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결혼 해!
최 양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든지 선택은 책임을 동반한다. 그 선택 중 제일은 배우자의 선택이다. 선남선녀의 배우자 만남은 그 집안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큰일이다. 남동생 딸 그러니까 내게 진정집 조카의 혼기를 앞두고 우리 형제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올케는 어렵사리 딸과 맞선을 본 총각이 맘에 들었단다. 사회적 지위나 여러모로 안정적이라 적극적으로 계속 만나라고 권했단다. 그러나 조카는 대뜸 토라지면서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결혼 해!’ 라고 말했단다. 딸의 말에 몹시 당황하고 화가 났다. 자녀 소개팅은 조심스럽고 신경이 많이 쓰인다. 엄마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자신 입장만 생각하고 냉정하게 거절한 답변이 날카로우니 말이다.
조카는 이목구비가 예쁘다. ‘부모님이 얼마나 예쁠까’ 유치원 선생님도 인정 했다. 자신의 외모를 믿는 것일까! 소개하는 총각마다 뒤돌아 볼 여지도 없이 싫다고 한다. 동생네는 딸이 걱정이다. 조카는 대학 졸업 후 직장과 학업을 계속하며 역량을 키우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동생은 딸이 점점 콧대가 올라 결혼하기가 점점 어렵다고 한숨짓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배우자 선택 폭이 좁아져 걱정이 태산이다. 어느덧 서른을 넘었다. 은근히 마음 한편에 근심이 자리 잡았다.
그랬었는데 지난 가을 동생이 나에게 큰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딸이 직장 동료가 소개 한 남자를 가끔 만난다고 한다. 역시 결혼 적령기 짝 소개는 어른들보다 눈높이를 아는 친구나 또래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그들의 만남이 잘되기를 바랐다.
드디어 새해맞이 해돋이를 감상하는 날 결혼소식이 당도했다. 모든 염려가 싹 사라지고 기쁨이 몰려온다. 조카 심장에 사랑의 화살을 쏜 남자가 궁금하다. 모바일 청첩장을 넘기며 계속 본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사랑이 꽂혔다. 정말 잘 어울린다. 꿈만 같았던 짝 찾기가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을 동생네와 조카를 위로하며 축복한다. 형제들이 덕담으로 하는 말도 받아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조카는 최근 가족모임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모두가 고대 하던 축하 날이 다가온다.
결혼식 날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피곤함은 조금도 없다. 기다리던 결혼식이 마냥 기쁘다. 아름답게 단장하고 찰떡궁합 신랑과 행진할 그녀를 상상하니 미소만 번진다. 차창 밖 들녘에는 듬성듬성 하얀 볏짚묶음이 정겹다. 철새들이 추수 이삭 먹이를 찾아 줄지어 창공을 훨훨 비행한다. 새들은 짝짓기가 사람보다 수월하겠지. 단기간 스스로 노력하여 짝을 찾아 번식한다. 동식물도 나름대로 짝짓기에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논밭 식물은 자연환경에 의존한다. 사람 짝 찾기는 오랜 시간 성장과 수많은 미로를 통과하고 눈에 불이 붙어 안경이 맞아야 한다. 이젠 조카 말이 머리에 맴돌아도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눈 덮인 산야를 보며 따뜻한 차를 마시니 온몸이 사르르 눈이 감긴다.
예식장에 도착하니 동생부부도 화사한 차림에 얼굴이 웃음꽃이다. 조카는 노란 부케와 다양한 보석이 빛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친구들로 싸여 있다. 행복이 넘치는 얼굴이다. 활짝 웃는 조카 얼굴을 마주하니 기쁨을 주체 할 수 없다.
“고모님 멀리서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인사말을 들으며 신부의 우아한 모습에 눈이 부시다. 곁에 앉아 기념사진을 남기며 화목한 가정을 기도한다.
예식 종이 울린다. 사회자는 맑은 소리로 단상에 오른 두 어머니에게 덕담을 한다.
“마음에 준비가 되시면 자녀들 앞날에 밝은 길을 비추듯 촛불을 점화 해 주세요.”
불을 밝히는 짧은 순간에도 생각의 여유와 준비가 필요한가! 예식 도우미 도움으로 실수 할 것도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결혼식에 정성을 다해 불을 붙여 달라는 인사이다. 서둘지 않고 편안하게 점화하면 된다. 허겁지겁 불을 붙이면 실수로 장식품을 태우거나 좋지 않는 일이 일어 날 수도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매사에 기도하며 정성을 다하는 준비된 마음은 필요하다. 밝은 불이 비취자 신랑이 입장한다.
고대하던 신랑이 주단 앞에 나타났다. 조카가 사랑해 선택한 낭군을 찬찬히 살펴본다. 하얀 피부에 미소 띤 얼굴이 온화하고 복스럽다. 아주 잘 생긴 얼굴이다. 조카는 그동안 주단에 서 있는 자기 짝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 자신을 연마했다.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했다. 싱가포르로 어학연수도 몇 년간 다녀왔다. 대학원을 진학하여 전문성도 갖추었다. 마침내 그녀가 소원한 퇴직이 없는 직장을 서울에서 찾았다.
그 동안 조카가 결혼에 무관심한 듯 보여 어른들은 조바심이 났다. 좀 더 기다려 주고 이해해 줬어야 했다. 조카는 어른들의 말에 대응하느라 속이 까맣게 탔을 것이다.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결혼 해!’ 조카가 좋은 짝을 찾기 위해 때를 기다리느라 한 말을 두고 그녀를 철없다고 생각 했던 것이 미안했다. 드디어 자신을 준비하며 기다린 신랑을 만나는 결실이 맺힌다. 신랑은 발걸음을 뗄까 말까하는 몸짓을 한다. 그 모습에 하객의 폭소가 터진다. 신랑은 여유와 유머가 있다. 두 걸음씩 걸으며 하객을 향해 좌우 인사를 깍듯이 한다. 이젠 그녀의 입장 순서이다.
여왕처럼 빛나는 왕관을 쓰고 우아하게 입장한다. 긴 면사포는 땀과 열정으로 인내한 신부의 열매에 환호하듯 유유히 주단 위를 매끄럽게 따라간다. 딸의 성장을 지켜온 동생은 순백의 딸을 사위 손에 건넨다.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자신의 눈동자 같이 사랑한 딸이다. 신랑신부는 나란히 결혼 서약서를 읽고, 결혼반지를 번갈아 끼우며 그들은 결혼식을 즐긴다. 두 선남선녀는 한 쌍의 원앙이 되었다. 알콩달콩 잘 살기를 기도한다.
조카 결혼식을 통해 앞으로 삶의 여정에 더욱 준비와 노력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향해 나아가야겠다.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결혼 해!’하던 조카였다. 그 조카가 결혼식에 자기가 선택한 신랑과 함께 행복하게 짓는 미소가 나를 기쁘게 한다. 고개를 돌려 짝을 찾아 주기 위해 그렇게도 애태우던 동생 내외를 살며시 바라본다. 그들의 모습도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아들딸이 짝을 찾는 동안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급하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을 따뜻하게 기다리며 응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