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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화려한 조명이 일품인 야경 명소 옛 중앙선 도로와 수양개 유적
학교에서 한국사를 공부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은 선사시대다. 첫 수업이 선사시대라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을 구분하는 문제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교과서에서는 동북아시아 최초로 주먹도끼가 발견된 연천 전곡리 유적, 우리나라의 구석기학을 확립하는데 기여한 공주 석장리 유적과 석기제작방법과 슴베찌르개의 문화전파를 보여주는 단양 수양개 유적을 주로 언급한다.
단양 수양개 유적의 경우 뭔가 독특함이 있다.
첫번째로 단양읍내에서 수양개 유적까지 가는 길이 일품이다.
도보로 가면 남한강의 정취와 함께 할 수 있고, 차를 타고 가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철도터널과 이끼터널의 조명 연출이 일품이다.
2번째로 수양개 전시관 옆 빛터널과 비밀의 정원도 화려한 조명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단양의 야간관광의 명소이자 구석기 역사를 보여주는 수양개 유적으로 가보자.
단양 수양개 유적 가는 길
단양읍내에서 수양개 유적으로 가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남한강 암벽을 따라 놓여있는 잔도길을 지나 수양개 유적로를 도보로 가는 방법, 단양삼거리에서 만천하스카이워크로 빠지는 길로 간 다음 옛 중앙선 철도 터널들과 이끼터널을 차로 지나가는 방법이다.
나는 옛 중앙선 길을 차로 따라 가는 법을 선택했다. 5번 국도를 잠깐 타고 빠져나와 먼저 볼 수 있는 터널은 바로 상진터널. 터널길이는 짧지만 단차선이기 때문에 터널 건너편 반대 차로에 유의하면서 운전할 필요가 있다. 상진터널을 지나면 요즘 야간 드라이브 명소로 유명한 단양 천주터널이 나온다.
천주터널은 800m가 조금 안 되는 단차선 터널이라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특이한 신호체계로 이뤄져 있다. 일단 터널 입구에 정지선을 밟고 기다린 다음 녹색신호가 들어와야 갈 수 있다(참고로 낮에 지나가면 관리인들의 수신호를 따르면 된다). 밤에 지나가서 그런지 정지선에서 보이는 불빛들이 나를 신비의 터널 안으로 이끄는 것 같다.
푸른 신호를 받고 터널 안을 가니 화려한 무지개 빛 조명이 나를 반겨준다. 조명 위로는 옛날에 기차가 다녔다는 그을음의 흔적도 남아 있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마지막 터널코스인 애곡터널이 나오는데, 신호등이 없으니 반대편에서 차가 오는지 유심히 본 후 색색 조명들을 따라 빠져 나가도록 하자.
▲ 단양 천주터널. 충주댐 완공 이전 중앙선 기차가 지나갔던 터널이다. 원래 단선 터널이라 신호체계가 매우 특이하게 되어 있다. | |
▲ 천주터널 내부. 무지개 빛 조명 곳곳에 그을음이 보인다. | |
애곡터널을 지나 왼편에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동상이 보인다. 그 뒤에 기념비가 있는데, 1972년 태풍 베티로 고립된 시루섬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청년들이 스크럼을 짜서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여, 14시간 사투 끝에 250여 명의 섬주민들이 구조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어린아이 하나가 숨졌는데, 어머니는 주민들이 동요할까 봐 이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긴 곳이다. 오늘날 시루섬은 충주댐 건설로 대다수가 수몰되면서 황무지로 변했다.
기념비를 지나면 또 다른 명물이 하나 보인다. 왕복 2차선 도로 양 끝에 옹벽이 있는데, 옹벽에 이끼들이 가득해서 오늘날 이곳을 이끼터널이라고 부른다. 밤에 이끼터널 입구로 가니 수많은 잔조명들이 별처럼 도로 위를 수놓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과 달리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터널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언덕을 절개하느라 일제가 수많은 마을 주민들을 강제동원 했고, 이로 인해 희생자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이처럼 수양개 유적 가는 길에는 1980년대 충주댐 공사 이전 옛 단양으로 가는 중앙선 선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기차는 역사로 사라지고 도로로 바뀌었지만, 수많은 조명들과 남한강 서편을 따라 가는 이야기들이 옛 중앙선 길을 오늘날 단양 야간 드라이브 명소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역시 옛 중앙선 철로였던 이끼터널. 도로로 바뀌고 나서는 남한강 습기로 인해 옹벽에 이끼가 자라 있다. 옛 낙서가 남아있긴 하지만, 요즘에는 이끼 보호를 위해 낙서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하자. | |
선사시대 단양 이야기
이끼터널을 지나면, 단양의 구석기 시대를 보여주는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이 오른편으로 보인다. 재미있게도 수양개 유적 위치가 단양 적성과 옛 단양 북동편에 있는데, 수 만 년 전 기록을 남기지 못했던 옛 조상들도 사냥감과 물고기들로 가득한 단양 남한강 일대를 눈여겨 봤던 것 같다.
보통 유물전시관은 오후 6시쯤 문을 닫는데, 이곳은 바로 옆에 있는 수양개빛터널 때문에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빛터널을 가기 전 수양개 유적에 어떤 유물이 출토되었는지 궁금해서 전시관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1980년 7월 앞으로 일어날 충주댐 수몰로 인해 이곳 일대에서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조사는 2001년까지 여섯 지구에서 총 8차에 걸쳐 이뤄졌다. 최초로 조사가 이뤄진 수양개 I지구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 유물인 긁개, 밀개, 슴베찌르개, 좀돌날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슴베찌르개는 일본 큐슈와의 것과도 유사성이 있어서 한반도와 큐슈지역 간 구석기 문화 전파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라 상당히 중요하다.
▲ 단양 수양개를 대표하는 슴베찌르개. 석기의 아랫부분을 뾰족하게 가공하여 나무 등에 장착하여 사용한 후기 구석기시대 도구다. 슴베찌르개로 동물을 먼 거리에서 사냥하는 시대가 시작했다. | |
▲ 수양개 바로 앞 남한강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좀돌날. 단양 수양개는 우리나라에서 좀돌날 몸돌이 가장 많이 출토된 지역이기도 하다. 대다수는 셰일, 일부는 흑요석 성분으로 이뤄졌다. | |
또한 I지구 50여 곳에서 석기 제작소가 발견되었는데, 석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복원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I지구는 대다수가 충주댐 완공으로 수몰된 안타까운 역사가 있다. 당시 발굴에 참여한 이융조 교수도 수양개 발굴 40주년을 회고하며, 유물 출토 면적의 10%도 못 건져서 안타깝다는 심정을 드러냈다.
수양개는 구석기 시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II지구 발굴 유적에 대한 전시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총 26기의 원삼국시대의 집터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원삼국시대면 이미 철기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실제로 구석시기대에는 없는 곡식을 보관하는 도자기류, 쇠도끼와 삼지창, 그리고 농경의 상징인 반달돌칼과 곡식을 찌는 시루가 발굴되었다. 그렇다면 단양의 지역 역사는 구석기와 원삼국시대 수양개 유적지에서 시작해 신라 적성을 거쳐 조선시대와 1980년대 이어진 '옛' 단양과 충주댐 완공 이후 '신'단양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 수양개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제작소 축소모형. I지구에서 50곳을 발굴했다. | |
▲ II지구에서 발굴된 철기도구들. II지구에서는 철기도구 뿐만 아니라 원삼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26기의 집터가 발굴되었다. | |
수양개 유적의 또 다른 명소는 바로 수양개빛터널과 비밀의 정원이다. 수양개빛터널도 내가 지나온 세 터널과 마찬가지로 1984년 이설로 인해 35년 넘게 방치되다가 최근 복합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다시 탄생했다. 수많은 색깔의 전구가 환상을 만드는 곳과 좌우 넝쿨 천정 위로 흐르는 형형색색의 선들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 수양개빛터널: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반짝이는 거울방 | |
▲ 수양개빛터널 좌우 넝쿨 위로 흐르는 분홍색 빛 | |
빛터널을 빠져 나오면 나무줄기들에 수놓인 LED조명을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게 된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쉴 수 있는 조명 벤치 뒤로는 토끼, 사슴과 다람쥐들이 함께 하고 있다. 계단을 지나면 드디어 수많은 꽃들로 이뤄진 비밀의 정원을 볼 수 있다.
정원은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원형 모서리 쪽에 보이는 현대무용과 프로포즈상의 모습과 수양개에서 생활했던 구석기인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정원 중앙에는 수양개 유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석기인들이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 정원으로 내려오기 전 보이는 다람쥐들과 빛의자 | |
▲ 수양개빛터널 비밀의 정원. 정원 중앙으로 들어오면 사슴을 잡는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
단양 수양개로 가는 밤길은 화려한 조명들로 가득한 옛 중앙선 터널들로 이뤄져 있다. 충주댐 건설 이전 '옛' 단양으로 가는 단선 철길과 이끼터널들은 터널의 군데군데 새겨진 그을음과 함께 오늘날 야간 드라이브 명소로 거듭났다.
우리나라 구석기를 대표하는 단양 수양개 유적은 50여 곳의 석기제작소, 슴베찌르기, 좀돌날로 시작해 원삼국 철기시대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단양은 어떻게 보면 옛 도읍지를 제외한 한반도 지역의 역사를 대표하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구석기 조상들의 혜안이 충주댐 건설 이전 오늘날 '옛' 단양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