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권루카스 수녀님 작)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복 음 : 루카 1,39-56
삶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많은 만남이 성사가 되지 못하고 그저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계모임이나 친목회가 되거나 또는 동호회가 되거나 심지어
다른 삶을 험담하는 모임이 되는 것은 비록
악령에 이끌리지 않더라도 성령에 이끌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성사란 하느님이 그 일 안에 있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발생하는 것이니 모든 성사적 만남도 그런 것 입니다.
오늘 복음에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여인의 만남은 ‘믿음’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기들 안에서 이루신 일들, 곧 은총을 같이 확인하고, 함께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이런 뜻에서 우리의 만남중에 이런 성사적인 만남들은 얼마나 되고 그저 그런 만남은 어떤 만남인지 또 어떤 만남은 성사적인 만남이고, 어떤 만남은 죄악이 발생하는 만남인지를
돌아보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누군가를 만난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충만하고 행복한 상태가 되는 것. 만남 만으로도 하느님을 찬미하게 만드는 사람. 우리의 만남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놓고 과연 이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지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떠한 일을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 지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신앙은 내가 확인했을 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록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도 하느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일 때 하느님의 섭리가 이루어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받아들였듯이 우리에게는 신앙의 동반자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이웃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같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즉 동반자가 필요하지요.
믿음의 동반자는 아주 중요합니다. 좋은 동반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처럼 서로간에 신앙을 상승시켜줍니다.
중요한 것은 친구도 잘못 사귀면 같이 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신자와 어울려 놀러 다니며 가정이 있는 신자분들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같이 망하는 지름길이지요.
친구도 만나지 말아야 될 친구가 있고 만나야 할 친구가 있습니다.
나쁜 사람과 만나면 나쁜 짓을 하게 되어 있지요. 좋은 사람과 만나면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동반자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서로 행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신앙은 서로 상승 작용이 되지요. 신앙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적인 효력은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지요. 혼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는 꼭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서로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했지요.
신앙 생활은 혼자 해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소승불교에서는 깊은 암자에 들어가서 혼자 깨우치는 시간을 중요시 합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앙은 공동체가 함께 나아가는 것을 지향하지요.
반 모임에도 나가고 단체 활동도 해야 합니다. 서로 보완해 줄 수 있는 신앙의 친구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위례 성모승천 성당 홈페이지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