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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한바리 가볍게 뛰었습니다.
이번엔 새롭게 들머리를 신분당선 상현역에 있는 정암 조광조선생묘로 잡아 광교산에 올랐습니다.
삼봉 정도전, 정암 조광조, 석파 흥선대원군은 조선왕조에 아주 강렬한 족적을 남기신 분들입니다.
기묘사화로 화순 능주로 유배를 가 38세에 사약을 받은 문정공 정암 조광조선생은 중종 때 사림학파의 거두로 개혁사상을 폈습니다만 이이는 학문이 익기전에 너무 일찍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였습니다.
한편으론 이때부터 성리학의 패거리정치가 붕당정치의 폐단이 되어 오는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옵니다.
천년약수터를 지나 광교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납니다. 이후론 광청종주 루틀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광교산에서 모찌, 발화산 직전에 가래떡, 하오고개에서 간단하게 단팥빵으로 요기하며 이수봉에서 막걸리 한잔 시켰는데 서비스 한잔 주시네요. 안 주셔도 되는데~
청계산의 국사봉과 망경대는 여말선초 조윤(=조견)과 관련있고,
이수봉은 연산군때 일두 정여창선생이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선생과 조광조의 스승이자 친구인 한훤당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피해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고 석기봉 아래에는 후학인 한강 정구가 혈읍재라 명명한 정여창 선생이 통분해 울었다는 장소도 있고, 청계산은 고려말 목은 이색과 조견 선생 등 충신과 대학자가 머물렀던 `은둔과 지조의 땅`이었답니다.
단종, 세조, 성종 그리고 연산군도 청계산에서 사냥을 즐긴 대표적인 왕이라는군요.
선말 추사 김정희선생도 제주도 귀향에서 풀린 뒤 옥녀봉아래 과천현에서 말년을 보냈답니다.
천주교가 이땅에 전래되며 치렀던 순교처럼 성리학 사림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사화를 치르게 됩니다.
무갑기을,,,
무오사(史)화 (1498년, 연산군4년: 사초, 조의제문, 김종직),
갑자사(士)화 (1504년, 연산군10년: 폐비윤씨, 엄사홍),
기묘사(士)화 (1519년, 중종14년: 주초위왕, 조광조),
을사사(士)화 (1545년, 명종1년: 양재역벽서사건, 인종 대윤, 명종 소윤)
청광종주를 화장실을 들머리로 하는것 보다는
정암 조광조선생과 이수봉, 혈읍재와의 관계를 따라 발길을 잇는 것도 뜻깊은 일인듯 하여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장거리를 하면 꼭 고기를 굽는다는 고정된 생각을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지방을 충분히 연소시킨 그 좋은 기회를 다요트 기회로 전환하지 못한다는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장군마을 앞에서 간단하게 김치찌개와 냉김치말이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산행에서 또 만나길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첫댓글 새해 기념으로 친구분과 광청종주를 하셨네요.
6시간 정도면 역시 준족이세요.~
저도 다녀온지 꽤나 되어 한번 다녀오고픈 생각도 듭니다.
새해에도 늘 즐겁고 멋진 산행이어지시길 바랍니다.~
네! 방장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