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참 빨리 가네요
쉼없이 지나는 지난 5년의 세월은 제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은 저와 제 딸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보다 소중한 저의 딸이 6살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 엄마는 중국 교포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걸까요 아님 무능력 때문일까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슬하에 자녀도 없는 저의 나이 55세 때 직장에서 아이 엄마를 만났습니다
아이 엄마를 만나 함께 생활한 기간은 1년 태어난지 15일밖에 안된 핏덩이 딸을
저의 품에 안기고 중국으로 영영 떠났습니다
남자인 저로서는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도저히 감당이 되지않아서
저의 어머님 (당시 82세) 께 아이를 봐 주시라고 부탁드렸드니
어머님 하시는 말씀 어머님의 친 손녀인데도 불구하고
얘야 남의 자식 키우다 잘못 되기라도 하면 그 원망을 어찌 감당하라고 하시며
일언지하 거절 하셔서 강원도 정선군 의 저의 집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이를 키우며 이웃의 지인들이 찾아와서 살펴주지 않겠냐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더군요
이유는 아이가 너무 어려 부정탈까 염려된다고 하더군요
하루 24시간 잠 한잠 못자고 아이 얼굴만 바라보며 아이의 얼굴 표정으로
분유 타서 먹이고 귀저기 갈아주고 목욕시켜주고
태어난지 100일이 되는 날까지 참 많이 울었습니다
아이가 안스러워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애비가되어 제대로 살펴주지 못해서 울고.....
100일째 되는 날 아이의 100일 찬치를 위해 저의 어머님께 데리고 가서
이제는 어머님이 아이를 키워 주시길 부탁 드렸더니
손녀을 보신 어머님 말씀
얘야 이제는 내가 키워도 되겠구나 하시며
지금까지 저의 딸을 애지중지 살피며 키우고 계십니다
당시 저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용역 사무실을 통해 건설 혹은 농촌
용역 사무실에서 보내는 곳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 노동이 저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였습니다
아이를 품에안고 100일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이와의 견디기 힘든 시련이 앞에 있더군요
출생신고 옛 호적 지금은 가족관계 등록부라고 하지요
출생신고가 안된데요
이유는 혼외자 아이 아빠가 출생신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 법에 없데요
(참고: 엄마는 혼외자라 해도 아이의 출생신고가 됨)
대법원 가족관계 등록부 정부 각 부처 안가본 곳이 없고 법률 사무소 변호사 모든분들
대한민국 법에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데
좀 상스러운 표현으로 미치고 팔짝뛸 노릇 아니겠습니까
제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고 분명 제 자식인데
출생신고가 안되는 애비의 심정은 고통 뿐이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
강원도 영월 대한 법률구조공단 아이의 출생에 관한것은 역시 마찬가지 더군요
법률구조공단에서 내린 결론은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고
고아원에서 아이의 가족관계 등록부가
만들어 졌을 때 친자확인 소송을 해서 데리고 오는 방법 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법이 아무리 엄중해도 바늘귀만한 틈새는 있을거란
믿음 하나로 아이의 출생을 위해 제품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출생신고가 안되니 정부에서 지정한 법정 예방주사 병원에서 자비로 맞혀야 하고
병원에서 맞히는 가외 예방주사도 의료보험 적용이 안돼서
몇만원이면 되는 주사비도 몇십만원씩 주어야하는 경제적 부담도
참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년을 8년만에 졸업한 것의 저의 학력 전부입니다
배운것이 없다보니 아는것도 없고요
아이의 출생신고 때문에 주위의 조롱도 멸시도 견디기 힘들만큼 받았습니다
그런데요 대한민국 법의 바늘귀 만한 틈새가 활짝 열리는 거예요
정부 부처의 어느 담당자님께서 하시는 말씀 엄마는 직접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인정이 되지만
아빠는 어떻게 믿느냐는 거였습니다
유전자 검사 재판...제 머릿속을 스쳐가더군요
강원도 영월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상의 드렸습니다 법에 없는 것이니 설령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해보자고 하시면서 유전자 검사하는 곳을 알려 주시더군요
유전자 검사비 무료 였구요 유전자 검사후 1주일 만에 판정이 나더군요
재판에 필요한 서류 준비하고 법률구조공단에서 변호사님 무료 선임해 주시고
첫 심리 재판에서
판사님께서 친자확인 판결을 해 주셨습니다
판결문을 갖고 강원도 정선군의 저의 관할 읍사무소에 판결문을 드리며
아이의 가족관계 등록부를 해달라고 말씀 드렸더니
담장자님 말씀 이것은 될 수 없는 일이며
판사님의 판결이 잘못 되었다고 하시며 서류을 놓고 가라고 하시더군요
당시에 저는 충청남도 예산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판결을 받은지 일주일이 넘어도 관할 읍사무소 담당자님께서는 안된다는 말씀에
서류를 보내달라고 해서 충남 예산군 덕산면 당시 호적계장님께 판결문을 드리며
선처해 주시길 부탁 드렸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드신 호적계장님 참 황당해 하시면서 민원실 전 직원을 부르시며
자문을 구하시는데
직원 모든분 의 표정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호적계장님 께서 3일의 시간을 달라고 말씀 하시더군요
그 3일이 저에겐 그 당시까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시간이며 기다림이였습니다
3일째 찾아뵌 호적계장님 환하게 웃으시며 아이의 가족관계등록부을 할 수 있다는 말씀에
저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지고
저와 아이의 이름이 함께있는 가족관계 등록부을 손에 들었을때
제가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영월 대한법률구조공단 담당자님 및 직원 여러분과 변호사님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판결해 주신 영월법원 판사님
무엇보다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신 충남 예산군 덕산면 당시 호적계장님
머리숙여 진심으로 감사 드림니다 고맙습니다
딸 아이도 바르게 자라서 현재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딸 아이가 부족함 없이 잘 자라도록
애비로서의 도리를 다 하는 것으로 보답 하겠습니다
하나의 소망은 딸 아이가 엄마를 단 한번이라도 보게 했으면 하는 것인데
그 소망을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감사합니다
이글을 대한민국에 저와 같은 분이 있으시다면 이젠 판례가 있기 때문에 저보단 쉽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으시리라 믿어서 글 올림니다
퍼온글/미즈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