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 거주하는 김원일 박사가 지난달 중순 러시아 불교계의 초청으로 울란우데에 있는 유서 깊은 불교 사찰 '이볼긴스키 다찬' (Иволгинский дацан)을 돌아보고 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으로 나빠진 국내 여론 등을 감안해 방문기를 싣지 못했다. 한국과 러시아 간의 항공편도 지난 2월 말부터 완전히 끊긴 상태다. 다행히 러시아가 국제선 항공편 운항을 재개하고, 모스크바~서울(인천공항) 노선은 아니지만, 이르쿠츠크~서울 노선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울란우데 방문기를 뒤늦게 싣는다/편집자 주
러시아 불교계의 초청으로 '이볼긴스키 사찰'을 둘러보기 위해 울란우데 행 비행기에 올랐다. 울란우데는 유명 관광지 '바이칼 호수'의 동쪽으로 연결되는 부랴티아 자치공화국의 수도다. 인구는 약 40만 명. 거리 곳곳에는 우리와 흡사한 얼굴들이 많아 '몽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실제로 울란우데에는 몽골 제국의 징기스칸에 관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징기스칸이 전투를 치렀거나, 적에 납치된 아내 '보르테'를 급습해 구출해온 역사의 현장 등이 대표적이다. 징기스칸에 앞서 고대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훈족의 발흥지도 울란우데라고 한다. 부랴티아 공화국은 훈족 유물들을 발굴하고, 관련 기념관도 크게 짓고 있다.
울란우데에 있는 체호프 동상과 함께
몽골의 역사가 스민 울란우데는 그러나 '바이칼 호수'의 서쪽 관문인 이르쿠츠크와는 달리, 서울에서 가기가 만만치 않다. 극동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거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중국·몽골 횡단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하바로프스크에서는 열차로 50시간여 걸린다.
울란우데는 도시 자체가 별로 크지 않다. 현지를 갔다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게 큼지막한 (소련 혁명 지도자) 레닌의 두상과 '이볼긴스키' 불교 사찰이다.
이볼긴스키 사찰로 가는 날은 하늘이 무척이나 청명했다. 동행한 지인이 울란우데의 겨울은 매우 춥지만 눈이 내리지 않으면, 햇살은 밝고 따뜻하다고 했다.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도 많다.
울란우데의 겨울 날씨를 보여주는 스마트폰 기온/블로그 캡처
울란우데에서 약 35km 떨어진 이볼긴스키 사찰은 러시아 불교의 중심지이자, 유명한 함보-라마 이티겔로프(Хамбо-ламa Итигэлов, 부랴티야 불교의 최고 라마승)을 모신 곳이다. 여름이면 그의 '불멸의 몸'을 보기 위해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1945년에 세워진 이볼긴스키 사찰내에는 법당들과 도서관, 그리고 러시아에 하나 뿐인 불교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학에는 철학과 티베트 전통 의술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불자는 약 3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러시아정교와 이슬람에 이어 세 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다. 그러나 불교가 러시아땅으로 전래된 것은 아니다. 제정러시아가 불자들이 많은 민족 혹은 지역을 점령했다. 부랴티야 공화국도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가 18세기에 점령한 땅이다. 당시 부랴티야 불교의 수장(라마)은 예카테리나 2세를 전능한 치료의 여신 ‘화이트 타라’가 땅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울란우데의 이볼긴스키 사원 모습
묵고 있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레닌의 두상이 있었다. 부랴티야 공화국의 정부 기관들이 몰려 있는 광장 앞이다. 레닌 두상의 존재는 여러차례 이야기를 들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엄청난 크기다.
레닌 두상이 있는 중앙광장 앞을 지나는 큰 길이 '레닌 거리'다. 미국의 유명 패스트푸드 점이 러시아 주요 도시의 '레닌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데, 울란우데에서도 상당히 큰 КFC가 성업중이다. 모스크바와 달리,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듯했다.
시내 아르바트 거리에는 한식 레스토랑 '김치' 간판도 보인다. 우연히 들른 큰 식료품 가게에서는 한국 과자를 따로 모아놓기도 했다.
울란우데 중앙광장에 있는 레닌 두상
이 곳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호텔 프론트에 걸려 있는 시계다. 러시아의 지방 호텔에는 대개 현지 시간과 모스크바, 베이징, 도쿄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걸려 있는데, 이 곳에는 도쿄 대신 서울 시계가 눈을 사로잡는다. 일본 투숙객보다 한국 투숙객이 많은 탓인지, K-팝 등 한국 문화가 더 널리 알려진 탓인지 궁금하다.
울란우데 시내 풍경, 아래 사진이 개선문
김치 반찬이라고 쓰인 레스토랑
글·사진: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