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本棋界의 頂上 林海峯 本因坊 來韓
悠然한 姿勢의 大勝負師
과거 3년간 <명인名人>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난 여름 <본인방위>를 사카다(坂田) 九단으로부터 쟁취하여 현재 <본인방本因坊> 타이틀을 갖고 있는 중국청년 린하이펑(林海峯) 九단이 지난 12월 2일 동아일보의 특별초청으로 내한했다.
金浦空港에 各界人士의 大歡迎 무우드
2일 하오 4시 50분 타이베이(臺北)에서 김포공항에 도착한 CAL(옮긴이 주:대만 중화항공)기편에 린하이펑 국수가 내렸다. 공항에는 부이사장 배상연(裵相淵), 상무이사 윤양(尹樑)씨, 이사 최재형(崔載衡)씨, 조남철(趙南哲)씨 등 諸씨를 비롯 김인(金寅) 六단, 동아일보 총무부국장 윤현배(尹顯倍)씨 등 많은 인사와, 한성화교협회(漢城華僑協會) 총간사 진진장(陳晋璋)씨, 한성화교소학교교장 여백형(呂伯衡)씨를 비롯하여 20여명의 화교와 화교소중남녀학생 40여명이 출영(出迎)하는 가운데, 많은 신문기자들의 후랫슈 세례를 받으며 린하이펑 국수는 즐거운 표정을 짓고 성대한 환영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또 이날 이채로웠던 것은 교토(京都)에서 비래(飛來)한 그의 은사 후지타 고로(藤田梧郞) 六단 부부가 그를 반가히 맞았으며, 많은 꽃다발을 안고 세종호텔로 행했다.
第1次 對局(非公開) 金寅 國手가 3戶勝
서울에서 하룻밤을 지낸 린하이펑 국수는 듣던 것보다 굉장히 따뜻한데는 놀랐다고 하면서 갖고 온 방한복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3일에는 서울특별시장을 비롯하여 동아일보사, 한국기원을 예방하고, 시내관광을 하였고, 이날밤 이후락(李厚洛) 이사장 환영 파아티에 참석하여 친선 접바둑을 두는 등 즐거운 하루 저녁을 지냈다. 4일에는 김인 국수와 제1차 대국을 세종호텔 502호실에 마련된 특별대국실에서 비공개리에 대전하였다. 이날 관계인사 10여명이 주시하는 가운데, 제한시간을 양기사가 다쓰고, 초읽기에 쫓기면서 장장 8시간의 열전을 벌인 끝에 흑을 쥔 김인 六단이 3호승하여, 한국의 기력이 결코, 세계정상과 겨루어 뒤지지 않음을 과시하였다.(옮긴이 주 : 1차 대국은 정선으로 두어졌다.)
史上初有의 有料公開對局
6일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유료공개대국이 세종호텔 해금강(海金剛)홀에서 열리었다. 열렬한 바둑팬 5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오 2시 10분에 김인 국수와 대국을 시작하였는데 옆에 마련된 대형바둑판에서는 조남철(趙南哲) 八단의 유모러스한 해설로 팬들은 웃음을 터뜨려가며 관전하였으며, 하오 4시 10분에 대국이 끝나고 집을 지어보니 백을 쥔 린하이펑 국수가 반면 2호를 남겨 덤까지 합쳐 6호반승하였는데, 유연한 자세의 대국태도에는 모두들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팬들의 싸인공세에 린하이펑 국수는 땀을 비쏟듯이 쏟으며 마지막 한장까지 싸인을 하는 친절을 베풀기도 하였다.
7일에는 아침에 KAL기편으로 부산으로 내려가 하오 2시, 부산 동주여고(東洲女高) 강당에서 조남철 八단과 공개대국을 가졌는데, 대기반(大棋盤)에서의 해설은 강철민(姜哲民) 四단이 맡아 재미있는 해설을 하였다. 이 대국에서는 린하이펑 국수가 불계승하였다.

당시 공개대국 장면
林海峯 國手 臺北서 王來弟孃과 約婚
그런데 린하이펑 국수는 이번에 한국에 오기전에 타이베이(臺北)에 갔었는데, 이번까지 7회째의 귀국으로, 이번에 간것은 그의 애인 왕라이디(王來弟)양과 약혼식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린하이펑 국수와 왕라이디양과는 어릴때부터 서로 아는 사이, 라이디양의 언니와 린하이펑 국수와는 大阪화교학교의 한반 친구여서 어릴때는 그의 집에 자주 놀러가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린하이펑 국수가 도쿄(東京)에 가게되어 수년간 뜸했다가 약 2년전부터 라이디양과 다시 사귀게되었으며, 지난번 중국위기협회 초청으로 타이베이(臺北)에 가서 11월 20일 하오 5시에 국빈대반점(國賓大飯店) 2층 국제홀에서 嚴家?부총통 주례하에 린하이펑 국수와 왕라이디양은 많은 축하객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약혼식을 거행하였는데 타이베이에서 발행하고 있는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중앙일보(中央日報)는 4단제목으로 "林海峯昨訂婚 嚴副總統福證 在千餘來賓祝福中完成佳禮" 라는 큰 타이틀로 보도하고 있었다.
다음에 린하이펑 국수는 타이베이의 바둑 잘두는 소년들과 지도기, 공개대국을 두고 한국으로 향했다.(옮긴이 변 : 정확한 해석은 아래 댓글에 해주실 분이 계실겁니다-_-)
林海峯國手 惜別의 情나누며 離韓
서울과 부산에서 모든 공식일정을 마친 린하이펑 국수는 8일 한국기원 서정귀(徐廷貴)이사가 베푼 송별만찬회에 참석하여 서정귀이사와 친선접바둑을 두었다. 이날 만찬회는 唐 중국대사, 金山 일본대사 등 저명인사들이 많이 참석한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린하이펑 국수는 예정된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마치고, 그의 스승 藤田梧郞 六단 부부와 함께 9일 아침 10시 30분 KAL기편으로 오사카(大阪)으로 향했는데, 떠나기에 앞서 린하이펑 국수는 "이번에 성대한 환영에는 감사할 따름이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자주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린하이펑 국수가 우리나라에 온 것은 우리나라 기계로서는 일대경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월간 棋界 1969년 1월호 p.5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