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안네의 일기와 괴벨스의 일기
괴벨스 “유대인은 악마의 화신”… 안네 “인간은 선한 존재”
안네와 괴벨스의 일기
정효진 양영디지털고 역사 교사
김연주 기자 입력 2021.10.06 09:14 조선일보
지난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 ‘안네 프랑크 센터’가 문을 열었어요.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희생자인 안네 프랑크(1929~1945)가 가족과 숨어 살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은신처는 1960년 박물관으로 문을 열어 관광 명소가 됐는데, 이번에 미국에 처음 분원이 생긴 거예요. 이 밖에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등에도 관련 기관들이 있습니다.
안네의 짧은 삶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남긴 ‘일기’ 덕분이에요. 역설적이게도 안네 같은 유대인 탄압에 앞장섰던 ‘나치의 선전 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 역시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남겼습니다. 동시대를 살다 같은 해 세상을 떠난 가해자와 피해자, 그들이 남긴 삶의 기록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까요?
①1934년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독일 베를린에서 연설하는 모습. ②괴벨스(맨 오른쪽)의 가족들이 히틀러(중간)와 함께 찍은 사진. ③괴벨스가 쓴 일기 형식의 자전적 소설‘미하엘’표지. ④안네 프랑크가 13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다이어리와 그곳에 쓴 일기. ⑤1940년 안네의 모습. /위키피디아·anne frank house 홈페이지
◇”죄 없는 사람들이 죽음의 행진을 해”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안네는 유대인 부모 밑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다 1933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유대인 통제를 강화하자 가족들과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겼죠. 이후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져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자 결국 1942년 7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가 근무하던 회사의 별관으로 피신해야 했어요. 안네 가족 등 8명은 16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게 됩니다.
안네는 13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빨간 체크무늬 일기장을 ‘키티(Kitty)’라고 부르며 마치 친구에게 편지 쓰듯 이야기를 썼어요.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내게 참된 친구가 없기 때문”(1942년 6월 20일)이라고 설명해요. 그러면서 엄마와 갈등을 빚은 일부터 함께 은신한 페터 판 펠스에 대한 풋풋하고 로맨틱한 감정 등 여느 10대 소녀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안네는 엄혹했던 나치 정권의 풍경도 묘사합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칭얼대는 어린애들을 데리고 독일군들에게 얻어맞아 비틀거리면서 줄을 지어 걸어가는 것을 창문으로 내다볼 수 있어. 노인이건 어린이건, 임신한 여자건 병자건,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음의 행진을 하게 되는 거야… (중략) 이런 곳에서나마 아무런 박해 없이 살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몰라!”(1942년 11월 19일)
안네 가족은 2년 후 발각되어 강제수용소로 압송됐어요. 안네는 1945년 2월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영양 발진티푸스로 생을 마감했죠. 이후 안네가 남긴 일기는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편집해 출간했어요. 이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을 뿐 아니라 2009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히틀러에게 “반은 신이다” 찬양
괴벨스는 1923년부터 1945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려 29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일기를 남겼어요. 그의 약혼녀 엘제 얀케가 1923년 10월 그에게 일기장을 선물한 게 시작이었죠. 그때부터 괴벨스는 거의 매일 저녁 자신의 심정을 일기장에 풀었어요. 그는 또 일기 형식의 자전적 소설 ‘미하엘’도 출간했어요. 특히 괴벨스가 선전 장관으로 활동했던 1941~1945년 기록은 나치 정권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됐어요. 괴벨스 일기는 소련이 관리해오다 냉전이 끝난 후 서방에 공개됐어요.
괴벨스는 어린 시절 폐렴과 골수염을 앓고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는 바람에 평생 다리를 절었는데, 그는 이런 신체적 열등감을 공부로 만회하려 했어요. 그는 박사 학위까지 따고 작가나 언론인이 되고 싶어했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자 장애 때문에 자신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해 세상을 증오하게 됩니다.
이후 나치당에 입당한 괴벨스는 1925년 7월 술집에서 처음 만난 히틀러에게 매료됐어요. 그는 히틀러에 대해 “이 남자는 누구인가? 반은 평민이고 반은 신이다!”라며 찬양하는 소감을 일기에 남겼죠. 두 번째 만남 후엔 “이 남자는 왕이 되는 데 필요한 덕목을 남김없이 갖추었다”고 썼어요.
이후 괴벨스는 나치의 선전부 장관으로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국가를 총력전 상태에 돌입하도록 부추기는 선봉에 섰어요. 그는 유대인을 ‘악마의 화신’ ‘기생충’ 등으로 부르며 홀로코스트를 합리화했어요. 괴벨스의 선전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2차 세계대전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승리를 확신했다고 합니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다음 날인 1945년 5월 1일 자녀 6명을 살해하고 아내와 함께 권총으로 동반 자살을 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록
안네와 괴벨스의 일기는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기록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요. 안네는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진정 선한 존재”라고 일기에 썼고, 언론인과 유명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안네에게 글쓰기는 희망이자 자기 구원의 방법이었지요. 그녀는 “평범한 여자들처럼 집안일이나 할 뿐 남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인생은 견딜 수 없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 있을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일기(1944년 4월 4일)에 쓴 것처럼, 결국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작가가 됐습니다.
반면 괴벨스는 일기 속에서 언제나 자신을 구구절절 변명하고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을 ‘타락한 세상’ 탓으로 돌렸어요. 괴벨스에게 글쓰기는 잘못된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자기가 한 일을 합리화하는 수단이었고, 사람들은 그 일기를 통해 그를 악한 존재로 기억하게 됐습니다. 한 사람은 글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 했고, 한 사람은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시선을 드러낸 것이지요.
[세 가지 버전의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세 가지 버전이 있어요. 첫째는 1942년 13번째 생일 이틀 뒤인 6월 14일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고, 둘째는 1944년 안네가 일기를 나중에 책으로 출판하려고 다시 고쳐 쓴 거예요. 마지막으로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첫째·둘째 버전에서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을 덜어내고 1947년 출판한 셋째 버전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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