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부터 할일은 있어도 놀고 있슴다. 즉, 개긴다는 뜻이죠..
그래서 시간도 죽일겸 몇자 적어봅니다.
제목 : 나의 상교인 시절을 떠올리며.. 제목 유치 뽕짝 부르스다..ㅋㅋ
글쓰기에 앞서 여기 까페 제목 상교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상교인.. 무슨 종교집단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e-Biz 시대에 사는 요즘.. 시대감이 없어보이는
70년대풍의 투박한 모임 같지만 세련되고 화려함보다는
상교인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가지는 지난 추억을 더듬게 하는
정감있는 명칭이 아닌가 합니다.
순진하고 철없던(지금도 철없슴다--;) 그시절 아련한 추억에 잠겨
미소짓게 만드는것도 상교인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만그런가??
그시절 동기들 그리고 선후배.. 교수님.조교들도 생각난다..
지금은 다들 뭐하고 사는지..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고 그사이에 일은 짧은 동영상 한편도
안되는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다른 상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번쯤 모여서
지금의 모습도 보고 옛날 얘기하면서 막걸리 한사발 하고 싶어진다.
풀밭이나 길거리에서 먹던 막걸리나 허름한 안주들과 더불어 정감어린 대화들.
누구나 느껴봤을것임다. 못느꼈으믄 말고--;
한번도 찍혀본적 없는 지금의 나는 다시 학교 생활하면 학번별로 팬클럽을만들수 있을것도 같다.. 이건 단지 내생각 임다.^^;
상교인 남자들은 선택의 폭이 다양해 늘 고민을 한것 같습니다.
참 이상한게 물건도 아닌데 먼저 찍는 넘이 임자였던 그 시절..지금도 근런가??
생각해보니 일단 찍고보는 사람도 많았슴다..ㅋㅋ (92 정x한 <- 대표적 인물이져.. 본인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 실명을 밝힐 수 없음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근데 이상한건 엮이는건 거의 예비역이 었슴다.
예비역 되도 못엮이는 스치브 정(92 정x한)이나 저도 있었지만..--; 아~ 부끄럽당..
왜 여자들은 나이 많이든 남자를 좋아할까요?? --;
참 유치하지만 순진한 그때였슴다.
여학생들은 무슨 파가 그렇게 많은지 흔히들 사람이름 따서 누구 파라고 하져..
첨엔 길갈때 서로 팔짱기고 대여섯명이 함께 걸어가다가 학기 지날때마다 파의 수가 늘어나서 졸업할 즈음에는 소수 정예의
거의 점조직화 되어있었죠..
(은둔하고 있는 점조직의 멤버들은 상교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IT강국 한국의 강력한 네트웍 인프라를 이용해 새내기때 처럼 모두모두 연락하고 지냈음 함다..)
그당시 누군가에게 연락할 일이라도 할려면
A4 한장에 폰트 절라 작게해서 만든 주소록(이거 거의 예술이었슴다. 대표적으로 쓰였던 폰트는 명조체나 고딕체에서 아래아 한글의 버전이 업될때마다 새로운 폰트와 다양한 출력 포맷으로 무장하는 우리의 주소록을 보면서 혁신적인 정보기술의 변화를 작은 캠프스에서도 단편적으로 볼수있었슴다..ㅋㅋ)을 몇절씩 접어서 수첩에 넣고 다니믄서
술먹는 껀수가 생기면 공중전화에서 삐삐 때리고 학회실에 앉아서 전화 기달리고..ㅋㅋ
양방향 통신이 되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낌다.. 세상 마니 조아졌죠??
한때 상교인들 중에서 잘나가던 사람들만 모여 만든 레포츠 클럽이생각납니다.
그당시 잘나가던 Guess(여자후배아님)에 삐삐(그당시만해도 개통비 절라 비쌌슴다)
있어야 가입이 되었던 레포츠.
일주일 용돈 월,화 이틀이면 다 날리던 가난한 저로선
그런 잘나가는 클럽에 가입하는게 꿈이었씀다--;
MT갈 때도 생각나는 군요..
지금생각하면 몇푼안되는 MT비 탈려고 며칠간 집에 조신하게 생활하며
안하던 울엄마 심부름까지 군소리 안하고 해서 간 MT..
기나긴 산행끝과 연일계속되는 뒷풀이. 참 재미났슴다.
사실 여자랑 자본건 MT때가 처음이자 마지 막인거 같슴다.. ^^;
첨 같은 텐트에서 같이 잤던 91학번 여자 선배님들 그날밤
황홀했씀다^^ 지금도 잊을수가 없슴다..커~~
알랑가 몰르겠지만 제가 92 미스상교 였씀다..움하하~(사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쪽팔립니다.--;)
동기들 오바이트하는 애들도 있었을 겁니다.. 지금생각해도 니끼함다.
그 엽기사진 아직도 갖고 있슴다.. 언젠가 용기가 생기면 사진 올릴께요..
오늘도 놀기로 작정하고 이렇게 글쓰니깐 별의별 기억이 다 되살아나는군요..
92년도 최고의 엽기는 아무래도
말없이 떠난 92 장x근 군이 아닌가 합니다.
가을이 지나고 기말시험 치를 즈음 언제나 묵묵히 열심히 생활하는 우리의친구 리차드 장(장x근 군의 호가 리차드임다.--;)가
그동안 모아둔 전산부(WorkStation:제목 절라 촌스럽져? 제가 지은겁니다..ㅋㅋ)의 통장을 들고 사라졌슴다.
지능적인 범죄행각은 장부인 디스켓까지 불질러버려서
그돈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합니다. --;
공소시효가 만료되어서 다시 회수하긴 힘들것 같습니다.
(차드야~ 그날의 일은 용서하마~ 만나거덩 대포나 한잔하자..)
암튼 그당시 리차드 장이 동쪽으로 간이유를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씀다.
추측컨대 실연의 아픔이 아니었나 합니다..
덕분에 제가 1학기에 30명중에 30등 했는데 리차드 덕분에 29등했씀다..(친구야~ 고맙다~)
주막촌도 생각나는군요.
추운 가을날 신문지 깔고 과방에서 자본적 있나요?
춥고 배고픈 아니 팔고남은 음식 다먹어서 배는 불렀구나..쩝..
암튼 주막촌하다가 잘데 없어서 과방에서 신문지 깔고 덥고 잤던 그시절. 아련한 기억입니다..커~
그 이후로도 몇번을 이용했는 데 신문지는 스포츠신문이 최곱니다.
칼라 많이 섞인 신문이 따뜻합니다.--;
학교 댕길때 알바도 마니 했슴다.
1학년 여름방학때 : 90 윤x권, 92 장x근, 글고 나. 세명이서
알바 찾아 헤맨끝에 찾아낸 미싱시다.. 세명이
한달 열심히 벌어 학비에 보탠다고 비장한 각오를 하고 북구 복현동
모 시장내 지하실의 허름흔 xx어페럴인가에 입사했슴다.
말그대로 아름다운 청년이었슴다. 저랑 윤선배는 바지 단추구멍 뚫는일하고
우리의 리차드 장은 거기에서도 최고의 기술을 요하는 바지허리에 고무줄 넣는
작업을 했슴다. 나 거기서 단추구멍 몇개나 뚫고 박음질 했는지 모릅니다.--;
1주일을 겨우 견디고 1달을 하자던 세명의 도원결의를 깨고 우린 도망나왔슴다.
중노동하고 하루일당으로 받은돈은 9천원이 안되었슴다.
윤 선배는 점심때 국물마니먹고 화장실 자주간다고 사장한테 쿠사리 많이도 먹었슴다.
그러나 그날의 아품을 딛고 윤선배는 멋진 장교로 거듭 났고 장가가서 잘사는가봅니다.
(글구보니 윤선배 결혼식 이후로 한번도 본적이없네요.. 이글 보거덩 답글이나 함써줘요~)
1학년 겨울방학때 1 : 늦가을에 잠적했던 리차드를 찾아내서
같이 노가다 생활을 했슴. 그때 공사했던 아파트 부실공사로 유명한 한양건설..
제가 추워서 피워놓은 불로 태워먹은 배관만 4개--;
몰래 사모래로 감춰놓았던 그방.. 사람들 변기통 물안새나 몰겠슴다.
지금도 노가다 판에서 일하는 저로선 그때의 부실공사를 거울삼아 안전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슴다.
1학년 겨울방학때 2 : 노가다 일을 접고
경북 경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이태리 타올, 락스, 칫솔등 배달을 했슴다. 안가본 목욕탕 여관 없슴다..--;
순진한 그때 낮에 남자여자가 여관에서 뭘하는지 몰랐슴다. 지금도 모릅니다..^^;
2학년 여름방학 부터 군대가기전까지 : 노가다 + 노래방 뽀이
노래방 뽀이할때 젤 싫었던 사람들에 대해 적어봅니다.
1) 노래하고나서 마이크 두개의 선을 배배꼬아놓고 걍 간사람들
그거 풀려면 절라 짜증..
2) 노래하다말고 바닥에 오바이트해놓고선 감출려고 발로 납짝하게 비벼놓은 사람들.
걍 한곳에만 하지 여러군데 해놓은 넘도 왕 짜증이었슴다.
3) 여고딩의 빨간 루즈가 뭍은 재털이 속의 담배꽁초..
진짜 한대 때려주고 싶었씀다..
4) 내가 짱께 먹고 싶을때 주인아저씨랑 맨날 먹어야하는 동태찌게.
주인아저씨 낚시가 취미이고 통태찌게 캡 잘먹어서 맨날 동태찌게만 먹었슴다.--;
그래도 그 아저씨 나 거기 그만둘때 일잘했다고 퇴직금으로 1만원 더 주더라고요--; 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