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나됨으로 살기
제가 부목사로 재직할 당시에 담임 목사님은 인물이 아주 좋은 분이셨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 다듬어진 체구로 양복을 입은 모습은 어떤 탤런트 못지않을 정도로 멋졌습니다.
추석이 가까운 어느날 제가 맡고 있었던 교구의 한 여집사님이 금가락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담임 목사님이 실반지를 끼고 있는데 너무 멋지게 보여 저도 끼고 있으면 보기 좋을 것이라 생각하여 사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는 사업을 하시는 여집사님께서 자수정으로 된 카우스 버튼과 넥타이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비싼 것을 주시느냐며 사양하였지만, 이분 역시 담임 목사님께서 착용하신 모습이 너무 좋아서 사 왔으니 사양하지 말고 착용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오른손에는 금가락지를 끼고, 양복에는 넥타이핀에 카우스 버튼을 하고 교회에 출근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하고 다녔지만 제게는 영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분명 키가 크고 날씬한 담임 목사님께는 너무나 잘 어울렸지만 내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선물하신 분에게 죄송하다며 되돌려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어제 주일에 점심을 나누면서 한 청년이 자기 생일을 맞아 여자 친구가 선물한 백팩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비싸 봐야 20여만 원 하지 않을까 상상하였는데 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365만 원을 주고 샀다는 것입니다. 제 기준으로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도 교회에 출석한 자매가 자기가 들고 다녔던 명품 악어가죽 가방을 1,600만 원에 팔겠다고 하였더니 이를 냉큼 현찰로 사겠다는 모습을 보고 심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왜 이리 명품에 비싼 값을 치르며 사들이는 것일까요?
우선은 자기를 돋보이고자 하는 열망과 더불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영광중에 계시고 전지전능한 모습을 지니셨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라도 무의미하지 않을까하고 말입니다.
새 한 마리가 화려한 왕관을 쓰고, 깃털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칭송하고 함께 노래로 화답하는 자가 아무도 없는 곳에 존재하고 있더라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찬양할 때 행복하고
나는 나의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며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