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21-07-02 03:00
바다에서 생기는 눈먼 돈[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5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에 선원들이 승선하는 이유는 대개 돈을 벌기 위함이다. 한 푼이라도 더 가족에게 보내겠다는 생각에 선원들은 알뜰히 돈을 모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가 거긴데, 한 푼 더 모으려고 참 많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뱃사람들이란 대개 순진하고 기분파라서 그렇게 알뜰하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생각 없이 막 써버리기도 했다. 반드시 받아야 할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첫 배에서 일본 여러 항을 기항하는데 일부러 마지막 항에서 내리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사람을 보았다. 알고 보니 회사가 당시에 근무일수를 1년에서 하루만 넘겨도 휴가비를 두 배나 더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선박에서는 각종 돈이 가외로 생긴다. 영업 비밀인데 한번 털어놓아보겠다. 한 번은 선장이 찾아와서 내게 몇백 달러를 주었다. 선장, 기관장, 1항사만 나누어 가지는 것이니 다른 선원들에게는 말하지 말고 서명하라고 한다. 직급 옆에 이름이 있고 금액이 적혀 있다. 배를 빌려간 용선자가 화물을 잘 실어줘 고맙다며 보너스를 준 것이라고 했다. 화물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1항사인 나인데, 왜 선장이 더 갖나 싶었다. 갑판부 선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지 좀 궁금했다. 결국 육지에 나가 선원들 술을 사주고 말았다.
갑판부와 기관부의 알력은 골이 깊다. 갑판부는 하역을 담당한다. 철제를 실으면 이를 고정시키기 위한 각재(角材)가 선창에 많이 들어간다. 항해를 마치고 나면 선창에 그런 각재들이 가득 남는데 이것을 모아서 수집상에게 팔면 재미가 쏠쏠하다. 원목을 실으면 원목을 둘러싸는 와이어도 오래되면 갈아야 한다. 교체된 와이어를 사가는 장사치도 있다. 이것도 팔아 갑판부끼리 나눠 가진다. 기관부가 알면 큰일 난다. 나눠달라고 하니까. 기관부 몰래 팔아야 한다. 기관부에는 윤활유를 보급 받을 때 생긴 드럼통들이 있다. 이것을 팔아도 쏠쏠하게 금전이 생긴다. 기관부끼리 나누어 가진다. 갑판부가 알게 되면 배 아파하니, 기관부도 몰래 드럼통을 판다. 피장파장이다.
큰돈은 집으로 가는 봉급에서 만들어진다. 1980년대에는 송출선 봉급이 높은 편이었다. 선장으로 12개월 배를 타면 2000만 원 정도 모이는데, 당시 서울 은마아파트 20평(약 66m²)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모은 돈으로 부자가 된 선배가 많다. 나도 한 달에 80만원씩 12개월을 모았다. 휴가를 오면 1000만 원은 모여 있었다. 시골 고향의 우체국장이 어머니에게 항상 큰절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돈을 입금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으니까. 1000만 원에 이자도 상당할 터인데, 통장에 이자가 안 보여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이자는 어디 갔닝교, 어무이.” “내가, 너 봉급 관리해주는데, 그 정도 이자를 먹지 못하니?” 명답이다. 관리수고비를 드려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보낸 봉급은 항상 원금만 있었다. 그때는 은행이자가 연 10%도 넘어서 이자를 모아도 큰돈인데 다행히 결혼하지 않았을 때라 모자간에 서로 씨익 웃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