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순교의 자세
설교 본문 : 베드로전서 4장 7 - 19절
설교일시 : 2015년 10월 25일 주일 낮예배
설교자 :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참빛교회 김명주목사
소망을 가진 자의 교회 생활 (4:7-11)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본문 말씀의 대전제는 2장 11절에서 12절 말씀이다.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당시 주님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제사장으로서 이 땅 가운데서 선한 삶으로 증거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선한 삶을 사실대로 증언해 줄 사람들로 그들과 함께 지낸 불신자(통치자, 주인, 남편, 아내)들이어야 하고 4장 11절까지를 놓고 볼 때에 한 증인이 더 있어야 하는데 그가 함께 신앙생활했던 성도인 것이다.
성도가 증언 받아야할 교회 생활 가운데 첫번째가 기도 생활이다.
베드로가 말하는 기도는 정신차리고 근신하는 기도이다.
이는 헬라어 원문을 따르면 정신을 차려서 신중히 기도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근신하여' 라는 표현은 '부지런히' 그런 뜻이 아니라 '신중하게' 혹은 '정신을 차리고' 이런 뜻의 말을 번역한 것이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정신을 차리고 신중히 기도하는 생활이 성도에게 요구된다.
그런데 교회 안에 정신을 차리고 신중한 언어로 혹은 신중한 자세로 기도하기보다는
무아지경에서 아니면 신중하지 못하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기도를 권장하고
마치 그런 기도가 성령께서 역사하는 기도 현상이라고 말하고 권한다면 이는 성경 말씀에 기준하여 정반대로 오해한 이해와 적용인 것이다.
주님과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인 오늘 우리들의 기도는 어떠한가?
과연 사도가 권한대로 성경말씀에서 본래 기대하신대로 기도생활을 누리고 있는가?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그리고 성도가 주님 앞에서 다른 성도들로부터 증거 받아야할 신앙생활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는가 이다.
또한 교회 안에 낯선 사람이 함께 하게 되었을 때 그들로부터 원망이나 불평이 없도록 관계해야 한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는 말씀에서 '대접하라'는 말은 익숙한 이들이 아닌 '낯선 사람을 사랑하는 환대하는' 그러한 뜻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의 봉사 즉 섬김은 두가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과 힘이다.
우리의 말이 성도들에게 봉사하는 말이어야 한다.
설교라든지 교육이라든지 그리고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 봉사의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일을 맡아서 교회를 위하여 섬길 때에는 그 힘을 주신 분이 주님이심을 기억하고 해야한다.
이러한 섬김은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다른 성도들이 그러한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인정하고 더욱 사랑하고 더 가까이 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게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우리의 기도와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함께한 주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송하고 더욱 사랑하게되어지고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았음을 오늘 함께한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증언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순교의 자세 (4:12-19)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베드로 사도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쓰여진 성도들을 향한 그의 유언이다.
베드로 사도는 네로 황제 박해 때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므로 베드로전서는 네로 황제 박해 때에 쓰여진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순교만 아니라 그 당시 다른 성도들도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로 말미암아 순교 당할 이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 분명하기에 순교의 자세에 대해서 특별히 편지 안에 담았다.
먼저 붙잡히면 말로 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억울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치욕스럽게 죽임 당하는 그런 일을 교회 성도들이 겪게 되는 것에 대해서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을 당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고 그러한 자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그러한 일을 당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한다.
여기에 더 나아가 그 고난을 피해 숨으라고 하지 않고 그러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끝까지 선을 행하다가 죽음의 순간이 오면 그 영혼을 미쁘신 하나님께 의탁하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의해 10차례 250여년의 박해를 당했다.
평균 25년 간격으로 박해를 당했다.
이러한 박해 때에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할 때 보통 알려져있기는 카타쿰베나 지하도시에 숨었다 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만 반응했다면 10차례의 250년 로마제국의 박해에 기독교는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점차 세력이 커지고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제국을 장악해갈 때에 기독교는 그가 정치적 세력으로 손잡을만큼 확장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기독교가 세력이 확장 되었을까에 대해서 광신대 정준기 교수는 이해할 수 있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행적을 말한다.
그것은 무덤으로 숨어버린 자들도 있었지만 다른 방법으로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했는데 그것은 전염병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로마제국도 가족도 보호하고 돌보기를 포기한 환자들을 돌보면서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전염병이 다 낫기까지 생존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돌봄을 받은 환자들이 그러한 그들을 대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소개를 받고서 신앙을 갖게되면서 기독교는 계속 생존하고
또 그러한 선한 일을 하는 이들로 기독교가 알려지게 되어서 많은 이들이 믿게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오늘 본문 베드로 사도가 권하는 순교의 자세와 일치하는 행적이다.
우리도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한 날이 이를 때까지 선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 가운데 성령이 함께 계시며 미쁘신 하나님께 그 영혼을 의탁하며 눈을 감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삶과 죽음이 우리와 함께 했던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지는 여운으로 남겨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