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유적]
1. 조 사 명 : 가야인 생활체험촌 조성부지 내 봉황동유적 발굴조사
2. 조사유적 위치 : 경남 김해시 봉황동 133~135번지 일대
3. 조사기간 : 2001년 4월 4일부터 2001년 11월 29일
4. 조사담당기관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본문설명
김해의 전반적인 지세는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나 창원과 경계를 이루는 곳은 남북방향의 험준한 봉우리로 이어지다가 남해에 이른다.
본 유적은 분성산(370m)~남산(52m), 경운산(341m)~임호산(177m)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구릉성산지 사이에 있는 봉황대구릉의 서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저지에 입지하고 있다. 봉황대 구릉은 분성산성에서 서쪽을 뻗어난 지능선이 김해시 일대에서 낮은 평지를 이루고, 이 평지가 서쪽으로 이어져 대성동고분군 및 봉황대유적과 연결된다. 또한 서쪽에는 해반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내외동 일대에는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한편, 고대의 김해 봉황동 구릉은 기후의 온난과 해면 상승에 의해 형성된 고김해만역에 속하는 곳으로 지금과는 달리 두 개의 만 사이에 돌출되어 바다와 맞닿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김해만 성립기의 해면고도는 예안리 유적지 부근의 해성층 조사에서 얻어진 해성층의 상면고도(최고+1.2M)와 기타 지역에서 확인한 해성층의 상면고도, 패총 유적이 입지하는 지점의 해발고도의 하한 등을 참고로 하면 대체로 현 해수면에서 크게 높지 않았을 것(0+2M미만)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고대의 해성층의 상면고도가 해발 약2m이었다면 삼한~삼국시대의 유적인 봉황대유적, 대성동고분군, 부원동유적들은 고대 해안선 주변의 낮은 구릉 혹은 평지에 분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지역은 풍화화강암을 기반암을 하는 조사구역 동쪽의 봉황대 구릉에 의한 사면 퇴적물과 서쪽 해반천에 의한 하천퇴적물의 공급이 활발한 곳으로, 김해의 배후습지역의 상한선과 과거 어느 시기의 고김해만의 범위와 일치한다는 연구성과를 참고한다면, 이 곳은 고김해만의 복원과 더불어 김해지역의 삼한~삼국시대 유적들의 입지적인 환경을 해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지형환경을 가지고 있다.
※ 보충설명
1) 봉황대유적에서는 삼국시대 수혈, 굴립주건물지, 다수의 주혈들, 치석렬과 토루, 석렬등이 확인되었고, 고려~조선시대 하천과 호안시설도 조사되었다. 이중 고려~조선시대의 호안시설과 가야 시대의 토루는 지금까지 발굴 예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금번 발굴조사의 중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2) 현재까지의 발굴조사 결과 해성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차후 해성층 의 존재 여부 뿐만 아니라 본 발굴유적에 관한 고지형학적인 분석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고지형분석이 이루어지면 토성의 존재 여부나 토루의 성격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3) 본 발굴의 목적 중 하나인 접안시설의 직접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었으 나 본 유적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이 이루어지면 그 가능성여부를 추정 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봉황동유적에서는 다량의 목주와 원목, 각재들이 확인되어 年倫年代 설정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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