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시편 40(39),5ㄱㄴ)
어제 머리에 재를 얹는 재의 예식으로 시작된 사순 시기 둘째 날인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독서의 신명기의 말씀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서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느님이 우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가져다 놓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할지가 너무나도 분명한 이 상황 앞에서 죄에 물든 인간은 하느님의 계명과 그 계명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을 선택하지 않고 죽음과 불행으로 기울어져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과 행복을 거부합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모세를 통해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를 주시며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오기를 촉구하며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신명 30,20)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이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누가 보더라도 자명한 그 선택의 상황을 두고 죄에 물든 인간, 정상적인 이성이 작동하지 못하고 죄의 유혹에 빠져버려 눈으로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귀로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며, 마음으로 깨달아 알아야함에도 죄로 인해 목이 뻣뻣하고 마음이 완고해져 버린 인간은 스스로 죽음과 불행을 자초하고 그것을 멋모르고 선택합니다. 스스로 죽음과 불행을 선택하고 마는 이 비참한 인간의 처지가 바로 죄에 물든 인간의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수렁이며 구렁텅이인줄 모르고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그들을 구원해 줄 사람의 손마저 거부하는 인간의 비루하고 비참한 모습이 오늘 독서의 신명기의 말씀으로 잘 표현됩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요로우신 하느님, 사순 시기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주님께로 돌아서서 그분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은 죄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의 손을 내어주십니다. 그 손을 잡고 죄의 수렁에서 벗어나라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오늘 신명기 독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우리의 생명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이 더욱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모음집 시편 150편의 첫 번째 시편의 말씀이 바로 오늘 화답송의 말씀으로서 시편 저자는 하느님 안에 사는 이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이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를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1-2.3.4)
생명의 물이 흐르는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메마른 땅에 있는 나무와는 달리 넘치는 생명력을 지니고 제때에 좋은 열매를 맺으며 잎이 시드는 일이 없이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어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그 모습과 같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이들의 삶은 마치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충만하고 축복 넘치는 삶, 하는 일마다 잘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오늘 독서와 화답송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 사랑의 외침, 곧 하느님께로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그 분의 마음에 어떻게 우리가 응답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분명하게 제시해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24)
우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가져다 놓으시고 선택의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 그 분께서 마련하신 이 선택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선택하고 그 분께로 돌아가는 삶은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전하는 방법, 곧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 분 뒤를 따르는 삶으로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이 선택과 따름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가혹하고 큰 희생을 요구하는 듯 들립니다. 어떻게 나 자신을 버릴 것이며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이 걸어간 그 길을 뒤따르는 것이 가혹하고 고통의 가시밭길처럼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정수, 언뜻 받아들이기 부담스럽고 어려운 듯 느껴지는 바로 그 요구가 가능해 질 수 있는 비결을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편의 구절을 인용한 영성체송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50,12)
영성체송의 이 시편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을 깨끗이 만들어 주시고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을 따를 수 있는 용기와 믿음, 내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그저 구속이나 무거운 짐이 아닌 세상사 갖은 걱정과 근심들로 찌든 나의 영을 새롭게 만들어줄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그 분 뿐이십니다. 그 분께서 죄로 인해 더러워진 우리의 마음을 새하얀 깃털처럼 깨끗이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영을 굳건히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 주신다는 사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순 시기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재계 곧 참회와 보속이 우리에게 은총으로 다가오며 가능해집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듯 하느님만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내 안의 죄라는 사슬을 벗어버리고 나를 버림으로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그래서 참회와 보속의 사순시기가 여러분의 삶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은총의 시기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5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