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5차 계방산(桂芳山)-1577m
◈산행일:2005년03월13일 ◈날씨:오전-맑음/오후-맑음
◈위치: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운두령
◈참가인원:67명 ◈산행소요시간:4시간40분(10:50~15:30)
◈교통(한일고속관광조시제기사포함,버스2대):마산(06:10)-칠원요금소(06:19)-서대구요금소(07:04)-군위휴게소(07:30-56)-죽령터널(08:44-46)-치악산휴게소(09:20-30)-만종분기점(09:44)-속사요금소(10:24)-운두령(10:42)
◈산행구간:운두령→1496봉→계방산→고개삼거리→이승복생가터→삼거리(계방산쉼터)
◈산행안내 : 전체(김기수) 선두(전임수), 중간(신종섭), 후미(박윤식)
◈특기사항 : 강원도 원주시 소재 그린헬스옥사우나에서 목욕
◈산행메모:치악산휴게소에서 신발끈을 매고 배낭을 손질한다. 만종분기점을 지나 강릉으로 향하는데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산들이 멀리서 다가온다. 국내 고속국도상의 터널 중 길이에서 세번째인 둔내터널(1위 죽령터널, 2위 육십령터널)을 지나니 도로 양쪽으로도 하얀 눈 세상이다. 속사요금소를 통과하고 갈림길을 만나 31번국도로 진입한다. 인제로 향하는 도로다. 방아다리약수와 이승복기념관, 계방산쉼터를 지나고 길은 구불구불 산허리를 타고 오르니 운두령이다. 강원도평창군용평면과 홍천군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계방산은 해발1577미터로 평창군과 홍천군 사이에 위치하며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 지리산(1915), 설악산(1708), 덕유산(1614) 다음으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때문에 계방산 정상에서는 멀리는 설악산과 근처의 오대산, 가리왕산, 금당산, 두타산, 태기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이 산은 운두령(1080)에서 정상까지의 표고차가 497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고 흙이 많아 등산하기에 좋다는 장점이 있다. 이 산에 용맹스럽고 무서운 권대감 산신령이 용마를 타고 달리던 중 칡덩굴에 용마의 발이 걸려 넘어지자 화가 나서 부적을 써 산에 던진 이후 모든 칡덩굴이 없어졌다고 하며 지금도 계방산에는 칡덩굴이 자생하지 못한다. 이 산은 잘 보존된 원시림과 오색 찬란한 가을단풍, 환상적인 겨울설경, 수백년 계방산을 지키고 있는 주목군락 등으로 인하여 많은 등산객이 찾아들고 있다.〉
신약수에 대한 안내문도 있다.
〈옛날에 효성이 지극하였던 가난한 농부 최성순은 매년 산신령에게 감사하는 치성을 올려왔다. 어느 날 산신령이 현몽하여 속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물을 주겠다고 하기에 꿈에 보았던 물을 찾아갔다. 버드나무 숲을 헤치고 조금 올라가니 붉은 쇳물이 흘러내리는 곳이 있었다. 그 곳에서 물을 얻어 병을 낫게 하니 효험이 있는 약수로 널리 알려져 방아다리약수를 구약수라 하고 이 곳을 신약수라고 일컫게 되었다.〉
오른쪽의 침목으로 만든 계단을 통과하니 눈이 부신 눈 언덕길이 이어진다. 길을 벗어나면 허리까지 빠지지만 등산로는 앞서간 사람들의 발길에 다져져 밀가루를 밟는 기분이다. 20분쯤 올라가니 눈높이보다 약간 위의 하얀 산이 멀리서 다가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1496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었다. 밋밋하게 10분간 내려가니 안부다. 강원도의 바람이 남쪽의 바람과는 대적이 안될 정도로 매섭다. 혹시나 하고 배낭에 매달고 간 외투를 풀어서 입는다. 마비되어 가던 왼쪽 팔의 통증이 덜하다. 앞서 가던 다른 팀의 긴 행렬에 길이 막힌다. 덕분에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찾아오는 등산객이 워낙 많다보니 오른쪽 발 밑으로 나란히 우회하는 길도 자연스레 생긴다. 능선으로 이어진 길은 매서운 칼바람이 닿는데 오른쪽 길에서는 안방처럼 포근하다. 나무에 눈이 얼어붙은 상고대가 시작되며 모두들 입이 벌어진다. 사진기에 풍경을 담는데 잠깐사이에 저절로 작동을 멈춘다. 사진기의 배터리가 얼어서 오는 현상이다. 할 수 없이 바지주머니에 넣고 체온으로 데우며 한두 컷씩 어렵게 담는다. 시야가 트이며 1496봉에 올라선다(12:18).
정상은 오른쪽에 불룩하다. 사방으로 펼쳐진 기기묘묘한 상고대가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오른쪽으로 꺾어 밋밋하게 진행하며 이국적인 설경에 빠져든다. 정상에서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산 사면은 주목 군락지다. 주목과 어우러진 설경은 그 자체로 감탄의 연발이다. 헬기장에 올라 식당을 차린다(12:30-50).
여기 아니면 찬바람 때문에 식사장소를 찾기도 어렵겠다. 왼쪽 위의 정상을 보며 빵, 커피, 소주, 매실주, 고량주 등 골고루 들이킨다. 상공의 공기도 차가운지 새파란 하늘에는 비행기가 흰무지개를 길게 만들며 간다. 넉넉한 걸음으로 오르니 넓은 고스락에 돌탑이 있는 계방산정상이다(13:05).
이정표에는 제2야영장5.7, 운두령3.8, 계방산주차장5.2킬로미터란다. 돌탑 앞에는 알림판도 서있다.
〈이 지역은 1968년12월9일 울진․삼척 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120명)가 이승복일가를 포함 민간인 4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지역입니다. 주변에 거동수상자 발견 시 즉시 신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육군제1670부대장〉
어디를 굽어보아도 사방은 겹겹이 포개진 흰 산이 눈 아래로 펼쳐진다. 진행방향으로 능선 따라 칼바람을 맞으며10분쯤 진행하니 커다란 주목들을 만나고 길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쏟아진다. 지도상의 고개삼거리다.
엉거주춤 자세로 발을 내딛는데 갑자기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 자세로 두발을 들어올리니 그대로 구불길 따라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닐을 준비한 사람도 있구나. 미끄럼을 타는 재미도 25분만에 끝난다. 경사가 작아지고 오른쪽으로 굽어지며 밋밋하게 내려간다. 폭우를 대비해 설치한 시멘트구조물을 만나며 임도가 시작된다(13:55).
20분후 제1, 2야영장을 지나고 이승복생가터를 만나 복원된 집과 움집을 둘러본다(14:25). 이승복 생가 안내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1968년12월9일 밤 단란하게 살고있던 이승복군의 가족 7명 중 할머니와 아버지는 이웃집에 이삿짐을 날라주러 가고 집에는 5명만 남아있었다. 산 속에서 내려온 무장공비 잔당 5명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항거하는 이승복군과 일가족을 살해하여 아이들 3명은 외양간 뒤쪽의 오지랖 물속에 쳐넣고 어머니와 큰아들은 퇴비더미에 파묻어 두었으나 공비의 칼에 36곳을 찔리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큰아들 학관은 정신이 돌아와 이웃집으로 기어가 구출이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식구들은 그 날 밤 중 軍犬(군견)을 대동하고 출동한 수색대원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후 몇 년간은 빈집이었으나 1970년대 초 정부에서 화전민이 살던 빈 가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함께 헐려지고 돌담과 집터만 남아있었다.
이 집은 2000년 겨울 이승복일대기 기록영화를 촬영하면서 당시의 주민과 생존자의 증언 및 사진판독 등 고증을 거쳐 (주)씨네에스트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3반에 거주하는 강규혁에게 용역을 주어 생가로 복원한 것이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질서있게 관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치: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74번지
▶규모:안방, 윗방, 부엌, 외양간(총7평)
▶재료 및 형태:목조귀틀집
▶관리기관:이승복기념관〉
검은 돌에 새겨진 글자에 시선이 따라간다.
〈이 곳은 이승복군이 자라던 반공의 발상지입니다. 1968년12월9일 울진삼척지구에 침투했던 북괴의 무장공비들이 북으로 도주하다가 이곳 이승복군의 보금자리에 침입했습니다. 당시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장 2학년이던 승복군은 아홉 살 어린 나이로 감연히 항거하다가 그의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참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승복군의 그 용맹과 반공정신을 이어받고자 그가 순절한 이곳에 비를 세웁니다.〉
눈 아래로 시멘트길이 드러나는 길로 진행하니 아침에 지났던 삼거리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감한다(14:45). 차량으로 5분 거리인 이승복기념관을 관람한다.
☆승차이동(15:41)-이승복기념관관람(15:46-16:08)-속사요금소(16:15)-원주요금소(16:55)-목욕(17:08-18:14)-남원주요금소(18:21)-안동휴게소(19:34-57)-서대구요금소(20:44)-칠원요금소(21:31)-마산도착(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