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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저녁에 부를 노래/시편 4:1-8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89:15, 사9:3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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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주승중목사
1.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시편 4편은 바로 앞의 시편 3편과 함께 쌍둥이 시편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두 시편은 모두가 그 배경이 같은데, 이는 다윗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피난하던 상황에서 쓴 그의 신앙고백이자 노래입니다. 다윗은 먼저 시편 3편에서 자신이 고난의 밤을 지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지켜주심으로 말미암아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됨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래서 흔히 시편 3편은 “아침에 부르는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다윗은 시편 3편에서 아들 압살롬과 그에 동조한 일부 신하들의 쿠데타를 피하여 쫓기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조속한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심으로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됨을 이렇게 감사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 주심이로다”(시 3:5)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시편 3편은 이후에 이스라엘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들에 의해서 자주 불려지곤 하였고, 또한 흔히 아침에 깨어서 읽는 시편이라 하여 “아침에 부르는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다닐 때에 이렇게 시편 3편에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감격을 노래함에 반해서, 오늘 본문인 시편 4편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만이 두려운 밤조차 평안히 맞이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저녁의 찬송시”(4절, 8절 참조), 즉 “저녁에 부르는 노래”로 알려져 있는 시입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한 역경도, 당신이 택한 자를 끝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극복할 수 있음에 대한 확신과, 그에 근거한 신앙의 용기와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시의 결론에서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8절)라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윗이 도무지 평안히 잠자리에 들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노래한 “저녁에 부를 노래”를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2. 몸 말
1) 다윗의 상황
다윗은 지금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들 압살롬과 충성스러웠던 신하들에게 배신을 당하여 피난 가운데 있습니다. 비참하고 황당한 상황을 다윗은 본문 2절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하겠느냐?)
여기 보면 다윗은 지금 자기를 죽이려는 압살롬과 수하의 부하들을 가리켜 “인생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원문에 보면 이 말은 “베니 이쉬”(인간의 아들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보통 사람들(혹은 천민들)을 지칭하는 “베니 아담”(흙의 아들들)이라는 말과 다르게, 권세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이 “인생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압살롬과 그의 부하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무튼 반역자들은 다윗의 영광을 욕되게 만들었습니다. 반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정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을 거역하여, 왕권을 탈취하고자 하였고, 이들의 이러한 반역의 행위는 다윗을 욕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절 말씀은 계속됩니다. “~헛된 일을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그들은 허사를 좋아했습니다. 여기 “허사(리크)”라는 말은 “그릇에 든 것을 비워버리는 행위”, 즉 “어떤 일을 망치는 훼방 행위”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막으려고 애쓰는 인간들의 헛된 도모를 뜻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궤휼”을 구하였습니다.
“궤휼(카잡)”은 “거짓된 것” 또는 “잘못된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러한 말들(2절)을 종합해 볼 때, 다윗은 지금 너무나도 괴로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과 부하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이제 자신의 모든 영광과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이 악한 무리로 인하여 크게 훼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악한 무리들의 거짓으로 인하여 다윗은 커다란 고통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들로부터 하루 종일 도망치던 다윗은 이제 저녁을 맞이하여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가운데 잠자리에 듭니다. 생각해 보면 그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두운 밤이었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고통스러운 밤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이 고통스러운 밤, 다윗의 모습 속에서 마땅히 나아가야 할 삶의 지표를 발견합니다.
2)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의의 하나님께 기도함
무엇보다 먼저 다윗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고통의 밤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1절)
다윗은 지금 너무나도 분하고, 수치스러운 고통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알고 억울함을 풀어주실 수 있는 단 한 분, 바로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 분께 호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부를 때에 단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지 않고, 그 앞에 “내 의의 하나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의의 하나님”, 다윗의 고백 속에는 “하나님께서만이 이 모든 일들을 의롭게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즉 그의 고백 속에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식이 아비를 반역하고, 신하가 왕을 배반하는 불의를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도 의롭게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의롭게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1절).
이 기도를 보면 동사의 시제가 과거로 되어있습니다.
즉 다윗은 지난날 하나님께서 자신이 곤란한 가운데 처할 때마다 구원하여 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구원해주시리라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곤란”이라는 말은 “차르”인데, 본래 “좁은 해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이는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유사한 표현입니다. 곧 이어서 다윗은, 의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하셨다”라고 고백하는데, 이 말은 “히르하베타”라는 말로, 문자적으로 번역하자면 “나를 위해 자리를 넓게 마련해 주셨다”라는 뜻입니다. 즉 고난 가운데 처해 사방에 원수들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지경을 넓게 만드사, 그 고난과 함정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방이 꽉꽉 막혀서 앞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설 수 없는 진퇴양난일 때마다, 건져주시고 나갈 길을 열어 지경을 넓혀 주시던 의의 하나님께서, 이제도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다윗은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확실히 응답하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는 3절에서 원수들을 향하여 선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이 구절에서 “경건한 자”란 다윗 자신입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세우심에 의해 된 것임을 압살롬의 무리들에게 강조함으로써, 저들의 반역 행위를 속히 중지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셔서 세우셨기에, 자기가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할 것인즉, 반역자들의 쿠데타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3절 말씀을 의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나를 억울한 고통 가운데 빠지게 하고, 내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너희 악한 자들아!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나를 택하셨음을 너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부를 때
에 내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속히 돌이켜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언제나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조금도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가운데, 원수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치는 신앙인의 담대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억울한 자리에, 이 절망스러운 자리에, 이 고통스러운 자리에, 하나님은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는 절망의 밤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실망과 좌절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의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루하루 삶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찬 분이 있습니까? 사업을 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한숨짓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의의 하나님,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의인들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는 하나님께 호소하십시오. 우리의 침상이 눈물로 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슬픔의 눈물자국을 기쁨의 눈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2) 분 내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을 것을 결심함
이렇게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낸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의의 하나님께 기도한 다윗은, 한 가지 결심을 합니다. 그것은 억울한 상황,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결코 분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여기서 “떨다”라는 동사는 “라가즈”인데, 이는 “분노하다”, “분개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흔히 너무 분할 때 “치를 떤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떨다”는 말은 “두렵다”는 말이 아니라 “분노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4절은 해석하는데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라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너희”를 흔히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해석하는데,
하나는 압살롬을 비롯한 원수의 세력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다윗을 포함한 일반적인 사람들을 “너희”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를 “원수들”이라고 해석하면, 4절 말씀은 다윗이 원수들에게 “너희들의 범죄에 대하여 분하게 여기며 괴로워하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잠잠히 회개하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어딘지 모르게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다윗이 지금 고통의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고 있는데, 그곳에 있지도 않은 원수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요.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마치 다윗이 원수들을 향하여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다윗이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너희”라는 말은 다윗을 포함한 일반적인 “너희”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상 더욱 바른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4절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나는 어떠한 억울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결코 분을 내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겠다.”
사실 지금 다윗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윗의 괴로움과 고통은 당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이 죽이려고 목에 칼을 들이 대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만일에 저와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가장 보편적인 반응은 아마도 분노와 원망일 것입니다. 누구를 향한 원망이겠습니까? 제일 먼저는 원수들을 향한 분노와 원망이 일어나겠지요.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네가 어떻게 부모에게 이럴 수 있느냐?” 그 다음에는 당연히 저주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 나쁜 놈들을 멸하여 주십시오.” 그러다가 문제 해결이 안 되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에게 분을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어찌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저에게 이런 상황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십니까?”
“도대체 이 억울한 상황을 언제까지 내버려두실 것입니까?”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에게 화를 내고, 결국에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불신하는 죄를 범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다윗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의의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문득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는 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결단코 이 억울한 상황에서도 분을 내지 않겠습니다.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5절에서 이렇게 결심합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않겠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더 나아가서,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아무리 나를 공격하고, 억울하게 만든다 하여도, 나는 그들과 같이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겠으며, 오히려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경우를 당한다 하여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을 신뢰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이 분통터지는 상황 속에서도, 이 가슴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므로, 남은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바로 이러한 신뢰,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바라기는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심령 속에도 이런 귀한 믿음을, 이런 철저한 신뢰를 허락하시사, 삶의 어떠한 역경과 억울함 속에서도 저녁의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원합니다.
(3) 여호와의 얼굴을 들어 비취소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분노함으로 범죄치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저녁의 노래를 부른 다윗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6절)
다윗을 따르고 있던 무리들 가운데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여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6절)라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도대체 자식이 부모를 죽이려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탄식하는 무리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실 그 소리를 들은 다윗의 마음도 일순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고통의 당사자는 다윗이었기에,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기에, 다윗도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는 것을 아시기나 하는 것입니까?”라고 의심하며 탄식하는 소리를 들을 때,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로 잡는데, 그가 의심의 생각을 물리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6절)의 말씀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드릴 때마다 제사장들을 통해서 주어지던 축복의 말씀(축도)이기도 합니다. 즉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아론에게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할 때에 이렇게 하라고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축도가 있는데,
하나는 구약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기도요,
또 하나는 신약에 나오는 바울의 축복기도입니다.
아론의 축복기도는 민수기 6장 24-26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기도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종교개혁 당시 칼빈과 루터가 가장 즐겨하던 축도였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의 축복기도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라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예배드릴 때마다 들어왔던 아론을 통해 주신 축복의 말씀을 상기함으로써, 자신의 의심되며 흔들리는 마음을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가 누구냐고 말하고 있사오니, 이제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확실히 믿기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한번만 얼굴의 빛을 발하시면,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빛 한번 발하시면 어두운 밤은 일순간에 밝은 낮으로 변할 것을 굳게 확신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드시기만 하면, 삶의 어두운 환경이 바뀌고, 고통과 흑암의 세력들이 물러갈 것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 속에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만 빛을 발하시면, 우리 삶 속의 모든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빛난 얼굴을 내게 드시면, 우리 삶과 가정을 둘러싼 모든 흑암의 세력들은 물러갑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일터와 사업에로 돌리시기만 하면 막혔던 것들이 터지고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동안교회 성도들의 삶과 가정과 사업 위에 비추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너무나도 엄청난 고통과 시련 가운데 있는 수많은 탈북자들과 이북의 동토에도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비추사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 이라크의 어린 아이들과 인간의 욕심으로 빚어진 전쟁의 화마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그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얼굴을 드시사 평강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포함하여 모든 어두움과 추함과 더러움이 물러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3) 그 결과는?
(1) 마음의 기쁨을 허락하심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이렇게 믿음으로 기도하였더니, 이제 그의 심령 속에는 기쁨이 넘쳐흐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그 고통의 밤에 다윗이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추수 때에 모든 곡식들을 곡간에 들이고 기뻐함보다 더한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경이 변화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부터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즉 물질이나 세상 권세로 인한 순간적인 기쁨이 아니라,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차고 흘러넘치는 신앙의 기쁨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밤에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세상이 알지 못하고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평안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평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할렐루야!
(2) 평안한 잠을 허락하심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다윗이 이렇게 고난의 밤에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간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이제 평안한 잠을 허락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다윗은 잠잠히 누워 생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도우심과 보호하심의 손길을 확신하게 되고, 그러자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환란 가운데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평안히 누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의 밤에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참된 안식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시편 127:2)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욕심이나 죄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 슬픔으로 평안한 밤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잠 못 이루는 밤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아무런 염려 없이 평안한 잠을 청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특별히 다윗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고난의 밤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평안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번민으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까? 사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들조차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업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로, 재정적인 문제, 진로의 문제 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까? 또 요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그 다음 차례는 북한과의 전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고 있는지 모릅니다.(모 일간지, 2003. 4. 5일자, 모 여대 여론조사, 만약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 20%는 외국으로 피신하겠다. 18%는 미리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모 일간지 사설, 2003. 4. 5일자, 우리나라 20대 젊은이들의 60%가 가능하면 이민을 하겠다고 지적)
정말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처한 이 밤은 얼마나 절망의 밤이었습니까? 그 얼마나 좌절할 수밖에 없는 밤이었습니까? 자식이 애비의 목에 시퍼런 칼날을 갖다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의 손길을 바라보는 가운데, 오히려 주님께서 주시는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귀한 은혜의 잠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나가는 말
이제 한 찬송시에 대한 배경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의 한 고등학교에 엘리자 에드문드 히윗(Eliza Edmunds Hewitt)이라는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에는 성질이 아주 삐뚤어진 문제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히윗 선생님은 그 아이를 바로 잡아보려는 생각에 조용히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아이는 지붕 스레트로 선생님의 등골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말았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공격에 등뼈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히윗 선생님은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어쩌면 평생을 척추가 마비되어 일어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6개월이라는 긴 세월을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히윗 선생님에게는 6개월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학생을 선도하려다 이런 일을 당하였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선생님은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봄이 되어 따뜻한 햇살이 그녀의 방에 비출 때, 밖에 나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담당의사에게 간청을 하여 잠시 공원을 산보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지팡이를 의지해 간신히 잔디밭을 걷다가 문득 오랫동안 기도하지 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따스한 태양 빛과 함께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녀의 마음속 깊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대자연이 다 그녀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고, 따스한 봄 태양도 한없는 미소로 그녀를 맞이하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습니다. 밝고 아름다운 봄의 정취와 따스한 햇볕이 그녀의 마음에 비췸과 동시에,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사랑의 빛줄기는 그녀를 깊은 감동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입술에서 평생 불구의 몸이 되게 한 학생을 용서하는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마음속으로부터 기쁨의 노래와 분노와 실의와 억울함에서 해방되는 평안의 노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때 히윗 선생님은 한 찬송시를 썼는데, 바로 찬송가 48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입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주 함께 하실 때
그 평화 내게 깃들고 주 은혜 꽃피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사랑하는 동안교회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곤고한 삶을 보내셨습니까?
사람들로부터 공격받고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아 괴로우십니까?
혹은 사업일로 어제 밤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그 밤에 기도하십시오. 의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억울하고 분하다 하여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마십시오.
그럴수록 ‘하나님의 얼굴빛을 제게 비추소서.’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먼저 우리 마음속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참 평안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어두움이 변하여 밝은 낮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고, 마귀의 세력이 강해도, 주님께 피하는 자는 평안히 눕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아니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나와 우리 가정에, 남북한과 우리 민족 모두에게, 그리고 전쟁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라크 백성들에게 귀한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