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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81강-4 (2016. 11. 7.)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五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三
四. 十廻向
6. 第五無盡功德藏廻向(2권-175쪽)
(9) 方便廻向(2권-180쪽)
(10) 利益
(11) 實際에 廻向
(12) 離妄心
(13) 衆生에게 廻向
(14) 廻向의 德
가. 無盡善根德
나. 我法二空智慧德
다. 境界淸淨德
라. 福智無盡德
마. 福智超勝德
(9) 方便廻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方便廻向一切佛刹하며 方便廻向一切菩薩하며
方便廻向一切如來하며 方便廻向一切佛菩提하며
方便廻向一切廣大願하며
方便廻向一切出要道하며
方便廻向淨一切衆生界하며
方便廻向於一切世界에 常見諸佛出興於世하며
方便廻向常見如來壽命無量하며
方便廻向常見諸佛이 遍周法界하사
轉無障碍不退法輪이니라
方便廻向(방편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方便廻向一切佛刹하며 方便廻向一切菩薩하며
方便廻向一切如來하며
方便廻向一切佛菩提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에 방편 회향하며,
方便廻向一切廣大願하며
方便廻向一切出要道(출요도)하며,
出要道 = 번뇌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길.
거기다 방편회향하며,
方便廻向淨一切衆生界하며,
일체중생계를 청정해야 하는데 방편회향하며,
方便廻向於一切世界에 常見諸佛出興(흥)於世하며,
일체세계에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항상 보는 것, 거기다 방편회향하며,
方便廻向常見如來壽命(수명)無量하며,
여래의 수명이 무량하다고 하는 것을 항상 보는 데
방편회향하며,
方便廻向常見諸佛이 遍周法界하사
轉無障碍不退法輪(전무장애불퇴법륜)이니라.
不退法輪을 굴리는 것을 항상 보는데 회향할지니라.
(10) 利益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時에 普入一切佛國土故로
一切佛刹이 皆悉淸淨하며
普至一切衆生界故로 一切菩薩이 皆悉淸淨하며
普願一切諸佛國土에 佛出興故로
一切法界一切佛土에 諸如來身이 超然出現이니라
利益(이익)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如是廻向時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普入一切佛國土故로,
일체 불 국토에 널리 들어가는 까닭에,
一切佛刹이 皆悉淸淨하며,
모든 세계가 다 청정해지며,
세계가 무슨 청소 안 해서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늘 우리들 근본인, 우리들 자신의 안목에 있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普至一切衆生界故로,
일체중생계에 널리 이르는 까닭에,
一切菩薩이 皆悉淸淨하며
普願一切諸佛國土에 佛出興故로,
일체 모든 불 국토에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을 널리 원하는 까닭으로,
一切法界一切佛土에
諸如來身이, 모든 如來身이
超然出現(초연출현)이니라.
超然히 출현하는 것을 널리 원한다.
(11) 實際에 廻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如是等無比廻向으로
趣薩婆若에 其心廣大가 猶如虛空하야
無有限量하야 入不思議하며
知一切業과 及以果報가 皆悉寂滅하야
心常平等하야 無有邊際일새
普能遍入一切法界하나니라
實際에 廻向(실제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如是, 이와 같은
等無比廻向으로, 비교할 바 없는 회향으로서,
趣薩婆若(취살바야)에, 일체지혜에 나아감에,
其心廣大가 猶(유)如虛空하야,
그 마음이 광대하기가 허공과 같아서,
無有限量(무유한량)하야, 한량이 없어서,
入不思議(입부사의)하며,
부사의한 데 들어가며,
知一切業과 及以果報(과보)가,
일체업과 그리고 업의 과보가,
皆悉寂滅(적멸)하야, 皆悉寂滅함을 알아서,
현상은 전부 업과 업의 과보로 되어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본질에, 성품의 자리에서, 진여자성의 자리에서 보면 그것이 모두 皆悉寂滅입니다. 고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서, 해결책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현상에 나와서 어떤 차별된 현상을 쫓아가기로 하면,
끝이 없고 답이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 한마음 자리, 진여자성자리에 廻歸하는 것.
그것이 답입니다. 그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心常平等하야
無有邊際(변제)일새. 邊際가 없을세.
普能遍入一切法界하나니라.
일체 법계에 널리 능히 두루두루 들어 가나니라.
우리 한마음 자리! 참마음 자리에 廻歸하면 모든 것이 다 문제 해결이지요.
諸法從本來(제법종본래)로
常自寂滅相(상자적멸상)이라 그랬잖아요.
모든 현상은 본래부터 적멸한 것.
그것이 근본이다. 그것이 본 고향이다. 그런데 거기서 자꾸 펼쳐지고 나눠지고, 또 그러다 보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현상만 자꾸 쫓아가지요. 현상만 쫓아가는 겁니다.
돌을 삽살개에게 던지면, 그 삽살개는 그 돌덩이가 뭔지,
자기 때리려고 던진 돌덩이인데도 그것을 뭐가 먹을 것인 냥 하고 쫓아가듯이,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그러고,
지혜로운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물려고 쫓아가는 겁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는 그와 같습니다.
돌을 삽살개한테 던지면 킁킁거리면서 뭐 먹을 것이 있는가? 하고 돌덩이를 쫓아갑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그와 같이 현상을 쫓아가고,
좀 공부한 大心凡夫, 화엄행자는 그 본질에, 말하자면 관심을 갖는 겁니다. 그 일어난 장소. 진여자성자리ㆍ불성자리에 마음을 돌리는 것이지요. 능엄경의 이치에다 견주어서 이야기하면 反聞聞自性(반문문자성)이라고나 할까요?
듣는 것을 돌이켜서 듣는 그 자체를 듣는 것이지요.
‘뭐가 듣는가?’ 여기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말소리를 듣는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뭘 듣는가?’ 뭘 듣든지 상관없습니다.
부처님말씀을 듣든지, 자기 비난하는 소리를 듣든지,
무슨 소리, 음악소리를 듣든지, 무슨 차 소리, 비행기 소리를 듣든지 간에 그것은 아무 관계없고, 그것을 쫓아가는
것은 우리중생입니다.
聞自性!
그 듣는 성품! 듣는 그 본질을 관심을 갖고, 그것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는 것!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래 法과 性하면, 法은 현상이고 性은 본질이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결 쫓아가기로 하면 끝이 없지요. 물을 이해하려고 해야지요.
물을 이해해버리면 물결이야 어떻든 간에, 아무 상관없이 됩니다. 물을 이해해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금을 이해해버리면 금이 뭘로 조각이 됐든지, 불상이 됐든지, 칼이 됐든지, 무슨 코끼리가 됐든지 그것은 그냥 현상일 뿐입니다. 금이 중요한 것이지요.
금괴로 만들어 놔도 금불상하고 아무 상관없습니다.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그냥 금일이지요.
그것 참~~, 우리 깨달으신 부처님으로부터 보살에 이르기까지, 선지식과 조사스님들은 참~~, 해결책을 잘 찾았습니다. 그렇게 해결하지 아니하면 답이 없습니다.
현상 쫓아가면 답이 없습니다. 현상은 늘 변화무상하기 마련이고요.
(12) 離妄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不分別我와 及以我所하며
不分別佛과 及以佛法하며
不分別刹과 及以嚴淨하며
不分別衆生과 及以調伏하며
不分別業과 及業果報하며
不着於思와 及思所起하며
不壞因하고 不壞果하며 不取事하고 不取法하며
不謂生死有分別하고 不謂涅槃恒寂靜하며
不謂如來가 證佛境界하야 無有少法與法同止니라
離妄心(이망심). 망심을 떠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不分別我와 及以我所하며, 나와 나의 것.
전부 이것이지요. 나. 그리고 내가 이해하는 것ㆍ내가 터득한 것ㆍ내가 성취한 것ㆍ내가 가진 것ㆍ내가 만든 것ㆍ
내가 아는 것ㆍ내가 배운 것, ←이것은 전부 我所입니다.
나의 것입니다. 그것을 분별하지 아니하며,
不分別佛과 及以佛法하며,
佛과 그리고 佛法도 분별하지 아니하고,
不分別刹과 及以嚴淨하며,
세계와 세계의 장엄도 분별하지 아니하고,
不分別衆生과
及以調伏(조복)하며,
그리고 중생을 조복하느니 중생을 교화하느니 하는 것도
분별하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이 회향의 단계가 상당히 높은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중생과 중생을 조복하는 것까지도 분별하지 아니하며,
不分別業과 及業果報하며,
業과 業의 果報도 분별하지 아니해요.
그런 차원을 떠난 것이지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업과 업의 과보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不着於思(불착어사)와 及思所起(급사소기)하며,
생각과 생각으로 일어나는 바.
생각으로 일어나는 바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不壞因(불괴인)하고 不壞果하며,
因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부정하지 않는다 이 말이지요. 果도 부정하지 아니해요.
不取事(불취사)하고 不取法하며,
事 = 현상이지요.
事도 취하지 않고 법도 취하지 아니해요.
不謂生死有分別하고,
생사가 분별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고,
不謂涅槃恒寂靜(불위열반항적정)하며,
열반은 항상 寂靜하다고 여기지도 아니해요.
不謂如來가 證佛境界(증불경계)하야,
여래가 부처의 경계를 증득했다고도 여기지 아니해서,
無有少法與法同止(동지)니라.
少法도, 어떤 법도 법으로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아니 하나니라. ←이것이 모두가 망심에 해당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망심을 떠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13) 衆生에게 廻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以諸善根으로 普施衆生호대
決定成熟하고 平等敎化하야 無相無緣하며
無稱量無虛妄하야 遠離一切分別取着이니라
衆生에게 廻向(중생회향).
중생에게 회향하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普施衆生호대, 널리 중생에게 보시하되,
決定成熟(결정성숙)하고,
결정코 분명 확실하게 성숙하게 하고,
平等敎化하야, 평등하게 교화해서,
無相無緣하며, 相도 없고, 緣 = 조건도 없으며,
보시할 때 그렇게 한다는 것이지요. 無相無緣!
우리는 보통 相없기도 어렵지만, 緣없이 보시하는 것도 참 쉽지 않습니다. 無緣布施ㆍ無緣大慈. 그런 표현도 있지요? 無相布施!
無稱量無虛妄(무칭량무허망)하야,
稱量 = 헤아림도 없고 허망함도 없어서,
遠離一切分別取着(원리일체분별취착)이니라.
일체분별 取着을 다 멀리 떠남이니라.
(14) 廻向의 德
가. 無盡善根德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已에 得無盡善根하나니
所謂念三世一切諸佛故로 得無盡善根하며
念一切菩薩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淨諸佛刹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淨一切衆生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深入法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修無量心等虛空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深解一切佛境界故로 得無盡善根하며
於菩薩業에 勤修習故로 得無盡善根하며
了達三世故로 得無盡善根이니라
廻向의 德(회향덕)
無盡善根德(무진선근덕)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已에, 이와 같이 회향하고 남에,
得無盡善根하나니, 다함이 없는 선근을 얻나니,
所謂念三世一切諸佛故로,
3세 일체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고로,
得無盡善根하며, 다함이 없는 선근을 얻으며,
선근이 다함이 없어야 됩니다.
다함이 없으려면 無相無緣! 조건이 없어야 되고,
相이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그런 통장에 쌓이게 되는 것이고, 相을 내거나 어떤 조건을 붙여서 우리가 보시를 하면 그것은 조건이 다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요.
念一切菩薩故로, 일체보살을 생각하는 고로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淨諸佛刹故로, 諸佛刹을 청정하게 하는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淨一切衆生界故로,
일체중생계를 청정하게 하는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深入法界故로, 법계에 깊이 들어가는 까닭에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修無量心等虛空界故로,
한량없는 마음이 허공계와 같음을 닦는 연고로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深解一切佛境界故로,
일체 佛경계를 깊이 이해하는 까닭으로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무진선근을 얻는 것도 여러 길이 있습니다.
그 여러 길을 소개하는 것이지요.
於菩薩業에
勤修習故(근수습고)로, 열심히 修習하는 까닭으로
得無盡善根하며, 무진선근을 얻으며,
了達(요달)三世故로, 3세를 了達하는 까닭으로
得無盡善根이니라. 무진선근을 얻느니라.
我法二空智慧德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一切善根으로
如是廻向時에 了一切衆生界가 無有衆生하며
解一切法이 無有壽命하며
知一切法이 無有作者하며
悟一切法이 無補特伽羅하며
了一切法이 無有忿諍하며
觀一切法이 皆從緣起하야 無有住處하며
知一切物이 皆無所依하며
了一切刹이 悉無所住하며
觀一切菩薩行이 亦無處所하며
見一切境界가 悉無所有니라
我法二空智慧德(아법이공지혜덕).
我와 法! 我空 法空이 되겠지요?
아공 법공을 터득한 그런 지혜의 덕이다. 그런 말입니다. 我는 나 자신이고,
法은 나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법이다. ←이렇게 보면 되지요.
그래서 我空ㆍ法空ㆍ俱空까지 이야기를 하는데요.
아공ㆍ법공. 그것만 제대로 되면, 구공은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공ㆍ법공 되고 그 다음에 남은 空이 뭐가 있겠습니까? 자연스럽게 俱空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破二執現三空(파이집현삼공)해서 금강경 大意를 이야기할 때, 我執ㆍ法執. 나에 대한 집착과 현상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고, 我空ㆍ法空ㆍ俱空. 아공ㆍ법공ㆍ구공까지 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一切善根으로
如是廻向時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了一切衆生界가 無有衆生하며,
중생이 있지 아니함을 요달하며,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뭐라고요?
空이다. 이 말입니다.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본래 부처다. 이 말입니다.
두 가지. 그것의 관점이,
그러니까 空觀ㆍ假觀ㆍ中道觀. 그러잖아요.
가관은 우리중생들이 보는 현상을 그대로 보는데 그것은 가짜지요. 잘못 보는 것이지요. 거짓으로 본다 해서 그것을 假觀이라고 그럽니다. 중생이든 현상이든 모두 空으로 보는 것은, 그것은 空觀입니다. 그런데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바로 부처다. 라고 이렇게,
부처인 중생이고 중생인 부처다. 이렇게 보는 것은
中道觀인 것이지요. 그 三觀은 어디나 다 해당이 되는 것
입니다.
중생이 없음을 알며,
解一切法이 無有壽命하며,
일체법이 수명이 없음을 알며,
一切法이
無有作者하며, 짓는 자가 없음을 알며,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들으면 아주 기절할 일이지요.
無有作者! 창조자가 있고 절대자가 있어서 전부 모든 것을 다 주재하는데... 그래서,
제가 전번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그 성경에도 인과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흔한 이야기가
뿌린 대로 거두리라. 성경에 아주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인데요. 그래 버리면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져버립니다.
절대자가 할 일이 없어져요. 절대자가 주재해야 됩니다.
“네는 나쁜 짓해도 나만 믿으면 천당 간다.”←이렇게 되어야 그것이 먹혀들고 장사가 되는데,
“착한 일만 하면 무조건 천당 간다.”←이렇게 돼버리면 그것은 인과 법칙이기 때문에, 인과 법칙이 제대로 소개가 되고, 그것이 전체를 좌우해 버리면 하나님이 할 일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인과를 크게 부각 안 시킵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고 성경에 있어서 간혹 양심 있는 人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부각시키지는 않습니다. 여기 無有作者했잖아요.
悟(오)一切法이 無補特伽羅(무보특가라)하며,
補特伽羅. 自我라고 하는,
자아관념을 여기서는 補特伽羅.
무슨 사람ㆍ중생ㆍ영혼. 그런 표현도 하는데 자아라는
의식입니다. 일체법이 無我다. 이 말입니다.
無我임을 깨달으며,
了一切法이 無有忿諍(무유분쟁)하며,
일체법이 분쟁이 없음을 요달하며, 시비ㆍ갈등이 없다. 이 말입니다. 원효스님이 화엄경공부해서 화쟁 사상을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원효스님의 화쟁 사상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여럿이 있는데요.
그 화쟁은 화엄경의 어디에서 찾는가하면, 아까 제가
화엄경 서두에는,
始成正覺하니, 비로소 정각을 이루니
세상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됐고,
또 깨달음을 이루고 보니까
사람들은 여래의 지혜 덕상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더라. 라고 하는 거기에서 화쟁사상을 말하자면 거기다가 첨부한 겁니다. 왜냐?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입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 가진 지혜와 덕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전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됩니다.
전부 부처님으로 존중하고ㆍ공양ㆍ공경ㆍ찬탄해야 됩니다. 사람ㆍ사람을 전부 부처님으로 이해하고, 자기도 부처님이지만 남도 역시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아서, 서로가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는 그런 입장이 된다면, 분쟁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부처님으로 떠받들고 위하기 바쁜데,
부처님이 뭐 좀 설사 무슨 손해를 끼쳤다손 치더라도,
“아이구 더 가져가십시오. 더 가져가십시오. 이것은 왜 남겨놓고 가십니까? 더 가져가십시오.” ←이렇게 되지, 거기에 무슨 시비ㆍ갈등ㆍ시시비비가 있을 까닭이 없지요.
거기에서 화쟁사상이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 화쟁사상이 완벽한 겁니다. 원효스님은 화엄경을 공부하시고, 화쟁사상을 부각시킨 것은 바로 그 겁니다.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고, 그리고 또 나아가서 천지만물 삼라만상까지도...
山色豈非淸淨身가?
산천초목이 전부 비로자나불인데 어찌 거기에 시시비비가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럼 저절로 화쟁 사상이 거기서 드러나게 돼있다.’
저는 그렇게 정리를 합니다.
無有忿諍하며
觀一切法이 皆從緣起하야 無有住處하며,
이런 이치는 우리가 화엄경을 보다가도 여러 수 10번 만나는 것인데요. 일체법이 다 연기로 쫓아서,
연으로 쫓아서 일어난다. = 無有住處다.
고정된 장소가 없다. 그러한 것을 觀한다. 그렇습니다.
일체현상은요?
일체현상은 일체법성이라 안 했잖아요.
一切法이라고 그랬지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일체현상입니다.
性이라고 하면, 그것은 달라집니다.
그것은 금입니다. 법은 뭐지요? 금相!
금으로 만든 모습. 금덩어리가 됐든지ㆍ불상이 됐든지ㆍ수저가 됐든지ㆍ비녀가 됐든지ㆍ반지가 됐든지 그 겁니다.
그것은 전부
우리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다 인연으로 쫓아서 일어났다.
고정된 주체가 없다. 말입니다.
無有住處. 그것을 관찰한다.
그러니까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은 복을 받는 겁니다.
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중요한 책임을 맡아서 직무유기하면 또 거기에 대한, 당연한 과보가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누가 어떻게 해서가 아니고, 누가 어떻게 안하고 내버려둬도 언젠가 받게 돼있습니다. 언젠가 받게 돼있어요.
그것을 또 억지로 사람들이 그것을 당겨서 받게 하느라고 사실은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지요. 언젠가 받게 돼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거기는 손댈 곳이 안 되는 겁니다. 부처님도 하나님도 손댈 곳이 안 되는데,
감히 누가 거기 대해서 손을 대겠습니까? 그 이치에 손을 대겠냐고요.
一切法이 皆從緣起하야 無有住處라.
이것 우리가 늘 그저 심심하면 이야기하고, 심심하면 이야기하고, 불교말만 꺼냈다하면 전부 그저 인연소치ㆍ인과소치 이야기하는데요. 그것이 정말 가슴깊이 뼈저리게 우리가 마음속에 무장이 돼있지는 못하다 하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知一切物이 皆無所依하며,
어떤 사물이든지 그것은 의지하는 바가 없음을 알며,
그렇지요.
了一切刹이 悉無所住하며,
모든 세계가 다 머무는 바가 없음을 알며,
觀一切菩薩行이 亦無處所하며,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보살행도
“이것이 보살행이다.” 아닙니다. 황벽스님도,
어머니가 우리아들이 아주 출세를 해서 수천 명 대중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서 왔는데,
물도 한 그릇도 안 주고 쫓아냈거든요.
세상에 그런 불효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어머니는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아~! 네가 나에게 그렇게 대하지 아니했더라면
오늘 날 내가 이러한 참 높은 안목을 가질 수 있었
겠는가? 네가 아주 반갑게 맞아들이고, 칙사 대접
하고, 방장스님 어머니가 오셨다고 해서 시봉을
몇씩 딸려줘서, 몇날 며칠 편안하게 쉬다가 돌아가게
했다면 그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 선지식 處事가 어떻겠느냐? 이 겁니다.
카~~~ 기가 막힌 소식 아닙니까?
이 불법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못 만납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어디 가서 듣겠습니까?
불법이치니까 이러한 사실을 읽고,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고 하는 것이지요. 菩薩行이 亦無處所입니다.
고정한 어떤 일이 없습니다. 고정된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것을 관하며,
見一切境界가 悉無所有니라.
일체경계가 다 있는 바가 없음을 보느니라.
我法二空智慧德이라고 하는 내용이 아주 뛰어나네요.
수승하고요. 짧은 몇 줄 안 되는 내용인데 훌륭합니다.
다. 境界淸淨德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眼終不見不淨佛刹하며 亦復不見異相衆生하며
無有少法이 爲智所入하고 亦無少智가
而入於法하며 解如來身이 非如虛空이니
一切功德과 無量妙法의 所圓滿故며
於一切處에 令諸衆生으로 積集善根하야
悉充足故니라.
境界淸淨德(경계청정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眼終(안종)不見不淨佛刹하며,
눈은 마침내 깨끗하지 않은 불찰을 보지 아니해요.
전부가 金剛所成입니다.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여기가 無盡功德藏廻向이지요?
亦復不見異(이)相衆生하며,
다른 모습을 가진 중생을 보지도 아니해요.
無有少法이 爲智所入하고,
어떤 작은 법도 지혜로 들어간 바가 되지 아니함이 없고,
됨이 없고,
亦無少智가, 또한 작은 지혜가
而入於法하며,
(어떤 지혜도)법에 들어감이 없으며,
解如來身이 非如虛空이니,
여래의 몸이 허공과 같지 아니함이니,
중요한 말입니다. 아니함을 아나니,
一切功德과 無量妙法의
所圓滿故며, 원만함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여래의 몸은 허공하고 달라요.
허공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래의 몸은 허공과 같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如來는 一切功德과 無量妙法이 그 안에 가득해요.
그러한 사실을 안다.
그래 富有萬德(부유만덕)그렇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래의 몸은, 진여자성은 부유하기로 하면 만덕을 다 갖췄습니다. 만행만덕이 우리들 참마음 속에, 진여자성 속에 본래 갖추고 있습니다.
六度萬行을 본래 갖추고 있습니다.
布施ㆍ愛語ㆍ利行ㆍ同事. 四攝法(사섭법)이 우리마음 속에 본래 갖추고 있습니다.
慈悲喜捨, 四無量心이 우리들 마음속에 본래 갖추고 있습니다.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갖추고 있는데 개발하지 아니해요.
꺼내지 아니해요. 사장시키고 있습니다.
잠재우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공부를 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본래 갖추고 있는 萬行萬德을 본래 갖추고, 그래 부처님이 여래출현 품에서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더라.
당신은 태자의 출신으로써 그 좋은 직장 다 버리고,
호의호식하는 태자자리 다 버리고, 피나는 6년 고행!
흙 한번 만져보지 아니한 그런 금지옥엽의 신분으로써 피나는 6년 고행. 누구보다도 무서운 고행을 했고, 그래서 드디어 터득한 것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인데,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 저 무지렁이 불가촉천민도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니까 내가 성취한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더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 얼마나 억울해요? ‘나는 그런 희생을 치루고 얻은 것인데, 저 무지렁이 불가촉천민들은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눈 한번 깜빡이지 아니한 채, 그대로 고스란히 나와 같은 다 것을 갖추고 있더라.’ 그래서 거기서 부처님이
야~~ 신기하고 신기하다 = 奇哉奇哉라.
신기하고 신기하다. 라고 표현한 데는 전체 경전을 통해서 거기 한 구절뿐입니다. 사실은 너무 억울하기도 하지요.
자기는 그런 큰 희생을 치렀는데요. 그런데 ‘전혀 그런 희생도 치루지 않고 고행한번 안 한 그 불가촉천민에게도 다 똑같이 있더라.’이런 사실입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 있어서 최고의
큰 사건이다. 왜냐? 모든 중생들을 전부 부처로 승격시켰으니까요. 한 사람의 깨달음을 말미암아서 모두 부처로 승격시켜 놨기 때문에 그보다 큰 사건은 없는 겁니다.
과거에 죽은 모든 사람도, 현재 있는 그 많은 사람도,
미래에 올 그 많은 사람들도 한꺼번에 전부 부처로 승격시켜 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건은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남김없이 이렇게 표현한
화엄경은 인류가 남긴 최대의 걸작이다.
이보다 더 위대한 걸작 품은 없다. 서양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표현 아주 잘하지요.
동양에서는 이렇게 표현 못했어요. 서양 사람들이 화엄경공부하고 나서 비로소 그런 표현을 한 것이지요.
無量妙法이 다 원만한 바다. 다 갖춰져 있다.
그래서
於一切處에, 일체에서
令諸衆生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積集(적집)善根하야, 선근을 쌓고 쌓아서
悉充足故(실충족고)니라.
모두모두 충족하게 하는 연고니라.
境界가 淸淨한 德이라는 대목도 참 좋은 내용이네요.
라. 福智無盡德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念念中에
得不可說不可說十力地하야 具足一切福德하며
成就淸淨善根하야 爲一切衆生福田하나니
此菩薩摩訶薩이 成就如意摩尼功德藏하야
隨有所須하야 一切樂具를 悉皆得故며
隨所遊方하야 悉能嚴淨一切國土하고
隨所行處하야 令不可說不可說衆生으로
皆悉淸淨하야 攝取福德하야 修治諸行故니라
福智無盡德(복지무진덕).
복과 지혜가 다함이 없는 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念念中에
得不可說不可說十力地하야,
不可說不可說十力地를 얻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十力地. 부처님의 지위지요.
부처님의 지위를 十力地라고 합니다.
具足一切福德하며, 일체복덕을 구족하며,
成就淸淨善根하야, 청정선근을 성취해서,
爲一切衆生福田하나니,
일체중생의 복전이 되나니,
이것 다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다 갖추고 있어요.
일체복덕도 갖추고 있고, 청정선근도 다 갖추고 있습니다. 十力도 다 갖추고 있고, 육바라밀, 사섭법, 사무량심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人是福田입니다.
사람이 복전입니다. 복전 함이 복전이 아니고, 사람이 복전입니다. 사람이 복전이라고요. 저기 입법계품에 가면
人是福田이라고 딱 나옵니다. 사람이 복전이다.
아~~ 좋은 말이지요. 사람이 복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미꾸라지 방생하는 것을,
“아이고 사람 방생을 해야지...” 좀 배웠다고,
“사람 방생을 해야지 뭐 미꾸라지 방생하느냐?”고 그러는데, 미꾸라지 방생도 좋은 방생입니다.
물론 사람 방생이 미꾸라지 방생보다는 우선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수준이 되기까지는 열심히 미꾸라지라도 방생해야 됩니다. 그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佛事門中(불사문중)에는
不捨一法(불사일법)이라.
佛事門中에는 不捨一法. 한 법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一切衆生이 福田이 된다.
此菩薩摩訶薩이
成就如意摩尼功德藏(성취여의마니공덕장)하야,
마음대로 되는 마니공덕장을 성취해서,
隨有所須(수유소수)하야,
隨求하는 바가 있음을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一切樂具를, 즐길 거리,
요즘 TV광고를 보다 보니, 요즘 즐길 거리가 아주 많다 그래요. 사실 인생을 좀 긍정적으로 보면 전부가 즐길 거리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전부가 즐길 거리입니다.
여기 수준 높은 화엄행자들은 전부 화엄경이 즐길 거리이고, 그 외에 또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익힌 대로, 익힌 업대로 전부 다 즐기고 있는 겁니다. 여행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고, 집에 있는 것도 즐기는 일이고, TV보는 것도 즐기는 일이고, 낮잠 자는 것도 즐기는 일이고, 일체가 즐기는 일뿐입니다. 그렇게 해석하고 보니까 다 그렇더라고요.
그래 각자 업 따라서 즐기는 소재가 다를 뿐이지요.
一切樂具를
悉皆得故며, 다 얻는 연고며,
隨所遊方(수소유방)하야,
돌아다니는 바의 곳을 따라서,
悉能嚴淨一切國土하고,
일체국토를 다 능히 청정하게 장엄하고,
隨所行處하야, 행할 바곳을 따라서,
令不可說不可說衆生으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많고 많은 중생으로 하여금,
皆悉淸淨하야,
아주 훌륭하고 멋지게 만든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攝取福德(섭취복덕)하야
修治諸行故니라.
모든 행을 잘 닦아서 다스리는 연고니라.
마. 福智超勝德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修一切菩薩行하야 福德殊勝하고 色相無比하며
威力光明이 超諸世間하야 魔及魔民이
莫能瞻對하며 善根具足하고 大願成就하며
其心彌廣하야 等一切智하야 於一念中에
悉能周遍無量佛刹하며
智力無量하야 了達一切諸佛境界하며
於一切佛에 得深信解하야 住無邊智하며
菩提心力이 廣大如法界하고 究竟如虛空이니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의
第五無盡功德藏廻向이니라
福智超勝德(복지초승덕)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修一切菩薩行하야, 일체보살행을 닦아서,
福德이 殊勝하고 色相이 無比하며,
잘생기고 그렇다. 이것이지요. 無比하며,
威力(위력)光明이 超(초)諸世間하야,
威力과 光明이 모든 세간을 다 뛰어넘어서,
魔及魔民(마급마민)이 莫能瞻對(막능첨대)하며,
마군과 마군의 권속들이 능히 볼 수가 없게,
상대해 볼 수가 없게 된다. 이 말입니다.
참~~ 이 僧服(승복)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면, 제가 아주 어릴 때 20대 중반쯤 됐을 겁니다.
제주도 원명사에, 그때 한참 한 달에 두 번씩 탁발하면서
수행한다고 그렇게 살 때인데요. 그때 젊은 스님들이 몇이서(다섯인가?) 그렇게 됐어요.
“우리 모처럼 영화관에 한번 가자.”그랬어요.
“영화 보러 한번가자.”그때 무슨 영화인가 하면,
20대 중반이니까 얼마나 오래됐습니까?
추풍령? 이라고 하는 영화 있지요?
그것을 보러 갔어요. 영화가 아주 수준도 있고 괜찮은
영화에요. 그런데 제주시내에 갔는데, 어떤 술주정뱅이들이 잔뜩 술에 취해서 막 비틀거리면서 고함고함 지르면서 저쪽에서 걸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고 어떻게 패해야 되나?’하고... 한 두 사람도 아니에요. 몇이 되더라고요. 오후가 돼서 거나하게 취해가지고 막 그냥 고래고래 고함을 치면서 오는데요.
할 수 없이 머뭇머뭇 하고 있는데 우리한테까지 왔어요.
그러더니 척 보니까 스님들이거든요.
“아이구스님들입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슬슬 기면서 피해서 도망가더라고요.
하~~ 제가 그것 못 잊습니다. 우리가 뭐라고요?
속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나 저나 똑 같습니다.
그런데 僧服 보고요. 머리 깎은 모습, 僧服하나 보고
“아이고스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이 僧服만 대해도 설설 기면서 그렇게 가는 것을 잊지를 못합니다.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서 어쩐다고, ㅎㅎㅎㅎㅎㅎ
요즘 그런 사람들 많지요.
결국은 내용은 그런 정도지만, 참~~ 하여튼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하는 것이 무시 못 합니다.
절대 우리, 부처님의 위신력 믿어야 됩니다.
그것이 다 부처님의 위신력입니다.
威力光明이 超諸世間해서
魔와 魔民들이 莫能瞻對,
쳐다보지를 못한다. 이 말입니다.
술주정뱅이가 못 쳐다본다. 이 겁니다.
그냥 길거리에서 갈지자로 걸으면서 고래고래 고함치던 사람도 僧服만 보고도 슬슬 피해서 도망간다. 이 겁니다.
善根이 具足하고 大願이 成就하며
其心彌廣(미광)하야, 그 마음이 더욱 넓어져서,
等一切智하야, 일체지와 평등하게해서,
於一念中에, 한 생각 가운데,
悉能周遍(주변)無量佛刹하며,
한량없는 佛刹에 가득해요. 周遍해서,
智力無量하야, 지혜의 힘이 한량이 없어서,
了達一切諸佛境界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환히 통달하고 있어요.
於一切佛에
得深信解(득심신해)하야,
깊은 믿음과 이해를 얻어요.
아~~ 이것 중요하지요. 一切佛에 = 모든 부처님께,
그것이 불상이 됐든지,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됐든지,
아니면 법신불이 됐든지,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 해서 모든 중생을 부처님이라고 보든지, 得深信解! 깊은 믿음과 이해를 내서,
住無邊智하며, 無邊智에 머물며,
菩提心力이, 보리의 힘이
廣大如法界하고, 광대하여 법계와 같고,
究竟에 如虛空이니, 끝내는 허공과 같으니,
그런 것이 화엄경에서 이렇게,
우리가 처음에 화엄경을 대하면요?
이것이 ‘무슨 소린가?’싶고, 우리하고 너무 거리가 멀고,
아득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은 전부 우리들 속에 이미 내재 돼 있는 경계입니다.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인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 알고 보면 우리내면에 이미 갖춰져 있는 경계입니다.
그것이 우리는 아직 지혜가 부족해서 확인을 못할 뿐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을 못했을 뿐입니다.
佛子야
是名, 이것이
菩薩摩訶薩의 第五無盡功德藏廻向이니라.
아~~ 근사하네요.
無盡功德藏 = 다함이 없는 공덕 창고!
다함이 없는 공덕 창고 회향이니라. 그랬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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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是福田이라고 딱 나옵니다. 사람이 복전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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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은 현상이고 性은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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