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귀 더 랑덱스 리지 등반의 가장 큰 묘미는 몽블랑산군의 멋진 파노라마를 보며 오르는 즐거움이다. 오른편에 몽블랑 정상 능선이 귀테까지 이어져 있고, 중앙은 에귀디미디와 에귀디프랑 침봉들, 왼쪽의 사다리 모양이 그랑드조라스 북벽, 왼편 침봉이 드류와 아르장티에르산군이다. 벽 아래로 샤모니 시내가 보인다.
늑대는 철저한 일부일처제로 가족을 이루고 떼를 지어 집단생활을 하는 야생 동물이다. 늑대들은 계급에 따른 질서를 철저히 지키며 살기 때문에 늑대의 삶이 최근 우리 인간 사회 생활의 리더십과 비교되기도 한다.
‘외로운 늑대(lone wolf)’라는 놈이 있다. 보통의 늑대 무리(wolf pack)와는 별도로 혼자 사는 늑대로 무리에서 쫓겨났거나 부모 품을 떠나 자신만의 무리를 가지기 위해 새 그룹을 찾는 ‘튀는 늑대’다. 리더가 되고 싶지만 자신이 속한 무리의 대장에게 도전해 리더가 되기보다는 무리를 떠나 새로운 패거리를 만들고 거기서 대장이 되고 싶어 하는 놈이다.
외톨이 늑대들은 무리에 속한 일반 늑대들보다 훨씬 강하고 사납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무리 사냥을 하는 늑대들에 비하면 아주 어렵고 열악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 ‘외로운 늑대’라는 말이 요즘은 새로운 의미로 쓰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특정조직이나 이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개인적 반감을 이유로 테러를 벌이는 이들을 ‘외로운 늑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폐쇄적인 반항아 외로운 늑대들은 외톨이가 되어 자신만의 근거지에서 은둔하다가 본인의 생각과 의지를 사회에 직접 전달한다며 끔찍한 사고를 친다.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은 그만큼 비타협적이고, 그들의 내면에는 사회적 부적응에 대한 억울함이나 도덕적 분노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극우적 성향을 띤 테러리스트를 지칭했던 이 ‘외로운 늑대’들이 알프스에도 있다. 숨다시피 30년간 살고 있다니 조금은 늙은 외로운 늑대인 것 같지만 매우 위험하다.
- ▲ 긴장된 표정으로 등반하는 이석호씨.
이 외로운 늑대의 특징은 한국인들만 노리며, 산악인만 잡으려 하고, 그것도 클라이머만 사냥감으로 삼는다. 그렇게 잡힌 사냥감이 근 30년 전에는 오디캠프의 최영규 사장이었고 알프스 3대 북벽을 하산 루트로라도 오르자고 꼬드겨 줄을 묶었다. 그후 늑대는 사냥감을 여러 명 잡기 위해 자신의 이동마차에 계절별로 여러 등반 장비 몇 인분씩 싣고 다니곤 했다. 몇 명이건 보이면 다 잡으려고 말이다.
유럽 아웃도어 전시회에 아무런 장비 없이 출장 온 중앙대 산악부 출신 남선우와 최창학 둘을 꼬드겨 4,000m 위로 끌고 올라가 야영시키고 4,000m봉 등반을 하며 알프스의 4,000m 82좌를 하라고 꼬셔보았다. 코오롱등산학교 강사인 오호근을 꾀어 돌로미테와 알프스를 수없이 등반하고 국내에서 스네이크를 판매하던 스노우라인 최진홍 사장을 꼬드겨 출장 후 1주일 이상을 스네이크 옷을 테스트한다며 출장자 전원과 여러 벽을 등반했다.
넬슨스포츠 정호진 사장에게는 산악 스키 등반하자고 바람을 넣고는 샤모니 포인트 라슈날 믹스를 스키로 접근해서 프렌드도 없이 등반하고 몽탕베르에서 마지막 기차를 놓쳐 어두운 밤에 둘이 다 크레바스에 빠지며 자정이 되어 스키를 배낭에 메고 내려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라스포르티바를 수입하는 심수봉 사장과 한국 알파인 등반사의 한 장을 쓰고 있는 문성욱을 몇 번 바람을 넣어 등반하기도 하고, 금년에는 프랑스 황금 피켈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안치영 등 최고의 산쟁이를 사냥감으로 삼는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마운틴 하드웨어와 마무트로 신화를 만들었던, 하얗고 곱상한 얼굴의 이석호 사장을 꼬드기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주변에 항상 여성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던 그가 혼자 유럽 여러 전시장에 나타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외로운 늑대 한 마리로 보인 이 사장을 빨리 접수하기로 했다. 그가 전시장을 떠나 샤모니에 나타나자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접수, 사냥, 성공. 견적도 내지 않고 작업 걸어서 단 한 번에 성공했다.
- ▲ 1 왼편으로 횡단해야 하는 구간으로 여기를 돌면 정상 벽 아래 크랙이다. 2 필자의 그림자가 보이는 곳으로 7~8m를 내려가서 정면에 보이는 칸테를 올라야 정상 리지에 도착한다.
이런 식으로 여자를 꼬셨다면 외로운 늑대 한 마리도 분명 국내 존재하는 한국 산악계의 4대 카사노바에 들어갔을 텐데. 평생 단 한 번 6년간 연예로 결혼한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청년 시절 매주 말이면 인수봉에서 비박하며 시내 불빛을 내려다보면서 남녀들이 영화관이다 데이트다 하는 것을 갈 곳이 없어 헤매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얕보며 지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술, 담배, 놀음은 안 하겠다고 환갑이 다 되도록 거부하고 살던 늑대이지만 30년간 이탈리아에 살며 지나가는 손님 중 등반을 같이 할 한국인 파트너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바로 알프스 산에 사는 외로운 늑대의 유일한 생존법이다.
알프스 명봉 조망대 ‘에귀 더 랑덱스’ 남동릉 등반
“한 탕 하셔야지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석호 사장에게 접대 바위를 한다. 샤모니 시내에서 2km 거리의 프레제르 스키 리프트(Flegere lift : 여름철 티켓 15유로)를 타고 올라 중간 역 앙덱스(Index)에서 내리면 바로 왼쪽 삼각형 바위의 공제선에 보이는 멋진 선이 바로 샤모니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최고의 리지 등반 선이며, 10~15분 걸어 오르면 바위 뿌리에 도착한다. 최고의 트레킹 코스인 락블랑으로 가는 사람들은 반대편인 왼쪽으로 가면 된다.
- ▲ 우리 옆을 가이드가 2명의 손님을 데리고 등반했다.
- ▲ 정상 크랙은 매우 쉬운 편이나 직벽이고 30m 거리로 길어 밑에서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에귀 더 랑덱스 (Aiguille de L'Index)는 이미 몇 번 등반했던 루트인지라 이 사장이 몸을 풀기에 적당했다. 샤모니의 라 프라즈(La Praz)산군에 속해 암질 또한 매우 단단하고 좋다. 특히 1913년 베님 알구솔(Benim Argussol)과 드메종( J. DeDemesme)이 초등한 남동 리지는 해를 보고 등반하며 경치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좋다. 몽블랑과 그랑드조라스, 드류와 에귀디미디 침봉들과 키를 같이하며 오르는 즐거움은 그저 둘이 오르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다.
이석호 사장에게 선등을 뺏길세라 얼른 로프를 잡아 벨트에 묶는다. 이 사장이 새로운 늑대 강자로 자라면 안 된다고 생각하듯이.
제1피치(4c). 디에드르형 크랙으로 쉬운 편이지만 한 동작이 약간 애매하다. 디에드르를 피하고 싶으면 접근로에서 바로 오른편으로 붙어 두 번째 마디로 갈 수 있으나 확보점 설치가 모호하다. 약 40m 지점을 지나 왼쪽으로 두 번째 마디에 오를 수 있지만 더욱 위험하다. 볼트 등 확보물이 없고 프렌드도 겨우 한두 개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2피치(4a). 오른쪽 튀어나온 벽으로 오르면 고도감이 금방 느껴지고 디에드르로 오르면 시야가 환하게 트여 눈이 즐거워진다. 태양이 눈부시며 눈보다 하얀 몽블랑이 뒤에서 노래한다. 허리벨트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퀵드로를 단단히 박혀 있는 볼트에 걸고 거친 화강암의 홀드와 크랙을 잡아당기며 쉬운 루트를 즐기며 오르는 맛은 너무도 즐겁다.
제3피치(4b). 오른쪽으로 10m 정도 나간 다음 직등한다. 긴 슬링 하나로 로프가 잘 빠져 나가게 하니 마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도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