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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 3 - 구마모토성에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를 생각하고는 이자카야에 가다!
가토 기요마사 가 울산 에서 잡아온 조선인을 동원해 언덕에 쌓은 구마모토성 은 2중으로 해자를 둘렀고 외성
과 내성은 성루가 49개에 둘레가 12km 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우물만 120개를 팠으니, 그 견고함은
1877년 세이난 전쟁에서 3천명 정부군이 1만 3천명 사쓰마군 에 맞서 성을 지켜내 난공불락 임을 입증합니다.
세이난(西南 서남) 전쟁 이란..... 조슈번, 시쓰마번, 히젠번과 도사번의 존왕양이론자 들이
1868년에 천황(일왕) 을 받들고 무진전쟁 반란 을 일으켜 265년간 통치한 도쿠가와
에도막부를 무느뜨리고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이래 토사구팽을 당한 사쓰마(鹿兒島)
의 사족(士族, 사무라이) 들이 사이고 다카모리 (西鄕隆盛) 를 앞세워 일으킨 내란 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는 사무라이들을 달랠겸, 서양이 조선을 집어삼키면 원나라가 고려인들을 앞잡이로 일본
을 침략했 듯, 안보가 위험해질수도 있으니 먼저 조선을 취하자는 정한론(征韓論) 을 주장하자.....
조선의 종주국인 청나라와 전쟁할 군비 를 갖추기 위해 먼저 국력 부터 키우자는 오쿠보 도시미치 와
이토 히로부미의 시기상조론 에 밀려 정계에서 물러나 가고시마에서 사(私)학교 를 세우고 교육에 힘씁니다.
사족(사무라이) 들은 1868년 무진전쟁 반란 에 숱한 전투에서 목숨을 버려가면서 메이지유신을 이루었음에도
서구식 근대화를 위해.... 폐번치현 번주제 폐지로 매년 받던 연봉(봉급) 이 없어져 생계가 위협 당하고
근대화 정책으로 2자루 칼 휴대 라는 봉건적 특권을 잃어 몰락일로를 걷자 반정부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1877년 사쓰마번 사무라이 2만명 이 사이고 다카모리 를 앞세우고 거병해 그 중 1만 3000명이
구마모토성을 포위 하였으나.... "우린 관군한테 진 게 아니라, 세이쇼(淸正 기요마사)공
한테 진 것이야 (おいどんは官軍に負けたとじゃなか. 淸正公に負けたとでごわす)"
사이고 다카모리가 구마모토 성을 뚫지 못하고 사쓰마로 물러나면서 탄식한 말 이라고 합니다.
구마모토성전투 (熊本城の戦い) 는 정부군은 축성후 270년이 지났음에도 견고한 요새인 성을 거점으로 사쓰마
반군을 막고 농성전 에 돌입하는데, 신식총은 정부가 빼돌린지라 구식 전장식 소총 으로 무장한 사이고군 1만
3천명은 성을 포위하고 맹공했으나 평민들로 구성된 3천명 밖에 되지 않는 신정부군의 철벽 방어 에 당황합니다.
사쓰마번의 거병 소식을 들은 규슈의 사무라이들이 지원 하기 위해 구마모토성으로 모여들어 사이고군은
3만명의 대군 이 되었으니 정부군의 구원 시도는 실패했으며 포위 공성전은 57일 이나 지속 되었는데...
마침내 본토에서 편성된 충배군 이 구마모토성에서 농성중인 정부군을 구원하니 치열한 교전이 벌어집니다.
공성 시작때 사이고 군은 메이지 덴노에게 사무라이의 어려움을 알리러가니 성문을 열라고 하였고,
이에 방어군 사령관 다니 다데키 는 “이제서야 일반 백성이 무사 밑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이 싸움에서 지게되면 다시 사무라이 밑으로 돌아가는 것” 이라고 일축한 말도 유명합니다.
타바루자카 전투 (田原坂の戦い 3월 1일 ~ 3월 30일) 는 구마모토성의 정부군을 구원하기 위해
1만 5천명의 군대가 접근 하니 사이고는 1만명 을 투입했는데, 후일 여순 함락의
주역이 되는 노기 마레스케가 지휘하는 코쿠라 제 14연대를 3번에 걸쳐 연파
했으며, 신정부군은 사쓰마군의 십자포화와 발도(拔刀) 돌격 이라는 사태에 직면해 실패합니다.
정부군 탄약 소비량은 일일 32만발 에 달했지만 징집된 평민병사로 발도(拔刀) 돌격만 시작되면 참살당하거나
도주하는 추태를 보였으니, 경찰 발도대를 편성 하고 폭우로 사쓰마군의 전장식 소총의 불량률이 높아진
점을 이용해 전선 돌파에 성공하고 충배군이 야시로 만에 상륙함으로써 4월 15일에 구마모토성은 해방 됩니다.
와다고에 전투 (和田越の戦い)는 사쓰마군이 히토요시(人吉)방면에서 방어를 꾀했지만 함락되니 사이고는
미야자키로 이동해 독립정부 를 선포하는데... 사쓰마군은 8월 17일 에노다케로 돌진해 1여단 본영을
습격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다음 시로야마(城山) 로 도주하자 가고시마 시민이 봉기해 사쓰마
군에 합류하지만 6만 정부군에 의해 함락되고, 사이고 다카모리는 할복 자결 하면서 반란은 진압 됩니다.
톰 크루즈 가 출연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는 이 전투를 각색했는데.... 세이난 전쟁에서 일본군이 빵을 식사
로 활용했으니, 막부 말의 에가와 타로자에몬이라는 유럽 군사학을 연구하는 관리가 유럽군대의 식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연구하였고 1842년에 일본 최초로 유럽 군대식 보존용 빵인 '병량빵' 이 만들어집니다
저런 병량빵을 구운 곳이 '세계에서 최초로 단팥빵' 을 만든 "기무라야" 였다고 하는데, 세이난(서남) 전쟁이
터지고 나서 메이지 정부의 다급한 요청 아래 정부에 팔아넘겼으며 그리고 해당 빵은 유럽식 군대
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 딱딱하고 밍숭맹숭한 그야말로 주식으로서의 빵 에 충실한 물건이었다고 합니다.
세이난 전쟁 당시 사족들과 사쓰마 무사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간 일본군들은 이런 병량빵
과 비스킷, 가다랭이포 를 전투 식량 으로 지급받았는데..... 빵을 끈에 꿰어 탄띠 처럼 허리에
둘러서 다녔다고 하며 청일전쟁에 이르면 저기서 가다랭이포가 빠지고 고기 통조림 이 추가됩니다.
스웨덴 의 헤비메탈 밴드 Sabaton 에서 이 세이난 전투를 Shiroyama 라는 곡으로 다루었
는데.... 일본인 중에는 전쟁의 결과로 사무라이의 중세적 특권이 완전히 붕괴 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세이난 전쟁은 메이지 유신의 마지막 단계라고 보는데, 부상자들을 구호
하기 위해 하쿠아이샤(博愛社) 라는 구호단체가 생겼으니 오늘날 일본 적십자의 전신 입니다.
세이난 전쟁은 여러 곳에서 전투 가 벌어졌는데...... 옛날에 미야자키현 북부에 천신강림 신화가 있는
다카치호쵸 高千穗町(고천수정) 에 갔을때 규슈올레 다카치호 코스 지도를 보았는데.....
규슈올레길은 제주올레에 매년 로열티 를 지불하고 수입했으니 간세와 리본, 화살표 를 똑 같이 씁니다.
코스는 사가현 가라쓰와 다케오, 나가시마현 히라도, 구마모토현 아마쿠사 2개 코스에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기리시마 묘켄에 미야자키현 오쿠분고 와 다카치호등 모두 아홉 코스 가 있는데 저
다카치호 마을 올레 코스 입구에는 “西南の 役 官軍墓地 서남노역 관군묘지” 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 전투에서 사쓰마(가고시마) 군이 승리 했으면 산을 넘어 오이타를 거쳐 북 규슈 로 진격
할 셈이었으나, 정부군에게 패했는데 그때 죽은 사람들의 묘지라.... 문제는 조선에서는
지금 당장 조선을 집어삼키자는 파 와 시기상조 라는 파가 둘로 갈라져서 내란인 전쟁을
하는데도 그에 대비는 커녕.... 그런 "사실조차도 전혀 몰랐다는 것" 입니다? 조선은 천하태평 이라!
찬성파든 반대파든 침략시 조선군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1875년 대포 2문을 장착하고 65명이 탄 일본
군함 운양호 단 한척이 초지진을 포격하고 영종진 에 이르러 포격후 22명 육전대를 보트 2척에
태워 상륙시키니 450명 조선군은 전사 35명에 포로 16명을 내고 대포 35문과 총 130여정을 뺏긴채
도주하는데, 일본군 피해는 전사자는 없고 경상 2명 이라? 그 경상도 상륙시 뻑밭에 빠져 다쳤다는....
성을 내려와 주차장에서 렌터카에 올라 우리 숙소 를 찾아가는데.... 구마모토 시내 풍경 을 보다가
동아일보 이상훈 특파원이 쓴 중입자 등 '첨단 암치료’ 특허, 日이 美-中 제치고 1위,
“췌장-자궁경부-두경부암 에 효과” 아시아 암환자들, 치료 위해 방일도....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중입자(重粒子·heavy ion) 치료’ 등 최첨단 암 치료 분야에서 일본이 미국, 중국 등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 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췌장암 등 기존 의료기술로
치료가 어려운 암 에 잘 듣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일본으로 향하는 해외 환자도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페이턴트 리절트’ 가 2000년 이후 출원된 암 치료 분야 특허 3,148건을 분석해 점수를
매긴 결과, 일본은 2,419점 으로 독보적인 세계 1위 를 기록했다. 미국(2,070점), 중국(753점) 을 앞섰는데,
중입자 치료는 탄소 입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 로 돌려 만들어진 에너지로 암세포를 파괴해 암을 치료 한답니다.
그러고는 숙소 주소지에 내려 호텔 을 찾는데.... 우리 3대 7명 가족의 숙소 는 작은 빌딩에 몇개
방을 임대해 쓰는 모양인데.... 문제는 주인이 거주하지 않는지라 휴대폰으로 보내온
메모를 보고 열쇠를 찾아서 문을 열고 빌딩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밀번호가 맞지 않은지라 몇번 시도하다가 딸이 예약하면서 받은 빌딩 모양을 보니 조금 다른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숙소 이름이 똑 같은게 두 지역 에 있었는데 렌터카 네비게이션 에
주소 대신에 숙소 이름만 입력해 오다보니 구글에서 전혀 다른 주소의 동일한 이름 숙소로 온 것이라.....
현지 주민에게 물어 다시 차를 타고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숙소 근처에 도착했는데, 밤이 되어 사방이
캄캄해진 탓인 때문에 번지를 확인할수 없으니 숙소를 찾기 어려운데, 여기 스이도쵸(水道町)
는 시라카와강이 보이지만 건너가서는 안될 것 같아..... 주변을 찾아다니다가 교통정리 를
하고 있는 경찰 에게 물으니 헷갈리는지 한참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찌 어찌 해서 주소를 찾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도 주인이 상주하는게 아니라 빌딩에 몇개 방을 임대해 호텔 영업을 하는
모양인데.... 마침 공교롭게도 이 건물이 개보수 중이라 가파르고 좁은 계단에
쇠로된 말뚝 을 받쳐 놓았는지라 트렁크가 올라 가기에는 어려워서 엄청 고생을 합니다.
트렁크를 비좁은 계단 철제 받침대 사이로 죽자 사자 몇 번이나 시도 끝에 간신히 끌어 올려 우리 방
현관에 도착해 비밀 번호를 입력한후 들어가는데.... 이게 우리 일행이 7명이고 거기다가
우리가 숙소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지라 고른 넓고 키친이 있는데다가 싼 숙소 가 이런 모양 입니다?
그러고는 사위와 함께 둘이 밖으로 나와서는 휴대폰으로 맛집을 검색 한후 어두워진 밤거리를 걸어서 찾아
가다가 도중에 골목에서 매우 그럴듯 해 보이는 토속 이자카야 쥬쯔효우에 (術兵衛 술병위) 를 발견해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 이자카야는 현대적인 체인 이자카야 는 아니고 재래식인 동네 골목 이자카야 입니다.
때문에 칸막이로 나뉜 방이 없고 완전 개방식 이라..... 다른 손님들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
오는데 우리는 나마 비루 를 시키고는 안주로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꼬치 안주 로
몇가지를 시키니 이윽고 나온 맥주를 들이키는데...... 이게 우리 입맛에 꼭 들어 맞습니다.
그러니까 병 맥주라면 아사히나 기린 그리고 삿포르등 대형 주조회사가 아니더래도
지방 상표의 맥주도 많겠지만 맛은 똑 같을 텐데, 여기 생매주는 지방에
따라 생산자가 다양한 것인지..... 우리 입맛에 꼭 맞으니 몇잔을 더 시켜서 마십니다.
칭따오 보다도 더 맛있는 일본 생맥주 를 탐미하듯 마시다 보니 문득 국제 신문의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이 국제신문 도청도설란 에 올린 글...... “왜색이지만 괜찮아”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문화를 개방한건 1998년 이니 불과 25년전 일이다. 광복후 50여년이나 걸린
이유는 식민기간을 거친 탓에 국민반감이 커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이루지
못했던 일본 대중문화 수입 허용정 책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 는 지시로 시작돼 참여정부 때인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성됐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 을 일으켰다. 문 밖에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공룡(일본 문화) 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문을
열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 의 모습이 담긴 진보 일간지의 만평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센 반대는 양질의
일본 문화에 우리 문화가 잠식될게 뻔하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니까.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 문화판에 일본 바람 이 거세다. 추억의 만화를 극화한 애니메이션 영화
‘슬램덩크’ 는 레트로 열풍을 타고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부산시립미술관 에선 왜색
강한 전시가 한창이다.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 ‘무라카미 좀비’ 가 진행 중이다.
전시를 다 본뒤 첫 느낌은 ‘왜색이 너무 짙다’ 는 거부감 이었다. 부산미술의 심장부 같은 공공
미술관에서, 일본색이 강한 전시 를 해도 되나? 그것도 무료 로? 미술관은 10억원을
들여 전시를 준비하면서 관람료를 받아 티켓 수익(5억 원) 으로 비용 일부를 충당하려고 했다.
그러나 작년 9월 태풍으로 누수 문제가 발생, 전시 기간이 5개월에서 46일로 대폭 축소 되는 망신을 당한뒤
관람료를 없앴다. 대신 티켓 수익분은 부산시가 시민 혈세로 지원하기로 했다. 전시작중 일부는
적나라한 성문화등 퇴폐적인 일본 문화 를 그대로 보여주고, 나한도엔 일본 전통의 기괴한 요괴가 등장한다.
논쟁에 휩싸일 시립미술관이 지레 걱정 됐으나 다카시전은 외려 인기 폭발, 개막 17일
만에 누적 관람객이 무려 4만명 을 넘어섰고..... 전시 연장 까지 검토될
정도다. 매우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다카시 개인의 역량 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만화에 심취 했던 그는 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한 뒤 일본 문화와 세계 문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와 문턱을 없애고 동일화 하는 이른바 ‘슈퍼 플랫(Super flat)’ 을 실험했다.
가장 일본적인 것을 세계적, 보편적인 것 으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강한 왜색에도
한국에서 호평 받는 듯하다. 이런 반응은 더 나아가, 두려움을 기회로 바꿔
문밖의 공룡 ‘따위’ 는 무서워 하지 않게 된 "K- 문화의 자신감" 의 발로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는 밤거리를 걸어 돌아오다 보니 여기 스이도쵸 동네에 우리 부부가 자주 이용하는 도요코인
호텔도 보이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도요코인 구마모토조 도오리초스지라..... 계속
걸어서 숙소로 돌아와 하룻밤을 자는데 내일은 구로카와 온천 을 보고 멀리 벳푸 로 갈 예정 입니다.
이 도시 구마모토 에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 회사가 공장을 짓고 있는데 메모리
반도체 D Ram 은 삼성전자와 SK 가 세계 1,2위 생산을 하지만 그 보다 규모가 훨씬 큰 주문형
반도체는 대만 업체 TSMC 가 장악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이제 겨우 시장 진입 을 하는 단계로
일본은 TSMC 건설 비용 1조 1천억엔(10조원) 가운데 40% 인 4,760억엔(4조 6천억원)을 지원합니다.
그런데 연합뉴스에 재미를 본 대만 TSMC 가 일본에 두번째 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을 검토한다
는 방침을 밝혔다는데.... 현재 짓고 있는 1차 공장은 2022년 4월 착공해 2024년 말 가동
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본은 대만 제2 공장에 대해서도 1공장의 40% 보다는 적지만
건설비의 30% 를 지원하겠다고 말하니, "삼성전자와 총성 없는 전쟁" 이 벌어질 모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