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2-11
잠잠할 수 없는 기쁜 소식 / 오창극 목사
지금 사람들은 복음을 기다리고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고 생명이나 내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대하고도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신자는 하나님의 뜻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 고 지적하였습니다.
지난주일 우리는 사마리아 도성이 전쟁으로 인하여 굶어죽게 되는 상황을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자 가진 돈들도 쓸모가 없었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어버린 체 자식을 서로 죽이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그들의 신앙도 완전히 껍질만 남아서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왕과 장관들조차 말은 하나님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하나님께 대하여는 믿음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지극히 연약한 자라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문 밖으로 쫓겨 나간 문둥병자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안에서 살지도 못하였습니다. 얻어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성주에 사람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엄청나게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성문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였던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병들고 버림받아 쓸모 없던 사람들로 인식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성문 안에 있었던 온갖 부류의 유능한 사람들을 통하여 사건을 일으키시지 않고 성문 어귀에 있었던 네 사람의 문둥병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고전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러므로 스스로 연약하거나 실패한 과거의 죄의식으로 주저앉은 분들에게도 하나님은 일어나서 일하기를 소원하십니다.
2. 이 날은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하는 자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우선 그들이 쓰임 받게 되었던 시작은 그들이 주어진 운명을 그냥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어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우리 스스로 일어서서 지금의 처지를 극복하여 나감에 도전하자 하고 자신들의 운명과 처지에 대하여 떨치고 일어섰을 때에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남은 힘을 다하여 적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흔히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정면돌파(正面突破)>란 말을 씁니다만 그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생과 사를 초월하여 자신들의 몸을 던졌습니다. 적진에 가서 살면 살고 죽이면 죽자는 결단으로 도전하였습니다. 이런 마음과 결단을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저들이 비틀거리며 걷는 그 걸음을 두려워하는 떨리는 걸음걸이 마지못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가는 저들의 발걸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람군대들의 귀에는 수천만 명의 군대와 말발굽소리로 대지를 진동케하는 전차의 탱크소리처럼 들려지게 하였습니다. 거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하여 속삭이는 문둥병자들의 속삭임, 제발 양식을 얻게 해달라는 작은 기도소리를 적군들에게는 엄청난 공격의 환호소리로 들리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처럼 주님을 위하여 결단을 내려야 할 부분이 없으신가요?
주님을 위한 회개의 결단과 결심이 위대한 발걸음이 됩니다. 어제를 떠나는 길은 회개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새로운 출발이요 시작입니다. 그리고 중직자분들께는 교회를 위하여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결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과 가정의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발걸음으로 다시 시작하신다면 그곳에 크신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네 문둥이는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는 각오와 모험을 가지고 아람진영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소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고 주께로 나오면 네 사람의 문둥이들의 경우처럼 행복을 찾게 되고 기쁨의 응답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3. 이 날은 고통 당하는 자들과 함께 누려야 할 영광입니다.
사마리아 성안에서는 나귀를 잡아먹고 자식을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성밖에는 아람나라 군인들이 버리고 달아난 군수물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아람진영으로 찾아갔다가 그 사실을 발견한 문둥이들은 배부르게 먹고 금, 은, 보화를 챙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옳지 않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명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왕하7:9下)
지금 이 시간도 얼마나 많은 우리의 동족들이, 가족들이 저 사마리아 성안에서 굶주림과 절망 속에서 한숨과 탄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까!
새로운 사명을 깨닫기 시작한 이 네 문둥이들은 저 성안에 있는 내 형제, 동포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왕하7:9上)고 말하면서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굶주린 자,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성안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저들은 이 기쁜 소식을 빨리 화급하게 전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기 싫을 때도 있어서 마지못해 억지로 할 때도 있지만 그리고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고전9: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무슨 화를 두려워합니까?
1.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열매 없는 나무처럼 될까봐
만약 문둥병자들이 자기들만 욕심을 내고 어떠한 이유이던지 바로 이 복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양식이 없어 굶어 죽어간 사람들의 피 값을 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겔3:18)"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다"
2. 실제로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여건과 환경으로 전락되는 것이 그 화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하지 않으면, 병들어서야 가야 할 곳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유 있을 때 주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넉넉할 때 우리가 외면한다면 언젠가 그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후회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으로 경계하며 권하라"
그리므로 선교와 전도는 선택사항이 아니고 은사 받은 자만이 아닙니다. 당연한 직무이고 사명입니다.
캐나다 피플스 처치의 목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신앙적인 일과 사업으로 바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이 예배 후, 회의가 끝난 후 한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불과 5분을 쓰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양육하는 것은 생명을 키우는 일입니다. 훈련은 이러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지도자 양성이 목적이 됩니다.
(결론)
그리스도는 풍성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 마음이 허전하고 힘들고 피곤한 것은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를 먹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그 양식을 마음껏 먹어야 하겠습니다.
굶주렸던 문둥병자들이 마음껏 먹고 나서 저 성중에 죽어 가는 동족을 생각하였던 것처럼, 비록 약하고 어려운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은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날은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하는 자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그리고 이날은 고통 당하는 자들과 함께 누려야 할 영광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그 멀고도 험한 고난의 길을 가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다 이루어 드리는 교회와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브니엘교회 오창극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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