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山칼럼>
제물보다 정성이 중요하다
이수만(언론인, 한국속기학원원장)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조상을 섬기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왔다. 살림이 궁색한 옛날에도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정마다 큰 부담이었다.기제사뿐 만아니라 설과 추석 명절 차례상과 그리고 묘제 때에는 많은 제물(祭物)을 한 달 전부터 준비하느라 주부들은 걱정을 하고 많은 수고를 한다.
자고로 제사는 가문마다 문중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있어 약간씩 다르다. 지방 쓰는 법도 관직이 없는 남자 조상한테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 하는 집안과 ‘처사부군(處士府君)’ 이라고 하는 집안이 있다. 또 술잔도 맨 앞에 놓는 곳과 맨 뒤에 놓는 집안이 있다.
과일도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 밤, 배, 감)’로 진설(陳設)하는 집안과 ‘조율시이’로 진설하는 집안이 있다. 이것 때문에 다투기도 한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도 마찬가지인데, 예법 관련 옛 문헌에는 없는 표현으로, 상을 차릴 때 음식을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한다. “어느 것은 귀신같이 안다.”고 귀신이 알아서 다 흠향(歆饗)할 것이다.
요즘은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조상이 살아계실 때 즐겨 자셨던 음식을 특별히 준비한다거나, 참석하는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예를 들어서 닭도 삶은 것 보다 후라이드치킨) 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묘사(墓祀)도 옛날엔 추수를 마치고. 떡과 고기 등 제물을 많이 준비해서 산꼭대기까지 지게에 지고 갔으나, 요즘은 많이 간소화되어서 떡과 고기를 생략하고, 황태와 오징어포, 밤 대추 배 사과 과일만 준비하는 문중과 가정도 많이 있다.
그리고 상당수 개별 가정에서는 벌초를 할 때 아주 간단한 제물로 묘제(墓祭)를 대신하기도 한다.특히 즐거워해야 할 설과 추석이 차례상 때문에 주부들이 제물을 준비하느라 고생을 하고 기분을 상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지난 추석 전인 9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성균관이 공개한 표준안에 따르면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炙),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이다. 여기에 더 올린다면 육류, 생선, 떡을 놓을 수 있다. 이렇게 상차림을 하는 것도 가족들이 서로 합의해 결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성균관 측은 “예의 근본정신을 다룬 유학 경전 ‘예기(禮記)’의 ‘악기(樂記)’에 따르면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大禮必簡)”며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차례상에 올릴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김장생 선생의 ‘사계전서’ 제41권 의례문해(疑禮問解)에 밀과나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禮)가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최영갑 위원장은 “명절 때마다 주부들이 ‘명절증후군’과 ‘남녀차별’ 이라는 용어가 난무하는데, 추석 차례상 표준안 발표가 경제적 부담은 물론, 남녀갈등, 세대갈등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따라서 제사나 차례는 각 문중과 집안에서 의논하여 간소하게 제물을 준비하고 집안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예법(禮法)이 될 것이다.
어렸을 때 나의 할머니는 제사 음식을 준비 할 때 많은 정성을 기우리시는 것을 보았다. 양조장에 술을 사러갈 때도 아침 일찍 기다렸다가 맨 먼저 샀고, 과일도 제일 크고 모양이 좋은 것으로 샀으며 절대로 값을 깎지 않았다. 제사 지내는 날에는 겨울에도 찬물에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의 기념일로 좋은 날이다. 특히 설과 추석은 조상과 후손들이 자리를 함께하는 대단히 기쁜 날이다. 죽은 조상들한테도 정성을 쏟는 것을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직접 봄으로써 살아있는 부모님과 어른들께 효도를 해드려야겠다는 효심(孝心)의 산교육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