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몽골 1만 마리, 정주영 회장 1000 마리 1/2
난시에는 소가 움직인다.
우리나라는 일제 침략기에 일제의 수탈에 시달려야했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는 북한에서는 소련의 전리품 탈취에 또 다시 당하기만 하였다. 역사는 기억한다. 예나 지금이나 배경과 정황만 다를 뿐 강자의 횡포와 약자의 설움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시대의 주역은 인간이 스스로 담당하더라도 짐승들도 역할 분담을 걺어져야 한다. 특히 짐승들 중에서도 소는 승자들의 먹거리와 노동착취를 위해 만만한 대상으로 동원된다. 그러한 역사의 교훈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을 때에는 ‘빵을 주는 것 보다 빵 만드는 기술’을, ‘잡은 물고기를 주는 것 보다 물고기를 잡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여기저기에서 반목되는 평가이다. 여기서는 북한이 어려운 시절에 소의 이동과 관련된 사례들을 보고자 한다.
먼저 소련이 북한을 점령했을 당시 어김없이 소도 끌려가게 되었다. 일제가 물러간 공백기간인 1945년 말까지 소련이 북한으로부터 빼앗아간 물품은 7억∼8억 달러에 이르며, 거기에는 쌀 250만 섬, 소 15만 마리, 돼지 5만 마리 외에 북한주민들의 은행예금까지도 모두 포함돼 있었다. 수풍발전소 발전기 3대, 원산 석유회사 및 청진 제철공장과 제련소의 모든 기계, 함흥 화학회사의 6만kW짜리 변압기도 소련이 가져갔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다(북한/경제/역사, 나무위키, 2026.08.30).
몽골의 소 8만 마리, 1만 마리
몽골은 1952년부터 4살에서 7살까지의 북한 전시 고아 200명을 유치원과 초등학교까지 교육을 시키고 7년 뒤 북한으로 돌려 보냈다. 몽골은 북한 고아 지원 사업 외에도 많은 구호품을 원조했다. 몽골은 북한에게 4만 400필의 말, 1만 두의 소, 8만 마리의 양과 염소, 2만 벌의 모피, 4500벌의 두꺼운 외투, 1만 켤레의 가죽 부츠, 5만 장의 양 가죽, 3천 톤의 육류 등의 기록이 있다. 1951년 3월 15일 북한과 몽골이 교환한 ‘군마 인도 인수증서’에 따르면 “군마 7000필을 무상으로 선사하였는데” 사실은 7378 필로 밝혀졌다. 이러한 우호적 환경의 배경은 몽골은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북한을 공식승인, 1948년 10월 수교한후 양국 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몽골을 본다 ⑯ 변화하는 몽골-북한 관계, rfa 자유아시아 방송, 2010.01.28.).
북한은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일어난 대량 아사와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그후 경제조정과 회복기인 2014년 10월 3일 러시아 국영 ‘러시아의 소리’는 몽골정부가 북한에 1만 마리의 가축을 무상으로 제공키로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푸레브수렝 장관은 몽골 동부 도르노드 지역의 초이발상 공항에서 2014년 12월 29일 1~2년생 송아지 104 마리가 북한 고려항공 화물기에 실려 북한으로 수송됐다고 말했다. 또 향후 추가로 소 이외에 면양과 산양 등의 가축 1만 마리를 사실상 무상 제공할 예정이라고 하였다(아시아투데이, 2015.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