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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날에 통영 신광사 참배를 하고 노스님에게 안부인사를 여쭙고자 눈꼽만띠고
다행이 스님의 출타하심에 편안하게 텃밭에서 노닐다 갑니다 스님께서 좋아 하시는 통영 김밥 오인분을 먹고 시끌벅적한 중앙 시장통을 지나 통영의 비릿한 바다 내음을 안고
산신할매에게 올릴 멍게빵을 사서 포근한길을 달려 천년의 기운을 탐하고자 청곡사에 도착 합니다
일주문앞에 학연지의 가을이 반겨주고 멋스러움은 도선국사께서도
천년전에 이미 이 뚱이가 올것을 미리 아셧나 봅니다
착한 마음으로 참배 올립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_()_
대웅전 부처님이 아스라히 바라보고계시는데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참배를 합니다
경내에는 수능 마지막주라서 엄청 붐볐는데 사진을 찍는순간에 전부 오디로 가셧는지
가을색이 고요하게 퐁당 빠져 들게하고 속비운 어느 스님처럼 사색에 잠긴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올수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업경전에는 10동자 있었따 하는데 지금은 오디 있는지 알수 없꼬 제석천왕님 대범천왕님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계셧습니다
이승에서 지은죄를 어찌 감하여 주시겟습니까? ........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전설이 서린 청곡사 이야기 입니다
최근에 발견된 청곡사 청동은입사향로에 새겨진 글 내용으로 인해 이성계의 계비였던 신덕왕후의 고향이 청곡사 아래 마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만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말 1380년 이성계가 전라도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있는 동안 왜구들이 서해와 남해에 침입하여 백성들에 많은 폐해를 끼쳤다.
왜구들의 장수중에는 아지발도라는 18세 밖에 되지 않은 장수가 있었는데 몸 전체가 비늘로 감싸고 있어 창칼로는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성계가 무학 대사를 초빙하여 아지발도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는데 무학대사는 먼저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입이 벌어지도록 한 후 이때 입안으로 화살을 쏘아죽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성계가 활로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고 남은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해 하루 종일을 싸웠으나 해가 저물어 달밤에까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왜구들을 완전히 섬멸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 이성계는 넘어가는 달을 붙잡아 달라고 무학 대사에게 청하였다.
이 때 무학대사가 달을 끌어올려 주어 이성계는 왜구의 잔당을 모두 섬멸하고 전쟁을 승리하였는데
이 때 넘어가는 달을 끌어올렸던 곳을 끌 인(引), 달 월(月)자로 인월(引月)이라 하여 지금의 실상사가 있는 지리산 자락의 지명이 되었다.
왜구들을 정벌한 이성계와 무학 대사는 스승인 도선 국사께서 창건하신 청곡사를 참배하기 위해 함양, 산청을 거쳐 월아산 청곡사 아래 마을에 다다랐다.
이때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니 바가지의 물 위에 버들잎 하나를 넣어 주는게 아닌가.
이성계는 화를 버럭 내면서 그 물을 확 버리고 다시 달라고 하자 여인은 또 다시 나뭇잎을 넣어 이성계에게 건네주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이성계가 생각하고 묻기를 “왜 물에 나무 잎을 띄우는가” 라고 묻자 여인은 “먼 길을 급하게 오신지라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까하여 나뭇잎을 불어가며 천천히 마시라고 그리하였습니다.” 라고 답하자 이성계는 참으로 지혜와 미모를 겸비한 이 여인에게 반하여 훗날 왕비로 삼으니 바로 계비 신덕왕후이다.
똑똑하였지만 욕심으로 인해 두 아들을 죽게 만들고 자신마저 죽어서까지 방원에게 처참한 복수를 당했던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조선왕조
개국 이후 고향의 청곡사에 은입사 향로를 만들어 바치고 국태민안과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보위를 잇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地獄餓鬼及傍生 我於他日建道場 지옥아귀급방생 아어타일건도량
이 벽화의 내용을 찾아서 올려 봅니다 一起嗔心受巳身. "단 한 번만 화를 내더라도 뱀의 몸을 받는다." 라는 뜻입니다.
금강산 마하연 부근에 있는 돈도암이라는 암자에 유래된 전설로 어느날 이 암자 마당에 있던 뱀이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아궁이에 타고 남은 재를 자기 몸에 묻혀 다시 마당으로 나와 글씨를 썼는데
그 내용이 '一起嗔心受巳身' 입니다.
뱀의 전생은 원래 스님이었답니다. 어느날 스님이 몸이 아파 누워있는데 바람에 문이 확 닫히면서 문틈에 발이 끼었고, 그로인해 스님은 단 한 번 화를 냈는데 그것이 과보가 되어 뱀의 몸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화는 내 마음속에서 지금 존재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거부하거나 저항할 때 생겨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진과 홍수, 화재와 폭풍이 일어나서 생명과 재산을 잃는다 해도 지구나 물, 불, 공기에 화를 내지 않지만, 마음을 가진 존재를 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분노나 화는 상대를 공격하거나 상처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인정해 달라,' '알아 달라,' 는 애타는 외침이자, '내 마음을채워달라,' '내 뜻대로 해달라,' 는 안타까운 도움의 요청이기도하고, 아이가 젖을 달라고 우는 것과 어른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은 정서적으로 같다고 심리학자나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화는 화를 내지 않는 너그러움에 의해서만 파괴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대의 이기적인 모습이 못 마땅하게 보이면 이는 바로 내가 이기적이기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바로 보지 못 함인가요?
부처님께서는 마땅히 안팎의 心亂과 시끄러움을 떠나 혼자 한가한 곳에 있어야 한다. 조용하고 한가한 곳에 있는 사람은 帝釋天도 공경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과 따르는 사람들을 버리고, 비고 고요한 곳에 홀로 거처하면서 괴로움의 근본을 滅하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만일 무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리로부터 괴로움을 받는다.
마치 큰 나무에 많은 새가 모여 앉으면 그 가지가 부러질 근심이 있는 것과 같다.
세간 일에 얽매이고 집착하여 여러가지 괴로움에 빠지는 것은 마치 늙은 코끼리가 진흙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을 '멀리 떠남(遠離)'이라 한다.
홍도비구는 강원도 희양군 금강산 돈도암(頓道庵)이라는 암자에서 여러 해를 독경과 염불과 참선을 하여서 곧 부처가 될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병이 들어 병석에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돈도암에서 혼자 외롭고 고독하게 지내다가 속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소나무밑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는데 모진 바람이 불어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벗어둔 옷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삼세제불도 소용이 없고 팔부신장도 믿을 것이 없구나. 나와 같이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도 틀린 일이지만 바람까지 불어서 나를 괴롭게 하니 이래 가지고 무슨 불교에 영험이 있다고 할 것이냐."
이렇게 삼보를 비방하고 팔부신장을 욕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밤에 토지신(土地神) 꿈에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네가 중노릇을 하고 공부를 하여도 헛수고를 하였다. 불자는 자비로써 옷을 삼으라고 하였는데 그까짓 병을 좀 앓고 바람이 좀 불었다고 하여 진심을 일으키니 그래 가지고 무슨 공부를 하였다고 할 것이냐.
부처님도 정업(定業)은 면하지 못하고 과보를 받으셨거든 네까짓 초심 비구일까 보냐. 네가 병이 난 것도 과거의 업보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일으켜 팔부신장과 도량신을 불안하게 하니 그게 무슨 체통이냐.?"
이렇게 꾸짖으며 나무라더니 그에게 구렁이 껍데기를 씌웠습니다. 꿈을 깨고 보니 정신은 똑똑한데 몸은 이미 구렁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할 수없이 돌 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 수행승 한 분이 돈도암에 갔더니 구렁이 한 마리가 마당에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 스님은 깜짝 놀라고도 불쌍한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뱀의 과보를 받았구나."
그러면서 '나무 대방관불화엄경'을 세 번 들려 주고 화엄경 요체를 일러주었다.
이와 같은 화엄경의 요체를 듣고 구렁이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꼬리를 아궁이에 넣어 재를 묻혀 다음과 같은 글을 땅바닥에 적었다.
"행봉불법득인신(幸逢佛法得人身) 다행히 불법을 만나 사람이 되어서
유유인심소작인(惟由人心所作因) 오직 미음으로 지어 이루어졌소
갱불평심기진심(更不平心起瞋心) 다시 진심은 아니 내려 하오
이미성서로진정(以尾成書露眞情)꼬리로 글을 써서 진정을 사뢰노니
구중무진토묘향(口中無瞋吐妙香) 임 가운데 고운 말이 미묘한 향이로다.
무희무진시진상(無喜無瞋是眞常) 기쁨도 성냄도 없으면 참 도리인가 하오." 이 글을 보고 찾아 온 객 스님이 깜짝 놀라서 구렁이에게 세 번 절하였다.
진심은 마치 흙을 바람을 향해 던지는 것과 같다 고 하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데 흙먼지를 던지면 그 먼지는 당연히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옵니다.
진심을 내는 순간 상대방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진심은 입에 피를 담고 향해 뿌리는 것과 같다.
피를 물고 남을 향해 뿌리는 것은 상대방의 몸에 닿기 전에 이미 자신의 입이 더러운 피로 가득 차게 된다.
진심을 남에게 표현하는 것은 이미 진심을 통해 깜깜한 먹구름이 뒤덮이게 되는 것이다.
먼지나 피로 표현되는 것은 진심의 해독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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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는 설화몇편을 사진을 보면서 읽어내렸습니다.
모든 화는 자기자신에게 있다는걸 공부했습니다.
신덕왕후의 욕심으로 자식을
죽이고 자기도 방원에게 복수를 당하고...ㅠ ㅠ
부처님께 기도올린 공덕이
사라졌어요.
탐 진 치 3독이 위험해요
저는 뱀을 보면 징그럽다고 않고 놀라지말고 대방광 불화엄경 대방광 불화엄경 대방광 불화엄경 이라고
염불 해주고 발보리심 발보리심 발보리심 이렇게 념해줍니다.
종각에 청사자위에 법고와 용얼굴을한 고기 몽뚱이와 꼬리도 멋쪄요.
그리고 업경전의 10동자중 보물로 지정된 2동자만이 남았네요.
치마를 입으신 산신할매도 참배하고요. 경남지방쪽으로 산신할매가
계시는가 봅니다. 어느 누구가 할매앞에 소주도 갖다 드렸네요.ㅎㅎ
술한잔 드시고 기분좋아하실라나??
명부전 시왕님들의 수염이 아주 특이하게 힘이있어보이고
젊어보입니다.
가을이 금빛으로 최대절정을 이루는 월아산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여행을 하였습니다. _()_
역쉬 한번 보기만해도 탁치며
알아 차림이 있어야 한다카드만
욕심
화를 잘다스려야 하는것이
이곳 청곡사에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용천 저도 이번에 사소한일로ㅠ ㅠ 화내지 말아야해요
화 냈다가 된통당했는데
미안타카고 뒷말안했더니 또 다시 따져야한다고 어름장놓타가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스르르 없어졌어요
십겁했어유
한수 배웠답니다.
@월광화 마져유
아직까정 수행자가 아니어서 그화를 참을수는 없지만
화를 따라댕기면서 노닐지 않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어찌 화가나는데 화를 안낼수 있남요 그건 반피나 가능하지요
@용천 맞아요 알아차리고
가만히 있을줄안다는게
기쁨으로 느껴집니다-()-
금빛단풍이 아름다운 월아산 청곡사 부처님전에 경건히 참배하신 용천님
감사합니다.
인왕상(仁王像)의 부드러우신 눈길과 손으로 지켜주실거라 믿습니다._()_나무아미타불.....
인왕상에 옆으로 드리우진 나무는 광배를 뜻합니다.
그전에 동화산 박물관에 봉사할때 인왕상을 똑똑히 잘 봐 두었거덩요.
@월광화 ㅋㅋㅋ
그라니 배워야 한다니깐요
이 업경전에 오고 가는 무늬만 불자를
잡아 냅니다
@용천 불법난득 이라는 말이 새 느껴집니다.
미신이 불법인줄 알고 있으니
안타까워요.
그래서 주위에 아는만큼 이야기해주고 한답니다. _()_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월광화 그건 부처님시대에서나 지금 어디서나 볼수 있습니다
다만 점처적으로 부처님세계가 청정수 같음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불법을 배워 나아감이지요
신광사 입구의 못에 비친 푸른 하늘과 단풍이 매우 아름다워요~~
또 재미난 이야기와 좋은 말씀....참으로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무아를 깨닫기도 쉽지 않지만, 무아의 삶을 실천하기는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어떤 억울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닥쳐도 짜증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를 서원해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 () ~~
흐미~
스님 이사진은 전부 진주 청곡사 사진 입니다
신광사는 통영 시청 부근 주택가에 자리 하고 있는 곳이라
사진은 없습니다 노스님 근력이 아직까정 좋으셔서
거제 국화 전시회 가셧나 봅니다 저희도 지나가면서
가볼까 했는데 갔었뜨라면 상봉했을낀데...
텅빈 절에 동지기도 준비만 하고 왔습니다
@용천 그렇군요***^^***
진주의 천년고찰 청곡사가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월아산 청곡사의 전경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천년 고찰입니다
한번 시간을 내어보시면
사진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 올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