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요한복음 4장 31-34절
4:31 ἐν τῷ μεταξὺ ἠρώτων αὐτὸν οἱ μαθηταὶ λέγοντες ῥαββί φάγε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4:32 ὁ δὲ εἶπεν αὐτοῖς ἐγὼ βρῶσιν ἔχω φαγεῖν ἣν ὑμεῖς οὐκ οἴδατε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4:33 ἔλεγον οὖν οἱ μαθηταὶ πρὸς ἀλλήλους μή τις ἤνεγκεν αὐτῷ φαγεῖν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4:34 λέγει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ἐμὸν βρῶμά ἐστιν ἵνα ποιήσω τὸ θέλημα τοῦ πέμψαντός με καὶ τελειώσω αὐτοῦ τὸ ἔργον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묵상할 내용: "악행으로서의 음식 제공과 음식 먹음"
-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자의 음식 제공과 음식 먹음
- 신의 나라와 상관없는 자의 음식 제공과 음식 먹음
- 신의 나라와 상관없는 자(동식물)를 위한 음식 제공과 음식 먹음
사람들에게는 먹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렇게 먹은 것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더 좋고 맛있는 음식을 갈망하며 찾아다닌다. 그런 음식들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먹은 것들은 세속적인 성공과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는 에너지로 소비된다. 신이 만드신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는 신과 상관없는 것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신성 모독이다. 사람들은 이것에 관한 죄의식이 없다. 사회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것을 모르는 무지도 죄이다.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끝까지 주님께 묻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기준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주님을 이용하려 들던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가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주님 곁에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요 4:8). 십자가의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주님께서는 소위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양식이 무엇인지 제자들이 알지 못한다고 판결하신다. ‘양식’은 ‘신의 뜻을 행하며 신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요 4:34)이라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그 ‘양식’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이용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허기짐과 목마름과 안정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판결이다. 주님의 판결은 진리이다. 그들은 결국 주님을 버렸다. 그들은 신과 상관없는 세상의 ‘사료’를 먹기 위해 떠나 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무엇에 배고파하고 있는가? 무엇에 허기지고 갈망하는가? 진리에 배고파하기는 하는가? 인간이기는 한가? 세상이 던져주는 ‘사료’에 헐떡이는 짐승은 아닌가? 주님은 사람들이 짐승이 되지 않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회개하라”라고 명령하신다. 세상의 성공을 향해 움직이기 위한 ‘사료’를 먹지 말고 오직 신의 뜻과 신의 나라를 위해 움직이기 위한 ‘양식’을 먹으라고 명령하신다. 주님은 사람들이 신의 나라와 상관없는 세상이 주는 ‘사료’를 거부하기를 원하신다. 그러한 ‘거부’가 세상에서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사람들은 그 길을 갈 것이다. 그 길밖에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