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
최용현(수필가)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 1995년)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왕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이끈 13세기 후반의 스코틀랜드 전사 윌리엄 월레스의 일대기를 다룬 멜 깁슨 감독 주연의 전쟁 사극 영화이다. 제목 ‘Brave heart’는 ‘용감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스코틀랜드인들의 의분(義憤)을 표현한 것이다.
중견배우 멜 깁슨의 연기력 및 연출력을 증명한 영화로,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카데미 10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음향편집상, 분장상의 5개 부문을 수상했다. 골든 글로브에서도 감독상을 받았고, 그 외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을 많이 받았다.
제작비 7,2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전 세계에서 2억 1,500달러의 수익을 올려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관객 50만 명, 전국 추산 200만 명이 넘는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에서는 크게 흥행했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역사 왜곡이라며 상영금지 주장까지 나왔다. 12살에 호주로 이주한 멜 깁슨 덕분에 호주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1280년, 스코틀랜드 국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롱생크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왕(패트릭 맥구한 扮)은 무력으로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귀족들을 처형한다. 어린 윌리엄 월레스는 아버지와 형이 잉글랜드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자, 숙부에게 맡겨진다. 에드워드 왕은 자기의 아들을 프랑스 공주 이사벨(소피 마르소 扮)과 결혼시키고, 귀족들에게 스코틀랜드의 토지와 초야권(初夜權)을 부여하면서 스코틀랜드로의 이주를 추진한다.
장성한 월레스(멜 깁슨 扮)는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의 동무인 머론(캐서린 맥코맥 분)과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잉글랜드인 영주에게 사랑하는 머론의 순결을 뺏기기 싫어서이다. 며칠 후, 월레스는 머론을 겁탈하려는 잉글랜드 병사들을 저지하지만, 머론은 붙잡혀 기둥에 묶여서 처형당한다.
월레스는 동네 청년들과 함께 궐기하여 잉글랜드 병사들과 영주를 죽이고, 모여드는 청년들의 지도자가 되어 잉글랜드에 반기를 든다. 프랑스 원정 중인 에드워드 왕은 아들에게 월레스를 제압하라고 지시한다. 월레스 군은 잉글랜드군을 스털링 전투에서 격파한 후 요크를 함락하고 왕의 조카를 죽인다. 월레스는 스코틀랜드의 기사 작위를 받고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 1순위인 로버트 백작(앵거스 맥페이든 扮)을 만나 협조를 구한다.
월레스의 기세에 당황한 에드워드 왕은 휴전을 제의하고 세자빈 이사벨을 보내 매수를 시도하지만, 이사벨은 월레스의 애국심과 용맹스러움에 매료된다. 월레스 군은 폴커크 전투에서 에드워드 왕의 잉글랜드군과 맞붙는데, 스코틀랜드 귀족 모네이와 로클란, 로버트 등이 에드워드 왕의 뇌물을 받고 군대를 철수하면서 패배한다. 로버트는 부친의 지시에 따르느라 잉글랜드에 붙었지만,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모네이와 로클란을 죽인 월레스는 에드워드 왕의 밀사로 온 이사벨의 도움으로 자신의 암살 시도를 막는다. 그날, 월레스는 이사벨 공주와 뜨거운 밤을 보낸다. 월레스는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귀족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가 로버트 부친의 밀명을 받은 가신(家臣)들에게 잡혀서 에드워드 왕에게 넘겨진다. 로버트는 부친과 의절(義絶)한다.
한편, 이사벨은 늙고 병들어서 누워 있는 에드워드 왕의 귀에 대고 ‘지금 내 배 속에 월레스의 아이가 자라고 있어요. 당신의 핏줄은 당신 아들과 함께 끊어집니다. 또, 당신 아들은 왕좌에 오래 있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말한다. 에드워드 왕은 위중한 상태여서 말은 못 하고 눈썹만 파르르 떤다.
월레스는 반역죄로 끔찍한 공개처형 선고를 받는다. 월레스는 목이 졸리면서 산 채로 배를 갈라 심장을 뽑아내고 창자를 꺼내는 잔혹한 형벌을 받는데, 판사는 ‘자비’를 외치고 빠른 죽음을 맞으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월레스는 ‘자유(Freedom)’라고 외치고, 군중 속에서 죽은 아내 머론의 환영을 보면서 목이 잘려진다. 이때 에드워드 왕도 숨이 끊어진다.
월레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로버트는 ‘그동안 월레스와 함께 싸웠지만, 이제 나와 함께 싸웁시다.’ 하면서 월레스의 동료와 군사들을 독려한다. ‘1314년, 스코틀랜드의 애국자들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베녹번 전투에서 스코틀랜드인답게 용감하게 싸워 잉글랜드군을 물리치고 마침내 자유를 쟁취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난다.
‘브레이브 하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인 윌리엄 월레스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 전쟁영화이다. 웅장한 스케일과 치밀한 각본,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특히 유혈이 낭자한 전투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나 고증(考證)에는 일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우선, 월레스가 요크를 점령하고 에드워드 왕의 조카를 죽였다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란다. 또, 에드워드 왕의 세자빈 이사벨이 월레스를 사랑했고 그의 아기를 임신했다는 내용 역시 허구라고 한다. 월레스가 처형될 당시 프랑스 이사벨 공주의 나이는 10살이었으며, 월레스가 죽은 지 4년 후에야 잉글랜드로 시집을 가기 때문이다.
역사 속 이사벨은 처음에는 동성애자인 남편 에드워드 2세의 정치적 동반자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친정인 프랑스에 갔을 때 남편이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자, 정부(情夫) 로저 모티머를 비롯한 망명귀족들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가서 남편 에드워드 2세를 폐위시키고 유폐(幽閉)한다. 그리고 자기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즉위시켜 실권을 장악한다.
월레스가 죽은 후 583년이 지난 1888년, 월레스의 숭고하고 의로운 정신을 기리는 동상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 정문에 세워졌다. 그 당시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상 제막식에 몰려들어 환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