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오월이다. 산과 들이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바람 끄에 실려오는 향기마저 싱그러운 계절, 가슴을 트이게 하는 이 계절을 맞아, 우리 대열잔차(육사 27기 자전거 동호회) 전사들은 경기 북부의 최전방인 전곡과 연천 일대로 라이딩 향연을 떠났다. 오늘 여정의 백미는 단연 수십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한탄강의 명물, '재인폭포'다. 출발점은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의 최북단인 소요산역. 역을 나서니 신천의 물줄기와 푸른 산자락을 배경 삼아 달리는 라이더들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산 자락에 얽힌 이태조의 행궁지와 원효대사, 요석공주의 설화를 마음에 품고, 우리는 평화로(3번 국도)를 지나 연천의 품으로 들어섰다.
창신로의 한적한 길을 거처 신천을 따라 페달을 밟았다. 신라가 축조하고 나당전쟁 당시 매초성 전투의 승전보가 울려 퍼졌던 대전리산성을 지척에 두니, 옛 선조들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듯했다. 궁신교를 건너며 마주한 한탄강은 과연 '대한민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릴 만했다.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던 시인묵객들도 이 절경에 매료되어 며칠씩 발길을 멈추었다지 않던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우뚝 선 좌상바위의 위용에 탄성을 지르고, 두 강물이 어우러지는 포천 아우라지 베개용암의 신비로운 지형을 지나친다.
까막득한 옛날, 북한 평강군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차가운 물과 만나 급랭하며 만들어낸 베개 모양의 바위들. 그 곁에는 고구려의 석실봉토분인 신답리 고분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각보를 펼쳐놓은 듯한 들녘과 봄내음 물씬 풍기는 농촌 풍경은 잊고 지낸 고향의 소박함을 고스란히 되살려주었다. 백의총과 한탄강댐, K-water 물문화관을 지나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재인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덕분인지 폭포를 찾은 가족과 연인들의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전망대에 서서 재인폭포를 바라본 순간, 모든 약속이라도 한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가 이뤄낸 거대한 수직 절벽 사이로, 비류직하하는 장쾌한 폭포수! 에메랄드빛 포트홀을 향해 떨어지는 포말은 햇살을 받아 마치 부서진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반짝였다. 80m 길이의 출렁다리 유리바닥 아래로 계곡을 내려다볼 때는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했지만, 그 위에서 바라본 폭포의 자태는 연천 제1경이라는 명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줄타기 재인(才人)의 슬픈 전설과 그의 아내가 지켜낸 절개가 스며있는 이곳 고문리(古文里)에서, 우리는 잊지 못할 푸른 추억 한 조각을 가슴속 깊이 남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한탄강댐 근처 가든에서 칼칼한 두부전골과 달콤하고 고소한 수수부꾸미로 배를 채우며 훈훈한 소통과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선뜻 식비를 스폰서해 준 홍토마 전우의 후의 덕분에 마음에 정이 더욱 두텁게 쌓였다. 식사후 찾은 조선왕가 염근당은 고종황제의 영손 이근 선생의 고택으로, 조선 왕실의 우아한 품격과 경치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다. 옛 특권층의 공간이 이제는 누구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한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따스한 공간으로 거듭난 점이 자못 뜻깊었다. 돌아오는 한탄강 수변길 철책문을 지나 울퉁불퉁한 모래밭과 시멘트 길을 달렸다.
가빠오는 숨 사이로 폐속 깊은 곳까지 청량하게 정화해 주는 녹색 바람이 불어왔다. 초급장교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는 전곡읍을 지나, 둥북아 고고학의 역사를 바꾼 전곡리 선사유적지까지 둘러보며 우리의 기행은 막바지로 향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마지막 오르막길 마저도 황홀했던 한탄강의 비경과 전우들의 따스한 정 덕분에 하염없이 즐겁기만 했다. 늘 멋진코스를 기획해 주는 쉐도우수의 탁월한 리더십과, 마음이 통하는 대열잔차 전우들과의 강호지락(江湖之樂) 환유하며 봄의 정취를 만끽했던 이 하루는 오랫동안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서 에메랄드빛 물결로 반짝일 것이다. 대열잔차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