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무는 원래 검은 탈을 쓰고 1인이 추던 것이었으나, 조선시대 세종 때에 와서 오방처용(五方處容)으로 바뀌었다. 신라시대 불교에서 나타나는 오방신(五方神)과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의 오방춤의 유입에 의해 처용무도 오방처용무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처용무는 상층의 의식무나 연희로 전승되었으므로 기층 집단의 탈춤인 지역 가면극에는 전승되지 않았다. 현존 가면극에는 축귀의식무로서 오방신장무나 사상좌무, 사자춤이 처용무를 대신하고 있다.
한편 처용 탈은 원래 검정색이며, 저포(苧布, 모시)나 칠포(漆布, 옻) 껍질 또는 유자나무로 만든다. 탈은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45센티미터 정도로 크며, 긴 콧수염과 약간의 턱수염이 있다. 『악학궤범』에 나오는 처용탈은 턱이 각지고, 코가 큰 다소 이색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탈 위에 대나무로 망을 짜서 만든 사모(紗帽)를 쓴다. 사모를 쓴 머리 좌우에 목단화(牧丹花)를 꽂고, 가운데에는 복숭아 세 개와 복숭아나무 가지로 장식한다. 여기서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복숭아나무 가지는 잡귀를 쫓는 벽사적인 성격, 복숭아는 벽사와 신성성을 상징한다. 귀에는 주석 귀거리와 납구슬을 단다. 옷은 청, 백, 홍, 흑, 황 비단의 오방색(五方色)으로 만든다. 동방(東方)은 청색, 서방(西方)은 백색, 남방(南方)은 홍색, 북방(北方)은 흑색, 중앙(中央)은 황색의 비단으로 되어 있다. 치마[裳]는 황색 비단으로 만들며, 바지[裙]는 동과 북은 홍색, 서와 남은 흑색, 중앙은 남색 비단으로 만든다. 천의(天衣)는 목에 감은 상태에서 겉옷 위에 걸치는데, 녹색비단에 덩굴꽃[蔓花]을 그리며, 안에는 홍색 명주를 사용한다. 한삼은 긴 백색 비단이며, 허리의 대는 혹색 가죽띠, 신발은 흰 가죽신[白皮]에 끈 단 것을 착용한다.
춤은 5인이 청, 백, 홍, 흑, 황의 순서로 등장하며, 이때 반주는 수제천(壽齊天)이다. 입장해서 좌로 돌아 북향한 다음 춤이 시작된다. 이어 처용가(處容歌)를 부르고 다양한 동작의 춤이 이어진다. 기본적인 준비 동작은 손등이 위로 가게 살짝 쥐고, 양 손을 허리에 대는 동작이다. 대무할 경우에는 대체로 청, 백, 홍, 흑이 하나이고, 황색은 별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서거나 도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으며, 수시로 움직임이 바뀐다. 마주 보고 대무하거나 서로 등을 지는 경우도 있고, 색깔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나뉘기도 한다.
춤 동작은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 발과 다리를 이용해 좌우로 방향을 트는 동작, 빙빙 도는 동작, 앞으로 세 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동작, 허리를 구부렸다 펴는 동작, 가슴을 웅크렸다가 하늘을 향해 활개를 펴는 동작, 양 손을 앞에서 위로 또는 좌우로 올렸다가 뿌리는 동작, 한 손을 들어 어깨 위에서 뿌리는 동작, 손을 반대 방향의 어깨에 대는 동작이 있다. 그리고 앞의 동작을 상호 결합하며 다리와 발, 허리, 손동작에 따라 다양한 춤동작을 만들어내며, 방향의 전환과 대무 방식에 따라 여러 동작이 나타난다. 음악은 수제천, 향당교주(鄕唐交奏),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세령산(細靈山)과 삼현환입(三絃還入)으로 이루어진다.
출연 인원은 『악학궤범』에는 처용 5인, 의물 6인, 악사 40인이 등장한다고 하여 대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처용 5인에 악사로 집박 1인, 피리 2인, 대금·해금·장고·좌고가 각각 1인, 총 7인으로 구성되어 예전에 비해 규모가 간소화되었다.
현재 처용을 중심으로 한 처용문화제가 울산 지역에서 해마다 10월 초에 열리고 있다.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개운포(開雲浦) 앞바다의 처용암(處容岩)과 처용비(處容碑)에서는 처용제사를 지내며,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처용의 개운포 입항과 헌강왕과 화랑과의 만남, 역신을 쫓아내는 처용무를 보여준다. 그리고 헌강왕과 왕비 선발대회, 처용 퍼레이드와 가면페스티벌, 국제민속춤페스티벌, 전국탈춤경연대회, 마두희(馬頭戱), 각종 공연과 전시 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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