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고회와 막소(막걸리+소주) / 구로시장내 횟집, 2010 여름
1980년대, 서울의 서북쪽 변두리 동네인 남가좌동, 그 중에서도 (교외선)가좌역의 건너편에 있었던 은좌극장을 기억하십니까?
은좌극장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인물들의 가슴 속에 묻힌 유물(?)이 된지 오래지만 그 옆에 있던 모래내시장은 여전합니다.
오늘은 갑판장이 기억하고 있는 1980년대 모래내시장 먹자골목의 아나고회집에 대해 몇 자 설을 풀어 보겠습니다.
1980년대의 갑판장은 주머니 사정이 몹시 곤궁하였습니다.
1980년대의 대부분을 돈벌이하고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입시준비생, 대학생, 군인 등의 극빈한 신분으로 지내며 부모님 슬하에 얹혀 살았으니 말입니다.
사정이 그러하였으니 갑판장의 술상이 풍족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순댓국, 닭내장탕, 감자탕, 닭발, 꼼장어 따위를 아예 성찬으로 여기며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새우깡을 안주삼아 공원 벤치에서 소줏잔을 홀짝이는 것만도 감지덕지였으니 말입니다.
어쩌다 몫돈이라도 생겨 동네 횟집에서 역돔이라도 먹게 되는 날이면 몇 번씩 상을 바꿔가며 나오는 곁음식에 두 눈이 홀려서 마치 그 곳이 주지육림인양 꽤나 시끌벅적해지곤 했습니다.
이제사 고백을 합니다만 당시의 갑판장은 민물고기인 역돔을 바닷고기인 도미의 일종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하기사 지금도 수산시장이나 바닷가 포구에 가면 잡어 몇 마리가 담긴 바구니에 커다란 역돔(또는 비교적 가격이 헐한 숭어 따위) 한 마리를 얹으며 크게 인심을 쓰는 척 수작을 부리는 장사치를 볼 수 있습니다.
주머니는 늘 곤궁하면서도 날 것을 유난히 선호하던 20대의 갑판장에게 모래내시장의 먹자골목은 언제나 술맛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커다란 도마에 송곳같이 뽀족한 못을 박아두곤 늘 분주하게 아나고회를 썰어내던 아나고횟집이 몇 집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일행의 눈총을 의식해서 잘게 썰은 아나고회 두어 점을 젓가락 끝에 살짝 걸치고는 초장을 듬뿍 찍어 먹었지만 어느덧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 되면 서로 경쟁이 붙은 듯 손바닥에 넓게 펼친 상추 위로 아나고회와 마늘, 고추, 초장을 듬뿍 올리고는 크게 쌈을 싸서 한 입에 털어 놓고는 하였었습니다.
어즈버 40대 중반이 된 갑판장은 20~30년전 보다는 이런저런 사정이 나아져서 웬만한 안줏거리 쯤은 가격에 크게 관여하지를 않습니다.
헌데 희안하게도 자꾸 곤궁했던 그 시절에 머리를 맞대가며 먹던 맛이 그립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보다는 '누구와 어떻게'를 더 중하게 생각하는 갑판장입니다.
첫댓글 나도 얼마전 재래시장 언저리에서 아나고회를 먹어주었다지...
아나고회는 서울에서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먹기 힘들더만요. 어쩌다 횟집에서 곁음식으로 주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가 않으니...
부산에서 먹었던 아나고회가 생각나구만요.
마늘과 청량고추, 쌈장 듬뿍 넣은 아나고 쌈이 먹고잡습니다.
한강시민공원에 돋자리를 깔고 앉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아나고회를 마구 퍼먹고 싶은 1인입니다. ^^
아나고를 세꼬시가 아니라 포를 떠서 사시미로 해주는 집이 신천에 있어서 다니는데 그 맛이 아주 좋더군요 다시 글을 쓰시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