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이 산지인 이 커다란 돌은 두 개의 봉우리 사이로 마른 물길이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골짜기가 강으로 합쳐지는 지점에는 자연스럽게 배들이가 형성되어 있으며, 산 뒤로는 둥글게 휘감은 절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이 돌은 축소된 자연 풍경처럼 보입니다. 수석 중에서도 이러한 형태를 띠는 돌을 산수경석 혹은 줄여 경석이라 부릅니다.
산수경석을 감상하는 일은 단순히 아름다운 돌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섭니다. 산은 변함없는 존재를, 물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산수경석을 바라보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골짜기와 물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돌 속에 담긴 시간과 변화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앞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연이 품고 있는 깊은 이치를 헤아려 보게 됩니다.
나는 이런 돌을 오래 바라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낸 형상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돌을 더욱 안정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수반에 앉히지 않고 좌대에 놓는 걸 좋아하죠.
내가 ‘나라공방’이라 부르는 뒷방은 바로 이런 작업을 하는 곳입니다. 원래는 원장실 한쪽에 책과 소파집기가 가득했지만, 그것을 치우고 물리치료 베드를 작업대로 삼았습니다. 그 위에 연장통과 다양한 형태의 끌, 드릴, 그라인더, 미니 전기톱 등을 올려놓고 틈틈이 좌대를 깎아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점점 작업이 위축되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음입니다. 조각도로 돌바닥을 파내는 작업은 조용한 편이라 괜찮지만, 연장으로 나무를 다듬을 때 나는 소리는 쉽게 차단되지 않습니다. 문을 이중으로 닫아도 전기톱질 소리, 그라인더 소리, 드릴링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직원들은 ‘원장님 낙’이라며 이해해주지만, 한번도 내게 싫은 소리한 적없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약국에는 늘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아무리 rpm을 낮춘다해도 MDF 벽만으로는 소음을 완전히 막을 수 없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는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일찍 병원에 나와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낮에는 조용한 끌 작업만 하지요. 게다가 구부린 자세로 작업하다 보니 허리까지 아픕니다. 때문에 이래저래 좌대 깎기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방해받는 분들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도리라 생각합니다. 손으로 깎고 다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무의 결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돌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좌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이번 기회에 비단 이러한 직접적인 소음뿐 아니라 여러가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없는지도 살펴봐야겠습니다. 알게 모르게 남에게 갑질하는 건 없는지, 무심히 대하고 불친절한 것은 없는지, 교만하고 배려없이 퉁명스러운 표정과 행동은 안하는지 조심해야겠습니다. 무관심하다, 무표정하다 라는 말도 새겨들어야겠습니다.
산수경석이 오랜 세월 동안 강물에 씻기고 바람을 맞으며 자연스러운 형태를 갖추었듯, 좌대 또한 시간을 들여 깎고 다듬어야 비로소 제 모습을 찾습니다. 기계로 편리하게 형태를 만들 수도 있지만, 천천히 끌을 대며 나무의 결을 따라 조심스럽게 다듬는 과정이 더 의미 있다고 나를 설득합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듯, 돌과 나무 또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환경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는 않지만, 이것 또한 다 뜻이 있는 것이라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소음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고, 허리 부담을 덜 수 있는 작업 방식을 연구하면서도, 여전히 즐겁게 작업하며 놀아볼 생각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과 가장 잘 어울리는 좌대를 만들어 가는 일이 나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오늘 설날 여유로운 오후에 살짝 병원에 들러 작업하고 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서 미루었던 톱질, 그라인더 작업을 참 마음 편하게했지요. 당분간은 시간을 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