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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
■ 바티칸 시국
● 성 천사의 성
천사 상은 바로크의 천재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이 다리 정면으로 우뚝 솟은
것이 가극 <토스카>의
무대가 되었던 성 천사의 성
Castel S. Angelo이다.
< 성천사의 다리> <천사의 성>
● 성 천사의 성 Castel S. Angelo
원래는 135년에 아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묘로서 만들었던 것이다. 그 후 고대 로마 역대의 묘가 되었다. 중세 이후에는 요새나 교황의 생활지・감옥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원래의 부분도 잘 남아 있다. 현재 내부는 국립박물관 Museo Nazionale di Castel S. Angelo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쟁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로마 시가의 풍경은 절경이다. 교황청까지는 성벽 내부의 좁은 길을 통해 외부의 접촉 없이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성 천사의 성이란 이름은 590년에 페스트가 만연했을 때 이 성 위에 칼로 별을 퇴치하려는 천사가 나타나자 곧 페스트가 없어지고 평온해졌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다. 천국의 열쇠를 본뜬 바티칸 시국의 문장으로 장식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산 피에르트 광장 Piazza San Pietro이다. 광장 정면에는 대쿠포라의 건물, 산 피에트로 사원 Basilica di San Pietro 이 우뚝 솟아 있다.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순교한 성 피에트로(배드로)의 묘위에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성당이다.
<시스티나 성당 광장>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마리아 상 앞>
마리아 상
사실 박물관의 전부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일정을 얘기하면서 바티칸 시국의 박물관을 본다 할 때 ‘그 전부’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아주 조그만 부분, 그리고 대체적으로 알려진 작품 몇 점에 국한하여‘가이드’관광회사 임의로 지정한 코스로 한정하므로, 마치 박물관 전체는 아닌데도 그렇게 선전하고, 관광객도 그런 줄 알고 지난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정말 어마어마하고 방대한 작품이 모여 있다. 우리는 처음 입구에 들어선 곳은 1층 조각 전시장을 내려다보는 회화실의 끝부분부터 시작한 것이다. 들어가니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그림들, 그중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해도 저희를 향하는 놀라운 작품(학교에서 다 배운 것)인데 굉장해요. 또 입체효과를 줘서 조각이 아닌 그림임에도 조각처럼 보이는 방, 그리고 역시 하이라이트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천정에 그려진 방인데 여긴 관리자가 관람객이 떠들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줍니다. 고개를 젖혀 그 놀라운 그림을 보니 경탄을 급치 못하겠고 그리고 바로 벽면과 천장화에 도취되어 ‘가이드’의 지시 POINT만 따라 갈 뿐이다. 유적지에서 모아둔 조각상들만 바라보아도 하루가 걸릴 것을 잠깐 쳐다보는 사이에 가이드는 100여개 앞서간다. 빨리 따라 붙으라 소리치면서 애들 다루 듯 한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서서‘마리아 상’을 모신 작품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나라의 언어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어로 표기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금장식으로 꾸며진 화려한 작품이라 사진을 찍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찍으려면 고개가 지나고 막히고 잠시 틈을 이용해 찍는데 ‘우회전 하세요’ 한다. 사진 찍고 바로 우회전 했는데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니 사람들이 일렬로 한곳으로 나가기에 따라서 갔더니 건물 외벽으로 층계를 만들어 ‘시스티나 소성당’으로 가는 길이라며 길을 내놨다. 벌써 그렇게 빨리 갔나 하여 의아하여 잠시 다시 역으로 갔으나 순식간에 길이 여러 개로 나뉘어져 내가 빠져 나온 곳도 애매할 지경이다. 이어폰을 사용하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듯 하지만 계속 움직인다. ‘가이드’는 계속 움직이면서 설명하는데 마치 멈춰서 설명하는 착각에 빠지고 이때 멈추어서 사진이라도 찍다보면 일행을 놓친다.‘가이드’들은 사진 찍을 시간도 안준다. 한 경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관광객들이 자기들의 코스에 따라 이동하므로 코스에는 차이가 있다. 자기들 무리의 코스를 알고 움직여야 하므로 안내자가 좌로(우로)돌으세요~ 하면 바로 확인해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일행과 멀어졌던지 ‘이어폰’도 안 들렸는데 이게 고장이 난 것인지 주파수 범위를 벗어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일전에 ‘가이드’가 길을 잃으면 그곳에 아예 서 있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서 가만히 서 있을까 생각했으나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고 하여 까짓 거 찾을 수 있겠지 생각하고 소 성당 쪽으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수많은 격실과 그림들이 분위기를 압도하며 각각의 역사를 얘기 하지만 자세히 감상하지 못하고 오로지 일행을 찾을 목적으로 주로 많은 사람이 지나는 행렬 중심으로 바삐 따라 갔더니 길을 잃었던 방으로 다시 나왔다. 그곳에서 보니 다시 다른 곳으로 사람들이 줄지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이르니 이어폰에서 다시 우리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좁은 통로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두 갈래 길인데 주로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갔더니 사람들이 적고 막혀 있어서 거슬려서 다른 길로 내려가니 순식간에 다른 관광객들의 무리가 복잡하게 줄을 서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우리‘가이드’와 아내가 바삐 올라오고 있었다. 조우하니 반가웠지만 몹시도 미안했다.
나는 일행을 따라 잡기 위해서 바삐 움직였다. 얼마를 내려가니 미켈란젤로의‘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방에 이르러 10분을 줄 테니 감상하라고 한다. 온 몸은 땀으로 축축하고 앞의 대형 그림은 어마어마하고 함부로 사진도 못 찍게(플래쉬 때문) 검정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벽면 그림과 천지창조의 천장화, 그리고 각 측면에의 성서이야기와 교황님들의 그림들에 심취되었다. 마음이 불편하니 웅장한 그림도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가이드는 좌우를 둘러보고 가라고 하였다. 공간을 빠져나오니 베드로성당 앞이었다. 일행들이 광장을 보고 있었고 ‘가이드’는 한창 설명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는 반갑다는 표정과 말썽을 일으켰다는 눈치가 교차하였는데 조용히 합류하였다. ‘가이드’는 성당 안을 보고 나중에 밖에서 모이는 장소를 안내하고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베드로 광장과 오벨리스크> < 성베드로 성당 정면>
과시적이고 선동적이며 호화스러운 장식성을 보여주는 바로크 미술은 1600년대의 이탈리아에서 대중들의 구경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로마는 신의 보호와 성스러운 정신적인 힘도 필요하지만 안락함과 자연스러운 장식미도 필요하다”라는 16세기 말의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 : 1585 ~ 1590 재위)의 제언에 따라, 로마는 도로를 확장하고 광장을 만들어 탑을 세우고 분수조각도 설치하였다. 이로써 바로크 양식에 따른 도시계획이 나왔다. 17, 18세기의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이러한 바로크 양식을 기본으로 하는 도시계획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베르니니가 구상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앞의 광장이다. 이 광장은 오벨리스크가 가운데 있고 양옆에 분수가 있으며, 2열의 원주로 형성된 화랑이 마치 팔을 벌려 감싸 안은 듯한 타원형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광장은 착시 효과를 연출하여 웅장한 뿐만 아니라 생동감이 넘치는 공간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마의 나보나 광장 또한 베르니니가 교황 인노첸티우스 10세(Innocentius X : 1644~55 재위)의 명을 받아 구상한 것으로, 오벨리스크를 가운데 두고 지구상의 네 강(江)을 상징하는 조각으로 형성된 <네 강의 분수>가 광장 가운데 있다. 물과 군상조각이 한데 어우러진 분수가 바로크 시기에 많이 등장한 것은 빛을 받아 그 모습이 계속 변하고 유동적이며 출렁이는 물의 속성이 바로크의 성격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광장과 붙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가운데 하나다. 순교자 베드로의 무덤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성당은 본래 4세기경에 바실리카식으로 처음 세워졌으나, 교황 율리우스 2세 때인 1506년에 재건이 시작되어 브라만테, 라파엘로, 베르니니,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거장의 손을 거쳐 1590년에 완공되었다. 특히 이 성당의 지붕격인 돔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성당 내부의 피에타상에는 미켈란젤로의 친필 서명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성 베드로 성당 근처에는 바티칸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역대 로마 교황들이 수집한 다양한 고문서와 예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박물관에 딸려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미켈란젤로가 4년 만에 완성했다는 천장화「천지창조」와 역시 그의 작품인 「최후의 심판」등을 볼 수 있다.
이 방을 통과해 베드로성당에 입장하면 미켈란젤로가 27살에 조각한 작품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을 그 당시 사람들이 네가 했을 리가 있냐며 조롱하자 화가 난 미켈란젤로가 밤에 몰래와 조각상에 자신의 이름을 세긴 뒤 다음날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나님이 알아주면 되는 것을 하고 다시는 그의 작품에 이름을 남기자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베드로성당은 어마어마한데 천정의 유리문과 아래 바닥조각의 크기를 같이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 어느 성당도 여기보다 크게 지을 수 없게 되어있다고 한다.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 피렌체 대성당<피에타>. 1548 ~1555. 대리석.
높이 226cm, ]
1933년에 피렌체 대성당에 안치된 예수. 성모, 막달라 마리아, 니고데모 4인 군상의 <피에타> 상은 슬픔에 젖은 세 사람의 무거운 마음이 늘어진 시체의 무게와 뒤엉켜 일체를 만들어내면서 비극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고, 예수, 성모, 막달라 마리아의 <팔레스트리나 피에타>군상들의 조각상도 비극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든 작품은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비극적인 감정을 통해 종교적인 신비감을 표현하고 있다.
세계최대크기의 성당이다. 출입구에서 계단까지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 다음 어디어디 성당 등등 크기도 중앙에서부터 각기 표시되어 있었다. 중앙 대성당을 중심으로 앞과 옆의 각기둥 사이에도 소성당들이 위치했고 중앙의 틈과 그림 또한 어마어마하다 고개가 아파서 다 못 보았다. 제단 지하에는 베드로 성인이 뭍혀 있다. 제단 중심으로 베란다가 있어서 부활절 때에는 예수님의 유품이 전시된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소성당 몇 군데에 들어가 묵상하고 베드로 상인이 모셔진 곳에서 주모경을 바치고 그 짧은 시간에 마음 바삐 쫓기며 분심 가운데 마음을 가누려니 무척 힘들었다. 성당 내부 한 곳 한 곳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예술성과 규모에 완전히 압도되었고 과연 사람의 힘으로 이것이 가능했겠나 싶어서 하느님의 능력이 이곳에 증거했구나 생각되니 경의스러웠다.
●산 피에트로 광장 Piazza S. Pietro
이 광장은 베르니니의 디자인에 의해 1667년에 완성된 것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반원형의 회랑에는 4열의 도리아식 원주 284개가 서있는데 그 윗부분에는 140명의 성인 상이 장식되어 있다. 중앙에는 서기 40년에 이집트에서 운반된 거대한 오벨리스크(높이: 25.5m, 무게320t)가 서 있다. 좌우의 분수 중 우측은 마데르노가 17세기에 만든 것이다. 왼쪽의 것은 베르니니에 의해서 후에 조성된 복제품으로 오벨리스크와 분수 사이의 흰 대리석 받침들 위에 서 있는 주랑을 보면 이상하게도 4개의 기둥이 1개로 보인다. 산 피에트로 사원을 향해 오른쪽 건물에는 교황의 서재가 있다.
<성 베드로 성당 전경>
<성당내부>
기둥위에 건물 3층중 2층 세 번째 창문 커튼이 열려 있는 곳이 교황의 집무실
면적 0.44㎢, 인구 1,000명(1996), 영토는 엄밀하게 말하면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 궁, 바티칸 시국의 국기는 동시에 교황기(旗)이다. 바티칸시국은 1929년 이탈리아로부터 교황청 주변지역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아 라테강 바티칸시국의 영토권은 성베드로 대성당과 그 주변,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카스텔 칸돌포의 교황 하계관저에 국한된다.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하였고, 소수의 스위스 성 베드로 성당 천정에 그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볼만하다.
●산 피에트로 사원 Basilica di San Pietro
<베드로 상>
성 피에트로 묘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가 기원이 된다. 1452년에 시작된 니콜라이 5세의 재건 명령 이후 1506년에 브라만테에 의해 착공되었다. 이후 상갈로 ・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등이 재건에 몰두하여 완성을 본 것은 1626년의 일이다.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복도에는 미켈란젤로의 25세 때 작품 <피에타>가 있다. 지금은 유리 너머로 밖을 볼 수 없지만 그 훌륭함에는 누구나가 마음이 동요된다. 그 앞 제 3예배당 Cappella del Sacramento에는 베르니니의 제단이 있어서 기도하는 사람밖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신자가 아닌 사람은 삼가는 것이 좋다. 중앙 오른쪽에는 <산 피레트로의 브론즈 동상 Statua di San Pietro>이 있는데 방문객과 신자들의 키스로 반짝거릴 지경이다. 왼쪽의 제2 , 3예배당 쪽의 벽면에는 폴라이우올로가 만든 인노첸시오 8세의 기념비 Mounmento di Innocenzo Ⅷ 가 있다. 옥상인 대쿠포라로 오르는 입구는 사원 바깥쪽의 정면으로 맞은편 오른쪽에 있다. 중앙의 대쿠포라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2중구조로 되어 있고 무척 밝다. 쿠포라에는 교황의 제단이 있고 베르니니의 브론즈 <천개 天蓋>로 덮여 있다. 이 아래의 예배당에는 성 피에트로의 묘가 있으며 묘 앞에 꿇어앉아 있는 동상은 신고전주의 조각가 카노바가 제작한 교황 피오 6세의 동상이다. 이 안쪽 상부에는 비둘기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고 아래에는 베르니니의 거대한 <성 피에트로의 의자 Cattedra>가 있으며 이 내부에는 성 피에트로가 사용했다고 하는 나무의자가 있다.
마음이 한 편으로 급했던 것은 병중의 사령관께 조그만 성물 징표라도 갖다 주고 싶은데 성물 판매소를 알 수가 없어서 아내와 밖에 나와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근위병 (교황을 지키는 근위병을 봤는데 특이한 복장을 해서 신기하다 했더니 옛날에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한다. 또 근위병은 모두 세습제로 스위스사람만이 할 수 있는데 이유인즉 옛날에 한 교황이 이곳에 도망 왔을 때 죽이러 온 병사들을 피해 다른 나라 용병은 다 도망갔는데 스위스용병만이 죽음으로 교황을 지켰다고 한다.)위병소 옆으로 제법 큰 성물 판매소가 보여서 아내와 같이 부랴부랴 들렀다. 모임시간은 다 되어갔다. 판매대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서 바로구매 하였는데 아내의 구매요령이 가관이다. 거기에 적힌 요금만큼의 돈을 손에 쥐고 내밀면 그 가격대에 계산하고 잔돈은 거슬러 주니 굳이 어렵게 대화할 것이 무엇인가 하여간 속으로 웃음이 나지만 현명했다. 설령 내가 영어로 말했다 해도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그것이 오히려 더 빠르겠지?
명칭은 ‘오벨리스크’였지만 그렇게 비슷했고 기둥이라고 했으니 그쪽으로 냅다 뛰었다. 성당광장이다. 교황요한바오로 2세가 서거했을 때 많이 보았던 광장이다. 나는 사진을 찍자했고 아내는 여전히 거부한다. 일행이 다 모이자 우리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사진촬영을 했는데 나는 아내를 주로 모델로 세우는데 아주 힘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베드로성당과 광장을 벗어나서 우리의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본격적으로 로마시내에 산재한 유적을 둘러보는 것이다.
<바티칸 성당의 벽화는 그림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모자이크한 것이라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당 돔형 지붕과 교황의 미사집전>
로마 Roma
2,500년이라는 역사의 무대에 잘 어울리는 각양각색의 기념물은 여행자들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다. 옛 교황 그레고리오 14세는 3주일을 채우지 못한 여행자들과 헤어질 때는 “그러면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했고, 몇 개월 머무른 체재자에게는 “로마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 했다고 한다. 이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도시를 알려면 잠깐 머무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한 번 매료되면 다시 방문하고 싶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이야기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명언도 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로마와의 이별에 감개무량 하다는 이탈리아의 친구가 “로마 Roma를 거꾸로 하면 Amor, 라틴어로 ‘사랑’이 된다.”고 하였다.
●봄 Primavera
로마의 봄은 황색의 미모사 꽃과 함께 찾아온다. 3월 8일‘여성의 날 Festa della Donna'에는 남성이 부인이나 연인에게 미모사 꽃을 선물하는 것이 전통이다. 이 무렵 제과점들은 부활절 Pasqua을 위한 럭비공 크기의 달걀형 초콜릿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상점 안이 화려한 꽃밭 같다. 4월 초 부활절에는 달걀이 들어간 마르살라 술과 삶은 달걀로 아침식사를 하고 한껏 차려입은 뒤 교회의 미사에 나간다. 이날 산 피에트로 광장은 실제로 부활한 그리스도가 종려나무나 올리브 가지를 번쩍 쳐든 사람들에게 열광적으로 환영받았던 날을 생각나게 한다.
●여름 Estate
로마의 여름은 축제로 시작된다. 6월 23일과 24일에 걸친 이틀간의 산 조반니 축제에는 달팽이와 돼지구이를 먹으며 와인을 한 손에 들고 밤늦게까지 노래자랑을 한다.
바겐세일 SALDI이 끝난 상점들은 긴 휴가로 들어가는 안내문을 붙이고 즐거운 휴가를 떠난다. 주말에는 오스티아의 바다로 나가 휴가 막바지 무렵엔 태양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를 자랑하고 다닌다.
●가을 Autunno
근교의 와인 산지 프라스카티의 분수에서 와인이 분출되는 와인 축제가 시작되며, 국민적 스포츠인 축구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겨울 Inverno
12월이 되면 로마인들의 발길은 나보나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에는 이탈리아 특유의 프레세피오 Presepio와 과자ㆍ장난감 가게가 제일 바쁘다. 산 피에트로 광장이나 스페인 계단, 도시의 교회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산에서 내려온 양치기들이 양가죽으로 만든 백파이프인 잔포냐를 불며 행인들에게 보시를 받는 것이 연말 풍속이다. 베네치아 광장과 핀초 언덕에는 30m 나 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고 거리 전체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로 술렁이면서 12월24일 나타레를 맞이한다.
조용하고 가정적인 나타레가 끝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 시끌벅적한 신년의 축제를 시작한다. 12시의 종. 종소리를 신호로 좋은 샴페인을 올리며 한손에는 잔을 들고 주위 사람들에게 키스를 한다. 이어서 거리는 온통 불꽃놀이와 폭죽으로 뒤덮이며 집집마다 창을 통해 웃음소리와 댄스파티가 새벽까지 이어진다.
식사시간이 되어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를 벗어난 듯 한 곳에 중국집이 있었다. 역시 한국인들로 북적 거렸고 그들이 빠져나가서 식탁을 비우기까지 시간을 기다렸다가 지하에 내려가니 여전히 숫자가 홀수인 원탁의 식탁이 있었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으나 그냥 아내가 자리를 지정해 놓고 앉았다. 중국음식은 아주 빨리 내왔다. 코스요리 형태인데 한꺼번에 내놓으니 맛을 느끼면서 식사한다는 개념보다는 식사 때니까 배고프지 않게 요기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돈만 비싸다. 우리는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식사하고 나왔다. 차에 올라서 좌석 배열로 그냥 앉는 게 아니였다. 모두 좋고 희망된 시절은 지나고 권위도 버렸음 직한데 출신 기수끼리 모이니 다시 그것이 살아났다. ‘사람들 하구는!’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양해를 구할 것이지, 이런 반응들은 서서히 피곤함이 뭍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분위기에서 여행은 계속 되었다. 어느 관광지나 버스를 곧장 도착시킬 수 없었다. 원래 그곳은 도로가 좁고 차량이나 사람들도 붐비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 로마의 구조
테베레 강을 따라 7개의 언덕 위에 펼쳐지는 영원의 도시 로마. 도시는 의외로 작아서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열심히 걸으면 3일 동안 대강은 훑어볼 수 있는 규모이다. 로마시내에는 고대 로마 집정관에 의해 조성된 8개의 집정관 도로를 비롯해 대간선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길은 옛날 제국의 영토를 목표로 이탈리아 각지로 뻗어 나와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대환상도로이다. 시내에서 반경 10Km 정도의 이 구역이 지금은 로마의 주택지가 되었다. 대환상도로의 바깥쪽 평야 지역인 아크로 로마노는 목축과 농업이 성하다. 평화로운 전원풍경과 양치기의 모습은 로마라는 도시에 있다는 것을 잊게 할 정도이다. 혹자는 ‘로마만 제대로 보면 유럽 여행은 끝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곧 스케일이 큰 로마의 유적지를 본 후에는 다른 도시를 돌아보면 왠지 조급은 시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명한 여행자라면 결코 유럽 여행의 첫 출발지로 로마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다른 도시를 모두 돌아본 후 로마에 입성 했을 때 비로소 로마의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명 ‘영원의 도시’라 불리기도 하는 로마는, 이도시의 젖줄인 테베레 강병과 7개의 야트막한 언덕(퀴리날레, 비미날레, 팔티노, 캄피돌리오, 에스퀴리니, 체리오, 아벤티노)에 펼쳐져 있다. 기원전 753년 팔라티노 언덕에 처음 도시를 건설한 이후 로마제국과 교회국가의 수도로 그리고 한때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로마, 오늘날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쉴새 없이 드나드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로마는 생각처럼 그리고 큰 도시는 아니다. 직경 약 5Km의 둥근 위 속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마의 대표적인 명소들이 모두 있다.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깨끗하게 사는 세 명의 사람, 한결같이 영혼의 구원을 동경하고 같은 마음으로 일하며, 같은 목표를 향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은 다른 좁은 길을 선택할 수가 있다고 믿는다. - 라 퐁텐의 ≪우화≫ 중에서
17세기의 프랑스 시인 라 퐁텐의 시에 등장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시구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장시의 독특한 향신료가 되고 있다. 깨끗하게 살아온 세 명의 사람은 ‘재판관과 병원장 그리고 은사’를 의미한다. 그들은 선악을 판결하도, 병을 고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야 하는 길은 각각 다르지만 행선지는 한결같이 ‘영혼구원’이라는 의미의 시이다. 여기에 쓰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의 의미는 로마 제국의 전성기 때는 세계 각지에서의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것이었으나 요즘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같은 목적에 도달하는 것 ‘진리는 하나’라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로마로 가는 길’이다.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과연‘진리는 하나’ 일까?
스페인 광장에 있는 프랑스계 사원과 모조 오벨리스크/관광객들로 가득 찬 스페인 광장의 계단, 정말 끝도 없이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스페인 광장은 미국 영화 「로마의 휴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1953년에 개봉되었으며, 이 영화로 오드리 햅번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이 광장 근처의 주택가에 머물기도 했다. 특히 영국의 서정시인 키츠(John Keats)는 요양 차 이곳에 왔다가 1821년 26세으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는데, 현재 그가 머물던 집은 키치와 셸리(Percy Bysshe Shelley), 구 영국 시인의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스페인 광장 주변
베네치아 광장의 북동쪽에 있는 포폴로 광장에서 코르소 거리를 지나 스페인 계단을 올라서 보르게세 공원을 걷는다. 그리고 영화 <달콤한 인생>으로 유명한 베네토 거리를 건너 트레비 샘까지의 범위를 말한다. 많은 관광객, 높은 계단 그리고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여기가 로마의 고급 쇼핑가 콘도티 거리 Via del Condotti와 스페인 광장 P.za di Spagna이다. 300m 채 되지 않는 길의 양쪽에 부티크가 빽빽이 들어서 있어 구치를 비롯해 페라가모ㆍ발렌티노의 세계 3대 보석점인 불가리·도기점인 지노리와 화려한 윈드 디스플레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스페인 계단을 향해 왼쪽의 구치 부근에 있는 카페 그레코 Caffé Greco는 키츠・바이런・단눈치오 등도 다녀갔다는 유서 깊은 카페이다. 지금은 완전히 관광객에게 점령당한 살롱이지만 옛날 그대로의 복장을 한 카멜리에레(급사)가 서비스를 해준다. 살롱에는 이곳을 방문했던 유명인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계단 위에 있는 교회가 트리니타 디 몬티 교회 Trinitá dei Monti로 16세기에 세워졌으나 프랑스 혁명으로 파괴되고 19세기에 재건된 남프랑스 고딕풍의 교회이다. 현재는 프랑스의 성심회 소속이며 내부는 휴일이나 경축일에만 견학할 수 있다. 광장의 오른쪽에 있는 그레고리아나 거리 Via Gregoriana에는 몬스터의 집 Casa dei Mostri이라고 불리는 ckdansd과 방문이 크게 뚫려 괴물처럼 보이는 집이 있다. 전에는 선택받은 부자들만이 이 주위를 통행할 수 있었다는 길로서 다른 사람을 위협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출처: 이미지; 구글, 일부글; 해외여행 유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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