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의 연주와 지식의 방주
4월 6일, 루이스 바라간의 마지막 숨결 ‘카사 힐라르디(CasaGilardi)’
아침의 시작은 현대 건축의 거장 루이스 바라간의 마지막 걸작, 카사 힐라르디였다.
밖에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주택이었으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펼쳐
졌다.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 집주인의 아들이 들려주는 세밀한 설명은
언어의 장벽에 막혀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공간이 내뿜는 아우라만으로도 그가 의도한 빛의
연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라간은 빛을 건축의 재료로 사용한 마술사였다. 그는 창을단순히 밖을 내다보는 용도로 쓰지 않았다.
빛을 벽에 부딪게하여 공간 전체에 색의 에너지를 퍼뜨리거나,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그가 만든 공간 안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느꼈다.
거실을 지나 복도 끝에서 마주한 실내 수영장, 그리고 벽을타고 흐르는 강렬한 핑크와 블루의 대비는
왜 이 집이 그의 마지막 불꽃인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벽에 부딪힌 빛이 산산이 조각나고,
다시 색으로 피어오르는 그 찬란한 광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그는 공간에 침묵과 평화,그리고 영혼의 안식을 새겨 넣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 바라간은 현대 건축의 흐름 속에서도 독보적인 길을걸었던 인물이다.
그는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안식처를 만드는 일로 여겼다.
그는 기계적이고 차가운 현대 건축에 반대하며,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건축을 지향했다.
그에게 건축은 기도와 같은것이었다. 벽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침묵의 도구였고, 그
벽을 채우는 강렬한 원색은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과 전통에서 길어 올린 기쁨의 표현이었다.
- 그의 마지막 불꽃, 카사 힐라르디(Casa Gilardi)
우리가 방문한 카사 힐라르디(1975년부터 1977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바라간이 70대의 나이에 완성한 그
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이미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불
구하고, 이 부지에 있던 거대한 자카란다 나무에 반해 설계를수락했기 때문이다.
바라간은 건물주의 부탁으로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자카란타는 베지 않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집을 지었다.
봄이면 보랏빛 꽃을 피우는 이 나무와 핑크빛 벽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거실 끝 복도를 지나 만나는 수영장은 이 집에서 눈길을 끄는 곳이었다.
강렬한 레드와 블루의 기둥이 물 위에 그림자를드리우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이 물결과 만나는 모습은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 집을 통해 자신이 평생 추구했던 빛, 색채, 물, 그리고 자연이라는 요소들을 완벽하게 결합했다.
그의 예술적 감각은 가장 정점에 달해 있음을 이 집은 증명하고 있었다.
자연을 이해하는 깊은 시선과 공간을 다루는 섬세함으로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번 여행에 왕복으로 이용했던 멕시코항공(Aero Mexico)의 기내 안전 교육 영상에도 등장할 만큼 멕시코
의 자랑인 건축물이다.
오후에는 색채의 바다를 지나 활기 넘치는 ‘라 시우다델라공예품시장’에 갔다. 1968년 올림픽을 계기로
멕시코 전역의 수공예품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는 이 유서 깊은 시장은 그야말로 색채의 향연이었다.
은제품을 사려 했던 나의 계획은 아쉬운 디자인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야 했지만, 안나는 주홍색
면과 린넨이 섞인 고운 옷 한 벌을 찾아냈다. 옷깃에 정성스레수놓아진 핸들 자수를 보니 안나의
안목이 빛나는 듯해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이어 멕시코의 지성, 호세 바스콘셀로스의 이름을 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멕시코 사람들은 참으로 다정했다. 우리가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 먼저 다가와
무료로 탈 수 있게 배려해주던 친절, 버스에서 내린 뒤에도 창밖으로 우리가 잘 가는지 끝까지 지켜보
며 환한 미소와 함께 손짓을 보냈던 그 모습에서 여행자의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다.
도서관으로 가기 전, 벽화 거리를 보기 위해 두 정거장 전에 내렸다. 그 거리는 도시의 오래된 숨
결과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이 벽마다 피어났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지식의 해일에 휩쓸리는 듯한 압도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유리와 강철의 서가들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같았
고, 중앙에 유영하는 고래 뼈 작품은 지식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선박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회색 고래의 뼈 위에 연필로 촘촘히 그려진 동심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곳이 단순히 책을 쌓아둔
창고가 아니라 지식의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선박임을 직감했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멕시코의 철학자이자 교육의 선구자였던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그는 “책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믿으며 멕시코의
문맹 퇴치와 교육 혁명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의 신념대로, 이 도서관은 누구나 평등하게 지혜를 나눌 수 있는 공공의 성소였다. 빽빽하게 꽂힌
수십만 권의 책들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내가 짐 가방 깊숙이 넣
어온 호기심이 이 거대한 방주를 만나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책이 이토록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대접받는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위로를 받았다. 이곳은 내게 지식을 쌓는 법이 아니라, 영원을 저장하는법을 가르쳐준
눈부신 우주였다.
- 기예르모 토바르 데 테라사 박물관(Museo Casa GuillermoTovar de Teresa)
오늘의 마지막 여정은 ‘기예르모 토바르 데 테라사 박물관’이었다 기예르모의 저택은 19세기 멕시코의
우아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화려한 가구와 희귀한 고서들,
그리고 벽면을가득 채운 종교화들은 한 개인의 열정이 얼마나 위대한 박물관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집안 곳곳에 밴 고즈넉한 분위기는 오늘 하루 쉼 없이 달린 발걸음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듯했다.
기예르모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역사와 예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불과 13세의 나이에
대통령의 문화 자문역을 맡았을 정도로 멕시코 역사에 해박했다고 한다. 그는 옛날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멕시코시티라는 도시가 가진 시간의 층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멕시코의 식민지 시대(부왕령 시대) 예술에 깊은 애정을가졌다. 세상이 현대적인 것만 쫓을 때,
그는 잊혀가는 종교화, 희귀 고서, 가구들을 수집했다. 사라져가는 멕시코의 영혼을 붙잡아두겠다는
한 학자의 치열한 사명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 개인의 열정이 일구어낸 우아한 마침표
이 박물관은 그가 실제로 생의 마지막까지 거주했던 집이다.이곳이 다른 박물관과 다르게 유독 따뜻하고
부드럽게 다가온이유는 이곳이 전시를 위해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취향과 삶이 깃든 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고서와 가구들은 그가 매일 만지고 읽었던것들이다. 고즈넉한 분위기는
그가 평생 책과 예술품 사이를거닐며 만들어낸 지적인 평온함이었을 것이다.
저택 중앙의 작은 정원과 중정은 멕시코시티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루이스 바라간이 빛으로 안식을 주었다면, 기예르모는 역사와 예술로 우리에게 영혼의 쉼터를 제공했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하며 사흘 먼저 떠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나가 미리 꼼꼼하게 차려준 이 멋진 일정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거대한 도시의 속살을
이토록 짧은 시간에 만져볼 수 없었을 것이다. 몸은 조금 고단하지만, 가방 깊숙이 넣어온 호
기심은 오늘 하루의 경험으로 더욱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첫댓글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피어납니다!!!
복되고 귀한 여행 !! 가시는 곳마다~~ 은총의 꽃이 곱게도 피었네요.
진심으로 올려주신 글 읽으면서~~ 모든 성지여행자들이~~ 님과 같은 은총을 받고 감사하기를
귀한 보석으로 마음에 간직하기를 진심 기도합니다.
잘 읽고 잘 보고 잘 간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때 그때의 기록과 마음을 전하는 글을 전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