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23) 중 「어디로 가고
김애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2002년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바깥은 여름』은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통상적인 관행 대신,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새롭다. 이 제목이 수록작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고 작가가 판단한 것 같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각각 어떤 거리감을 느끼는지, 공간 배경이 갖는 의미와 서사적 활용 방식, 소설 속에서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드러내는 문장의 힘에 주목하며 읽으라는 설명을 들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주인공인 내가 가려움 때문에 등에 난 반점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 언니가 한 달간 자기 집이 비어 있으니 와 있으라고 말한다.
“네가 잠시 거길 떠나 있으면 어떨지 해서.” 장례식에 못 가봐 미안하다는 말하기도 한다. 주인공에게 큰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나는 며칠 동안 계속 잠만 잤다. 나는 남편을 잃었다. 교사인 남편은 현장학습에서 학생을 구하려고 물에 들어갔다고 학생을 구하지도 못하고 함께 죽는다.
나는 어느 봄날에 김치를 담그기에 도전한다. 남편과 논의 끝에 아이를 갖기도 결절하고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시작점에서 남편의 마지막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너무도 슬픈 아이러니라고 느꼈다.
“에든버러에서 시간을 쌀뜨물 버리듯 그냥 흘려보냈다. 시간이 나를 가라앉히거나 쓸어 보내지 못할 유속으로, 딱 그만큼의 힘으로 지나가게 놔뒀다.” (p234)
남편을 잃고 홀로 된 나는 전자 대화 프로그램인 ‘시드’에 접속해 대화한다. 남편은 ‘시드’를 자주 사용하던 사람이라 ‘시드’가 남편의 친구처럼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심스럽게 시도한 ‘시드’와의 대화에서 큰 위로를 받지는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발견하기 어려운 “예의”를 발견한다.
몸의 반점은 계속 번져간다. 어렵게 검색해서 “원인 불명의 급성 염증 질환으로 일종의 피부 감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확한 병명은 “장미색 비강진”이었다. 한 개로 시작했던 분홍색 반점이 온몸에 번진다.
“장미색 비강진은 겉으로 드러나는 부위에는 별 이상이 없어 남들에게는 멀쩡해 보이는 병이었다.” (p240)
몸에 나는 피부병이지만 속앓이가 심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나도 신경이 예민해서 입안이 허는 혓바늘이나 구내염이 자주 생겨서 고생한 경험이 많아 주인공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뜨거운 물 대신 미지근한 물로 씻고, 보습 크림을 부지런히 발라주는 게 다였다.” (p241)
햇빛이 부족한 영국이라 증세가 완화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대학 친구인 현석을 만난다. 현석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나를 ‘어제 본 사람’처럼 대했다. 현석은 남편의 안부를 묻지만, 나는 그냥 잘 지낸다고 대답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 시작도 끝도 목적도 방향도 없는, 그러니까 배우자나 친구 하고나 나눌 법한 시시한 이야기를.” 그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살아있다고 믿는 남편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며 그 순간만큼은 남편이 진짜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는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시드’는 고난도의 질문들에는 답을 주지 않고 회피한다. 인간들과 나누지 못하는 고통이나 삶과 죽음 등의 질문은 잘도 피해 나간다. 설계자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현석은 친구들에게 연락해 남편의 소식을 알고, 만나자고 하지만, 나는 회사 일을 핑계로 만나지 않고 귀국한다. 집에 도착해 남편과 함께 만든 ‘우리 집 냄새’를 맡는다. 학생의 누나가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사모님도 선생님이 많이 그리우시죠?”이 부분이 먹먹했다.
아무에게도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했던 나는 결국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죽음으로 뛰어들었던 남편에 대한 원망이 편지를 읽으며 남편으로서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제자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다고 이해한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
그곳에서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거라고 책을 마무리하는 이야기는 집을 떠나 상처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마음의 상처와 함께 몸의 상처로 점점 커지는 묘사가 복선이 되어 소설의 서사를 따라다닌다.
피부 감기는 완치가 없다는 말이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 같았다. 좋아졌다가도 다시 나빠질 수 있다는 것, 가까운 사람을 잃은 아픔이 어디 마음을 다잡는다고, 세월이 흐른다고 말끔히 나아지겠는가. 순간순간 그리움에 아파하겠지. 피부 감기도 평생 나았다가 재발하겠지.
첫댓글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다시 부각시켜 놓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김애란 작가님 진짜 문장이 유려하시더라구요~♡
와!!민작가님! 바쁘시간에도 김애란 작가님의 글을 이렇게 멋지게 부각 시키시네요!!
늘 도전하는 민작가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