지 않은 채, 명함에 적힌 직함에 의존해 버린다는 것이지요.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람의 외모를 칭찬할 때 일본인들은 “○○ 씨를 닮으셨네요” 같은 표현을 쓰며, 연예인을 끌어오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이 표현을 외국인들은 몹시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 대상이 폴 뉴먼 같은 미남이든, 라켈 웰치처럼 섹시한 여성이든 간에,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자기 외모는 자기 자신의 것이지, 다른 사람과 닮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를 닮았다”는 표현은 참으로 안이한 말입니다. 그 사람만의 매력을 표현할 말을 찾지 않고, 손쉽게 통용되는 라벨을 갖다 붙이는 것이니까요. 일본인은 이 점에서 조금 게으른 것일까요?
이 역시 일본인의 ‘개인을 가볍게 여기는 성향’의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또다시 일본경제신문 이야기인데, 1983년 2월 4일자 1면의 "춘추(春秋)" 칼럼이 미국에서 일본 음식이 보급되고 있는 상황을 다루면서, 그 정보의 출처로 기코만(亀甲萬-きっこうまん)의 출판물을 언급해 놓고도, 그 글을 쓴 '푸드 라이터 스나다 도시코(砂田登志子)'라는 사람의 이름은 전혀 밝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침 나는 그 출판물을 직접 읽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보고서의 필자가 스나다 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쓴 사람은 스나다 씨이지 기코만이 아닌데도, 개인은 무시되고 보고를 의뢰한 조직 쪽이 더 중시되는 것이지요. 물론 모든 일본인이 라벨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이소무라 쓰토무(磯村懋)라는 사숙(私塾) 경영자처럼, 다섯 자녀를 어떤 라벨도 붙이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키운 일본인도 있습니다.
1983년 3월 25일자 아사히신문의 '사람(ひと)' 란에 따르면, 이소무라 씨의 장남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본인의 희망에 따라 남색 더블 재킷을 사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차이나칼라(詰襟:목깃을 어미는 형태) 교복이 정해져 있었고, 입학식 날 그 일로 호된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지요.
이소무라 씨는 장남에게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남은 “복장은 인격의 상징이므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며, 머리 모양이나 가방에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냈고, 초등학생인 동생들까지 이를 본받아 형제자매 모두가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장남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집에서 독학해, 검정시험으로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했고, 동생들 역시 그 길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서 “참 좋다”라고 느끼는 게 혹시 저뿐일까요? 한편 건축가 단게 겐조(丹下健三1913~2005) 씨는 일본경제신문의 '나의 이력서(私の履歴書)' 연재에서 이렇게 회고합니다.
'그 무렵 초등학생들은 무릎이 훤히 드러날 만큼 짧아진 기모노를 입고, 발에는 조리나 게다를 신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상하이에서 막 돌아온 터라, 차이나칼라에 반바지, 때로는 넥타이까지 매고, 가죽 끈구두를 신는 차림이었다. 학교에 가면 모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꽤나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1983년 9월 11일자) 라고 단게 겐조 씨는 쓰고 있습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나서 더더욱 단게 씨의 팬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단시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
● 06. 가라오케·커뮤니케이션
명함이 일본 사회에서 이처럼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데 서툴기 때문일 것입니다. 술이 들어가면 마치 자신이 지구를 굴리고 있는 사람인 양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분도 있기는 하지만, 대낮에, 아주 평범한 목소리로, 짧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기소개뿐만 아니라, 일본인은 전반적으로 말을 통한 표현에 약한 편인 듯합니다. 많은 말을 들여 상대의 이해를 구하려 하기보다는, 상대가 ‘알아서 헤아려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헤아려 주지 않을 경우에는, 비교적 미련 없이 포기해 버리는 것이 하나의 미학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하지요. “끈질긴 것”은 싫어합니다.
논리적인 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좀 들려줘”라고 하면 “아니, 이제 됐어” 같은 말을 들어 버립니다. 이게 참 찝찝한 거예요. 나는 일본인이지만, 이야기는 논리로 진행하고 싶고,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논리에 일관성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고 중간에 그만두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게 불쾌합니다. 조금만 더 논의를 이어가려 하면 “아, 좀 집요하네”라는 말을 듣고 말지요.
특히 하나의 주제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끝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 뒤에 시간이 좀 지나 다시 원래의 화제로 논의를 되돌리려 하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양의 관습을 보면, 일이 끝난 뒤 일부러 옷을 갈아입고, 직장에서는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굳이 만나러 가거나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는데, 그건 자기와 다른 분야의 사람,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과 논리를 부딪쳐 보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해가 진 뒤에 조금만 논리적인 이야기를 꺼내기라도 하면 “한잔하면서 이야기 하시죠” 같은 말로 슬쩍 얼버무려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다들 아시는 가라오케라는 존재지요. 다른 유행과는 달리, 이건 참 오래도 갑니다. 일본 국내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나 미국의 대도시에서도 일본인 비즈니스맨 전용 가라오케 바가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이 유행하는 걸까요? 더구나 낮에는 유난히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일수록, 가라오케 팬인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일본악기(日本楽器)가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50곳에 근무하는 부·과장급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라오케에서 ‘주 1회 이상’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무려 10%나 되었다고 합니다. 또 70%의 사람들이 가라오케의 효용을 ‘동료·부하·거래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일본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논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은 애초에 하지 않고, 술에 반쯤 취한 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상대도 분명 기분이 좋아졌을 것”이라고 스스로 안심하는—그런 방식이 일반적인 듯합니다.
아사히신문 1983년 1월 10일자에 따르면, 도쿄 교외의 한 시(市)에서는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가라오케 세트 10대를 구입하기로 했고, 그 비용 약 200만 엔이 쇼와 58(1983)년도 예산에 계상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발언이 걸작인데요. “어쨌든 시민들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들 번거로운 걸 싫어해요. 가라오케로 떠들고 싶은 겁니다.”
“거기에 행정기관이 조금 거들어 준 것뿐이다”라는 식으로 정리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금 섬뜩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라오케를 하고 싶어 하는 주체가, 한창 놀 나이의 아이들이 아니라, 분별이 한창 무르익은 샐러리맨이나 육아를 마친 주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말이니까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발산할 수 없을 만큼, 모두들 억눌린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자기를 표현할 다른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자기주장을 그곳에서 나타내야 하는 것일까요?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데이트 중인 여성을 가라오케 바로 데려가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럿이 모여 축하 자리를 가진 뒤에, 맥주홀이나 가라오케 바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는 기분이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모처럼 남녀 둘이 만나 놓고, 일부러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장소로 가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요.
둘이 있을 때조차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남성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까요? 처음 데이트라 긴장해 어쩔 줄 모르는 10대 소년이라면, 그런 모습도 귀엽게 봐줄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가라오케에 의존하지 말고, 상대가 즐거워할 만한 장소를 골라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물며 어른 남자가, 어른 여성을 상대로, 밤의 소중한 시간을 가라오케 바에서 보내다니, 이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일본인의 카라오케 사랑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나카소네 총리가 1983년 1월 한국 서울을 방문했을 때, 두 번째 회합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이 카라오케 대회를 열어 나카소네를 환영했다고 합니다. 아사히신문의 고바야시 특파원에 따르면, 장소는 청와대 근처의 귀빈영접관이었고, 탤런트와 영화배우 등 여성 여덟 명을 초청해 전 대통령은 한국 가요 ‘김삿갓’을 불렀고, 이에 맞서 나카소네 총리는 ‘노란 셔츠를 입은 남자’를 한국어로 불러 답했다고 합니다.
외교에는 긴장을 풀기 위한 환대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한 시간 사십 분에 걸쳐 건배의 주고받음과 카라오케로만 끝난 정상 간의 회합이라는 것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일본인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남편들은 “밥, 목욕, 잔다”라는 세 마디밖에 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런 사정까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결혼에 환상을 품는 여성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1985新潮社刊 千葉敦子作)
● 07. 매번 시끄럽게 하여 죄송합니다
평소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가장 “싫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옆에서 들여다보는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 은행에 예금을 자동으로 입출금할 수 있는 기계가 있죠. 그 기계를 조작하고 있을 때,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유난히 내 몸에 바짝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뒤에 달라붙듯이 서 있는 사람도 있어요.
더 심한 경우에는, 비스듬히 뒤쪽으로 와서 내 손놀림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가장 가까운 기계에서 약 1미터 반 정도 떨어진 지점부터 기다리는 줄이 형성되고, 줄이 길어지면 뒤에 있는 사람들은 건물 밖에까지 서게 됩니다. 그래도 기계를 조작하고 있는 사람과의 사이는 반드시 적절한 거리가 유지됩니다. 줄의 맨 앞사람은 빈 기계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줄은 한 줄로 유지되지요.
또 우체국 창구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다음 사람이 내 뒤에 서지 않고 옆으로 와서, 내내 내가 처리하고 있는 용무를 들여다보는 일도 있습니다. 며칠 전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을 때도, 다음 사람이 내 옆으로 와 버려서 불쾌하다는 생각에 그 사람을 노려보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대사관 직원이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뒤에 서 주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리타(成田) 공항에서 세관을 통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사람이 짐 검사를 받고 있는데도 바로 옆에 바짝 서서 그 사람의 짐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떨어져서 기다리는 게 상식일 텐데 말이죠. 매일 지하철 표를 살 때마다 이런 불쾌한 기분을 겪게 되는데, 내가 동전을 넣고 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이미 비스듬히 뒤쪽에서 누군가의 손이 뻗어 동전을 넣으려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때입니다.
여러 가지 예를 들었지만, 앞사람과의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것을 일본인은 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한 것이겠지요. ‘프라이버시(privacy)’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없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은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둔감합니다. 타인의 신체로부터 수십 센티미터 이내에는 다가가지 않는 것이 프라이버시의 원칙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몸에 닿곤 하잖아요.
매일 아침, 저녁 출퇴근 전철에서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감각이 무뎌져 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야기가 조금 새지만, 이 지옥 같은 출퇴근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일본은 선진국이라든가 부유한 나라라고 자칭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닿지 않고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건, 기본적 인권에 속하는 것 아닐까요.
이런 출퇴근 지옥을 몸소 겪으면서 국토의 협소함과 인구의 과도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남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는 점도 제 이해를 넘습니다. 인구가 지금의 10분의 1만 되었더라면, 일본은 정말 훌륭한 나라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의 경시는 결코 인구 과잉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니고, 일본이 서구식 르네상스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근대 국가가 되어 버린 데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인격체’의 확립 없이 겉모습만 근대 국가가 되어 버린 탓에, 사람들은 도시에 살면서도 행동 양식은 봉건 시대의 촌민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휴지 교환(ちり紙交換: 폐지 등 고물을 주면 휴지로 바꿔 줌)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원시적인 방식의 재활용 사업인데,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성립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일요일 아침부터 확성기로 “매번 시끄럽게 하여 죄송합니다” 운운하며 떠들어 대도, 얌전히 참고 있는 주민들—(저는 몇 차례 경찰에 전화해 보았지만, 그런 소음을 단속할 ‘법률’은 없다고 하더군요)—에 의해 그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셈입니다.
다른 선진국이라면, 일요일 아침의 정적을 깨뜨릴 권리는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두부 장수의 피리 소리나, 대나무 장대 장수, 금붕어 장수의 외침과는 달리, 휴지 교환은 확성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적을 파괴하고, 일요일 아침의 사적인 시간을 빼앗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주민들에게는 일요일의 정적을 지켜야 한다는 권리 의식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왜 휴지교환 업자나 군고구마 장수에게만 그런 폭력이 허용되는 것일까요. 만약 모든 판매원이 마이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주간지 판매원이 귀에 거슬리는 높은 목소리로 “매번 소란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주간 ○○' 홍보 차량입니다―! ○월 △일 자 최신 호에는 ‘P 부부, 마침내 이혼인가’ 특집과, 화제의 스튜어디스 Q양의 단독 인터뷰 등 특집 기사가 가득 실려 있습니다―! 그 밖에도 충격 고백 기사…” 라고 외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이런 행위가 허용될 수 없다면, 왜 휴지 교환은 괜찮은 것일까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판매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소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벗어난다 해도,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온천 같은 곳에 가 보아도, 단체 관광객의 연회가 밤새 시끄러워서, 조용히 즐기려는 여행자의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무시됩니다. 관광지에 가면 요란하게 음악을 틀어 놓아,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할 기분마저 망쳐 버립니다.
이것은 명백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항의하는 사람은 반드시 “별난 사람이네" “시끄러운 아줌마네” “신경질적인 사람 아니야?” 같은 온갖 험담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 또한 일본인의 버릇일지도 모르겠네요. ‘얌전하다(おとなしい)’라는 말 자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순종적이다’라는 의미가 ‘어른스럽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니까요. 이런 경우에 시끄럽게 따지지 않는 것이, 곧 어른다운 태도로 간주되는 것이겠지요. 소비자 운동이나 환경 보호 운동 같은 것들도, 일본에서는 어쩐지 ‘여자나 아이들이 떠드는 일’로 치부되기 쉬워서, 다 큰 남자들이 이를 우습게 보는 풍조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08. 메뉴 필요없음
조금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갔을 때, 도대체 어떤 요리를 먹게 될지 메뉴를 훑어보는 일은 식사의 즐거움 가운데서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 일반적인 레스토랑이라면, 한정된 메뉴 가운데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고르는 일이 하나의 작은 수고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일본인 남성들 가운데에는 메뉴를 아예 보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단골집이고, 이쪽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면 “맡길게요”라고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도 메뉴를 펼쳐 보지도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옆에서는 “이제 굴이 맛있는 철이 되었을까?”라든가 하고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 집 특제 파테(전채요리)라는 건 어떤 건가요?” 하고 말을 걸어 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먹을 것을 고르면 “그거 두 개요.” 라든가, “나도 같은 걸로.” 하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죠. 그러는 순간 식사의 즐거움은 반 토막이 나 버립니다. 뭐, 잘난 체하며 이것저것 장황하게 설명해 달라는 것도 아니지만, 자기가 먹을 음식 정도는 조금 더 ‘자기 의지로’ 골라 주시면 안 될까요?
메뉴도 읽지 않고, 마치 누가 정해 준 급식을 먹듯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인생에서도 무슨 일이든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됩니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학교에 가고, 이름이 알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 들어가고, 상사가 권하는 여성과 결혼을 하고, 회사가 정해 주는 인사 이동에 따르고...。
급식이라고 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학교 급식에도 보통 메뉴가 있고, 최소한 메인 요리는 두 가지 정도가 준비됩니다. 아이들이라도 자기 취향에 맞는 쪽을 스스로 선택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는 것이지요. 일본처럼 교실에서 먹는 일은 없고, 반드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병원 식사도 서구에서는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비행기처럼 공간이 제한된 곳에서도, 일등석이라면 두 가지 코스 가운데에서 고를 수 있고, 이코노미 클래스는 요리가 동일한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식후의 커피나 홍차는 원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레스토랑에서는 곁들여 나오는 채소조차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술 주문하는 방식을 보아도, 아마 9할이 넘는 일본인은 맥주나 물에 탄 위스키, 혹은 일본주를 마시면서도, 맥주든 위스키든 일본주든 구체적인 상표를 지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버릇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윗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쌀의 품종명을 없애자는 농림수산성의 안은 결국 무산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본에서 알려진 쌀 품종이라고 해 봐야 고시히카리와 사사니시키 정도가 전부이지 않습니까. 주식이 쌀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미국에서는 쌀 품종만 해도 열 가지 이상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식품 문제 연구가인 스나다 토시코(砂田登志子) 씨의 말에 따르면, ‘미닛 라이스’, ‘서크세스’, ‘마하트마’, ‘워터 메이드’ 같은 유명 브랜드 외에도, 각 지역의 중소 업체 제품들까지 잇달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브랜드를 스스로 고르지 않는 습관이, 일본인의 단순한 브랜드 지향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막대한 광고비를 쓸 수 있는 기업들이 소비재 시장을 과점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같은 상품명을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각인시키는 광고 방식은 미국에서 발전한 것이지만, 그러한 방식이 지닌 위험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강력한 소비자 운동을 발전시킨 나라 역시 미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기업 쪽의 TV 매체 활용만 크게 진전되었을 뿐, 그 남용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은 그다지 발전해 오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생산재 시장에서는 경쟁이 매우 치열해서, 한 회사의 제품이 시장을 독점하는 일은 극히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소비재 시장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과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예컨대 일본과 미국의 슈퍼마켓 상품 구성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누구나 사용하는 상품의 다양성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를테면 샴푸를 생각해 보지요. 일본의 슈퍼마켓이나 화장품점에서 판매되는 샴푸가 도대체 몇 종류나 될까요. 미국이라면, 예를 들어 기름기가 많은 머리카락용 샴푸만 해도 대략 열 종류, 푸석푸석해지기 쉬운 머리카락용 샴푸도 또 열 종류쯤은 있습니다.
게다가 단백질이 들어간 것, 비타민이 첨가된 것, 허브가 들어간 것, 특별히 문제가 있는 모발을 위한 특수 샴푸, 컨디셔너 역할까지 겸하는 제품 등 실로 다양한 종류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격 면에서도 일반 대중용부터 고급품까지 폭넓고, 용량 역시 작은 병부터 대용량의 실속형 용기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합니다만, 제조사도 제각각이고, 제조사의 국적 또한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슈퍼마켓에서, 과연 간장 제조사를 몇 곳이나 셀 수 있을까요. 간장처럼 일본 음식의 기본이 되는 조미료가 이 정도로 과점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최근에 와서야 저염 간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런 변화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불과하지요.
일본인의 과도한 염분 섭취가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간장이나 샴푸의 선택 폭이 좁다는 점이, 결국은 인생에서의 선택 폭이 좁아지는 것과도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모두가 ‘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요. 왜 아이를 굳이 ‘학원’이라는 데에 다니게 해야 하는 걸까요.
왜 누구나 너나없이 샐러리맨이 되려고 할까요. 스무 살 안팎의 나이에, ‘안정성’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아 직업을 선택하는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보수성, 체제를 긍정하고 따르려는 태도는,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익숙해진 그 ‘얌전함’, ‘순응’에서 자라나 온 것은 아닐까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그 인생의 코스를 선택하는 일은 본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의 다음 말을 곱씹어 보았으면 합니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부자유를 이상화한다.” (올가 이빈스카야 지음, 구도 마사히로 옮김 '파스테르나크, 시인의 사랑', 신초샤, 1982)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09. 슬리퍼의 규칙
일본인의 화양절충식 생활이 만들어 낸 묘한 습관은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슬리퍼로 갈아 신는 관습입니다. 처음으로 일본인의 집에 초대되거나 일본식 여관에 묵게 된 외국인들이 가장 당황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슬리퍼 규칙이지요.
우선 일본의 집이나 건물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다는 규칙은 이제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관에서, 원래는 침실에서 신어야 할 슬리퍼를 내밀며 “이쪽으로요” 하고 권하는 이유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병원이나 여관 등에서, 누가 신었는지도 모를 슬리퍼를 신게 하는 일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의 집 안에서는 ‘신발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는구나’ 하고 익힌 외국인이 다다미방에 슬리퍼를 신은 채 들어가려고 하면 “아, 거기서 벗어 주세요”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왜냐고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슬리퍼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 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발도 그랬죠.
작별 인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싶어서
다다미방을 나와 그대로 현관 옆 세면대 쪽으로 가려고 하면 “슬리퍼 신으세요”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하면 그 안에 또 한 켤레의 슬리퍼가 놓여 있습니다. ‘이건 또 뭐지?’ 싶어서 집주인에게 물어보면, 화장실 전용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왜냐고요? …모르겠어요. 정말로요.
이 규칙은 어렵기도 하고, 좁은 집 안에서 몇 번이고 벗었다 신었다 하려니 참 번거롭네요. 하고 외국인들은 투덜대지만, 슬리퍼 규칙은 놀랄 만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슬리퍼 이야기에서 테이블 매너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조금 엉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일본인은 서양 음식을 먹을 때 소위 ‘정식(正式)’이라고 불리는 매너에 대단히 신경을 씁니다. 생선 요리에는 화이트와인, 고기 요리에는 레드와인—보통 식사에서도 요리 하나하나에 맞춰 와인을 바꿔 마시느라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서양 요리를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들의 서민들은 화이트든 레드든 값싼 와인 한 병을 시켜 놓고 식사 내내 같은 것을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러면서도 일본 음식의 먹는 법에 관한 규칙은 이미 잊혀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은 오른쪽, 밥은 왼쪽에 놓아야 하는데도, 요릿집에서조차 거꾸로 내오는 곳이 있을 정도입니다.
또 국을 한 모금 마신 뒤 밥을 한 입 먹고,
그 다음에 반찬을 먹는 식으로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예절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만, 요즘에는 처음부터 반찬에 젓가락을 대는 사람도 있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젓가락의 반찬 옮겨 집기 라든가 젓가락 꺼꾸로 잡기 같은 행동은 “버릇이 없다”며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꾸중을 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된 것 같네요. 외국인처럼 젓가락을 잡는 사람도 보이는데, 일본 음식이 국제화될수록 일본 고유의 테이블 매너는 점점 사라져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만국 공통의 매너—국물 음식을 소리 내어 마시지 않기, 입에 음식을 넣은 채로 말하지 않기, 식탁에서 병 이야기하지 않기,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지 않기— 이런 것들만 남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서구의 비즈니스맨들이 일본에 오면
일본인을 흉내 낸다며 커피를 “즈즈즈—” 소리를 내어 마시기도 했지만, 점차 그런 흉내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복잡한 규칙은
사라지는 편이 마땅하겠지만, 누가 보아도 기분 좋게 느껴지는 매너라는 것은 분명 존재합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마시는 것 역시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일본식 식사 예절은 쇠퇴해 버렸지만,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은 대체로 규칙을 ‘정식으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를테면 초밥집에서는 도로(참치뱃살)부터 시작해 마지막을 김말이로 끝내는 것이 하나의 규칙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소마키(紫蘇巻:차조기김밥말이)” 같은 것을 주문하면 은근히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됩니다.
또 장롱은 옷을 넣는 것이라고 정해져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장롱을 신발장으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못마땅해하는 일본인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도 정작 본래는 침실에서 신어야 할 슬리퍼는 현관이나 응접실에까지 버젓이 등장합니다.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남성이나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라는 게, 시각적으로 보아도 꽤 어색하지 않습니까.
며칠 전, 호텔 오쿠라에서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는 듯한 금발의 여성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에나멜 하이힐에, 흔들흔들 흔들리는 귀걸이를 달고…아주 화려한 무늬의 기모노를 입고 있더군요.
미국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서는 거리에서 맨발로 다니는 젊은이들을 꽤 자주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합니다. 1983년 5월 29일 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82년 전인 이 날, 경시청은 페스트 예방을 이유로 도쿄 시내에서 맨발로 걷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고 합니다. 슬리퍼 이야기에서 어느새 맨발 이야기로 흘러왔네요.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0. 사자 자세(ライオンのポーズ )
그동안 다른 일본인들의 버릇만 들춰내서 계속 웃고 떠들어온 것 같아, 이제 와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여기서는 내 버릇을 하나 슬쩍 털어놓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아 줘요. 우선 잠잘 때는 똑바로 누워 자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자는 게 버릇이다.
오른쪽을 향했다가 왼쪽을 향했다가, 하룻밤 사이에도 몇 번이나 몸을 뒤척인다. 똑바로 누워 자면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몸에 비해 엉덩이가 유난히 튀어나와 있어서, 바로 누우면 엉덩이가 눌려 찌그러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허리도 아프다.
수술을 할 때, 몇 시간이나 수술대 위에서 똑바로 누워 있어야 한다니 괴롭겠구나 싶었지만,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침에 눈을 뜰 때의 버릇이 있다. 눈을 번쩍 크게 뜨고, 턱을 당긴 다음, 혀를 힘껏 길게 내미는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이것은 잠자리에서 하는 요가의 ‘사자 자세’일 뿐이다. 히로이케 아키코(広池秋子1919~2007)의 '기적의 생활 요가' (海竜社,1981년)에 따르면, 이 자세가 자극하는 혈자리는 ‘대영(大迎), 인영(人迎), 사백(四白), 인당(印堂)’이며, 그 효과로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미는 동작으로 혀의 뿌리가 당겨져 침샘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고, 눈꼬리의 주름을 없애며, 위장의 활동도 활발하게 해 준다고 한다.(*大迎: 아래턱 부근, 얼굴 윤곽선 쪽. 人迎: 목, 경동맥 근처. 四白: 눈동자 바로 아래. 印堂: 양 눈썹 사이, 흔히 ‘미간’이라 부르는 곳)
목 안쪽의 인영(人迎) 혈을 자극해 혈액순환을 좋게 하므로, 편도선염의 부기와 통증을 가라앉혀 준다.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눈 근육과 시신경을 움직이고 혈자리를 자극해 눈을 말끔하게 해 주며, 혀암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 “저혈압이나 감기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는, 누운 채로 얼굴만 움직여도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나는 야행성 인간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몹시 괴로운 편이어서,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은 뭐든지 시험해 보고 있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 주기 바란다. 눈은 떴는데도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세로로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잠에서 깨자마자 책을 읽는 버릇도 있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읽던 책을 그대로 이어서 읽는 것이다.
겨우 일어날 마음이 들면, 다음으로는 매일 아침 머리를 감는 버릇이 있다. 머리를 감지 않으면 정말로 완전히 정신이 들고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상태가 되지 않는다. 샤워를 마친 뒤에는 아주 푸짐한 아침식사를 하는 버릇도 있다. 몹시 바쁜 날에는 아침부터 스테이크를 먹는다.
평소에는 야채 샐러드에 달걀, 머핀(빵의 일종) 정도. 듬뿍 담은 요거트나 기네스 맥주에 커피를 곁들인다. 꽤 이상한 아침식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탄수화물과 당분은 최대한 줄이고, 단백질은 충분히 섭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네스 맥주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또 알코올이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아침에 몹시 느긋하게 지내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도 여덟 시 반이면 일을 시작하고 있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식사에는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만, 그 밖의 일들은 초특급으로 처리한다. 남자 친구가 “집 안에서까지 뛰어다닐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하지만, 뛰어다니지 않으면 시간이 맞지 않는다. 집 안을 뛰어다니는 것도 아마 내 버릇일 것이다.
오전에는 원고를 타이핑하는 일이 많은데, 타자기를 앞에 두고 정신을 집중한다. 창밖에 보이는 지저분한 빌딩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하고, 겨우 조금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한다. 그런데 꼭 이런 때에 한해서, 그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창유리의 얼룩 같은 것들이 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더러움을 신경 쓰면서 일을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말끔히 치워 버리고 일의 능률을 높이는 게 나을까, 하는 식으로 아주 편리한 자문자답을 하고는, 결국 유리창 닦기에 들어간다.
유리를 닦다 보면 원고의 첫 문장이 문득 떠올라, 타자기로 되돌아가는 일도 아주 가끔은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유리가 반짝반짝해져도 원고에 착수할 기분이 나지 않아, 위쪽을 걸레질한다든가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며 일의 시작을 자꾸 미루게 된다. 그렇다. 일이 바쁠 때에만 유난히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이것이 나의 또 하나의 버릇이다.
원고의 첫 문장을 쓰지 못해 끙끙대는 것은 많은 글 쓰는 이들에게 공통된 병이지만, 나는 “시간을 헛되이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타자기 앞에 앉아도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앉아 있기만 해서는 소용없다. 몸을 움직이면 머리도 조금은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기대를 매번 품게 된다. 이렇듯 나 역시 여러 가지 이상한 버릇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1. 남자도 여자도, 곧장 삐진 눈으로 본다
시기하고 삐쳐서 보는 마음, 이른바 ‘히가미(僻み: 편견-곡해)근성'이라는 것은 일본인의 가장 특징적인(?) “근성”이 아닐까. 일본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서구 사회는 전혀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삐딱하게 생각한다. 자기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장은 전혀 평가해 주지 않는다며 괴로워한다. 나는 그녀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데 그녀만큼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삐딱하게 생각한다.
‘히가무(僻む)’에 딱 들어맞는 영어 표현은 없는 셈이다. 연구사(研究社)의 '대일영사전' (1974년판)에서는 become jaundiced (prejudiced), be biased, regard with suspicion, take a jaundiced view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편견을 갖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다’라는 느낌이지 ‘僻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아사히 출판사의 '일미 구어사전'(1977년판)은 be so (overly) sensitive를 쓰고 있는데, 이건 또 어디까지나 ‘마음에 걸려 지나치게 예민해하다’는 쪽의 의미다. 물론 두 사전 모두,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번역어로 충분한 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히가무(僻む)’를 한 방에 맞혀 표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이 ‘히가미(僻み)’가 마치 범람하듯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출연자나 집필자가 일부러 삐딱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들이 일반 대중과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참으로 얄밉다고 절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저서가 밀리언셀러가 되어 연소득이 7천만 엔을 넘는다고 보도된 한 아나운서가, 그가 가장 많이 팔아치운 책 속에서 “가난한 회사원은 딸을 위해 3백만 엔의 저축조차 못 하고 있다”며 한탄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그 책이 팔리기 전에는 정말 박봉에 시달리고 있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의 책은 그 이전부터 이미 상당히 잘 팔리고 있었고, 결코 3백만 엔도 모을 수 없는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샐러리맨은 힘들잖아”라며 자기 역시 힘든 척을 하고, 일부러 삐딱해하는 태도를 연출함으로써, 이 사람은 TV에서도 책에서도 시청자와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나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다”, “이만큼 성공했다”, “나는 강하다” 같은 말을 하면, 대체로 미움을 받는다. 시청자나 독자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면, 차라리 삐딱해하는 척을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 한 가지 예가 있다. 다음은 1983년 4월 13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춘추(春秋)' 칼럼에 실린 이야기다.
ㅡ얼마 전 일본에서 시작된 모금 목적의 행진, ‘러브 워크(Love Walk)’는 취지 자체로 보면 대단히 훌륭하다. 노소가 일정 거리를 끝까지 걸은 뒤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용돈을 모아 자선사업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이를 ‘스폰서드 워크(Sponsored Walk)’ 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아마 ‘사랑의 행진’쯤으로 옮길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귀에는 “남녀가 꼭 달라붙어 걷지 않으면 안 되나?” 하고 삐딱하게 들린다. 좋은 시도인 만큼, 작명에 조금 더 궁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ㅡ
참으로 심사가 뒤틀려 있군요.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 간의 사랑밖에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 역시 딱합니다. 그런데도 “속된 귀에는 시기심에서 그렇게 들릴 뿐이다”라는 식의 표현은 일본인이 참 잘 쓰는 말이지만, 독자에게 아첨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재팬 애즈 넘버 원(일본이 최고다)'의 저자 에즈라 보걸을 싫어한다는 유럽인을 만난 적이 있어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왜냐하면 그의 책에는 ‘만약 내가 지금까지 말해온 것이 옳다면’이라는 단서가 자주 등장하거든. 그런 식의 코이니시(coyness 거짓겸손), 그러니까 순진한 척하거나, 일부러 몸을 사리며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책은 온통 그런 coyness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비뚤어진 시기심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있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품는 시기심은, 상당히 뒤틀린 모양으로 꼬여 있는 듯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1983년 6월 1일자 아사히신문 일요판에는, 기리시마 요코(桐島洋子1937~) 지음 '가족이 되는 사람, 이 손가락에 모여라' (문예춘추, 1983년)를 소개하는 기사가 ‘사케(酒)’라는 필명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사람이나, '화려한 생활 소개' 라는 제목을 붙인 정리부 기자나, 둘 다 남자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글 속에는 ‘일선에서 활약하는 커리어 우먼의 "화려한 생활"은, 지금 잡지의 그라비아(화보사진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따옴표(チョンチョン括弧)라는 것이 사실 만만치 않은 장치이고, “화려한”이라는 형용사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둘 다, 기리시마 요코의 일과 생활을 슬쩍 희화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음만 내키면 훌쩍 미국으로 친구를 찾아가고, 해마다 여름이면 가족 모두를 데리고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그런 우아한 생활 모습.
어느 때는 하루를 꼬박 들여 먹는 호화로운 중국요리 연회에 초대되기도 하고―사치스러움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 놓은 듯한 저자의 생활 방식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저자의 삶에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으레 맞닥뜨리게 되는 가족 문제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저자의 말투를 흉내 내자면, “사치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이 책으로 모여라.” 뭐, 이런 식인데요. 이 시기심 어린 태도, 과연 어떻습니까.
텍사스에 사는 여자 친구에게 고등학생 시절의 은혜를 갚기 위해 기리시마(桐島洋子) 씨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지만,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사흘뿐입니다. ‘마음만 내키면 훌쩍’이라고 ‘사케(酒)’ 씨는 쓰고 있지만, 왜 꼭 가야만 했던 중요한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호화로운 중국요리 모임에 초대된 다른 명사들은 모두 남자인데, 그런 자리에 여자가 초대되면, 그건 또 유난히 심한 시기를 받게 되는 법이지요.
“사치를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는 표현은 참으로 과장이 심하군요.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호화 저택’이라고 할 만한 집으로는 보이지 않고, 그 정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기리시마 씨의 노력과 재능은 외면한 채, 생활 모습만을 두고 “흉내 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꽤나 뻔뻔한 일이지요. “가족 모두와 함께 해외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것이 기리시마 씨에게 가능한 것은,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고, 원고를 가지고 다니며 일을 계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가 성공하면 대개 이런 식으로 트집을 잡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가족의 문제’에 관해 말하자면, 기리시마(桐島洋子) 씨는 이 책에서 여러 차례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를 언급하며, 걱정하면서도 아이들의 인격을 인정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으로 지나치게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가족의 문제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독해(読み方)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사케(酒)’ 씨가 말하는 “보통 사람이라면…”이라는 표현은 coyness(거짓겸손)의 전형입니다. 이상하게도 같은 책이, 같은 날자 아사히신문 가정면의 ‘책장(本だな)’ 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쪽은 여성 기자가 쓴 것인지, 아니면 여성 독자를 의식해서인지, “자유분방한 여자(翔んでる女)의 대표처럼 불리는 저자이지만, 생활인으로서의 확실한 시선을 곳곳에서 느끼게 한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시기심은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여자에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제 책의 독자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받은 편지 가운데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당신은 대단히 운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도 있었고, 재능도 탁월하시지만...”
“저는 전업주부입니다. 모든 여성이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당신 같은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유전적으로 능력을 부여받고, 가정환경의 혜택까지 받은 당신ㅡ개인의 노력은 인정합니다만—”
농담하지 마세요. 부모의 능력을 그대로 물려받는 아이 따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 경우만 해도, 아버지의 알코올에 대한 절제력 부족과 어머니의 둔한 두뇌 회전을 조합해서 물려받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아버지의 다혈질과 어머니의 저혈압 체질까지 물려받았는걸요. 다만 아버지에게서 받은 정리 능력과, 어머니에게서 받은 부지런함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만요.
가정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면도 있었지만, 나쁜 면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시기심이 사회 전반에 강해지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거나 “도토리 키 재기” 같은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결국 활력이 부족한 사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2. 어질러 놓기를 자랑이라도 하듯한 태도
일본의 회사와 구미(歐美)의 회사를 방문해 보면 여러 가지 차이가 눈에 띄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도 책상 위의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한쪽은 책상 위에 읽지도 않는 책들이 여러 권 늘어서 있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넘쳐나 있고, 찻물이 묻은 찻잔과 비타민제 병이 한데 뒤섞여 있습니다. 글을 쓸 공간조차 거의 없을 만큼, 각종 잡지와 읽다 만 신문들이 책상을 점령하고 있지요…. 물론 예외는 있지만요. 반면 다른 쪽의 책상 위에는 가족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와, 모양이 재미있는 작은 장식품 몇 개뿐입니다. 서류는 모두 분류되어 파일에 정리되어 있고, 책상 위에서는 말끔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일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책상 가득 자료를 펼쳐 놓을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상하게도, 일본인들 가운데에는 어질러진 책상을 자랑으로 여기고, 정리하려 드는 사람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는 버릇을 가진 이들이 꽤 많은 듯합니다. 이런 모습은 회사뿐만 아니라, 집 안의 책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일본인은 공간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상을 창문이나 벽에 바짝 붙여 놓는 경우가 많지요. 바로 그것이 물건을 자꾸 쌓아 올리게 되는 원인을 만든다고, 한 미국인이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구미 사람들은 꽤 좁은 방에서도 책상을 방 한가운데에 놓거나, 비스듬히 배치하지, (절대라고까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벽이나 창을 향해 놓는 일은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어느 사무실을 찾아가든, 어느 집을 방문하든, 책상은 방의 중앙을 향하고 있지요. 이것을 두고, 출입구에 등을 돌려 앉으면 유사시 적의 급습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일본인은 아직까지 파일링, 즉 문서 정리에 서툰 편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잡지를 끝없이 쌓아 두거나, 답장을 써야 할 편지를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가 결국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거나, 보고서를 쓰려는 순간 인용해야 할 자료가 분실되어 있는…… 그런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구미의 비즈니스맨들은, 잡지가 도착하면 목차를 훑어보고 읽고 싶은 기사만 그 자리에서 찢어 내고, 나머지는 바로 버려 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인 듯합니다. 답장을 써야 할 편지는 전용 트레이에 넣어 두고, 그날 안에 처리할지, 그 주 안에 처리할지 스스로 마감 기한을 정해 처리합니다. 자료 역시 책상 위에 쌓아 두지 않고, 곧바로 알맞은 제목의 파일 속에 끼워 넣어 버립니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 것 같은 것으로, 서른 개의 주머니를 이어 아코디언 모양으로 만든 파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척 편리해서, 구미에는 애용자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일에 가는 음악회 표는 2번 주머니에, 15일에 열리는 칵테일 파티 초대장은 15번 주머니에 넣어 둡니다. 오늘이 8일이라면, 8일 이후의 것은 이달 일정으로, 7일 이전의 것은 다음 달 일정으로 처리합니다. 대부분의 일정은 한 달 이내의 것이라고 봐도 되니까요.
또 매주 금요일 오전을 편지 답장을 쓰는 날로 정해 두었다면, 그날 주머니에 답장이 필요한 편지를 넣어 둡니다. 월말에 지출을 정리한다면, 영수증은 모두 30일이나 31일 주머니에 넣어 두는 식이지요. 그리고 매일 아침, 그날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낸 다음 하루를 시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책상 위에는, 그 시점에서 막 손대고 있는 일 외의 것은 아무것도 올려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대원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아버지는 일본인이지만 정리를 아주 잘하시는 분이어서, 저는 어릴 적부터 그 점에 관해서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앨범에는 사진을 날짜 순서대로 붙이고, 촬영 장소와 촬영 연월일, 그리고 짧은 캡션을 덧붙입니다. 꽃이 진 뒤에는 구근을 작은 칸으로 나뉜 나무 상자에 보관하고, 꽃 이름을 적은 꼬리표를 넣어 둡니다. 못 역시 못상자의 작은 칸 안에, 각각의 길이에 따라 분류해 넣는 등의 것들입니다.
요컨대 “분류해서 제목을 붙인다”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무엇이든지 늘 그렇게 하는 습관을 아이 때 몸에 익힐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상이 상징하듯이, 일본의 가정은 공간은 좁으면서도 물건은 지나치게 많이 모여져 있는 집이 많아져 버렸지요. 전통적인 소박미는 잊혀진 것일까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물건이 없던 시대에는 집 안을 아름답게 정돈할 수 있었지만, 물건이 늘어나면서 파일링에 서툰 탓에 어수선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 가정에서 특히 때가 잘 끼는 곳은 가스레인지다. 요리를 하고 나서 왜 가스레인지를 닦지 않는지 늘 신기하다. 싱크대는 씻으면서 말이다. 레인지 위에 깔기 위한 알루미늄 호일까지 따로 팔고 있는 걸 보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다.
집 안뿐만 아니라, 병원의 병실이나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이상하게도 이런 공간들이 어째서인지 어수선하고 말끔하지 않다. 게다가 왜 이런 장소의 가구에는 회색 스틸 제품만 쓰는 걸까. 같은 중간색이라도 크림색이나 연한 연두색처럼, 조금 더 보기 좋은 색을 써주면 안 되는 걸까 싶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은행이나 백화점 사무실의 어지러움이다. 은행도 백화점도 매장 쪽은 훌륭한 건물에 인테리어도 신경을 쓰지만, 정작 직원들이 하루 종일 일하는 공간은 마치 임시로 지은 오두막 같은 경우가 많다. 취재를 다니다 보면 그 극명한 대비에 여러 번 놀라게 된다. 깨어 있는 시간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일터를, 조금쯤은 더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걸까 하고,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해 보게 된다.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3 '간바떼(힘내세요)'라는 상투적인 문구
“간바떼! 간바떼!”라는 인사말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남용되기 시작했을까. “안녕히 가세요” 대신에 “그럼, 잘 가요. 힘내세요”라고 하고,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대신에 “힘내세요”라고 말한다. 듣는 쪽은 도대체 무엇을 힘내라는 건지 잠깐 어리둥절해지지만, 그런 걸 일일이 따지지 않는 것이 일본인의 멋이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힘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로 힘을 내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지쳐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또 하나, 최근 신경 쓰이는 것은 회사 등에 전화를 걸어 "×× 씨, 계십니까"라고 물으면 "실례지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이런 약칭은 실례라고 생각해서, 저는 대답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실례지만, 누구십니까?"라고 전문을 말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애써 봐야(이럴 때는 정말로 ‘애쓰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런 식의 축약을 용인해 버리면, 그것이 곧 평범한 말하기가 되어 버리겠지요. 여러분도 힘내세요! 그런데 말입니다만, 일본인의 인사는 너무 틀에 박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일본에 오래 거주한 한 미국인 비즈니스맨이 유창한 일본어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일본 여성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결혼의 경우는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 ‘다녀오세요’로 배웅을 받고, 매일 저녁 ‘어서 오세요’로 맞이함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오싹해지거든요. 왜 그 사람다운 인사말, 그때그때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쓰지 않는 걸까요?”
미국에서도 예를 들어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면, 점원은 마치 도장을 찍은 듯 “땡큐. 해브 어 나이스 데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인사이고, 배우자 사이 등에서는 훨씬 더 개인적인 표현이 쓰입니다.
상대의 그날 일정을 염두에 두고 “회의가 잘 되길 빌게.”라든가 “당신 마음에 드는 재킷이 잘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라든가 “금요일에 볼 영화, 골라 둬.”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이 정도의 대화는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해방된’ 부부가 되면, 아내: “리처드, 조금은 속도를 늦추는 게 어때요?” 남편: “달링, 그럴 수가 없어.”
“우리는 둘 다 속도를 늦출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이만큼이나 가치 있는 존재인 거야.” 이것은 제프리 아처의 『로스노프스키 가의 딸』(Jeffrey Archer, The Prodigal Daughter, 1982)에 나오는 대화인데, 이 소설의 주제를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 여성에 대한 차별과 싸우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비즈니스맨 역시 그녀에 못지않은 일 중독자이죠. 이 부부는 서로의 직업적 능력을 평가하고,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서로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끼리의 대화에서도 일본인은 정말로 정해진 표현을 많이 씁니다. “여름휴가는?” “응, 금요일부터.” “어디 가?” “일단은 신슈(信州)로.” 뭐가 “일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 많지요?
같은 화제라도 외국인과 이야기하면 꽤 다릅니다. “여름휴가 계획은?” “북일본을 자전거로 여행해 볼까 생각 중이야.” “와, 재밌겠다. 언제부터?” “When you are ready. 네가 괜찮을 때.”
“Oh, I was ready last year. 하하, 작년이면 딱 좋았을 텐데.”
물론 이 대화 상대가 특별히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이름을 알고 있고, 가끔 모임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정도의 지인일 뿐이죠. 그래도 이런 식의 대화 놀이는 즐거운 법입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일한 뒤에,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 대화를 15분쯤 나누고 있으면 피로가 싹 풀립니다.
또 하나, 일본인이 자주 쓰는 결정문구가 있습니다.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どうぞ、お遊びに…)”라는 말이죠. “놀러 오라니, 집에 초대해 주시는 건가?” 하고 성급하게 생각해서 “아, 감사합니다. 댁은 어디신가요?” 하고 물으면,
“아, 집은 도코로자와(所沢)인데요…그게 아니라, 한가하실 때 회사 쪽으로 놀러 오세요”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농담도 아니고요. 한가할 때 같은 건 없고, “회사에 놀러 가다니”, 그런 게 말이 됩니까?
좀 별난, 일본인의 습관 (1988년 치바 아츠코 저, 신초샤 간행(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14. 왜 나이를 묻는 걸까
꽤 오래전 일이지만,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일본에 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를 물어보는 바람에 단번에 백 년이나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지요. 정말로 일본인은 곧잘 나이를 묻고, 또 말하고 싶어 하며, 나이라는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디오에서 청취자의 신청곡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보면, 청취자가 보낸 엽서를 읽어주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면 “고베시에 사는 스물세 살의 주부께서 보내주셨습니다” 하는 식으로, 반드시 나이를 말합니다. 노래를 신청하는 데에, 도대체 왜 나이를 밝혀야 하는 걸까요?
제가 받는 독자들의 편지도 마치 판에 박은 듯이 “스물두 살 여자아이”, “스물여섯 살 전업주부”, “서른네 살 지방 공무원” 이라는 식으로, 나이를 꼭 넣어 자기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스물두 살이나 된 사람이 스스로를 ‘여자아이’라고 부르는 감각도 묘하지만,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일일이 나이를 알려 주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나이처럼 사적인 일을 굳이 말하고 싶다면, 차라리 키나 몸무게, 바스트·웨이스트·힙 치수 같은 것을 적어 주는 편이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낫지 않을까요. 아니면 침대에서 어느 쪽으로 자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여름휴가 계획은 어떤지—뭐든 좋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정보 쪽이 오히려 더 흥미롭습니다. 나이 따위를 들려주셔도, 전혀 재미가 없거든요.
그런데 일본인은 무슨 일이든 나이로 판단하려 듭니다. 얼마 전에도, 일흔다섯 살 된 분이 하이쿠 모임에서 알게 된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더니 “세간의 체면이 나빠 곤란하다”는 신문 투고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일흔다섯 살의 신랑이라니, 멋지지 않나요. ㅡ 몇 살에는 세 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하고, 몇 살에는 첫 아이를, 또 몇 살에는 둘째를 낳고, 몇 살에는 과장이 되고, 몇 살에는 퇴직해서, 일흔 살에 죽어야만 한다ㅡ고라도 생각하는 걸까요. 마흔 살에 대학생이 되어도 좋고, 일흔다섯 살에 결혼해도 좋지 않습니까.
뉴욕에 거주하는 광고인 구도 가즈오(工藤和雄) 씨는 '매디슨 애비뉴'(사이마루출판회, 1981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일본은) 연령에 대한 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낮다. 그 때문에 서로가 사회를, 인생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 참으로 손해 보는 이야기다. … (미국에서는) 나이 이전에 먼저 인간이 존재한다.” 과연 그렇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30대의 각료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닌데, 일본에서는 50세 정도만 되어도 ‘젊은 편’이라고 불리고, 심한 경우에는 ‘풋내기’라는 말까지 듣는다. 젊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은 거의 절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창의력이 풍부하고, 행동력에 넘치며, 실패해도 쉽게 꺾이지 않을 수 있는 나이를 그저 상사의 비위를 맞추거나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데에만 써버리고 있는 것은, 사회 전체의 손실이 아닐까.
그리고 교육이라는 것은 나이와는 관계없이,
필요할 때, 배우고 싶을 때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른 살쯤만 되면 벌써 “젊은 사람들하고 함께라면 도저히…”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젊은 쪽이 절대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기껏해야 기억력 정도가 아닐까요.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입시 공부의 암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진짜 공부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요.
일본에서는 구인 광고에 ‘29세 이하’ 같은 연령 제한을 적어 넣는 일이 흔한데, 이런 일은 선진국에서는 그다지 볼 수 없습니다. 구인 광고란을 ‘남성’, ‘여성’으로 나누어 놓는 것 역시
일본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사설에서는 여성에게도 평등한 고용 기회를 보장하자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기네 신문의 광고란에서는 남녀를 구분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 아닙니까. 구인 회사들에게 “남녀 차별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조금 이야기가 옆으로 샜군요.
잡지에서도 ‘25~26세부터 34세까지의 여성을 위한’ 같은 문구로 나이를 내세운 광고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24세 반의 사람도, 35세의 사람도 대상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셈이겠지요. 일본인은 나이로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는 걸까요. ‘남자가 30대에 해두어야 할 일’ 같은 제목의 책이나 기사도 참 많습니다. 물론 일본인 가운데에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 나이에, 좀 더 생각해 봐야지”라는 말을 흘려듣고, 자신이 믿는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분들도 계시긴 합니다.
1982년 8월 3일자 아사히신문 '히토토키'(ひととき-한때) 난에 실린 독자 투고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투고자의 63세 된 어머니가, 2년간의 간호 협력 활동을 위해 태국으로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이 어머니는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밤에는 야간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간호 일에 전념해 왔으며, 자녀 양육을 마친 뒤에는 이처럼 해외로 나가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어머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도 아사히신문에 실렸던 것입니다. 1982년 4월 23일자 '담화실' 난에 실린 것으로, 이번에는 97세가 된 장인(義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전년까지도 현역 안과 의사로서 휴일도 없이 진료에 종사해 왔는데, 당시에는 뇌혈전으로 입원 치료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활 훈련 센터에서, 자신보다 훨씬 젊은 환자들을 오히려 격려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ちょっとおかしいぞ、日本人 (1988年 千葉敦子 著 新潮社 刊) ]
● 15. 隣りのビルへ歯を磨き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