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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0일
말씀: 디도서 2:11-14
제목: 교회의 역할
저희교회가 이제 17년이나 되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개척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17년이나 되었습니다. 저는 17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다리 쭉 뻗고 며칠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루도 편하게 쉬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최선을 다 했다고도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제가 17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것은 계획된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고 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까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어가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름대로 성경적인 교회 상을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성경적인 교회 상을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변화’입니다. 내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이웃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국가가변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교회로서 성장하며 그 방향성을 향해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저희 교회 사명이며 책임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추구하기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교회가 구원을 이루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구원은 교회가 존립해야할 목적이요, 사명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지상명령에 얼마나 반응하며 순종하느냐하는 것은 교회의 몫입니다. 지금 저희교회가 구원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저희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도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증거가 생명구원에서 찾아야 된다는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왜냐하면 빛을 밝히면 그 빛을 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광주에서 새밭교회 강상원목사님을 중심으로 해서 사랑의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훈련된 100명의 목사님들이 각 지역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 10명을 선정해서 반찬을 갖다 주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찬을 주면서 절대로 교회에서 나왔다느니, 교회목사라느니 이런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사회적분위기가 그리스도인들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강구한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나중에 묻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알게 되어있습니다. 빛을 던지면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결과물일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복음전하기가 힘들고 구원의 역사가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문제가 우리가 잘 못살아서 그렇다는 자각인식을 하셔야합니다.
물론 잘 살기가 그러니까 빛으로의 삶을 살기가 참 힘듭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빛으로 인식하는 기준이 자기들의 이기심이나 이기주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10번 잘하다가 1번 못하면 ‘예수믿는 것들이...’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믿는 것들은 언제나 손해보고 이해해야 되고 사랑해야 되지만 저희들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식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저희들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것들이 왜 저래’그러면 ‘너희들은 왜 그래’이렇게 맞대응할 수 없는 위치가 우리의 신분이요 위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으로의 삶이 성경의 기준에서 행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말씀에서 기준을 삼아야 된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선한 삶을 살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하지 못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욕심을 따라 삶을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기에 만족을 시킬 수없습니다. 또 그렇게 만족시켜서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기준이 세상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반드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야합니다. 구원이 공짜니까 실감을 못하시는 모양인데 그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공짜요 은혜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실감하면 이것만큼 기쁘고 감격스러운 사건은 없습니다. 교회와 주님과 연합되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이며 얼마나 엄청난 사건 속에 내가 횡재한 것인가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기쁨은 더 이상 나만 알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이 사실을 나눔으로서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디도서 2:11-14절까지 말씀은 구원, 양육, 선한 일 이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차원에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애굽사건도 구원, 양육, 선한 일의 차원에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런 맥략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모범된 형태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두 번째 양육입니다. 교회는 양육이 되어야합니다. 변화를 받아야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성장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어린아이로 출발을 합니다. 늘 어린아이로 있다는 것이 참 불행한 일이지만 출발은 어린아이로 출발을 하는 것이지요. 에베소서 4:14절 말씀을 보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니라’곧 우리가 어린아이로 출발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 중의 하나는 14절에 있는 것과 같이 ‘요동 한다’고 했습니다. 요동한다는 것은 사람이 일관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늘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어린아이들이 왜 흔들리느냐하면 자제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제력이 왜 없는지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인생을 아직 들 살아봐서 그렇습니다. 어린이만화를 주로 보면 특징 중의 하나가 ‘죽는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친다는 것도 무엇인지 모릅니다. 뜨거운 다리미에 손을 대고 전기코드를 마음대로 하고 놉니다. 어린이 만화영화를 보면 웃깁니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도 안 죽습니다. 폭탄을 안고 있다가 터져도 안 죽습니다. 까맣게 그을려 있을 뿐입니다. 허공에 떠 있어도 안 떨어집니다. 그대로 서 있다가 자기가 허공에 떠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떨어집니다. 물론 안 죽습니다. 가고 싶은 대로 날아다니는데 항상 직선거리입니다. 내려갔다 올라 갔다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여러분들도 영적으로 잘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신앙생활도 이런 것인 줄 압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도 없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은 금방 소유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연단과 어려움을 통한 메시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요술램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기도하면 주신다고 했잖아요? 아! 21일 작정 기도하라고요, 그런데 왜 안 주십니까?’ 아주 쉽게 생각을 합니다. ‘믿으라, 그래서 저 믿었잖아요, 정말 믿었는데 왜 안 이루어져요?’자녀를 키우는 사람은 이런 비슷한 일을 당해 보셨을 것입니다. ‘엄마가 100점 맞으면 모든 것 다 해 준다고 했지!’‘그래 뭐 해 줄까?’‘나 내일부터 학교 안 갈레’그러면 여러분들은 뭐라고 합니까? 애는 안 들어준다고 ‘엄마는 거짓말쟁이야’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참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어린 모습을 보입니다. 다시 한번 14절을 봅시다.‘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요 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요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잘 속아서 그렇습니다. 속는 가장 큰 이유는 판단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판단의 기준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고 그리스도안에서 몸담고 있고 최후의 삶이 천국이라는 것을 알면서 우리의 운명을 맡긴 것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양육하는 곳입니다. 말씀을 먹는 곳이고 자라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연단 받고 훈련 받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있어야하는 곳입니다. 양육되는 곳이 교회라면 양육되어 어른으로서 신앙적 삶을 살아가는 심령들이 생기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한다는 말입니다. 만일 교회가 전부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다면 교회로서 재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균형과 조화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금요심야예배 때 말씀드렸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목표로 해서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에서 출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광야에서의 삶이 바로 과정입니다. 양육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과정이 40년 걸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도도 즉, 모세와 아론 이외는 대부분 어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이 12명이 각 지파 족장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이란 말이지요. 이들이 가나안을 둘러보고 백성들에게 보고한 내용이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가서 확인해 본 바 그 땅은 기름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절대로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기는 네피림족속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다’하는 내용을 보고함으로 인해 백성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어른의 신앙적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각 지파가 혼돈과 좌절 속에 균형을 잃어버리고 원망과 불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가 어른의 신앙적 모습을 가지고 성도들을 인도한다는 것은 교회의 갈등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목적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있는 교회는 무섭습니다. 큰 교회들, 오래된 교회들을 보면 그런 인내의 신자들, 산전수전 다 겪으신 말없이 웃고 계시며 말없이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꼭 있음을 발견합니다. 개척교회는 개척교회답습니다. 어떻게 보면 많이 흔들리고 많이 보살펴야합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이 있기에 그런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어버이의 사랑으로 이끌고 받아주고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함께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균형과 질서가 잡혀가는 것입니다. 가정에 어른이 없으면 질서가 사라집니다. 균형이 깨어집니다. 교회가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어른도 있어서 함께하는 균형 잡힌 교회가 됨으로 이제 심고 거두는 일에 헌신하고 주의 복된 사명을 감당하는 귀한 심령들로 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여정에 대해서 조그만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을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광야의 생활이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목적지입니다. 광야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었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뽑아 먹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광야의 삶이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혔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시며 얼마나 이스라엘백성들을 사랑하시며 약속을 분명히 지키시는 분이신가를 알게 하신 것은, 그들을 성장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성장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장이고 믿음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광야는 성장하는 과정이요 양육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40년 걸린 것은 40년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성장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들이 애굽을 떠나서 광야를 거처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출애굽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에서 저들이 뿌리고 거둘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해 오는 것이 꿈이란 말입니다. 뿌릴 수 있는 곳이며 거둘 수 있는 곳이 가나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양육되고 성장되어서 뿌리고 거두는 삶을 지금 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천국의 것을 뿌리고 거둘 수 있는 삶을 결국 살아야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에서 말씀처럼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믿음으로 양육 받아 이런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치 있게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우리는 알면서도 늘 자기 욕심과 이기심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원래 밥상을 차리는 사람과 차려 놓은 밥상에 그냥 와서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있으면 먹는 사람도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차려놓은 밥상을 기쁨으로 대하는 것보다도 수고스럽지만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차려놓은 밥상을 대하는 사람은 기쁨과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동이나 보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밥상을 차리는 사람은 그 차린 것으로 인해 감동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런 삶이 우리에게 참 중요합니다.
몇 주 전 토요일에 저희 교회 이항주집사님이 노래를 부르면서 교회에 오셨습니다. 왜 왔는지 보니까 모처럼 이항주집사님이 쉬게 되는 날이라 아이들과 함께 본당 청소를 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이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설득을 해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적은 보람이요, 감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관이 보람과 감동 이어야합니다.
가수 김장훈을 아십니까? 그의 어머니는 김성애목사입니다. 이 분은 청소년사역자로 잘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일생을 청소년 사역에 몸을 바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김장훈씨가 몇 억대의 재산을 또 기부를 했답니다. 출연료로 받은 억대 부동산을 12년째 후원하고 있는 보육시설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는데 이번에 이런 부동산을 기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지난 6월에 ‘서해안 페스티벌’에서 공연 도중 쓰러진 이후에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거나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2년 째 도움을 주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지원이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부동산 기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김장훈씨가 잘 못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런 삶이 보람과 감동의 삶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감동과 보람이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무엇인가 얻어갈 것이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인가 얻을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왜 이렇게 성도들이 힘을 잃고 살아가느냐하면 결국은 성장하지 못했고 어른의 위치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봅니다. 교회마다 어른은 없고 어린 아이들만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양육프로그램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맡겨놓은 삶을 살지 않고 내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번 주에 말씀 드렸지만 달란트비유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주인이 맡겨 놓은 것으로 살지 않고 자기의 것으로 살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자들이 과정을 거쳐, 양육되어, 다시 말씀드리면 성장해서 결국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선한 삶을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이웃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하시키는 계획을 어제 청년회 때 잠깐 말씀을 드렸고 금요심야예배를 통해 가끔씩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그려 놓고 한걸음씩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저희교회가 개척한지 17년이 되었습니다. 저희교회가 나가야할 방향성이 먼저 교회가 구원을 이루는 일에 대한 감격과 은혜를 깨달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명교회를 통해 일하고 계심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양육입니다. 교회에서 양식을, 생수를 공급받아 성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교회는 어른이 있어야합니다. 영적인 어른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선한 일을 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왜 성장해야하느냐 하면 이 선한 일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과 진리대로 그 나라를 위해 심어나가며 그 나라의 것을 쌓아가며 그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목적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른들이 믿음의 본을 보이며, 예배의 본을 보이며, 선한 일에 본을 보인다면 협력하여 선한 일에 선을 이루어가는 복된 교회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먼저 목회자가 자녀를 품듯이 품으면서 목회를 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교회가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추진력은 기도입니다. 저희교회가 구원과 양육과 선한 일을 위해서 기도로 세워나가며 기도로 힘을 받으며 기도로 비전이 꺼지지 않으며 기도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나가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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