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일제 간도 조선인대학살의 표적 <항일마을 및 항일학교 명단>
1920년 10월 21일에서 26일까지 간도에서 우리 독립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104년 전 오늘 26일은 고동하곡전투를 끝으로 독립군연합부대나 북로군정서부대가 북쪽 밀산으로 집결하기 위해 화룡 고산지대를 떠남으로 전투를 종결한 날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아 있을 청산리전투는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 부근과 완류구 북쪽 산 일대와 고동하강 일대에서 벌어진 대소 10여 차례에 걸쳐 있었던 전투로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겼으며 이로서 중국 전체에 조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봉오동전투 이후로 일본군은 조선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는 조선인 마을들, 학교와 교회 또는 종교집회 장소를 원천적으로 토벌•파괴하여 독립군의 뿌리를 뽑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간도에 들어왔다.
그들은 간도침투와 함께 3개의 지대로 나누어 화룡현, 연길현, 왕청현, 훈춘현의 표적이 된 조선인 마을에 들어가 약탈과 방화, 학살과 체포를 시작하였다.
일본군은 연변각지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총영사관과 분관, 경찰서에게 항일무장부대, 항일의식을 가진 조선인마을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았다. 그들은 간도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만든 <항일조선인 마을 및 학교에 대한 조사표>에 나오는 마을들을 토벌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1921년 4월 까지 조선인마을을 지속적으로 토벌하였다.
간도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만든 <항일한인 마을 및 학교에 대한 조사표>에 의하면 토벌의 대상이 된 항일마을은 아래와 같다.
<항일마을>
연길현 안에는 이도구 어랑촌, 이도구 시장 및 수남촌, 장인강 보이동, 세린하 회막동 부근, 유수하, 묘구 일대, 차조구, 동불사 북구, 태평구, 팔도구 부근 일대에 있는 구송허(구수하), 광제촌, 연집강, 와룡동, 소영자, 의란구, 하마탕, 북삼차구, 용정촌 신촌, 화전자, 화령촌(화련리), 수심포 등 21개의 마을 내지는 지역이 있다.
화룡현 안에는 상하광포, 유동 부근, 청산리, 청파호, 이수구, 장재촌, 용암촌, 안방촌, 팔도하자 남쪽에 있는 장동, 송전 장하촌, 걸만동 등 11개 마을내지는 지역이 있다.
왕청현 안에는 소황구, 유수하, 대감자, 흑웅동, 신흥평, 상석현, 덕원리, 서대파, 봉오동, 합수평, 라자구일대 등 11개의 마을 내지는 지역이 있다.
훈춘현의 일제가 작성한 항일마을 명단을 찾지 못했으나 캐나다장로교 교회가 있는 숭례향의 전선촌, 소홍기하, 연통라자, 춘화향의 남별리, 노지구, 사도구, 마적달, 서북구, 용지향의 삼도구, 일송정, 두도구, 송전동, 장성촌, 신풍, 사소봉, 차대인구, 덕혜향의 대황구, 북구, 청수동, 중구, 동강자, 라권구 경신향의 금당촌, 옥천동, 서가산, 포은동, 구사평 그리고 수신향의 현성 서문 밖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8개 마을 내지는 지역이 있다.
항일학교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항일학교>
연길현에는 돈향학교(천주교), 흥동학교(간장암, 캐나다장로회), 배영학교(1919년 10월 교내 맹호단 조직됨), 사립영신학교(캐나다장로회), 사립삼성학교(캐나다장로회), 흥동학교(장흥동, 캐나다장로회), 진동학교(신흥학교, 캐나다장로회), 보진학교(장은평, 이도구, 캐나다장로회), 명신학교(캐나다장로회), 경애학교(평강수남사 대오도구, 항일학교) 사립숭신학교(구세동, 캐나다장로회), 숭례향 사립제1소학교(차동, 항일학교), 숭례향 사립제2소학교(대명월구, 항일학교), 숭례향 사립제3소학교(소명월구, 항일학교), 숭례향 사립제4소학교(용흥동, 항일학교), 숭례향 사립제5소학교(유수하, 항일학교) 등 16개의 학교가 있었다. 16개 중 8개가 캐나다장로회 산하의 학교다.
화룡현에는 명동예수학교(용암촌, 캐나다장로회), 사립명동녀학교(용암촌. 캐나다장로회), 덕흥학교(천주교), 영동학교, 송동학교(송전동), 창동학교(용지사 장동, 캐나다장로회), 광동학교(캐나다장로회), 구호학교(개태사, 캐나다장로회), 정동학교(자동, 캐나다장로회), 영성학교(목조동, 캐나다장로회), 화성학교(걸만동 삼동, 캐나다장로회), 원동학교(화룡사 칠도구 어구, 항일학교, 캐나다장로회), 흥동학교(화룡사 칠도구 서동, 캐나다장로회), 용신학교(상리사 이천포, 항일학교, 캐나다장로회), 양성학교(영화사 강성동, 항일학교, 캐나다장로회), 학성학교(송언동, 대종교), 덕성학교(광포 남양동, 캐나다장로회), 청일학교(삼도구 청파호, 대종교), 동일학교(이도구 어랑촌, 대종교) 등 19개의 학교가 있었다.
19개중 13개가 캐나다장로회 산하의 학교다.
왕청현에는 사립명동학교(왕청 덕원리, 대종교), 사립원동학교(대황어구, 대종교), 사립고소학당(대감자 용암촌, 대종교), 의흥학교(삼도하), 사립창동학교(서대파, 삼차도, 대종교) 등 5개의 학교가 있었다.
훈춘현의 일제가 작성한 배일학교 명단을 구하지 못하였다. 양봉송은 ⌜훈춘조선족발전사⌟ 75쪽에서 경신참변기간에 19개의 학교가 소실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19개 학교는 대부분이 전도와 교육을 겸해서 독립운동을 별인 황병길, 이명순, 오병묵, 훈춘한민회를 세운 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당시 불에 탄 학교는 숭신학교(금당촌, 캐나다장로회), 전선촌(캐나다장로회), 진명학교, 북일학교(캐나다장로회), 신풍학교(캐나다장로회), 남별리학교(캐나다장로회), 동명학교(캐나다장로회) 등이 있고 훈춘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한 학교에는 광동학교, 북일중학, 동명학교, 영생학교, 흑정자학교 등이 있다. (양봉송이 19개 학교라고 기록하였지만 이름은 12개만 나온다.) 12개 중에 8개의 학교가 캐나다장로회 산하의 학교다
당시 <독립신문>에 발표된 연길, 화룡, 왕청, 훈춘현의 소실된 학교 수가 59개이나 이 숫자는 연구가 진행되면 바꾸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 한국의 독립운동사 기록에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데 앞장을 섰던 캐나다장로회 산하에 있었던 <간도국민회> 그리고 <캐나다장로회 교회>들의 공로와 업적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19년 북간도 인구가 43만 1,198명일 때 캐나다장로회의 세례를 받은 교인들 수가 8천여 명이 넘었다. 그러나 신입교인들을 포함하면 그 숫자가 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당시 북간도에서 1만 명이 넘는 규모의 단체는 없었다. 이 막강한 수의 교인들이 <간도국민회>라는 무장투쟁을 불사하는 독립운동단체를 만들어서 독립군의 연합을 주도하며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독립운동단체를 지원하였다. 간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일본에게 <간도국민회>는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간도국민회>의 모체가 되는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있는 조선인 마을들, 특별히 캐나다교회가 있는 마을들을 초토화 시키고자 명단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은밀히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세계적인 여론을 몰아서 중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간도에 침투하여 조선인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
2024년 10월 26일 자시
우담초라하니
재정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