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수필>
남원 최명희 혼불문학관을 다녀와서
2023년 고창문협 문학기행은 남원 최명희 혼불문학관이었다.
여기 문학관은 여러 모임에서 여러 번 와본 곳인데, 올 때마다 해설사의 해설을 듣곤 느낌이 달랐는데, 오늘은 혼불 문학관의 관장이며 문인이신 양규창님의 해설을 들었다.
해설의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는 듣는 나를 언제나 새로운 혼불의 세계로 인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함을 상기 시킨다.
혼불문학관은 최명희의 17여 년간의 집필로 완성한 10권의 ‘혼불’이란 대하소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해놓았음에 감사하고, 잊고 있었던 소설의 내용을 새롭게 재조명해주고 있음에 역시 감사한다.
혼불 문학관을 올 때마다 똑같은 느낌이 드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혼불을 집필하면서, 병마에 스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으면
“쓰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라며, 쓰지 않고는 못 배길 혼불의 완성을 위하여 엎드려 울었을 정도로 참고 견뎌야 했던 그녀의 처연한 심정을 생각해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까를 나의 심적 체험으로 받아들여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획했던 6.25 이후까지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ⵈ 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며 51세로 눈을 감는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哀悼)한다.
최명희 혼불10권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조선 말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의 시대상황이나 생활풍습 등의 자료집을 읽는 기분이 매권마다 들 때가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을까! 거기에 더하여 조금도 어색하지 않는 남도 사투리, 우리 말 우리글에 대한 애착과, 소설 속에 녹아 있는 그녀의 삶의 편린(片鱗)들이 그녀를 이해하는 가슴 아린 감동으로 남는다.
천천히 작가가 남긴 말과 흔적들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함을 읽고 보면서, 해설에도 귀를 기울이며 문학관을 돌아본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세기는 것만 같다.”는 그녀의 진심어린 사진 속의 글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먹먹한 가슴과 붉어지는 눈시울을 애써 감춘다.
최명희의 혼불은 내가 태어나는 1943년을 배경으로 끝나지만, 그녀는 해방과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나는 단 한편의 시나 수필을 쓰기 위해 자료 모음을 얼마나 열과 성을 다 하였는지를 반성해본다.
전시된 그녀의 육필 원고지를 세심히 읽어보았다. 긋고 끼워 넣는 한 글자 한 글자가 흘려 쓰거나 몰라보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어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와 같이 새긴 것이리라.
작가 최명희 삶과 죽음ⵈⵈ.을 언 듯 읽으며 이야기(History) 속의 참뜻을 음미해본다.
“거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혼불)는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에서는 처절하리만치 치열한 작가정신에,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리지만 쉰한 살의 나이에 먼저 간 작가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혼불의 배경이 된 소설 속의 장면들의 세밀한 모형들, 읽은 지 오래되어 기억도 희미한 소설의 내용을 하나하나 소생시켜준다.
강모와 효원의 결혼식 장면, 효원이 시집가기 전, 달의 정기를 들이마시던 흡혈정, 베틀, 물레, 반짇고리 등의 전시장면, 연날리기, 마당굿과 텃밭 한쪽에 오줌 누는 여자, 음력 정월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달집에 불을 지르며 노는 장면, 청암댁의 상여 나가는 장면들은 일제 강점기 남원의 몰락해가는 양반가를 지키려는 종부 3대와 하층민 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삶의 애환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섬세한 이야기가 그림으로 펼쳐진다.
또한 그림에는 없지만, 혼불 9권에서 불교와 우리 민속신앙에 대한 비교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펼쳐놓았다. 얼마나 알기 쉽게 도표까지 만들어 설명해 놓았는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찰을 다니다 보면 사찰에 관해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불(佛), 교회에만 십계가 있는 줄 알았다. 오늘은 불교에서 말하는 십계에 대해 적어본다.”
불교의 십계(十界)
1.불(佛)
2.보살(菩薩)-3.연각(緣覺)-4.성문(聲聞)⟷2,3,4를 삼승(三乘)아라하고
5,천⟷이십팔천(二十八天)
6,인간(人間)-7.축생(畜生)
8,아귀(餓鬼)-9.아수라(阿修羅)-10.지옥(地獄)⟷8.9.10을 삼악도(三惡道)라 한다.
민속신앙과 불교의 비교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
제석(帝釋)-사천왕(四天王)-인간(人間)
조부(祖父)-부(父)-본인(本人)
그러면서 작가는 “우리는 하나의 우주로부터 수많은 것을 받고 있으면서도 마치 받지 못함을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 몇 초라도 공기가 없다면 우리는 살지 못하는 미물임에도 권력 재물을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도 해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은 선신과 악신이 동시에 존재함을 느낀다.”고 했다.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란에 작가는 호암상 예술상 시상식장에서
“언어는 정신의 지문입니다. 한나라 한민족의 정체는 모국어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ⵈⵈ 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라고 했다.
그녀가 남긴 가장 맑고 아름답고 향취 그윽한 그녀의 인생을 장식한 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작가는 혼불을 통하여 20세기 후반 한국문단에 큰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이는 한 개인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갔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한 시대의 거대한 자료집이란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내려오면서 청호저수지를 바라본다. 맑은 호숫가에 노란 금계국꽃은 한 많은 청암부인인 듯 외로운데 멀리 산들은, 세월 속에 묻힌 강실과 효원, 거멍굴 사람들의 사연을 품고 호수 속에 묵언수행 중임을 흔연(欣然)히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재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