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목표가 아니라 미래 보는 능력
리더십은 비전을 현실로 바꾸는 능력…비전있는 사람에겐 매 순간이 기회
최고경영자와 같은 지도자들에게 비전 제시는 임무이자 업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리더십 연구의 창시자 워런 베니스는 “리더십은 비전을 현실로 바꾸는 능력이다(Leadership is the capacity to translate vision into reality)”라고 했다. 비전 제시가 직업인 사람들도 있다. 옛날에는 예언자, 오늘날에는 퓨처리스트(futurist)가 대표적이다.
비전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비전은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으로 정의된다. 용례로는 ‘비전이 없다’ ‘비전이 불투명하다’ ‘큰 비전을 세우다’라는 문장이 나와 있다.
용례에서 비전을 목표로 바꿔보자. ‘목표가 없다’ ‘목표가 불투명하다’ ‘큰 목표를 세우다’라고 된다. 뜻이 통한다. 우리의 언어 생활에서 비전은 목표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비전과 목표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전과 목표의 관계는 밀접하다. 상호의존적이다. 비전이 있어야 목표도 보이고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비전과 목표가 어떻게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비전도 목표도 올바로 세울 수 있다.
비전의 비결은 온고이지신
영어에서 비전이 어떤 뜻인지 파악하면 비전과 목표의 차이점이 잘 드러난다. 영어에서 비전은 일차적으로 일종의 능력이다. 옥스포드 영영사전(OALD)을 보면 비전은 ‘보는 능력(the ability to see)’, ‘막강한 상상력과 지력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하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the ability to think about or plan the future with great imagination and intelligence)’이다. 영어에서 비전은 능력을 써서 생기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OALD에 따르면 비전은 ‘여러분 상상력 속의 아이디어나 그림(an idea or a picture in your imagination)’이다.
비전은 ‘시각적인’ 능력이요 결과물이다. 『걸리버 여행기』(1726)의 저자인 조나선 스위프트(1667~1745)는 이렇게 말했다. “비전은 남들에게 안 보이는 것을 보는 기예(技藝)다(Vision is the art of seeing what is invisible to others).” 많은 사람이 봐도 진정으로 보지는 못한다(Many people see, but they don’t really see). 비전이 있는 사람은 소수다. 비전이 없는 사람이 다수다. 비전이 있는 소수 중에서 제 구실을 제대로 하는 지도자들이 나온다.
비전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미래를 마치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그림처럼 미리 보는 것이다. 내일, 내달, 내년, 10년 후, 100년 후를 미리 보는 것이다. 비전은 현재와 미래를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멀리 보는 것이다. 멀리 볼 수 있는 비전 있는 소수가 되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더 멀리 봤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에 가능했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자신이 속한 분야의 거목들이 과거에 이룩한 성과를 사다리로 삼으라는 말이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아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도 통한다. 그렇게 보면 비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리로 연결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을 ‘비저너리(visionary)’라고 부른다. 비저너리는 ‘꿈꾸는 사람’이다. 흐릿한 꿈이 아니라 생생한 꿈을 꾸는 사람이다. 비전은 생생한 예지몽(予知夢)이다. 핵심은 또렷하게 보는 데 있다. “말하는 사람 수백 명보다 생각하는 한 사람이 낫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 수천 명보다 볼 수 있는 사람 한 명이 낫다. 명료하게 본다는 것은 시(詩)와 예언과 종교를 한 데 합친 것과 같다(Hundreds of people can talk for one who can think, but thousands can think for one who can see. To see clearly is poetry, prophesy, and religion, all in one).” 영국 사회·예술 비평가 존 러스킨(1819~1900)이 한 말이다.
미래를 마치 맑고 투명한 강물처럼 보고 싶다면 두리번거리는 것은 금물이다. 미국 작가 버클리 라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비저너리가 비저너리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아주 많은 것들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Visionary people are visionary partly because of the very great many things they don’t see).”
한눈 팔지 않고 본다면 무엇을 봐야 할 것인가. 정치 지도자는 국민의 살림살이를 살펴 봐야 할 것이요 CEO는 고객과 임직원들을 유심히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의 니즈(needs)를 말이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스스로의 마음을 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바라볼 때 비전이 선명해진다. 밖을 보는 자는 꿈꾸는 자요, 안을 보는 자는 깨어 있는 자다(Your vision will become clear only when you look into your heart. Who looks outside, dreams. Who looks inside, awakens).”
필요 없는 것은 보지 말라
깨어난 사람은 비전을 시간 속에서 실천한다. 1분 1초, 하루 하루가 비전의 순간이다. 미국 작가 헨리 밀러(1891~1980)는 이렇게 말했다. “비전이 있는 자에게는 매 순간이 절호의 순간이다(Every moment is a golden one for him who has the vision to recognize it as such).” 산스크리트 속담은 다음과 같이 하루를 중시한다. “하루 하루를 잘 살면 어제는 행복의 꿈이 되고 내일은 희망의 비전이 된다(Each today, well lived, makes every yesterday a dream of happiness, and every tomorrow a vision of hope).”
비전은 체험이다. 한계가 사라지는 체험이다. 한계가 사라지면 목표도 높게 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시야의 한계를 세상의 한계라고 잘못 생각한다(Every person takes the limits of their own field of vision for the limits of the world).”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1788 ~1860)가 한 말이다. “비전 외에 다른 한계는 없다(The only limits are those of vision).” 미국 시인 제임스 브로턴(1913~1999)이 한 말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의 비전도 배우게 된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는 “언어가 다르면 삶의 비전도 다르다(A different language is a different vision of life)”라고 주장했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남다른 비전을 지닌 사람은 남다른 언어를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