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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있어서 다녀오느라 늦어서 미안합니다.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2019년 맞이하시는 송구영신(送舊迎新)
하셔서 묵은 해 못다하신 아쉬움 훌훌 털어버리시고 새해에는 소원성취
하시고 늘 건강하셔서 친지 분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생활 영위(營爲)
하시기 바랍니다...한해동안 넘치는 우정과 사랑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황과 용유도해변
왕산해수욕장, 선녀바위를 다녀와서!
영종도 [永宗島]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동에 속한 섬으로 용유도(龍遊島)와 삼목도
(三木島), 신불도(薪佛島) 사이 얕은 바다를 방조제로 연결하여
간척을 해서 만들어진 섬이다. 간척은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따른
부지확장공사로 인해 바다를 매립하는 공사가 진행되었고 면적은
공사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63.81㎢이고 1992년 11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진행되었다. 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4월
개항하였다. 당시 주민은 3,470여 세대에 8,900여 명이 거주
하고 있었지만 인천국제공항과 영종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인구
유입이 늘어났다. 영종도 서쪽과 서남쪽으로는 신도(信島)·시도
(矢島)·삼목도(三木島)·용유도(龍遊島)·무의도(舞衣島)와 마주
하며, 삼목도·용유도와는 연륙도로로 이어져 있고 그외 섬들은
철부선이 정기적으로 운행한다. 원래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 하여 ‘자연도’(紫燕島)라고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중국 송나라와 교역을 위한 거점으로 영종도를
이용했는데 중국에서 오가는 사신을 위한 객관이 있었고 이름을
경원정이라고 했다. 이후 태평루로 개칭하였다가 1875년
(고종 12)에 일본의 군함 운양호의 포격으로 파괴되어 사라
졌다. 영종도는 조선시대에는 남양부 소속 영종진으로, 1875년
인천부로 이속되었다가 1914년 부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인천광역시
중구로 편입, 영종동으로 개칭되었다.
섬 중앙에 솟은 백운산(白雲山:255.5m)에는 1,300여 년 전인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 용궁사
(龍宮寺)가 있다. 용궁사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과 인연이 있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근래에 들어 백제시대 사람들이 살았
던 대단위 군집촌락의 형태와 토기, 독, 조개무지, 구리동전, 화살
촉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유물들의 조사결과 영종
도는 약 3~4세기 경에도 중국과 국제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자유구역개발사업 일환으로 건설된 영종신도시는 첨단 스마트
시티로 불리며 인천시 중구에 딸린 행정동으로 영종동, 용유동, 운서
동이 있다. 법정동으로는 중산동, 운남도으 운북동, 운서동, 남북동,
덕교동, 을왕동이 있다. 운서동에는 정부합동청사가 있으며 인근에
는 대형쇼핑몰과 고급호텔이 들어서 있다. 신도시 일대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인구는 약 60,960명(2015년 기준)
이 거주한다. 학교는 인천공항고등학교, 인천하늘고등학교, 인천
영종고등학교, 영종국제물류고등학교가 있으며 인천교육연수원과
인천교육과학연구원이 있으며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가 있다.
개펄 등 자연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학생해양탐구학습장이 유명
하다. 특산물로는 다양한 어패류가 많이 생산되었지만 주꾸미가 많이
잡혔다. 그리고 산지에서 나는 영지버섯, 쌀과 태양고추가 있으며 굴·
백합의 양식업과 염전업(鹽田業)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지락조개의
생산이 많아 영종도 바지락칼국수가 유명하다. 해변으로는 을왕리
해수욕장과 왕산리해수욕장, 마시안해수욕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을왕동 왕산해변에는 왕산요트경기장이 있다. 2001년 3월 29일
인천국제공항이 개항되어 영종도와 수도권을 연결하는 공항전용
고속도로가 뚫려 있으며 2009년 10월에 완공된 인천대교는 송도
국제도시와 연결된다. 자기부상열차가 설치되어 인천국제공항역
에서 용유역까지 연결된다. 또한 구읍뱃터에서 인천 월미도
사이를 운행하는 정기선이 있다.
21세기 수도권 항공운송의 수요를 분담하고 동북아시아의 허브
(Hub) 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1단계
1단계 건설 사업으로 1990년 6월 14일 인천광역시 영종도
일대로 입지 선정을 확정한 뒤 1992년 11월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매립하는 공항 부지 조성공사에 착공하였다.
1996년 3월 인천국제공항으로 명칭을 확정하였고, 같은 해
5월 여객터미널 건설 공사에 이어 12월에 활주로 건설 공사
를 착공하였다. 1999년 2월 공항을 운영할 인천국제공항
공사가 설립되었으며, 2000년 12월에 여객터미널을 준공한
데 이어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하였다.
1단계 건설에는 총 5조 6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1172만㎡의 부지에 활주로 2본(길이 3750m, 너비 60m),
49만 6000㎡의 제1 여객터미널(T1), 12만 9000㎡의
화물터미널, 25만 2000㎡의 제1 교통센터, 100.2m에 22층
규모의 관제탑, 60개소의 여객계류장과 24개소의 화물계류장,
21㎞의 수하물처리시설(BHS)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2단계
개항과 함께 항공 수요가 예상외로 증가함에 따라 2단계 건설을
서둘러 추진하였다. 2001년 12월 31일 2단계 사업의 기본
계획을 변경 공시하고 이듬해 11월 여객계류장 부지 조성공사에
착수한 뒤 2008년 6월 20일에 완공하였다.
2단계 건설에는 총 2조 90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957만
㎡의 부지에 활주로 1본(길이 4000m, 너비 60m), 12만
9000㎡의 화물터미널, 16만 6000㎡의 탑승동, 12만 9000㎡
의 화물터미널, 48개소의 여객계류장과 12개소의 화물계류장,
67㎞의 BHS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사업 기간인 2007년 3월
김포국제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1단계로 개통되었다.
3단계
2009년 3단계 건설 기본계획이 수립된 뒤 2012년 변경안이
확정, 고시되었다. 원래 2015년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논란 등의 영향으로
2017년으로 연기되었다. 2013년 9월 제2 여객터미널(T2)
건설 공사에 착수하여 여객 및 화물 계류장과 연결 교통시설
등을 단계적으로 확충하였다. 제2 여객터미널은 2017년 9월
30일에 완공되어 2018년 1월 18일에 개장된다.
3단계 건설에는 총 4조 930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110만
5000㎡의 부지에 38만 4000㎡의 제2 여객터미널, 56개소의
여객계류장과 13개소의 화물계류장, 42㎞의 BHS, 13만 5000㎡
의 제2 교통센터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4단계~최종
2018년부터 2023년까지 4단계 사업으로 제2 여객터미널 규모
를 26만 6000㎡ 더 늘리고, 2029년까지 최종 사업으로 7만
8000㎡의 제3 여객터미널(T3)을 신축하고
활주로 2본도 추가로 건설한다.
제1·제2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활주로 3본, 제1·제2 교통센터, 여객
계류장과 화물계류장, 화물터미널, 관제탑 등이 있다. 제1 여객터미
널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44개의 탑승구가 있으며, 아시아나
항공을 비롯한 42개 항공사가 배치되어 있다. 제2 여객터미널은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대한항공이 실질적인 전용으로 사용하는
가운데 에어프랑스·KLM항공·델타항공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제2
여객터미널는 첨단 에너지기술과 태양광·지열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도입하여 저탄소 친환경 터미널로 건설되었다. 탑승동은 여객
처리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건설된 곳으로 30개의 탑승구가 있으며,
제주항공·진에어 등 저가항공사(LCC)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교통
센터는 주차장과 철도역 등 다양한 교통시설을 겸한다.
운항 횟수는 기존 3개의 활주로에서 연간 총 41만 회를 처리할 수
있으며, 최종 사업이 완료되어 2개의 활주로가 추가되면 총 74만
회로 늘어난다. 여객 수용능력은 제1 여객터미널의 5400만 명에
제2 여객터미널의 1800만 명이 추가되어 7200만 명으로 증가하
였으며, 제3 여객터미널이 완공되면 1억 3000만 명으로 늘어난다.
화물 처리능력은 3단계 사업이 완공되어 종전 450만t에서
580만t으로 늘어났다.
2016년 실제 운항 횟수는 총 33만 9673회, 이용 여객은 총
5776만 5397명, 화물 운송량은 총 354만 2643t이다. 개항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공항으로 자리잡았으며,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주관하는 '세계 공항서비스평가(ASQ)'
에서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2년간 연속하여 1위를 차지하였다.
(두산백과)
▼해외여행자들이 주차하는 인천국제공항 장기 주차장
용유도 해변 [龍遊島海邊]
인천광역시 중구 용유동의 중심이 되는 섬과 그 해변으로, 인천광역시
에서 가장 가까운 섬 중 하나다. 섬의 형태가 멀리서 보면 용이 수영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옹진반도의
해안선을 마주보며 영종도와 이어져 있고,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진
을왕리해수욕장도 있다. 염전에 노을이 비껴 반사되는 왕산리의 낙조
와 해변 양쪽 끝에 솟아오른 기암괴석을 일컫는
선녀기암은 가히 장관이다.
섬 입구에 거잠(巨蠶)이란 지명이 있는데, 비포 뒷산이 큰 누에가
기어가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거잠에 있는 한
포구에는 커다란 암석이 솟아 있다. 장군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먼 바다를 응시하는 모습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를 장군바위라고 부른다.
이 장군바위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는데, 용유팔경의 하나로 꼽아
비포장군(飛浦奬軍)으로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섬에 쳐들어오던 왜군
들이 바위와 그 주변의 갈매기를 보고 장군과 수많은 병사들로 오인하여
퇴군하다가 밀물이 밀려와 자멸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고려시대에 개성 벽란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 섬에 중국으로 가던 한 사신이 잠시 머물다 한 기녀와 정이 들었다.
사신이 떠나자 기녀는 용유기암 또는 용파기암(龍波妓岩)이라 불리는
바위에서 떨어져 자결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 을왕리해수욕장 옆에는
중국으로 조공을 바치러 가는 길목이라는 뜻의 조천대도 있다.
이밖에도 왕산유원지·마시란유원지·거잠포유원지 등이 서남쪽 해안을
따라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8월 초에 해양축제와 한그물 고기잡기대회,
어패류 채취 등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많이 열린다.
월미도에서 배에 승용차를 싣고 영종도에 내려 해안선 도로를 따라
약 30분이면 섬에 닿는다. 영종도까지 배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버스
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 길 또한 해변 못지않게 아름답다.
(두산백과)
왕산해수욕장(王山海水浴場)
용유도 북서쪽 끝에 있다. 주변에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공원이 있으며,
‘왕산낙조’는 용유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가 개통
되기 전에는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야 했으므로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자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인천국제공항 건설 매립되어 하나로 연결되었다. 깨끗한 백사장
맑은 물, 일몰 때의 낙조가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답고 을왕리해수욕장에
비해 덜 알려져 한적한 데다 경사가 완만해 가족 단위 피서지로 알맞다.
썰물 때면 갯바위에서 굴을 딸 수도 있다. 2001년 들어 군부대가 인천
국제공항 북쪽 방조제 끝에서 해수욕장 들머리 사이의 3.3㎞ 구간에 참나
자연환경 훼손 문제로 분쟁을 빚고 있다.
(두산백과)
기온이 급강하하니 해수 수면이 살엄음이되어 바닷가로 밀려온 성에
=
바위를 끌어안은 선녀의 사랑
영종도에서는 용유 해안을 따라 산책길도 열렸다. 남쪽 거잠포에서 마시안
해변을 지나 선녀바위와 을왕리, 왕산해변까지 이어진다. 거잠포에서 마시안
해변까지가 1시간이 걸리는 1코스, 마시안에서 선녀바위해변까지가 2시간
거리의 2코스, 선녀바위해변에서 을왕리 지나 왕산해변까지가 3시간이
소요되는 3코스다. 여름 더위가 가시는 가을날에 물때를
맞춰 찾아 걸음을 내봄직하다.
이들 해변 가운데 〈고령화 가족〉이 찾은 곳은 선녀바위해변의 겨울 바다다.
극중에서 미연의 남자친구가 자신 있게 '을왕리'라고 말했지만 그가 길치인
탓인지 가족이 도착한 모래사장 끝자락에는 선녀바위의 형상이 또렷하게
잡힌다. 하기야 그 또한 을왕리(동)에 속하기는 하겠다. 가족 가운데 바다를
향해 가장 먼저 달리는 이는 큰아들 한모. 천진난만한 44세다. 하지만 정작
나들이를 제안한 엄마의 첫마디는 아주 현실적이다.
"춥다. 그냥 가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녀딸 민경이 어른다. 할머니 손을 이끌고 기어이
백사장으로 향한다. 그제야 나머지 가족들도 바다 가까이로 느린 걸음을
옮긴다. 한모와 미연의 남자친구가 씨름을 하고, 그러다 온 가족이 한데
엉켜 모래 위를 뒹군다. 모처럼 시원한 웃음이 가득하다. 고령화 가족의
행복한 시간이다. 그럴 때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다. 휴대전화로 가족
사진도 찍는다. 모두가 밝게 웃는다. 먼발치에서는 선녀바위가 어른댄다.
밀물이라 갯바위가 사라져 바다 위에 선녀바위 홀로 외롭다.
선녀바위는 멀리서 보면 그냥 솟대처럼 서 있는 바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이름을 닮은 형상이 드러난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
와 놀다 갔다는 바위다. 다른 전설도 있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쫓겨난
선녀가 바위 총각을 만나 결혼했다. 1년 후에 옥황상제가 다시 선녀를 불렀
으나 거역하자 벼락을 내렸다. 두 사람은 죽어도 같이 죽겠다며 서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결국 선 채로 한몸의 바위가 됐다는 이야기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선녀가 바위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선녀바위가 연인
이나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낙조(落照) 정두수:작사 박춘석:작곡 문주란:노래 노을지는 강물위에 물새가 슬피 울면 강바람이 쓸쓸하게 물결따라 불어 오는데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잊지못할 그사람 슬픈사연에 슬픈사연에 이 밤도 목이 메인다. 흘러가는 강물따라 꽃잎은 흘러가도 세월따라 굳은 그 맹세 하늘 멀리 사라졌는가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새겨놓은 그사람 잊지못해서 잊지못해서 오늘도 흐느껴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