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성령강림절후 열여덟 번째 주일예배
성경: 행 11:19-30
제목 : 안디옥교회와 바울의 복음 전도 (김동섭 목사)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주님의 최고 명령인 행 1:8절 말씀이 성취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8장부터 12장은 지리적으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 사마리아, 수리아 안디옥으로 전파되고,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전하던 복음이 순수 이방인에게로 전해지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복음이 이방으로 전해지는 데 전진기지 역할을 한 안디옥 교회와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우리(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교회는 순교자의 희생과 무명의 수많은 사람들의 복음 전파로 세워졌습니다.
본문 19절에 ‘그 때에’는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의 복음 전파를 예루살렘교회에 보고하는 11장 전반부를 말합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박해로 스데반이 순교한 후, 베니게(레바논), 구브로(키프로스), 수리아 안디옥 등지로 흩어졌습니다. 여러 지방으로 흩어진 수많은 주의 제자들은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순수 헬라인 고넬료 가정에 복음이 허락된 것을 본 그들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리아 안디옥은 로마가 지배하는 수리아 지방의 수도로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전 3세기에 셀류쿠스 왕조는 수리아지방에 여러 개의 안디옥을 건설했는데, 비시디아 안디옥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번성한 수리아 안디옥에 이방인 최초 교회를 세우시고 이방 복음 전파의 전진기지로 삼으셨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제자들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의 손(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주님은 힘 있고,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뜻을 따르는 주의 제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2. 교회(우리)는 지속적인 양육과 훈련을 통해서 성장하고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안디옥의 복음 전파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고,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고 있던 사울을 찾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이제 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안디옥 교인들을 위하여 헬라 문화에 익숙한 구브로 사람 바나바와 다소 사람 사울을 택하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일 년간 머무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 부활과 성령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와 장래에 성취될 일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계속하여 권면하였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온 마음을 다하여 주 예수님과 연합에 힘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한 때의 감정이나, 열정으로 주를 위해 힘쓸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결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들처럼 부단한 연습과 기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죽음이 임박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1-4)
디모데가 믿음이 약해서 권면한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1차 전도할 때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 후 10년 동안이나 바울과 함께 2, 3차 전도여행을 함께 한 훈련된 믿음의 군사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의 잠깐의 선행이나, 생활 태도, 일회성 회개나 이벤트 같은 예배를 보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유대인들과 다른 안디옥교회 사람들의 행태를 보고 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유대교인들과 구분 짓기 위한 ‘그리스도인’ 이란 이름이 점점 존경과 칭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웃 사람들이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존경과 칭찬의 의미로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때입니다.
3. 교회(우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교회(이웃)를 위해 존재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흉년을 당한 유대 예루살렘교회 형제들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부조합니다.(28,29) 안디옥교회뿐만 아니라, 마게도냐의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아가야의 고린도교회도 환난의 시련 가운데 풍성한 연보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8:1,2,14)
교회(우리)는 자신을 위해,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움 받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어려운 교회(이웃)들을 위해 도울 때 교회의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께 값없이 받은 생명수를 베풀어야 합니다.(계 22:17).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야 합니다.(요 7:38)
4. 교회는 사랑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는 성령이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복음 전파를 위해 보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이에 금식하고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2,3)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포함하여 다섯 명 정도를 교회의 일꾼으로 기록하고 있는 작은 교회입니다.(행 13:1) 그러나, 자신의 필요를 희생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주의 손에 위탁하고 보내줄 때, 놓아줄 때(아펠뤼오, to loose), 주님은 안디옥교회를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전진기지로 삼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행 1:8)
사도행전 13장부터 21장까지는 바울 중심의 전도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이방의 사도인 바울이 교회(구원 받을 이방인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AD 46년에 1차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하여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를 중심으로 남부 갈라디아 지방의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지도 참조)
바울 일행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 더베에서 가까운 수리아 안디옥으로 오지 않고, 복음을 전파한 도시들을 다시 돌아보고 왔습니다. 바울 일행은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험을 또 다시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행 14:19)
주님은 박해가 심했던 루스드라에서 바울 일행을 죽임에서 건져 주셨고, 디모데를 복음으로 부르셨고, 그를 2차 여행부터 바울의 동역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 3:11)
바울은 AD 49년 2차 전도여행을 떠난 목적도 1차 전도 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행 15:36)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는 고린도교회에서는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가르쳤고, 고린도교회를 떠난 후에도 네 번이나 편지를 써서(성경에는 고린도 전, 후서 두 편만 남아 있음) 교회를 복음의 진리 가운데 바로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AD 53년 3차 전도여행 중에는 2차 여행 중에 잠시 방문한 아시아의 중심 도시 에베소에 다시 와서 3년 동안 머물면서 우상 숭배가 만연한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AD 63년에 로마 감옥에서 잠시 풀려났을 때도 그의 마지막 소원대로 4차 전도여행에 나서서, 서바나, 그레데, 에베소, 빌립보 교회를 돌아보았는데 죽음을 예견한 그는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디도에게 그레데를 부탁할 정도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롬 15:24, 딛 1:5, 딤전 1:3)
누가는 바울의 전도여행을 기록하면서 바울이 전도여행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인도하시고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전도여행을 시작하셨습니다.(행 13:2) 또 바울이 아시아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시고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행 16:10)
바울이 고린도에서도 복음을 전할 때도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며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바울은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에게 체포될 줄 알면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보는 교회(우리 자신)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핍박, 복음 전파,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다른 교회들을 위해, 복음의 도움을 기다리는 이웃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이 주신 최고의 명령인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날마다 주의 도우심을 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찬송 520장(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을 부르신 후에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