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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을 굽이돌아 옥순에 흘러드니...
박 재근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영국시인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을 이처럼 노래했다.
그렇다. 사월은
하얀 목련과 연분홍 진달래 등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하고
부드러운 새싹들의 속삭임은 가지마다 술렁이며,
그 아름다움은 곧 잔인하리만큼 만천하에 드러나는 달이다.
이 만화방창의 생기발랄한 절기를,
넉넉히 즐길 줄 알고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우리 임들과 함께하기로
수개월 전부터 이곳을 연신 들락거리며 인연지어 놓았다.
그 인연이 오늘에 이르렀다.
하루 중 새벽이며 시간은 6시다.
부지런히 까칠한 몰골에 깔끔함을 입히고 괴나리봇짐을 등짝에 매단 다음,
기세 좋게 현관문을 따고 나왔다.
남편을 벗어, 남의 편에 선 것이다.
어둠은 이미 빗장을 열고 빛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으며,
이른 새벽의 휴일을 연
뭇시선들은 어디를 향하는지 다들 총총걸음이었다.
그 분주함을 뚫고 분주히 집결지에 왔다.
환한 임들의 면전에
부끄러운 미소를 들이밀고 배정된 20번에 착석했다.
그런데 있어야 할 친구가 애석하게도 없다.
낯가림이 심한 난데, 이젠 누구와 예쁜 마음을 나눌까.
공허한 마음이 텅 빈자리에 가득 차오른다.
우직한 마차는 이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선이 사는 동네이며, 신선으로 통하는 문’으로까지
퇴계가 극찬했던 양반의 고장 단양을....양반스럽게 향했다.
오고가는 산천의 산기슭에는 따뜻한 햇살이 흘러들었고
그 속에서 방긋 웃는 샛노란 개나리의 미소는 새삼스러웠다.
조금씩 서운함은 벗겨져 갔고, 다시 잡은 마음은 정갈해졌다.
나를 닮아
말없는 달구지는 말 없는 길을 따라 끝없는 길을 간다.
가는 길에,
새벽을 깨운 배곯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여주휴게소에 들었다.
인간은 무한한 우주에 대항하려는 만물의 영장이 있지만,
육신의 허덕임에는 꼼짝 못하는 약함이 있다.
그래서 수염이 대자라도 먹어야 양반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그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끼니를 무심히 만났으나
오늘은 유심히 만났다.
감사하게도 임원진들이 블랙야크에서 살다시피 하며 발주해
선물한 새 코펠과 새 수저로 먹는 아침이니 그렇고,
어느 임의 따뜻한 찬조로 따뜻하게 먹는 별식이니 그렇다.
그 정성이 든 수라를 받아 들었다.
꼬르륵~보채는 영혼을 구수한 국물과 찰진 밥알로
후덕함을 입히자 이내 조용해졌다.
많은 즐거움 중에 먹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보다 크다.
식욕은 인간의 3대 욕망중의 하나로 성욕, 물욕보다 우선한다.
그 욕망을,
같은 생각과 같은 느낌을 가진 고운 임들과 나누고
푸근해진 몸을 다시 달구지에 의지했다.
고맙게도 군말 없는 달구지는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의 수산면에 말없이 대려다주었다.
낯선 타지에 두 발을 내린 우리는 그간 넣은 것을 빼기위해
속가의 해우소를 찾았다. 그러나 30m는 더 올라가야 한다기에,
눈도 코도 없는 어둠에 갇힌 그를 감히 꺼내
봄 처녀가 빤히 쳐다보는 산등성이를 향해서
일제히, 그것도 집단으로 사정없이 발사.
쏴~아!
쏟아지는 소리에 놀란 산새 퍼덕이고,
돌멩이 때구루루 구르고, 뿌리 깊은 나무, 뿌리 뽑혔다.
변강쇠는 명함도 못 내밀 엄청난 괴력이다.
그 힘으로 한걸음을 옮겨 제천의 경계를 넘고
두 걸음으로 미기(美妓:아름다운 기생)라 소문난 두향의 고향 단양을 밟았다.
거기다 산악대장의 구령으로 유연함까지 입었으니, 몸은 뜨고 맘은 난다.
사뿐히 날아 봄 처녀의 품에 옴팍하게 안기니
이리가면 구담봉이요, 저리가면 옥순봉이라.
세 갈래길~ 삼거리에서~ 헤매 도는데, 혜성처럼 나타난
풍채 좋고 목청 빡센 선두 조교의 나직한 한 마디.
우향우.
우로 굽고 좌로 굽어
너울대는 산릉의 아리따운 춤사위를 따라,
우리도 굽어지고 꺾어지며 보듬어 끌어안고,
춘흥으로 잔뜩 물든 하나 된 맘을 303m의 고지에 올렸다.
산마루에 우뚝 솟은 푸른 기개가 예사롭지 않고 모진 풍파를
견뎌낸 너는....누구?
나....?
구담봉의 주인장, 푸른 소나무라 일컫는 청송(靑松)이지요.
청송이라.....?
자세히 훑어보니,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자리할 곳에 자리한 너의 풍모가
가히 명품이로고.
오~!
너만이 아니었군.
여기도 명품, 저기도 명품. 사방이 명품.
아스라한 암벽아래 도도히 흐르는 저 강물도 명품이오.
사철 푸른 절개를 자랑하는 암벽에 꼭 박힌 또 다른 노송도 명품이오.
명품에 쌓여있는 우리도 명품이로다.
명품으로 둘러친 명품 자리에서 명품들 틈에 꼽사리끼어
훼밀리 역사에 한 컷 올리고
껑충 뛰니,
잡아주고 끌어주며 밀어주어야 한다는 <사랑 코스>라.
여색에 호탕했던 이황도 이곳에서 관기 두향을 얼싸안고 사랑노래를 불렀다.
‘밤 퇴계와 낯 퇴계가 다르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확실하다.
나무를 보면 숨겨진 뿌리가 있음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누가 잡아주고 끌어주지.
밀어주고 끌어줄 임은 어디론가 땡땡이 치고
나만 외로이 이곳으로.....에라~모르겠다.
친구도 버린 이 몸.....두 눈 딱 감고.....팔짝.
팔짝 뛰어오르니 여기는 옥순봉.
푸른 암벽이 비온 뒤끝의 죽순이 솟은 것 같다하여 퇴계가 붙인 옥순봉.
그 옥순의 푯말을 부여잡고 내가 여기 왔노라.
여기에 머물렀노라.
수많은 카메라 불을 뿜었다.
기기묘묘한 기암괴석,
사방을 굽이도는 저 푸르른 충주호반,
낯익은 하늘, 유유히 떠도는 구름, 따사로운 햇살.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비할 바 없이 생경하다.
이 아름다운 날 가던 길 멈춰 서서 이렇게 나뭇가지에
돋는 새순도 만져보고 하늘도 한 번 올려다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 행복을 덥석 바닥에 깔고
각처에서 온 인연 깊은 영혼들과 복분자로 반주하며
족발에, 잡곡밥에, 다양한 과일에,
잔커니~ 권커니~ 푸근한 인심에....불초소인 몸을 담고 맘을 녹였다.
이게 바로 함께하는 맛이요, 등산의 묘미일지어다.
행복으로 만땅 채워진 정신은 해롱거리고
두 다리는 뿅~스럽게 후들거린다.
꾸역꾸역 배불뚝이 몸을 내딛어 모다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니 천안삼거리, 취한 눈 크게 뜨고 다시 보니 처음 삼거리.
출발지로 원위치하고 칭얼대는 두 발을 귀경길에 올렸다.
기분 좋게 노곤해진 삭신을 푹신한 의자에 맡기며
양반스럽게 단잠을 청하려는데,
무엄(?)하게시리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심기를....재치 있게, 위트 있게 건든다.
“스스로 잘난 여어자~, 못났어도 궁둥이 섹시한 여어자~,
그리고 돈 많은 사장님, 다들~ 나오세요.”
“음악~ 들어갑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
오~예! 오~야!
디스코는 쏟아지고 조명은 빗발치고.....품과 품은 얽히고,
눈과 눈은 꼬이고.....발과 발은 뒤섞이며,
또르르~ 땀방울 덩달아 춤을 춘다.
안 봐도 보이고, 보면 더 보이고....대롱대롱 공중의 휴지.
남아나지 않는다.
바라만 봐도 즐거운데, 즐긴 그는 어땠을까?
광란(?)의 시간은 끝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에.....뚝!
오~! 멋져 부러~!
지나침도 없고 부족함도 없는 절제된 각본이 심히 아름답다.
행복의 입자는 차안 가득 떠다니고,
임원과 회원은 한 뜻 한 마음으로 어우러져 상생의 꽃으로 피어나고,
음과 양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미소로 열매 맺고....
보는 대로 보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어디에나 있는 그래서 그 어디에도 없는 매우 깔끔한 단체.
그 일원됨이 뿌듯하다.
불교의 화엄경에,
‘일천 겁 동종선근자’는 ‘일국동출’이며,
‘이천 겁 동종선근자’는 ‘일일동행’이라는 말이 있다.
일천 겁의 착한 일로 인연해서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이천 겁의 좋은 과보로 인연해서 <하루를 동행한다>는 뜻이다.
일 겁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이니....그 어떤 시간의
단위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말한다.
인연의 소중함과 선행의 중요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래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여러 날을 동행하며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먹고...거기다 몸까지 부대꼈으니,
그 인연의 중차대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음이다.
그 인연을 안고
땅거미, 내일을 쫓는 밤거리를 지나 남편 길에 올랐다.
2009. 4. 11
※소중한 인연을 귀중한 추억으로 만들어준 선한 눈빛의 회원 여러분과
특히 물신양면으로 은혜를 주신 권혁천고문님 내외분,
그리고 구석구석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신 회장님이하 임원진 여러분에게
격한 감사를 올립니다.~~♡
첫댓글 아름다운 절경과 아름다운 이들을 고운글로 표현해 주신 박재근님 덕분에 저는 구담봉 옥순봉 잘~다녀 왔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 권고문님은 천이 현으로 성함을 정정 하셨나요? ㅎㅎㅎㅎㅎ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귀한 존함을....신출내기라 어수룩함이 있었네요. 지적에 따라 정확한 존함을 찾아 드렸습니다. 박문숙님도 글에 대한 애정이 있고, 문장 또한 남다름이 있어 주목하고 있습니다. 관심에 대한 감사 올립니다.
말이 없는 분이라 생각헌건디 글로는 정말 잘 하시네요 좋은글 남겨 주삼에 감사합니다
‘침묵은 웅변보다 강하다’ 그래서 침묵할까요.....실은, 저도 말하기 좋아합니다. 다만 친해져야하지요. 다음엔 더 친하게 지내요.
불가의 구절과 퇴계 이황선생이 놀던모습 아름다워던 풍경 다시한번 생각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셨다니....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서상록님 처럼 푸근한 원로분이 계시기에 이곳이 정이 있나 봐요. 건강하세요.
조목 조목 두번을 감동 시키는군요,,,과연 박재근님은 뭐 하시는 분인지 알고 싶네요 ,, 대학교 다니실때 국문학 전공 ,,지금은 소설가 안니면 공무원 선생님 ,,혼자 생각해 봅니다 ,,저도 대학을 나왔는데 그냥 군대를 나왔지요 ㅎㅎㅎ,,저하고 월곡에서 함께 내렸는데 너무 조용하셔서 인사만 나누고 ,,,여기서 만나니 감사할뿐입니다 다음 산행때 방갑게 만나요,,,,,감사~~
그 빡세다는 군대(?)를 나오셨다. 저는 못 갔는데...하하~재밌네요. 대학이...무슨 상관있겠어요. 글에 관심을 좀 주고 있다 뿐이지요. 풋내기에게....마구 퍼준 사랑....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잘 보관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관내에 계신 줄 미처 몰랐네요. 안면은 익히 아는데...존함이 가물 해서...다음엔 더욱 진하게 인사드릴게요.
훌륭한 글솜씨 대단 하십니다...
이 한 말씀에 며칠간의 고생이 사라졌어요. 고마워요.
재근님 말씀대로 4월은 잔인한 달이기에 아름다운꽃들로 승화시켜 온통 주위를 꽃으로 장식하는달 4월에 또다시 재근님의 멋진 글월을 읽고나니 제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확풀려몸과 마음이 가볍군요. 그대는 곳 의사요 보약이시여라 감사합니다. 재근님 멋지고 역사의 숨결이 담겨있는 내용 울님모두에게 산 역사교육이된것을 다시금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길 기원합며 다음 산행에 뵙겠습니;다,
격한 칭찬....격하게 감사드립니다. 늘 리더로서 열심인 총무님을 봬오면, 번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느끼지요. 하나 된 훼밀리 홧팅~!
박재근님 한권에 수필 작품을 이군요 ~~ 조은글 남겨주서서 다시한번더 감사드림니다~~~
칭찬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덕장이신 우리 회장님께서...오늘도 그냥 가지 않으셨네요. 모든 것을 좋게 보시는 회장님의 가득한 사랑....저의 가슴에도 사랑으로 심겠습니다. 하나를 보면 둘이 보이고...둘을 보면 열이 보입니다. 회원 간에 친목하고 조화하며 사랑이 넘치는 것은....회장님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감사합니다.
나~~안!!! 왔으니 같이 갔을 뿐이고 먹을때도 같이 먹었을 뿐인데 그렇게 까지 격하게 은혜 로왔다니 몸둘바를 모르겠고... 어찌하야 이렇게 소설 같은글을 올려주셔서 감격과 감동을 한꺼번에 느끼게 한점 격하게 감사 드리고 앞으로도 격한 문장을 여러번 올려 주셨으면 무안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겠습니다,며칠간을 고생 하셨다니 그 정성에 감복하며 수고하심을 전합니다, 나 또한 다음산행때에 뵙기를 바랍니다.......................*^0^*
오시면 반가운 손님, 권고문님께서...양 손에 선물을 가득 들고 오셨네요...감사히 잘 받아두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