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령, #철 종, #조선 25대왕 철종, #용흥궁, #강화 8경, #철종의 잠저, #강화도 여행'
#강화 나룻길
.
#[강화군 여행] 강화도령 조선의 제25대 임금 철종의 잠저 용흥궁........13
.
.
#[강화군 여행] 강화도령 조선의 제25대 임금 철종의 잠저 용흥궁........13
.
유랑자는 강화 성당에서 나와 곧장 2분 거리에 있는 용흥궁으로 향했다. 바로 옆에 있었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드라마나 영
화에서 보았던 강화도령의 潛邸[잠저]가 어디였었는지 궁금도 했었기 때문이다. 앞서 여행기에서도 누차 이야기를 했었지
만, 강화도는 시간의 섬이다. 섬에 고이고 쌓인 시간의 켜들은 고스란히 역사가 되었고 오늘날엔 관광지가 되었다. 지난 빛
과 어둠, 지상과 천상, 시간과 永遠[영원]이 교차하는 역사의 땅 강화도! 이 땅은 하늘이 처음 열리던 때부터 강화도는 한반
도 역사의 중심이었다.
.
國祖[국조]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마니산 塹星壇[참성단]은 우뚝 솟은 정신문화의 돛이다. 황해[서해], 그 동아시아 지중
해에 떠 있는 배가 바로 강화도다. 고조선, 고구려에서부터 고려, 신라, 조선에 이르러 천주교가 첫발을 디딘 곳이다. 한반
도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와 문화변동의 풍파를 피할 수 없이 그대로 겪어온 강화역사의 아로
새겨진 자취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
.
▶용흥궁은 조선의 제25대 임금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
▶용흥궁 대문과 송덕비(頌德碑): 대문 옆에는 송덕비 2기가 있는데 하나는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새로 지은 강화 유수 정
기세(鄭基世)의 것이고, 하나는 정기세의 아들 정원용(鄭元容)의 것이다. 정원용은 강화도령을 왕으로 모시는 봉영의식
(奉迎儀式)을 맡은 바 있다.
.
.
그 역사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조선 25대 임금인 강화도령 철종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유랑자는 먼저 龍興宮
[용흥궁] 앞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본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거처했던 潛邸[잠저]로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
[1853]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고 한다. 별명 '강화도령'으로 널리 알려진 왕, 훗날 철종이 될 회평군
이명[이원범]은 全溪大院君[전계 대원군] 李㼅[이광]의 3남으로 1831년[순조 31년] 태어나 한성부[지금의 서울특별시 종
로구 낙원동, 익선동 일대] 에서 자랐다.
.
이원범은 어린 시절에는 그의 형들과 함께 조선 왕실의 몇 안 되는 남자 왕족으로 그럭저럭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이후 아
버지 全溪大院君[전계 대원군] 李㼅[이광]이 10살 때 사망한 것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다. 사실 철종이 강화와 인연
을 맺게 된 것은 그의 할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서자인 셋째 은언군 때부터다. 은언군이 홍국영에 의해 모함을 당한 사건으
로 일가족 모두 강화로 유배되었다. 은언군은 결국 사사되었고, 은언군의 차남인 전계 대원군만 홀로 강화에 살고 있었다.
..
▶龍興宮[용흥궁]이란 현판은 흥선 대원군의 친필이다.
.
▶용흥궁(龍興宮)은 조선왕조 제25대 철종(哲宗, 1831∼1863년)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인천광역시 유형문
화유산 제20호이다. 강화 도령으로 알려진 철종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元範)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
자이다.
.
.
.
그 대원군 李㼅[이광]이 철종의 아버지고, 철종의 어머니 용담 염 씨는 강화 출신이다. 후에 전계 대원군은 잠시 방면되어
도성에 거주하면서 철종 이원범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철종이 14살 때인 1844년[헌종 10년]에 閔晉鏞[민진용]이
큰형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발생 또다시 역모 사건에 몰려 철종과 그의 형제들은 연좌제로 다시 강화로 유배되
고 말았다. 이 5년의 유배기간 동안 철종은 강화에 머물렀다.
.
이 용흥궁은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군이 유배 생활할 때 살았던 집이고 정작 철종은 그의 어머니의 외가에 주로 머물렀으
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른 점이 많다. 강화도령 이원범은 형과 함께 19살 때까지 5년간 농사를 짓고 나무나 베며
강화도의 村婦[촌부]로 힘겹게 살았다. 이렇게 왕족이 아닌 평범한 백성으로 생을 마칠 뻔했으나. 불행인지 행운인지 로
또?, 일약 인생 역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존이 된 시골 청년 이원범!, 1849년[헌종 15년] 헌종이 후사 없
이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창덕궁에서 급사했다.
.
.
▶이 집은 본래 초가집이었으나 그가 왕위에 오르자, 철종 4년(1853)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기와집을 짓고 용흥궁
(龍興宮)이라 하였는데, 왕의 탄생을 의미한다.
.
.
.
당시 영조의 후손으로서 정통성을 가진 왕족은 李㼅[이광]의 아들들밖에 없었다.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순원왕후
김씨는 이광의 아들인 강화도령 이원범을 다음 국왕으로 지명했다. 이 시기에 직계 왕통[혈통]이 자주 단절된 까닭은 효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종은 효종의 외아들이었고, 숙종은 현종의 외아들이었다. 숙종은 아들이 몇 명 있었지만, 영조
빼고는 대가 끊기고, 영조도 아들을 둘 뒀지만, 장남 효장세자는 어린 시절 사망하고 후손을 남긴 아들은 사도세자뿐이었다.
.
사도세자는 아들을 다섯을 두었지만, 아들 둘의 대는 끊겼고 넷째 은신 군과 다섯째 은전군은 10몇 촌이 넘어가는 친척을
입양해 대를 이었다. 은언군은 아들을 7명을 두었지만, 후손을 남긴 아들은 전계 대원군밖에 없었다. 즉 24대 헌종 사후 실
제 효종의 피를 받은 왕족은 이원범뿐이었다. 고민 끝에 안동 김씨 세도가 대신들은 꿩 먹고 알 먹고, 똑똑지 못한 왕족 중
에서 이원범을, 후계자를 정하여 정사를 자기들 손아귀에 쥐고 마음껏 휘두르기 위해 농부였던 이원범을 찍었다.
.
.
▶철종잠저구기비각(哲宗潛邸舊基碑閣):철종 임금이 즉위하기 전에 거주던 사저(私邸)임을 알리는 비(碑) 이 비석이 세
워진 곳에 원래 철종이 19세까지 살았던 초가가 있었다.
.
▶철종잠저구기비각(哲宗潛邸舊基碑閣)
.
.
당시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행렬이 왔을 때, 이원범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형이 역모에 몰려 죽은 전례가 있어서
겁을 먹었다. 하여 이번엔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쳐버렸다. 이원범의 형 이욱은 도망가다가 다리가 부러
지기도 했다. 이후 영의정 정원용의 설득과 주민들의 협조로 결국 가마에 올라 궁으로 가고 19세 나이로 조선왕조 25대 왕
哲宗[철종] 망국의 허수아비 임금으로 즉위[재위:1849년~1863년]하게 된다.
.
그리고 철종이 왕이 된 뒤 강화도에 있던 그의 초가집은 왕의 잠 저[잠룡]로서 '용이 흥하게 되었다' 하여 기존 초가집을 헐
고 왕위에 오른 후 기와집으로 바뀌면서 '용흥궁'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다. 당시 이 집은 노인들 사이에 ‘원범이네 집’으
로 불리었다. 아무튼 불운의 왕 철종은 재위 기간동안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삼정 이정청을 설
립해 개혁책을 모집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
▶철종 잠저 우물
.
▶19세 나이로 조선왕조 25대 왕 哲宗[철종] 망국의 허수아비 임금으로 즉위[재위:1849년~1863년]하게 된다.
.
.
.
한편, 동학이 창시되고 곳곳에서 농민 항쟁이 일어나자 탄압했으며, 철종은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를 바로잡지
못했다. 주색에 빠져 있는 무능한 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팔자에도 없이 왕이 되었고 안동 김씨의 등쌀에 의욕을 잃은 데
다 건강까지 잃어버린 불운한 임금!. 심지어 어의에게 "차라리 날 죽여달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심한 우울감에 빠져 있었
다. 결국 철종은 33세 나이로 병사했다. 참고로 龍興宮[용흥궁]이란 현판은 흥선 대원군의 친필이다. 용흥궁을 지은 鄭基
世[정기세]는 철종 즉위 직후인 1853년에 龍興宮[용흥궁]의 재건을 맡은 강화유수였다.
.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사랑채와 정면 7칸, 측면 5칸의 맞배지붕 안채, 그리고 행랑채와 우물, 대문과 후문
이 있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건물의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창덕궁 연경당, 낙선재와 같
이 살림집처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용흥궁은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유산 제20호로 지
정받았다. 용흥궁 근처에 궁의 이름을 딴 공원 '용흥궁 공원'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용흥궁과는
걸어서 2분여 거리에 있다.
.
.
▶재위 기간동안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하자 삼정 이정청을 설립해 개혁책을 모집했지만 제대로 시
행되지 못했다. 한편, 동학이 창시되고 곳곳에서 농민 항쟁이 일어나자 탄압했으며, 철종은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33세 나이로 병사했다.
.
.
◼철종의 잠저 용흥궁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구(지번) 주소: 강화읍 관청리 441
이 용: 09:00~18:00(휴관일: 없음)
정보: 주차 가능,(용흥공원 유료 주차장:3분거리)
-관람소요시간 : 30분
-애완경 동행가능,
.
.
.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
◼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
.
◼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
.
.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
*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