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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
*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왕하 6;6-17)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와 함께 이스라엘에서 해와 달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기적의 선지자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갈라졌습니다(왕하 2;14)
여리고 물을 맑게 하였습니다(왕하 2;19-22)
벧엘에서 아이들에게 저주하였더니 저주가 임하였습니다(왕하 2;23-24)
모압과 전쟁에서 승리를 예언하였습니다(왕하 3;16-27)
과부의 가정에서 기름을 채웠습니다(왕하 4;1-7)
수넴지방에서 죽은 소년을 살렸습니다(왕하 4;18-21)
길갈에서 독이 있는 음식에서 독을 제하였습니다(왕하 4;38-41)
적은 양식으로 100명을 먹였습니다(왕하 4;42-44)
나아만 문둥병자를 고쳤습니다(왕하 5;1-19)
종 게하시가 문둥병에 걸리게 하였습니다(왕하 5;20-27)
요단강에서 도끼가 물위로 떠오르게 하였습니다(왕하 6;1-7)
아람 나라 비밀을 모두 알아 냈습니다(왕하 6;13-17)
아람 군대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왕하 6;18-23)
사마리아에 식물을 약속하였습니다(왕하 7;1-20)
아람에 대하여 3가지 승리를 약속하였습니다(왕하 13;14-19)
죽은 후에도 죽은 사람을 일으켰습니다(왕하 13;20-21)
엘리사 사건 중에 특별한 한 사건을 가지고 집중 조명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늘 말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사실한 말을 할 때가 있고 믿음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의 말이 믿음의 말이 되지 못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날은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내 기억에 나는 지금까지 말을 배운 후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산 날이 하루 있었습니다.
미국 빅 베어 산에서 뜨레스디아스를 할 때
시계를 풀러놓고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살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말하지 않고 사는 날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말을 할 때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믿음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옛날 부흥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였습니다.
어느 강사님이 설교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있는 힘을 다 하였습니다.
힘을 주며 설교를 하다가 똥을 쌌습니다.
강사가 여관에서 지내지 않고 성도들 집이나 목사님 주택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그 옷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옷을 빨아 달라고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강사가 남의 집에서 자기가 빨래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일단 꼬기꼬기 싸두었습니다.
이 때 우체부가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얼른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우체부에게 돈과 함께 주면서 소포로 집으로 붙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약간의 수고비도 주었습니다. 소포가 토요일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여선교 회원들이 주일 준비로 청소를 하는 데 우체부가 가지고 왔습니다.
모두가 부흥회에 간 목사님이 보낸 소포라고 좋아 하였습니다.
모두 부러운 눈으로 무엇인지 뜯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둘러 앉았습니다. 사모님이 뜯었습니다.
내용물이 들어 나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에게 소문이 두가지로 났습니다.
<우리 목사님 부흥회하면서 똥을 싸서 어쩔 수가 없어서 소포로 붙였다>
하나도 거짓이 없는 사실의 말입니다.
그러나 또 한 소문이 났습니다.
<우리 목사님 얼마나 부흥회에 열심히 설교를 하였는 지 똥이 다 나오도록 설교하셨다>
믿음이 있는 자의 믿음의 말이었습니다.
이같이 말에는 사실의 말과 믿음의 말이 있습니다.
똑같이 상황을 목격하고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은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4장에 유명한 정탐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인지 정탐하고 오라고
한 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를 뽑아 모두 12명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은 10;2로 갈라졌습니다. 10명이 먼저 보고하였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27-33)
조금도 거짓이 없는 사실의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의 보고를 들어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8-9)
믿음의 말이었습니다.
이같이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과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을 쓰시지 않고 믿음의 말을 하시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사실을 쓰시지 않고 믿음을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믿음의 말입니까?
1. 하나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은 사실의 말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믿음의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모세입니다.
모세가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냈습니다.
홍해 앞으로 왔습니다. 그 때 노예를 잃어버린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로 잡으로 군사들을 이끌고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홍해 앞에서 건너지 못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신나게 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죽이려고 하면서 외쳤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
백성들은 사실의 말을 하였습니다.
건너지 못 할 홍해와 막강한 무기를 가진 애급 군대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틀림없이 죽음만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앞에서 사실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믿음을 말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하나님 입장에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14;13)
모세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믿음을 말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사실이 이루어지지 않고 믿음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주간 커피 숖에서 목사님들 몇 명이 모여 회의를 하는 데
원주에서 목회하시는 원 호연 목사님이 들어 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목사님 인터넷에 들어와 내 설교중에 <소원을 소명으로> 이 설교가
얼마나 좋았는 지 은혜받고 각색하여
설교 준비중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금 교회 2,000석 교회를 지으려고 할 때 IMF가 터졌습니다.
온 교인들이 반대하였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건물이 낡아서 그렇지 그런대로 건물이 있습니다.
돈이 돌지 않습니다. 사업을 망친 성도들이 많습니다.
짓다가 틀림없이 빚을 지을 터인데 이자가 23%입니다....>
모두 사실의 말입니다.
그러나 몇 장로님들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따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한 사업가가 전주로 이사와서 교회를 짓는 것을 보더니
내가 헌금할 터이니 <교육관까지 지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교육관까지 지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실 줄 믿습니다.
내 입장에서, 사람 입장에서, 지금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사실의 말이고,
하나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믿음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실을 보지 않고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2.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사실을 말하지 않고 기적을 기대하며 말하는 말이 바로 믿음의 말입니다.
기적의 기대하는 사람은 기적의 말을 합니다.
기적을 기대하지 못 하는 사람은 결코 기적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들판에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허기지도록 말씀을 증거하셨고 사람들은 허기지도록 떠나지 않았습니다.
빈 들이었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돌아가다가 허기져서 쓰러질 것같으니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빈들입니다. 5,000명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녁입니다. 5,000명이 먹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200 데나리온, 약 2,000만원도 부족할 것입니다. 돈도 없습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모두가 사실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 손목을 잡고 예수님 앞에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니이까?>(요6;9)
사실로만 말하는 제자들과 달리 안드레는 기가막힌 오병이어지만 가지고 와서
주님 손에 붙잡히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안드레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 배물리 먹고 부스러기를 주웠습니다.
부스러기가 12 광주리였습니다. 기적의 언어는 기적을 끌어 드립니다.
사실을 말을 하지 말고 기적의 말을 하는 것이 기적을 창조하는 근원입니다.
지난 주간 나는 뉴질란드 해밀톤에 다녀 왔습니다.
동기 친구 안 성옥 목사가 나에게 자기 매제가 뉴질란드 해밀톤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는 데
소원이 강 목사를 모시고 부흥회를 한번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작으니 자비량으로 비행기표도 내가 끊고
강사비도 없지만 소원 한번 들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교인은 네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허락하였습니다.
하나는 친한 친구 부탁입니다.
다른 하나는 큰 교회도 좋지만
그런 교회도 부흥되어야 하니 아골골짝 빈들에도 가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표도 내가 사고 떠났습니다.
부흥회 약속을 하여 놓고 1년만에 60명 가량으로 부흥하였습니다.
전도사라 아직 세례 줄 수 있는 자격이 안 되기에 내가 세례 예식을 거행하고 왔습니다.
20명 세례를 주었습니다.
부흥회를 약속하여 놓고 일년간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였습니다.
이제 자립교회로 크게 부흥된 것입니다.
<하나님! 강 문호 목사님 모시고 부흥회 약속을 하여 놓았는 데 챙피하지 않게 하여 주세요>
늘 이런 기도였습니다.
해밀턴에 한국 사람은
영주권자 500여명, 유학생과 유학생 가족 1,500여명 모두 2,000여명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교회를 부흥시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도하여 들어 온 사람보다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민 온 가족이 예배드리러 약도를 보고 한 교회를 찾아가는 데
길을 잘못 들어서 찾아 와서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등록하여 이 교회 성도가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나를 운전하여 주던
고영길 성도는 이민 와서 외롭게 지내던중 주보를 길거리에서 주웠습니다.
주보에 있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아서 찾아 나와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 성도 20명을 세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에게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사실을 말하지 말고 믿음을 말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있습니다.
3.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보이는 것만 말하면 사실의 말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면 믿음의 말이 됩니다.
보이는 것을 말하기란 말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듣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해하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단성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와 아람이 싸울 때였습니다.
아람이 작전 계획을 은밀하게 세우고 나면 탄로가 났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마다 허를 찔리는 것같이 졌습니다
아람 왕은 우리 중에 간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골방에서 세운 비밀이 탄로가 나느냐고 신하들에게 따지고 물었습니다.
어느 곳을 치자고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몰래 쳐들어 가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알고
그 곳에 철통같은 수비를 하고 있어서 치지 못 하고 돌아 오곤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난 아람왕이 누가 내통하였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 때 한 신하가 말했습니다.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왕하6;12)
아람 왕은 이 말을 듣고 전쟁을 하기 전에 엘리사를 잡아야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어디 있는 지 찾아 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도단성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 왔습니다.
아람 왕은 밤에 몰래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도단성을 둘러 쌓습니다.
엘리사 종이 새벽에 성벽에 올라가 보니 수많은 군사들이 도단성을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종이 엘리사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큰 일났습니다. 엄청난 아람 군대가 우리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사실의 말을 하였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사실의 언어입니다. 보이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
이는 믿음의 말입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입니다.
엘리사는 종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보니
아람 군대수보다 더 많은 천사들이 도단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저는 탈무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율법 학자중에 한 명을 들라고 하면 힐렐 랍비입니다.
정말 그는 탁월한 율법 랍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율법 공부를 할 때에는 너무나 가난하였습니다.
결혼하고도 노동을 하여 가면서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
그 날 벌어 그 날 공부하면서도 율법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랍비였습니다.
미래에 훌륭한 율법 학자가 되려고 분투 노력한 결과 그는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있었던 한 가지 일화입니다.
하루에 보통 10,000원 정도 벌었습니다.
그러면 매일 5,000원은 아내에게 주어 생활하게 하였고 5,000원은 율법 수업료를 냈습니다.
어느 날 운이 없어서 한 푼도 벌지 못 하였습니다.
힐렐은 집안 식구가 그 날 굶는 것은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율법 공부를 잊어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라 학교에 갔습니다.
수업료를 내지 못 하였기에 교실에는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들어 가게 만든 창이 지붕에 하나 있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 그 창에 얼굴을 대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날 몹시 추웠습니다.
눈이 내렸습니다. 몸에 눈이 쌓이고 있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한 참 공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온 종일 그랬습니다. 그 날 밤새도록 공부가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눈도 그쳤습니다. 아침 고부를 하다가 토라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왜 이 방이 어두우냐? 오늘은 눈도 안 오고 밖에 날씨는 좋은 데 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느냐?>
채광창을 보니 사람 얼굴이 보였습니다. 제자 한 명이 올라 가 보았습니다.
눈이 1 미터가 쌓여 있었습니다. 눈을 헤치고 보니 그 속에 힐렐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얼어 붙어 있었습니다.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달걀 하나 이상의 무게를 들수도 나를 수도 없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힐렐을 들었습니다. 불 가까이에 눞혔습니다.
그리고 몸을 녹힌 후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
힐렐은 깨어 났습니다. 토라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안식일 법을 어겨도 좋다>
이렇게 율법 공부를 열심히 한 힐렐은 당시 최고 율법 학자가 되었습니다.
남다른 생각, 남다른 행동, 남이 보지 못 하는 미래를 보고 전진 또 전진하였던 힐렐이었습니다.
사실의 언어가 아닌 믿음의 말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실의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어떻게 말하는 것이 믿음의 말을 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2. 기적을 기대하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3.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말이 믿음의 말입니다.
*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사람 엘리사(열왕기하 3:8-20)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중매와 사람 추천입니다. 중매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중매를 잘 하면 옷 한 벌이고 잘못하면 매가 석대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추천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에게도 종종 부흥회 강사로 추천하여 달라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또 교회에서는 내게 부흥회를 요청하였다가 못 한다고 하면 강사를 추천하여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강사를 추천하여 달라는 교회도 있고, 교회를 추천하여 달라는 목사도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망설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소개하고 나서 결과가 좋으면 좋지만 안 좋으면 추천하지 아니한 것만 못 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부흥강사님을 모실 때 나는
부흥강사님을 가장 많이 모시는 부산 감림산 기도원원장님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원장님은 일년에 강사를 100명 이상 모시지요?
그 중에서 추천하여 주실 분이 있으면 추천하여 주십시오.
조건은 우리 교인들이 꼭 은혜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천하여 오신 강사님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추천하고 추천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조그만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 더 작은 나라 모압이 있었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며 자기 나라를 쳐들어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매년 새끼양 10만 마리 털과 숫양 10만 마리 털을 조공을 바쳤습니다(왕하 3:4)
그런데 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자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스라엘 왕 여호사밧은
옆 나라 유다왕과 에돔 왕에게 부탁하여 같이 모압을 쑥밭 만들어 버리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두 왕은 협조하였습니다. 세 나라 군대가 모압을 향하여 광야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전략적으로 보면 모압을 공격하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길은 산악지대라 너무 험난하여 그 길로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광야길 사막 길에 들어섰는데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 길에는 와디 엘 아시(Wad Ashi)라는 샘이 있었는데 항상 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말라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하나님의 징계로 밖에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수를 의지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모두가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군사들의 기력이 극도록 쇠하여졌습니다.
먹지 못 하고는 살아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말했습니다.
<이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가지도 오지도 못 하고 다 죽게 되었다.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지 않으면 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다.
자!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는 데
하나님께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드릴 선지자를 추천하여라>
그 때 신하중에 하나가 엘리사를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왕하 3:11왕하 3:11)
엘리사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추천하였습니다.
엘리사밧 왕은 신하가 추천한 엘리사를 믿었습니다. 그를 의지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왕 앞에 오더니 거문고를 타는 음악가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거문고 소리를 듣던 엘리사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왕하 3:15왕하 3:15)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왕하 3:16-17왕하 3:16-17)
왕은 메마른 땅에 개천을 팠습니다. 우물을 판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엘리사의 말씀을 따라 개천을 팠습니다.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물이 에돔으로부터 흘러 와서 그 개천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엘리사가 해낸 일이었습니다.
신하 한 명이 엘리사는 추천한 것이 대단한 성과를 거두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추천합니까?
1. 맡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하게 됩니다.
추천을 하여 주었는데 시원치 않으면 서로가 민망합니다.
그래서 추천할 만한 사람을 추천하여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하러 가다가 물이 없어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물입니다. 물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여호사밧 왕은 요구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추천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개천을 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돔 땅으로부터 물이 흘러 와서 개천을 넘치게 하였습니다.
추천한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내게 맡겨진 일에 완벽하게 충실하여야 합니다. 엘리사는 그랬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은 날부터 갑자기 성격이 매우 난폭해졌습니다.
식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욕을 퍼붓고,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를 가끔 만나던 어린 꼬마가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식구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한번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만나 보렴> 하며 그 꼬마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한 20-30분 동안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온 뒤에 할아버지가 변했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해서 소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너 할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했니?>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아무 이야기도 안 했어요>
<그러면 도대체 할아버지랑 20-30분 동안이나 뭘 했니?>
어린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아무리 작은 소년이라도 남이 못 한 일을 해냈습니다
. 계획적으로 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 통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이런 사람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2. 훌륭한 스승을 따라 다닌 사람을 추천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중대한 일에 사람을 추천할 때에 훌륭한 스승을 두었던 제자를 추천합니다.
신하가 왕에게 엘리사를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추천사입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11)
사람들은 엘리야를 존경하였습니다.
자기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치면서
그렇게 되려고 그런 스승을 따라 다닌 사람이기에
틀림없이 엘리야처럼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엘리사를 추천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누구와 같이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엘리사를 추천한 이유 중에 하나가 엘리야가 손 닦을 때 물을 부어주던 이라고 추천하였습니다.
좋은 사람과 같이 있어야 합니다. 나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추천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번에 달라스에 김 한식목사와 같이 가서 내가 설교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한 분이 내가 설교하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목사로서 정치하는 김한식과 친하니까 정치 이야기나 할 것이라고 하면서 거절한 것입니다.
김 한식목사는 가슴에 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모르는 이였습니다. 누구와 같이 다녔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잘 가던 음식점 주방장은 냉면 국물을 신라호텔 주방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든다는 말을 듣고 600만원을 주고 가서 따라 다니며 배웠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같이 있었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을 따라 다녀야 추천을 받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실 때 모세,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이 같이 계셨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대표자입니다.
엘리야는 예언의 대표자입니다. 이스라엘에 3대 거목입니다. 스승을 보고 제자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받들던 이라고 신하가 추천하였습니다. 훌륭하게 배운 사람을 우리는 추천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게 됩니다.
왕이 우리가 곤경에 빠 서 죽게 되었는데
어느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면 좋으냐고 할 때 한 신하가 엘리사를 추천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 때 <내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금식기도에 들어가겠습니다.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말했습니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왕은 거문고 타는 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거문고를 탈 때에 하나님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임하였습니다.
문제 해결의 길이 열렸습니다.
엘리사는 영감 받는 비결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영적 체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연극 연출가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전 날 밤이면 혼자가 그 무대에 올라
아무도 없을 때 구상을 할 때 가장 영감이 크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영감이 떠오르는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나는 가장 영감이 잘 떠오르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고요히 기도하는 토요일 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옆에 앉아 계시면서 내 이야기를 조곤 조곤 다 들으시는 것을 깊이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목회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꼭 정확하게 주십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엘리사는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이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12)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을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 왕이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을 사람들은 추천하고 사용합니다.
그가 입으로 하는 말이 자기 말이 아닙니다. 들어 보면 어쩐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추천하고 그 사람을 쓰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열었다 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시며
사람들도 그를 기적의 사람으로 추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재판을 받으로 갈 때였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었습니다.
배가 계속 14일간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모두가 죽게 되었습니다.
뱃사공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자기들만 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바울이 배갑판위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배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행27;22-26)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이 끌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를 따르게 됩니다.
나는 어느 간호원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암병동에 암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6살된 지혜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죽을 병이었습니다.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가 기르다가 할머니가 병들어 쓰러지자 병원비를 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병원이 버릴 수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누구하나 따뜻한 사랑을 줄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간호원만은 그를 내 딸처럼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장이 통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만 나면 옆에 가서 동화책도 읽어 주고 성경도 읽어 주고 찬송도 불러 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혜는 이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병이 깊어 지자
병든 할머니가 데리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간호원들은 안타까워 하면서
지혜에게 10,000원짜리 몇 장으로 선물로 주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100원 동전, 1000원짜리, 그리고 10,000원짜리 돈을 놓고 아무 것이나 집어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몇 번 그렇게 하면 자존심상하지 않게 돈을 몇 만원 주어 퇴원할 수 있으리라 어겼기 때문입니다.
<지혜야. 여기 백 원짜리,천 원 짜리,만 원짜리 중에
네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걸 하나 줄테니 뽑아봐>
그 때 지혜는 주저하지 않고 백원짜리 동전을 집었습니다.
<지혜야. 아직 어떤 게 큰 지 모르는가보구나.
이중에는 만 원짜리가 제일 좋은 거야. 동전 대신에 이걸로 가지려무나>
이렇게 말하면서 10,000원짜리를 주었습니다. 지혜는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이 동그란 백 원짜리가 제일 좋아요.
백 원짜리로 멀리 있는 우리 엄마와 전화할 수 있거든요>
지혜는 몰래 어머니와 100원짜리 동전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말을 듣자 병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자기 호주머니에 있던 동전 100원짜리를 있는 대로 꺼내어 지혜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닌 사람을 사람들은 기뻐하고 추천하게 됩니다.
4. 섬길 줄 아는 이를 추천하게 됩니다.
신하가 엘리사를 추천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왕하3:11왕하3:11)
손에 물을 붓던 사람이란 엘리야를 섬기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섬기는 자세를 말할 때 손에 물을 붓는다고 합니다.
남을 잘 섬기는 이를 사람들은 추천하게 됩니다.
한 젊은 여인이 미술관에 그림을 감상하러 왔습니다.
미술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여인은 꿇어앉은 채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술관 직원이 왜 무릎을 꿇고 힘들게 그림을 보는 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내일 학생들을 데리고 미술품을 감상하러 올 텐데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이 그린이 어떻게 보일지 미리 알아두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섬기는 훌륭한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섬길 줄 아는 이는 추천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추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추천합니까?
1. 맡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하게 됩니다.
2. 훌륭한 스승을 따라 다닌 사람을 추천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게 됩니다.
4. 섬길 줄 아는 이를 추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