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어린시절의 기억이 제대로 남기 시작한건 1980년대 초부터다. 경제는 발전하던 시기였지만 일반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고 힘들때였다.
어느 날 칼라 TV가 우리집 마루에 설치됐다. 우리 집 식구들은 저녁 밥숟가락 내려놓기 무섭게 매일 밤마다 TV 앞에 모여들었다. 우리는 모두 이 총천연색의 신기한 물건 속에 매일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프로그램인데도 그땐 어찌나 재밌었던지, <9시 뉴스>가 시작작되면 TV 끄고 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야속하게만 들려왔다.
집 앞 골목길은 늘 놀이터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고무줄 놀이 등 별다른 게임도구가 필요없는 놀거리가 무궁무진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대문이 잠겨있는 날이면 옆집 아주머니가 금새 이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아주머니는 떡이며 누룽지며 이런 저런 간식을 내어줬다. 그러면 엄마는 저녁에 고맙다며 옥수수며, 감자 등을 아주머니 집에 보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 옛날 골목은 매일 매일 신기한 일이 펼쳐지는 작은 세상이었다. 2~3명의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하루종일 다양한 삶의 소리가 들렸다. 개인 정보나 층간소음이란 단어 조차 없던 때였다. 한밤 중 앞집에서 부부싸움 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말썽을 피운 아들이 엄마한테 혼나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도 신기한 건 다음날이 되면 부부 싸움한 집도, 엄마한테 혼난 집도 다들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시절의 골목풍경(논골담길)
현재의 묵호항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가슴따뜻한 시절이었지만 그만큼 삶은 고단하고 힘들었다. (달동네에 살지는 않았지만) 버스가 귀할 때라 엄마는 양손 가득 늘 무겁게 장을 보고 골목을 한참이나 걸어와야 했고, 겨울밤이면 새벽에 한번씩 꺼지는 연탄 불 때문에 잠을 설쳐야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한 곳이 따뜻해지면서 또 뻥뚫린 것 같은 아련함이 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준다. 젊었던 부모님과 말썽만 피우던 어린시절의 내가 살던 그 시절.
때론 여행길에서 이런 추억을 마주하기도 한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곳, 동해 묵호동 논골마을이다.
논골마을은 달동네마을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달동네 마을은 달과 가까이 산다는 뜻으로 불리어진 동네다.
지금이야 돈이 많을 수록 30층도 넘는 초고층 아파트에 살지만, 그때만해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살던 마을이다.
논골마을은 1941년 개항해서 활기를 띠던 묵호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져있는 마을이다. 당시는 묵호항이 어시장 뿐만 아니라 무연탄과 시멘트 운송으로 호황을 누렸던 때라, 논골마을 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활기가 넘쳤다.
주민들은 언덕 꼭대기에 생선을 말리는 덕장을 만들어 하루에도 수차례씩 오징어, 명태를 지게나 대야로 날랐다. 몸은 고되었어도 매일매일 들어오는 돈 버는 재미에 행복했을 시절이다. 그래서 늘 생선에서 떨어지는 바닷물로 질펀한 흙길이 만들어져 논골마을이라 불렸다.
우스개소리로 '마누라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못산다'는 말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동해항이 크게 성장했고 묵호항 일대는 급속도로 쇠퇴했다. 어획량까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은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떠났다. 빈집이 늘어났고 소수의 마을 주민들 만이 이곳을 지키게 됐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 동해문화원은 논골마을 벽화사업을 통해 마을의 불씨를 살렸다. 지금은 동해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자리잡으며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리는 인기 여행지가 됐다. 하지만 논골마을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여전히 그 시절의 고단한 삶을 상상해볼 수 있어 마냥 행복한 여행지처럼 느낄 수는 없는 곳이다.
논골담길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풍경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과 아이, 강이지.
묵호항이 쇠락하면서 주민들이 떠나간 동네에 벽화마을이 생겨나 지금은 동해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
옛날 골목담벼락은 늘 견공들의 차지였다
리어카도 들어오기 힘든 좁디 좁은 골목을 하루에도 수차례씩 짐을 싣고 다닌 우리 부모님들. 눈이오면 몇번이나 엉덩방아를 찌으며 이 길을 걸어갔을까.
논골담길은 논골 1, 2, 3길, 등대오름길 네 갈래로 나뉘어져있다. 논골 1길은 과거 도시를 밝혔던 사람들과 그들의 생업이, 2길은 구멍가게 등 지금은 사라진 추억이 벽화에 남아있다. 3길은 당시 억척스럽게 살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등대오름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묵호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테마가 나뉘어져있지만 사실 논골담길에 들어가면 금새 길을 읽고 만다. 좁디 좁은 골목길이 나무뿌리처럼 얽히고 섥혀있어 1길인지 2길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다. 마법상자처럼 골목마다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한쪽으로는 시원한 동해바다를 계속 눈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멋진 야외 카페가 자리하고 게스트하우스가 만들어졌다. 주차하고 한참 구불구불 골목길을 베낭을 메고 걸어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논골담길의 숙소는 성수기에는 예약하기도 힘들정도로 인기다.
고향이 묵호인 소설가 심상대는 <묵호를 아는가>에서 이렇게 묵호를 표현했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로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부두의 적탄장에서 날아오르는 탄분처럼 휘날려. 어떤 이는 바다로, 어떤 이는 멀고 낯선 고장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울렁울렁하고 니글니글한 지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멀리 무덤속으로 떠나갔다.
가끔은 돌아오는 이도 있었다"
그 시절이 유독 그리워지는 여행길이다.
그시절 문방구 가게 아저씨는 학년별 준비물을 모두 알고 있었다
논골마을의 분위기 좋은 카페와 게스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