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나해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12월 24일)
도입: “예수님은 우리를 하느님처럼 되게 하시려고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송봉모 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탄 축하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깜짝 놀랄 소식 들으셨습니까? 올해 성탄 날짜가 12월 25일 아니라 2021년 1월 7일로 잠정 연기됐답니다. 아기 예수님이 천상에서 세상으로 오시자마자 코로나-19로 자가격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웃픈’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코로나-19 여파로 공동체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는 유례없는 성탄절이 신자분들 모두에게 아쉬움 보다는 커다란 은총과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예전부터 아는 자매님이 어제 가톡으로 성탄 인사를 전하며, ‘방송으로 미사 하니 마음이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지난 봄 부활에 이어 이번 성탄에도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으며 신앙이 약해질까 걱정하는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하면서 어떤 답문을 보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신앙의 선조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은 미사 없이 성사도 받지 못했지만 죽음을 무릅 쓰며 가혹한 박해를 견디면서 꿋꿋하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일찍이 단 한번도 성탄미사에 빠진 적이 없는 수많은 신자분들에게 “공동체 미사” 없이 맞는 성탄절은 얼마나 힘들고 착잡하겠습니까? 부디 신앙 선조들의 모범을 묵상하고 순교성인들에게 전구를 청하면서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방송미사에 꼭 참여하여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 미사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 교우 여러분, “응애 응애”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이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네, 바로 어머니 마리아와 양부 요셉입니다. 그분들은 아기 예수님을 먹이고 씻기며 입히면서 돌보아야 할 부모입니다. 또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제일 처음 듣게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들판에서 밤에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입니다. 목자들은 도둑과 맹수로부터 양 떼를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아기 예수님의 성탄 장면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요셉, 목자들은 모두 ‘돌보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탄은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과 소명에 대하여 묵상하게 합니다.
3. 특히 복음에서 천사가 목자들에게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라고 알려주는데, 이 성탄의 표징이 가리키는 바를 진실로 이해하여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삼종기도 때에 “가난한 형제 안에 있는 살아있는 성탄 구유를 연대하며 방문하자.”고 초대하시며 ‘가난한 형제는 구세주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부모의 지속적인 돌봄과 관심 없이는 단 한순간도 온전히 살수 없는 갓난 아기로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예수님을 경배하는 우리 신앙인들의 눈길은 제대 앞에 화려하게 꾸며진 구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관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어서 냄새나고 눅눅하며 여기저기 벌레들까지 기어다니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가축들의 보금자리를 빌려 태어나셔야 했던 상황과 처지를 묵상하면서 이 시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가정과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난관에 부딪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의 일년 동안 제대로 장사를 하지 못해서 심각한 가게 운영의 어려움을 겪다가 불어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생계수단을 접어야 하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치솟는 부동산 열기 속에서 전셋집에서 쫓겨나거나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는 청년들과 신혼부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인구 대비 주택보급율은 이미 100%를 넘었지만 아파트를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는 투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수도권을 포함해 대도시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는 바람은 소시민에겐 그저 실현 불가능한 꿈일 뿐입니다. 2천 년 전 구유에서 태어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살았던 예수님의 처지를 생각할 때, 오늘날에도 그런 처지의 사람이 많다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실거주 주택 1채만 소유하여 아기 예수님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4. 여기에 더불어 엊그제 가슴 아픈 뉴스를 접했는데, 어떤 이주노동자가 농촌의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 얼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였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 단지였다고 하는데, 일동이 제 고향이라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여러 개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밭농사를 하는데, 그 중 하나를 이주노동자의 기숙사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불법인데, 비용 절감을 위해 비닐하우스에 판넬식 조립 건물이나 콘테이너 박스를 놓고 숙소로 운영하면서 숙박비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라는 처지를 이용하여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열악한 시설에서 숙박을 하게 하다가 결국 잦은 전기장치의 고장과 영하 18도 이하의 한파까지 겹쳐서 사람이 얼어죽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서, OECD 가입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얼어죽는 일이 생겼다는 게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춥고 어두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과연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우리가 모른 척 외면해도 괜찮은 것인지요?
5. 그리고 또 요즘 국회에서는 위험한 산업현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논의가 한창입니다. 지난 2018년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씨 사망사건 이후로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막기 위해 산업재해법 개정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2020년 올해에도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사고사, 공장 작업 노동자들의 사고사 등등 수많은 사망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노동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들로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작업환경 개선비용과 기업주들의 책임 방기로 어떤 가정의 소중한 아들과 딸이 그리고 가장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6. 이처럼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단순한 마음으로 쉽게 기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이 주변에 너무도 많습니다. 누구보다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잘 아는 우리 신앙인들이 정말 솔선수범하여 이 시대 우리 사회에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가장 작은 이들”에게 더욱더 커다란 관심을 갖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이 일상에서 베푸는 “나눔과 자선”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데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현실정치가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정신에 입각하여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해야 할 책임과 역할이 있습니다.
7.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 성탄은 우리 신앙인만의 축제가 아니라 모든 이에게도 참된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과 같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 시대의 노동자들, 이주민들, 자기 집 없는 영세민들, 가게세 조차 내기 힘든 소상공인들 모두가 웃으면서 삶의 희망을 다시 밝힐 수 있도록 언제나 신앙인들이 먼저 나서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합당한 정책적 변화를 요구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선의 질서가 실현될 때에야 비로소 아기 예수님께서 ‘평화의 군왕’으로 세상에 오신 분임이 알려질 것입니다.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찬미하였습니다. 세상의 참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는 그 평화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돌봄의 영성’을 실천하면서 우리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돌보게 되면 의미가 생기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성탄의 의미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표징하는 존재들을 돌볼 때 가장 확실하게 체험되리라 굳게 믿어 고백합니다.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태어나셨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