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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기 목사
“11월 30일 토요일 오후였다.”는 말로 시작된 소설이 있는데, 이렇게 시작된 소설은 그 내용을 미리 짐작을 할 수 있다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이 기억납니다. 오늘은 11월 25일입니다. 晩秋 그러니까 아주 늦은 가을입니다. 가을을 가리켜 ‘思索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가을은 인간으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는 말이지요.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새삼스럽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끝없이 높푸른 가을 하늘의 창공을 바라보면서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게 되는 계절이란 뜻입니다. 우리 가곡에는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기러기 울어애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 여름 내내 그 울창하던 나뭇잎들이 어느 사이 빨갛게 또는 노랗게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어 한 잎 두 잎 떨어지다 결국은 모두 지고 말듯이, 우리 인생 또한 너도 가고 나도 가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우리 모두 가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계절이 바로 사색의 계절 가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과 세월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세월은 똑같이 유한하고 빠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빠릅니까? 새 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또한 어떠합니까? 예부터 인생의 짧음을 가리켜 草露人生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마치 풀잎 위의 한 방울 이슬 같다는 뜻입니다.
성경 역시 인생의 짧음을 일깨워 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약 4:14절에 보면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새벽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가도 중천에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이 안개 아닙니까?
이 안개라는 말은 연기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안개나 연기처럼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편 39:4-5에 보면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인생 70년 80년이란 것이 기껏해야 손바닥 넓이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 73:20에 보면 인생을 ‘꿈’에 비유하였고, 시 102:11에 보면 인생을 ‘기울어지 그림자’에 비유하였으며, 욥 14:1-2에 보면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벧전 1:24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하였으며, 시 90:10에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건강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습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인생이란 마치 화살이나 총알처럼 죽음을 향하여 빠르게 날아가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짧다보니 인간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늙지 않고 장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진나라의 그 유명한 ‘始皇帝’는 500명의 동남동녀들을 동방에 있다는 삼신산에 보내어 불로초, 곧 영생 불사초를 구해오도록 하였고, 중국 漢나라의 武帝는 承露盤을 만들어 아침마다 내리는 이슬을 받아먹으면서 영생불사를 꿈꾸었으나, 이들의 소망은 한결같이 헛된 꿈에 불과하고 말았습니다. 늙지 않고 장수하는 인간의 오래된 소망이 요즈음에 와서는 웰빙이란 개념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러나 아무리 웰빙 웰빙하면서 발버둥을 쳐도 100년을 넘겨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이 이렇듯 짧다보니 인생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는 세월이 아까워 짧은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옛 조상들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그 젊어서 놀아보자는 주의가 현대에 와서는 인생을 마음껏 즐겨보자는 주의가 되어서 실컷 먹고 마시고, 바람도 피워보고, 스와핑 클럽 같은 것을 만들어서 쾌락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면서 제멋대로 살지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인간의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짧음을 통감하는 사람들 중에 인생을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각이 있는 인생들은 모두 내일을 준비하면서 살아갑니다. 학자금을 준비하고, 결혼을 준비합니다. 보험을 들어 내일을 준비하고, 저축을 하여 노후를 준비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날 번 것을 그 날 먹고 마시는데 다 써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막보기 인생일 것입니다. 동물들도 추위가 오면 동면 준비를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생이 내일을 후일을 준비할 줄 모른다면 그는 개구리만도 못한 인간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 월동 준비를 할 것입니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추위가 닥치기 전에 월동에 필요한 난방을 비롯해서, 의복 준비, 식량 준비를 합니다. 한국의 초겨울은 김장하는 일이 가정마다 아직도 큰 행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준비 중에 최고의 준비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고,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일생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해서 새 출발 할 때는, 인생의 봄에 해당될 것입니다. 감미로운 사랑이 있고, 행복한 웃음이 있고, 가슴 벅찬 꿈이 있습니다. 세상사는 재미가 있을 때 그 때는 과연 인생의 봄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신혼의 단꿈에 취해서 살수만은 없습니다. 피땀 흘리며 애쓰고 고생해서 집도 마련하고, 논밭도 사야하고, 자녀들 교육도 시켜야 합니다. 이러할 때의 인생의 계절은 퍽이나 힘들고 고단한 여름날입니다. 그러나 애쓰고 고생한 보람으로 살림이 늘어나고 의젓하게 자라난 장성한 자녀들을 바라볼 때는, 풍성한 수확의 꿈에 가슴 부풀어 있는 인생의 가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젊음도 사라지고, 기력도 쇠잔해지고, 눈과 같은 흰머리, 앙상한 나무와 같이 뼈만 남은 노후는, 인생의 겨울에다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던 아내, 혹은 남편도 이 세상을 떠나고, 정다웠던 벗들도 먼저 가고, 홀로 남아 있는 노인들의 생활은,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인생의 겨울인 것입니다.
자연의 겨울은 우리가 그 시기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도 있고, 봄이나 여름에는 눈이 오지 않을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계절엔 봄에도 여름에도 갑자기 겨울이 들이닥치고 죽음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는 누구나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의 순서로 오지만, 갈 때는 그 순서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계절은 아무도 예측을 못합니다. 자연의 봄은 겨울이 지나면 다시 새봄이 돌아오지만, 인생의 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인생의 가을인 노년 시대를 지나면 인생의 겨울인 죽음이 옵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언제 우리 앞에 인생의 겨울이 닥쳐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입니다.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벌써 죽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장의 고동 소리와 힘차게 뛰는 맥박은 우리가 살았다고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지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심장의 고동 소리는 죽음으로 향하는 장송곡’이라고 까지 말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인생은 단 한번밖에 없는 목숨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한 번쯤 연습 삼아 살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인생의 왕복 차표는 발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작가 체호프는 “이미 살아 버린 하나의 인생은 초벌이고, 다른 하나가 정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한 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죽음, 그 다음에 오는 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육체적 죽음과 함께 완전히 멸절해버릴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영혼은 불멸합니다. 인생은 천국에서든지, 지옥에서든지 영원히 살아남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사후 천국과 지옥 두 곳의 세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옥은 어떠한 곳일까요?
성경에 보면 지옥을 가리켜 부르는 여러 가지 말들이 있습니다.
1)무저갱-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곳을 말합니다.
2)옥-일체의 자유가 없습니다. 여행 다니지 못하고, 제사 음식 먹으러 올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지옥이라 하겠습니까?
3)불못-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입니다. 단 5분도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4)영원한 불-영원히 세세 무궁토록 꺼지지 않는 불 못입니다.
일단 이러한 지옥에 가면 어떻게 됩니까?
1)다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느 집이나 비상구가 있고, 어떠한 감옥이라도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올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절대로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형무소에 간 사람도,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출소할 날이 있고, 퇴원할 날이 있지만 지옥에 간 사람은 절대로 다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영원히 그곳에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2)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 곳에서는 불신앙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 믿어 구원받을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3)시간이 계산되지 아니합니다-
만사에 다 때가 있으나, 지옥은 시간을 사용할 수 없는 영원한 처소입니다. 그 곳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고 했습니다.
4)안식이 없습니다-
밤낮 잠시도 쉼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의사도, 부모 형제도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 전혀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아무런 위안도 맛보지 못하고, 아무런 기쁨도 누릴 수 없는 곳입니다.
5)구더기도 죽지 않고, 죽고 싶어도 죽음마저 피하여 달아나는 곳,
그래서 자살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마다 불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6)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곳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진 수천수만 영혼들의 통곡 소리와 비명 때문에, 더욱 공포와 전율에 떨게 되는 곳이 지옥입니다.
이토록 무섭고 두려운 지옥을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미국 텍사스의 돈 많은 목장주가 세계 여행을 하며 영국의 버킹검 궁전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문지기한테 1000불을 주며 이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지? 라고 했습니다. 이때 문지기는 “왕궁에 들어가는 것은 돈 주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초청을 받으면 1불도 없이 들어갈 수 있으나 초청을 받지 아니하면 수만 불을 내어도 못 들어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 씻음 받은 증거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공적이 없어도 들어 갈수 있는 곳입니다.
스코틀랜드 지방에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있었습니다. 간밤에 불어 닥친 폭우와 폭풍으로 철교를 받치던 기둥이 무너져 내린 것을 아침 일찍 한 목동이 지나다 발견 하였습니다. 때마침 멀리서 기차의 기적 소리를 들은 이 목동은 기차가 오는 방향을 향하여 철길을 달려갔습니다. 백 명의 여객을 실은 열차가 달려옵니다. 소년은 옷을 벗어들고 멈추라고 신호하였으나, 기관사는 장난인줄 알고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다가, 그래도 소년이 비키지 않고 계속 달려오므로 기차를 급정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토막이 난 채 죽어있었고, 그 앞에 철교가 끊겨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관사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습니다.
“만일 이 목동이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지옥 사이에 뛰어들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 모두를 구원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고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이 가게 되는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눅 14:17에 보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행복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곳이면서도, 천국에 없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이 없을까요? 천국에는 마귀가 없습니다. 마귀가 없으니 죄가 없고, 죄가 없으니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으니 이별이 없습니다. 질병과 고통이 없고, 가난과 슬픔, 한숨과 눈물이 없습니다. 미움도 없고, 거짓도 없고, 시기와 질투도 없고, 싸움과 분쟁이 없고,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이 없는 나라, 추위도 없고, 더위도 없는 나라, 대신 생명과 평화, 사랑과 행복, 기쁨과 감사만이 넘치는 나라, 그래서 천년이 하루처럼 짧게 느껴지는 나라, 그러한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 천성의 문은 진주 대문으로 되어 있고, 성곽은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과 같은 열두 가지 보석으로 되어 있으며, 천국의 길들은 정금으로 깔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 찬란한 천국에는 또한 생명수 강물이 흐르고,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달마다 12 가지 실과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기화요초 만발하고, 아름다운 새 소리, 천군 천사들의 청아한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리는 곳,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때문에, 해와 달이 필요 없는 곳, 그러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녀를 낳고, 먹고, 자고, 하는 일이야 동물들도 하는 것 아닙니까? 꿈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꿈이고, 깨고 나면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세의 영화는 일장춘몽과도 같습니다. 죽고 나면 그것이 따라 가지 못합니다. 언젠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도 나를 부르신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실 것입니까? 영원이란 시간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어려운 무궁한 기간을 뜻합니다. 희락과 복락만이 가득한 영원무궁한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한 저주와 고통만이 가득한 영원무궁한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이들, 곧 여러분의 부모님, 여러분의 남편,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이태리의 밀라노에는 그 입구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는 성당이 있습니다. 오른편으로 장미 화환 조각이 있는데, 그 밑에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모두 순간적인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왼쪽에는 그 밑에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모두 순간적인 것이다.”라고 적혀있는 가시 십자가 조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 위편에는 “영원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즐거움은 있다가 사라집니다. 휴가는 금방 끝나며, 아이스크림은 금방 녹아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고통과 시련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즐거움과 고통은 이 세상에서 끝날 날이 있습니다.
현세에서의 인생은 초로인생이요, 안개 인생이요, 나그네 인생입니다. 현세에서의 인생은 고락간에, 행불행간에 짧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의 부귀영화를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괴롭고 불행하다고 하여 낙심할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생이 다 짧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세는 영원한 세계이며 무궁한 세계입니다. 천국에서는 영원한 기쁨과 평강을 누릴 것이나, 지옥에서는 영원한 슬픔과 고통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했는데, 세상에서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죽은 후에는 또 영원한 지옥 형벌과 고통을 겪는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반대로 세상에서는 잠시 혹 가난과 질병과 슬픔을 맛보고 살지라도, 천국에서 영원복락을 누리며 살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그러므로 영원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有備無患’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예수를 믿으면 지옥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이 주어집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그리하여 사랑과 평화, 기쁨과 복락만이 충만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