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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멀어 방문하기 쉽지 않은 지역이라 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쌍계사 → 상록수림 → 삼선암약수터 → 너럭바위 → 첨찰산 → 진도 기상대 → 두목재 → 더신산 → 화개봉 → 학정봉 → 운림산방 → 주차장' 6km, 4시간 코스의 첨찰산과 '하심동 → 종성교회 → 전망대 → 동석산 정상 → 가학재 → 작은 애기봉 → 큰 애기봉 → 세방낙조' 6.5km, 5시간 코스의 동석산을 이어서 탑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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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찰산
높이: 485m
위치: 전남 진도군
진도 섬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대개 섬에 있는 산이 다 그렇듯이 이 산도 우선 높지 않고 암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도 섬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바로 밑에 유명한 운림산방과 쌍계사가 있고 그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으므로 진도를 찾는 기회에 한 번쯤 산행해 볼 만한 산이다. 특히 정상에 올라서면 진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이며 그 상쾌한 맛이 일품이다. - 한국의 산하
동석산[童石山]
높이: 240m
위치: 전남 진도군 지산면
진도 서남단에는 바다에서 불꽃처럼 일어나, 바다에서 유리된 죄로 다도해를 그리워하는 산이 있다. 그 산은 밤이면 밤마다 가슴에 사무치는 한을 하늘을 우러러 한올 한올 풀어 헤친다.
진도의 산들은 뭍의 산들과 달리 야트막하고 자잘한 높이를 자랑하는, 마치 동네 뒷산 같은 친근한 느낌을 주는 산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동석산(5만 분의 1 지형도에는 석적막산이라 표기되어 있다)은 2백 미터급 산에 불과하지만, 여느 산과 달리 암벽미와 암릉미가 탁월한 산이다. 동석산은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위치한 산으로 서남쪽의 조도에서 보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또한, 자체가 거대한 성곽을 연상케 하는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약 1.5㎞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암릉 중간마다 큰 절벽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또한, 암릉 앞부리 남쪽에는 심동저수지, 동쪽에는 봉암저수지가 있어 조망하는 맛도 좋거니와, 서해와 남해의 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 한국의 산하
애초 2022년 2월 마지막 주 산행은 인제 한석산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1월 초 가끔 오지 산행을 진행하는 안내산악회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산으로, 사실 그때 처음 들어본 산이다. 해서 한석산에 관해 구글링해보니, 해발 1,000m가 넘는 산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 산이라, 구체적인 산행 계획이 공지되기도 전인 1월 4일 일단 산행을 신청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기관이든 인증하지 않는 산은 등산객이 잘 찾지 않는 분위기라, 한석산은 어느 기관도 인증하지 않는 산이라, 2월 중순이 됐음에도 신청자가 7명에 불과했다. 즉 28석 버스의 출발 성원인 14명의 반밖에 안 되는 상황이라, 성원 미달로 산악회에서 취소할 확률이 높았다. 해서 Plan B를 찾다가 발견한 게 전남의 섬 진도에 있는 첨찰산과 동석산 두 산을 하루에 진행하는 산행이다. 2월 15일부터 4월 말까지는 봄 가뭄 시기 산불 예방을 위해 대부분 산이 입산 금지라, 산악회에서도 그나마 입산이 가능한 산으로 계획을 세우는 상황이라 선택의 폭이 좁은 가운데 눈에 띈 산행이다.
진도를 선택한 것은 산불 예방을 위한 통제 기간으로 고를 수 있는 산이 한정된 것도 있으나, 장기 산행 계획 선정 산 중 천고지, 100 산, 백두대간 외에 기상청이 선정해 산악날씨를 예보하는 78개 산에 첨찰산이 있어서다. ‘산악날씨’는 산행 하루 이틀 전 가고자 하는 산 날씨를 파악하기 위해 매번 들리는 사이트로, 기상청이 산을 선정하는 기준에 관해서 아는 바 없으나, 특정 지역의 날씨를 대표할 만한 산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 그 지역의 대표 산일 확률이 높아 다 올라보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특정 지역의 대표 산이라면 그 대부분 천고지, 100 산, 백두대간 등에 속해 별도의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었다. 해서 지금까지 총 78개 산 중 68개를 다녀왔다. 그리고 남은 10개 산도 나름 지역을 대표하는 산이라, 자주는 아니나, 산불 예방을 위한 통제 기간 등 특정한 시기에 안내 산악회에서 가끔 찾는 산이라, 어떻게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다.
비록 기상청이 선정한 산이라고는 해도, 해발 485m에 불과하고 총거리가 10km에도 못 미치는 첨찰산에 오르기 위해 그나마 대중교통 대비 비용이 저렴한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진도로 간다고 해도 가성비 최악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해서 산악회에서는 무박으로 첨찰산행 후 버스로 이동해 동석산행을 할 수 있게 계획을 세웠다. 즉 하루에 두 산에 오르는 거다. 해서, 한국의 산하와 구글링으로 두 산을 찾아보니,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거 외에는 별 특징이 없으나, 동석산은 바위산으로 암릉미가 탁월하다는 소개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첨찰산, 동석산행 계획을 발견했을 당시 이미 진도가 고향인 흥수가 신청자 명단에 있는 걸 발견하고 왜 가려는지 물었을 때, 동석산을 밑에서 보며 바위산의 정체를 궁금해하기만 했지,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 동석산행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애초 안내산악회와 갈 예정이었던 인제 한석산은 연구해 보니, 대중교통으로 산악회 비용보다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해서 산악회로 갈만한 산이 없을 때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려고 잘 보관해 뒀다. 그리고 진도는 심야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는 무박 산행이라, 아침, 점심 두 끼를 준비해야 한다. 산악회 계획에 의하면 첨찰산 6km는 새벽 5시에 산행을 시작해 9시 마감이고. 동석산 6.5km는 9시 30분 시작해 2시 30분 마감이다. 즉 산행에 첨찰산에는 4시간, 동석산에는 5시간이 주어졌다. 첨찰산 6km면 넉넉잡아도 2시간 30분이면 충분해, 1시간 30분 정도의 아침 식사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동석산 6.5km는 바위 능선이니만큼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잡는다고 하면 적어도 1시간에서 2시간의 여유가 있다. 문제는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시간 확보가 아니라, 두 끼를 준비하는 거라, 지도에서 두 산의 들머리를 잘 살펴봤다. 예상대로 둘 다 식당이 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하산하는 동석산 날머리 주변의 식당은 영업할 확률이 높으나, 7시 즈음에 하산하는 첨찰산 주변의 식당이 영업할 확률은 대단히 낮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로 아침용 컵라면만 준비해 간다.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수 없으면, 준비한 컵라면으로…
두 산행 다 하산 후 밥을 먹을 예정이라, 배낭을 둘러메고 산에 올라갈 이유가 없어. 모든 건 버스에 두고 몸뚱이만 다녀오는 산행 준비를 할 생각이다. 고로 평소보다 이것저것 많이 가져가도 된다. 아, 버너와 코펠을 들고 가서 밥을 해 먹을까? 산이 아니라 주차장에서 하면 되니, 그리고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다면 1시간 동안 멍청이 앉아 있는 것도 문제라, 컵라면 말고 라면을 끓일 수 있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금상첨화로 창갈이를 보낸 등산화가 새 신발이 되어 돌아와, 암릉 산행에 부담이 되는 무겁고 두꺼운 걸 신고 가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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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진도행은 무박 산행으로 24시 정각에 양재역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할 예정이라, 등산 준비를 마치고, 진행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진행이 ‘이번 토요일은 어느 산으로 가냐?’고 물었다. 평소라면, 산이 높지 않고, 코스가 길지 않아, 야유회 산행지로 적격이라, 산행 일주일 전 등산방에 공지해 호객했겠지만, 토요일 연극방 친구들의 공연이 있어, 산행 계획은 공지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진도행 산행 계획이 자주 있는 거라면, 산행을 미루고 연극 공연에 갔을 테지만,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몰라, 아쉽지만, 산행을 택했다. 사실 진도행은 거의 5년 전부터 계획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했던 산행이라, 더는 미룰 수 없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라, 토요일 산행지를 모르고 있던, 진행의 물음에 진도에 간다고 하자, 꼭 가보고 싶었던 섬이라고 하며, ‘지금 신청해도 되냐?’고 물어, 산악회 버스에 3자리가 남아 있으니, 특정한 자리를 지목해 주고 그 자리를 신청하라고 했다. 버스에 타서는 단독 자리인 내 좌석에 진행이 앉고, 나는 진행이 신청한 자리에 앉기로 하고.
계획에 없던 진행이 동행하게 되면서, 먹거리를 비롯해 몇 가지를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라면과 햇반을 추가하고, 주차장에 퍼질러 앉아 라면을 끓일 예정인데, 의자를 준비하지 않을 거라는 게 분명해 의자도 챙겼다. 산행 시 배낭은 산악회 버스에 두고 갈 예정이라, 감당 못 할 무게라도 상관없어 이것저것 다 때려 넣었다. 무박 산행은 '들머리를 향해 달리는 심야 버스에서 잠을 잘 잤느냐?'에 따라 다음날 산행을 감당할 체력이 결정된다. 따라서 무박 산행이 있는 날 저녁 식사는 반주 겸 수면제로 진성 빨갱이 한 병을 비운다. 물론 이날도 최대한 늦은 시각에 삼겹살과 밥을 안주로 진성 빨갱이 한 병을 비우고, 10시 50분경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11시 54분경 양재역에 도착해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니, 심야버스를 이용해 무박 산행을 떠나는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이번에 이용하는 안내산악회는 우리의 목적지인 진도를 포함 총 8대의 버스가 24시 정각에 북으로는 설악산, 남으로는 통영 등으로 출발한다. 다른 산악회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없는 거 같고. 아니, 23시 50분에 이미 떠났나? 어쨌든, 진행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11시 57분 통영행 버스를 선두로 심야에 각지로 떠나는 버스가 속속 도착했다. 계획대로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 사당에서 타고 온 흥수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로 가 주변 세팅을 마치고 책을 봤다. 중간에 죽전과 신갈에서 승객을 태울 예정이라, 바로 잠을 청했다가, 두 번의 정차로 깊은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신갈에서 마지막 승객을 태우고 출발한 후 바로 잠이 들었고, 실내등이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니, 휴게소다. 군산이었나?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다시 잠을 청해 4시경부터는 수면제의 효과가 다해 자다 깨기를 반복해 가끔 창밖을 보며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확인했다.
애초 계획 시각보다 좀 이른 4시 35분경 들머리에 도착했고, 인솔 대장이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고, 산행 마감을 9시가 아니라, 8시 45분으로 당긴다고 공지했고, 버스 기사가 운전하느라 피곤하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산행을 마쳤더라도 8시 이전에는 버스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관광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이미 버스 안에서 산행 준비를 마친 등산객은 서둘러 산행을 시작했고, 배낭을 두고 가는 나야 준비랄 게 없어 버스에서 내려 등산화 끈만 다시 매고 짐칸에 있던 배낭을 꺼내 내 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때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아직 잠에 취해 무의식중에 그렇게 한 거 같은데, 산행 내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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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온 대부분 등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후 랜턴을 준비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 하나 더 들고 온 헤드 랜턴을 진행에게 주는 등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들머리를 떠나 후미에서 천천히 산행을 시작했다. 산이 높거나 험하지 않고, 6km에 불과한 거리라 아무리 천천히 간다고 해도 3시간이면 충분해 서두르지 않았다. 어두워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나, 랜턴 불빛에 의지해 기록용 사진을 찍으며 전진해, 4시 40분에 쌍계사 갈림길을 지나, 4시 42분에 쌍계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일주문 옆에 있는 첨찰산 지도를 보며 이번 산행을 리뷰 후 일주문을 통과해 계곡을 따라 위로 갔다.
관광객이든 등산객이든 찾는 이가 많아서인지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길을 따라가 5시 11분에 등산로 왼쪽으로 둥글게 줄을 친 게 보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숯가마터다. 동백나무와 붉가시나무로 숯을 생산했던 가마터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계속 가 5시 12분에 정상 1.3km 이정표를 지나, 바로 앞에 있는 상선암 약수터에 도착했다. 이정표 바로 앞에 있으나, 어두워 보지 못했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잔하고 잠깐 휴식하며, 진행이 준비해온 도시락에서 간식으로 치즈를 먹은 후 오랜만의 산행으로 힘들어하는 진행의 배낭을 내가 메고 다시 출발했다.
5시 27분에 첨찰산 정상 0.8km 이정표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부터 등산로가 변했다. 지금까지의 완경사가 급경사로 변했다. 비록 해발 485m에 불과한 산이나, 어김없이 깔딱이 나타났다. 해서 고도를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궁금해 등산 앱을 확인했다. 297m! 고로 200m 가까이 고도를 올려야 한다. 쉬운 게 아니다. 뒤로 쳐지는 친구를 독려하며 100여 미터를 오르자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는 난간을 잡고 올라갈 수 있어 편리하나, 산행 재미를 반감시키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아래 이정표에서 최소 100여 미터는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계단이 끝나는 지점 삼거리 이정표에 의하면 정상까지 남은 거리가 700m다. 고로 이제 100m 올라왔다. 역시 산의 거리는 생각과는 다르다.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해, 고도가 높아질수록 간밤에 내린 서리로 바위나, 계단은 미끄러웠다. 조심하며 계속 오르자, 6시 2분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위로 오른쪽은 아래로 향하고 있어 당연히 왼쪽이 정상을 향한다고 생각해 두 친구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아무 얘기 없이 길을 선택했다간, 서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어서다. 두 친구가 도착해 위로 향하는 왼쪽으로 갔으나, 정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전망대였다. 대낮이라면 탁월한 조망을 보여줬을 거 같은데, 아직 해가 뜨려면 먼 시간이라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지구의 그림자가 만든 초승달과 별, 그리고 정상 다음 봉우리 기상레이더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다였다. 동양에서 미인하면 초승달 같은 눈썹을 언급하는데, 지금 보이는 달이 딱 그랬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카메라로는 그걸 담을 수가 없었다. 기껏 찍어봐야, 뭔지 알아볼 수도 없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오른쪽 길로 정상을 향해 가며 나뭇가지에 달린 리본을 살펴봤는데, 익숙한 리본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반가운 리본이 있어 사진을 찍기도 하며 마지막 깔딱을 헉헉대고 올라, 6시 16분에 봉화대가 자리를 잡은 첨찰산 정상에 도착했다. 역시 섬의 최고봉에 오른 걸 반기듯이 차고 강한 바람이 불어 손이 시리고, 귀는 떨어져 나갈 거 같았다. 바로 옆 봉우리 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해 예보한 산악날씨가 정확했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어 정상석을 찾기 위해 봉화대 기단에 올라 봉화대를 끼고 한 바퀴 돌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분명 산행기에서 사진을 본 기억이 있어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오던 등산객의 불빛이 봉화대 아래를 비추는 순간 정상석이 보였다. 해서 기단에서 내려가 정상석으로 갔다. 이런 어둠 속에 인증이라고 찍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건 잘 아나, 그래도 남길 건 남겨야 할 거 같아 두 친구를 불러 정상석을 배경으로 자세를 잡게 한 후 카메라와 랜턴을 정상석 앞에 있는 의자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사진을 찍었다.
애초 산행을 시작할 때는 기상청 예보 7시 7분의 일출을 볼 생각이었으나, 차고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에 온몸이 어는 가운데 30분을 넘게 기다린다는 건 자살 행위라 일출은 포기하고 6시 25분에 정상을 떠나 하산을 시작했다. 기상관측소 방향으로 백여 미터를 내려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이 이번 코스의 하산길이고 직전은 기상관측소를 지나 더 큰 원을 그리는 산행이다. 본격적인 하산하기 전 앞에 보이는 기상관측소 지붕의 축구공과 그 위 미인의 눈썹 같은 초승달을 사진으로 남겼다. 카메라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 뭐 대단한 결과물을 바란 건 아니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광경이라! 사진을 찍은 후 계곡을 따라 난 길로 내려가기 시작해 10분 정도를 가자 둥글게 돌을 쌓아 올린 게 보였고, 그 주변은 금줄이 둘러쳐져 있었다. 당연히 그 앞에는 소개문이 있고. 숯가마터다. 정상을 향해 올라오며 본 것과 구조가 같다. 올라오며 때는 날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나마 랜턴이 없어도 보여, 사진을 찍었다.
가마터를 떠나 다시 내려가는데 계곡에 돌탑이 있는 게 보였다. 계곡의 돌을 쌓아 만든 건데, 아주 절묘하게 만들어 탑 중간은 창처럼 뻥 뚫려 있고, 처음 볼 때는 탑 정상에 있는 기러기는 나무를 깎아 만든 걸 올려놓은 줄 알았다. 솟대의 의미로!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나무로 기러기를 깎은 게 아니고, 그 비슷한 돌을 올려놓은 거였다. 흥수와 둘이 탑을 보고 감탄하며, 진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진행이 도착해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 돌탑 뒤에 서보라고 했더니 계곡을 내려가 돌탑에 바싹 붙었다. 순간 흥수나 나나 돌탑을 건드려 무너질까 봐 깜짝 놀랐다. 내가 얘기한 건 길 위에서 방향을 잘 잡아 돌탑과 같이 사진을 찍겠다는 거였는데. 어쨌든 무서운 게 없는 친구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잘 나오지 않는 사진이나마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자 또 가마터다. 이번 산행에서 본 것만 네 개째다. 해서, 흥수를 보며, ‘가마터로 봐서는 이 산의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을 거 같은데….' 흥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걸 어떻게 해석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동시에 운영한 게 아니라,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만들어 사용하지 않았을까?'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내려갔는데, 우리가 잘 이해가 안 되는 게 다른 등산객이다. 오랜만의 산행인 와중에 양쪽 엄지발톱까지 상태가 안 좋아 느릴 수밖에 없는 친구와 동행하는 우리도 3시간 이내에 산행을 종료할 거로 보이는데, 다른 등산객은 뭘 하고 있느냐다. 애초 산악회 계획과 반대로 도는 등산객도 정상에서 두 명 정도 봤을 뿐이다. 고로 대부분은 거의 산행이 끝났을 확률이 높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작은 원이 아니라 큰 원을 그리는 산행을 했을 수도 있다는 흥수의 말에 동의하며, 혹시나 일찍 내려간 등산객이 날머리 주변의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아 있기를 빌었다. 그리고 이 계곡에서 처음 보는 다리를 건너며 보니 온통 동백나무다, 그런데 꽃은 보이지 않아, 아직 이른가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뒤따라오던 흥수가 꽃망울이 맺힌 것도 있다고 해서, 다시 다리로 돌아가 잘 보니, 꽃도 많이 피어 있었는데, 작아서 보지 못했던 거다. 동백꽃 하면 크고 화려한 것만 봐와서.
다리를 건너자 길은 다시 서너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갈 수 있을 정도를 넓어졌고, 마을이 멀지 않은지 저 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7시 26분에 계단 아래로 포장도로가 보이는 순간 사실상의 산행이 끝났음을 알았다. 해서 계단 제일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몇 장 찍은 후 화장실에 들러 볼 일을 보고 그 옆 표지석이나 다름없는 '珍島아리랑碑'로 갔다. 비석에 적힌 글을 다 읽은 후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인증다운 인증을 찍었다. 그리고 포장도로를 따라 버스로 향해 내려가며, 제발 버스 문이 열려있기를 빌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로 먹거리와 조리도구가 든 짐칸에 있던 배낭을 내 자리에 갖다가 놓는 바람에 자는 기사를 깨워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산행 내내 했던 후회다! 주차장 주변 식당이 문을 열었으며 다행이나 아니면, 배낭이 있어야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이른 시각이라 문을 열지 않은 ‘운림산방’을 밖에서만 구경하고, 두 친구가 사진을 찍는 등 구경하는 동안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영업 중인 식당이 없는 이상 혹시 문이 열렸으면, 배낭을 꺼내 오기 위해서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버스의 시동이 걸려있고, 주변에 등산객이 좀 보이고, 문이 열려있었다. 내가 도착한 시각이 버스 출발. 한 시각 전인 7시 45분인데! 어쨌든 문이 열려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배낭을 가져오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놀랐다. 거의 모든 승객이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힐끗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만 타면 바로 출발이다. 일단 배낭을 둘러메고 나와 두 친구에게 달려가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버스에 탔다. 물론 배낭을 짐칸에 넣고. 결과적으로 아침을 쫄쫄 굶고 다음 산행지인 동석산으로 버스는 출발했다. 마감 시각인 8시 45분에 출발하지, 승객이 다 도착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출발한다는 안내산악회의 당연한 룰을 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마감 시각 전이니, 우리가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라면을 끓인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나, 인간이 그럴 수는 없는 거라!
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산악날씨 예보 대상인 첨찰산 '쌍계사 주차장 → 쌍계사 → 삼선암 약수터 → 첨찰산 정상 → 서천암터 → 아리랑비 → 쌍계사 주차장'의 6.6km(트랭글), 3시간 8분 코스의 야간 산행을 즐겼다. 이동 2시간 59분 휴식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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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 주차장 한쪽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인솔 대장이 다들 기다린다는 말에 정신없이 라면을 먹은 승객이 타자 버스는 다음 산행지인 동석산 들머리로 출발했다. 그 시각이 8시경으로 동석산 들머리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해서 인솔 대장이 동석산 마감 시각을 1시 40분으로 변경했다. 애초 동석산행 마감 시각이 2시 30분이었으니, 거의 한 시간 정도 빨라졌다. 심야에 서울에서 출발해 진도에 도착한 시간이 예상보다 빨랐고, 모든 등산객이 첨찰산행을 조기에 마친 덕분이다. 덕분에 우린 쫄쫄 굶었지만. 이번 동석산행에 주어진 게 5시간인데, 아무리 계산해도 짧으면 3시간 길면 4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버스로 갔다가는 점심까지 굶고 서울로 끌려갈 우려가 있어, 가능하면 버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예정인데, 동석산으로 이동하는 중에 인솔 대장이 날머리 주차장에 간단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매점이 있다고 해 일단 점심과 하산주 걱정은 덜었다. 이런 결심을 하고, 새벽에 기상해 추위에 떨며 어두운 산에 올랐다가 내려온 후유증으로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버스가 도로변에 주차한다. 동석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그 시각이 8시 3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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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발의 엄지발가락 부상 중에도 첨찰산에 올라, 하산에 어려움을 겪었던, 진행은 버스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흥수와 나만 버스에서 내려 앞을 보니, 거대한 암봉 세 개가 우리를 반긴다. 해서 사진으로 남기고 암봉 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내가 알고 있던 정보와 다르게 안전시설이 설치된 게 보여 약간 실망했다. 산행에 5시간을 책정한 이유가 위험한 암봉이라, 병목으로 지체가 심해서라 생각했는데, 일단 아래서 본 바에 의하면 병목은 발생할 거 같지 않다. 그럼 3시간도 안 걸리는 거린데? 등산 준비라고 따로 할 건 없고, 다만 패딩을 벗어 배낭에 두고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귀차니즘에 무시하고 8시 39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위험 경고문을 보면 안전시설이 전혀 없을 거 같아, 경고문을 설치한 시기를 보니 2016년 3월 31일이다. 당시만 해도 안전시설이 없었나? 내가 알고 있는 동석산에 관한 정보도 그 시기에 멈춰 있고? 동석산 정상이라고 해발 217m에 불과한데, 일단 거대한 바위에 접근하는 동안에 체력 소모가 심하다. 해서 암벽꾼들이 어프로치가 긴 암벽을 싫어한다고 했던가?! 산행을 시작하며, 흥수에게 6km에 불과하니 2시간 만에 주파하자고 했는데, 이정표에는 날머리가 4.5km라고 나와 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암봉인데, 2시간이면 무리고, 5시간이 주어졌으니, 3시간이 걸려도 하산주에 2시간을 할당할 수 있다. 해서 좀 여유 있게 3시간 내 주파를 목표로 했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빨리 나타나기를 빌며, 목표한 시간내 도착하기 위해 헉헉대며 올라 산행 시작 후 6분이 지난 8시 46분에 드디어 첫 번째 암봉을 만났다.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철봉으로 만든 안전시설이 있었지만, 굳이 그걸 잡고 올라갈 이유가 없어 그 옆으로 네 발로 기어올라가는 거로 동석산 암봉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올라가다가 잠깐 휴식을 겸해 뒤로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미처 예상치 못한 전경이다. 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은 후 다시 기어올라가며 앞을 보니, 전망대로 보이는 암봉 아래에 얕은 굴이 있고, 그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등산객이 보였다. 그 정체가 궁금해 어떻게 갈 수 있나 살펴봤는데, 애초 들머리가 우리와는 달라, 그 굴로 가는 길이 없어 보였다. 아쉬운 마음을 품고 첫 번째 암봉 정상을 향해 계속 갔다.
8시 54분 정상에 도착해 아래를 보니, 다음 암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칼바위로 그 양쪽에 철봉으로 안전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끝부분에는 철판까지 깔려있어 위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암봉으로 오르는 막바지는 철계단까지 설치되어 있어, 오히려 산행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안전시설을 즐기는 놀이공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는 앞이 가려 뻗어가는 능선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8시 56분 두 번째 암봉 정상에 도착해 앞을 바라보고 생각과 달라 잠깐 당황했다. 당연히 바위 능선이 죽 이어질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암봉의 연속으로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산행이었다. 산악회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에 5시간을 책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르내려야 할 봉우리가 몇 개나 되는지 감도 안 왔다.
칼날 같은 암봉과 암릉으로 정상을 향해 가는 중 보이는 경치도 꽤 좋아, 계속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겼다. 두 번째 암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철판으로 만든 계단인데 이게 또 급경사라, 나름 아슬아슬한 재미도 있었다. 그 계단을 다 내려가니 삼거리다. 직진은 아까 첫 번째 정상에서 본 아래에 굴을 가진 암봉 전망대로 향하고, 좌회전은 다음 암봉으로 가는 길이다. 해서 삼거리를 지나, 전망대로 향해 가는데 다시 갈림길이 나타났다. 멀리서 본 굴로 내려가는 길과 전망대로 직진하는 길이다. 당연히 아래로 내려가 굴로 향하는데, 세 번째 갈림길이다. 계속 내려가면 천종사로 가고, 좌로 돌면 미륵좌상이 있다. 첫 번째 정상에서 본 굴에 미륵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거 같다. 흥수가 그냥 가자고 하는 걸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끌고 왔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다. 그리고 굴로 갔는데, 없다! 미륵이 없다. 다만 얕은 암굴만 있다. 혹시 미륵좌상이 마애불이 아닐까 하고 암벽을 유심히 찾아봤으나,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애불이라면 이정표에 ‘마애 미륵좌상’이라 썼을 테니, 마애불은 아니고, 과거 미륵좌상이 있었는데, 알지 못할 이유로 치운 거 같았다.
미륵을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두 번째 갈림길로 돌아와 바로 앞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는데, 거쳐온 암봉 정상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정상에 있는 나무가 조망을 가렸다. 해서 우리가 가야 할 다음 암봉의 거대한 암벽만 사진으로 남기고, 두 개의 갈림길을 지나, 다음 암봉으로 향했다. 양옆 철봉 안전시설이 버티고 있는 칼바위 능선을 지나 암봉 정상에 도착해 앞을 보니 또다시 거대한 칼바위 능선이다. 과연 저기를 지날 수 있을까 의혹에 잠겨 있는데, 예상대로 길은 칼바위 능선을 버리고 우회하고 있었다. 고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앞에 보이는 암봉으로 올라야 한다. 바닥까지 내려가 다시 헉헉대며 암봉에 오르자, 폰의 등산 앱이 음성 메시지로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동석산 정상이다.
그 시각이 9시 23분으로 산행 시작 후 43분이 지났다. 거리로는 1km가량 온 거 같다. 폰을 바닥에 두고 인증을 찍은 후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다음 봉을 향해 떠났다. 다음 봉우리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있기는 하나, 우리 수준으로 갈 수 있는 능선이 아니라 거의 모든 등산객이 다니는 우회로로 암릉을 피해 관목 지대를 지나, 10여 분을 가자, 다시 바위 능선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나 암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헉헉대고 다시 암릉에 도착해 보니, 앞에 암봉이 버티고 있는데, 이 역시 다시 우회해야 했다. 그런데 전면의 암봉은 안전장비 없이도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거로 보여 흥수에게 우회하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고 얘기하고 올라갔다. 예상대로 그렇게 어려운 암벽은 아니었다. 우리에 앞서 우회로를 따라 암봉에 도착해 경치를 감상하고 있던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팀이 우리가 기어올라오는 걸 신기한 듯이 구경하고 있는 사이를 뚫고 정상에 도착해 보니 삼각점이 있다. 여기가 삼각점봉이다.
삼각점봉 정상에서 올라온 암벽을 사진으로 남긴 후 주변을 둘러봤다. 먼저 뒤로 보이는 암봉과 암릉, 장관이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전면에 보이는 성벽 같은 바위 능선을 우회했다는 거. 확대한 사진의 붉은 점선 원 안을 잘 보면 위에서 내려온 밧줄이 있는데, 그건 그 성벽 능선으로 다니는 산꾼이 있다는 방증이다. 삼각점봉이 동석산에서 의미가 있는 건 측량용 삼각점이 있다는 거보다는 암릉와 암봉이 여기서 끝나고 이제부터는 흙산과 능선이라는 거다. 긴장하며 달려온 암릉이 끝나는 지점에서 라면을 끓이기 위해 흥수 배낭에 들어있던 500㎖ 생수 두 병을 꺼내 각자 병나발을 불었다. 진도에 도착해 먹은 두 번째 물이다. 첫 번째는 첨찰산 석간수! 그 외에 아무거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여유가 좀 있어 진행에게 식당을 알아보라고 전화했다. 연결되자, 본인은 버스 기사가 준비해온 떡국과 누룽지로 아점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 중이라고 해, 먼저 전망대 아래에 있는 횟집이 영업하는지 확인해 연락을 달라고 하고, 다음 봉우리를 향해 갔다.
10시 13분에 동석산 유일의 탈출구로 알려진 가학마을 사거리를 지나며 진행과 연락이 됐는데, 문을 연 식당은 없고, 세방낙조전망대 매점에서 술과 간단한 안주, 라면 등을 파는데 현재는 문이 닫혀 있는 상태라고 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식당이야 어떻든 갈 길을 가는데, 아슬아슬한 바위 능선 위를 걷다가, 전형적인 흙산 등산로를 걷자 우리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져 생각보다 일찍 동석산 종주의 마지막 봉우리인 큰애기봉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10시 37분에 세방낙조전망대 갈림길에서 직진해 100m 거리에 있는 큰애기봉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42분이다. 100m에 불과한 거리에 5분이 걸렸다는 건 아무리 작은 봉우리라도 깔딱은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어쨌든 정상에서 주변 섬들과 섬 사이를 지나가는 배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하며 우리의 점심과 하산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 대화를 나눴다.
흥수가 전망대에서 지도 앱을 이용해 아래에 보이는 마을에 있는 식당을 찾아본바 몇 개가 있었으나, 문제는 연락처가 없다는 거. 고로 직접 가보지 않으면 영업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진행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카페의 정보를 확인했는데, 메뉴에 ‘홍주 칵테일’과 맥주가 있었다. 술만 있으면, 나머지는 우리가 가진 거로 해결할 수 있어, 바로 진행에게 연락해 카페 주인장에게 잘 얘기해서 ‘홍주 칵테일’이 아니라 그걸 만들기 위한 홍주 한 병과 라면 끓일 생수 1ℓ를 구해오라고 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10시 49분에 세방낙조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전망대를 향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홍주에 대한 기대로 들뜬 마음으로 전망대를 향해 내려가는데, 진행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페 주인장 왈 칵테일만 있고, 그것도 '내부에서 마셔야지 외부로 가져갈 수 없는데, 등산로 길목에 있는 펜션에서 판매하니, 거기서 사라!'고! 해서 그럼 네가 펜션에 가보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고 앞에 있는 정자 전망대에 올랐다.
정자에 올라 앞으로 보이는 바다와 섬들을 뒤로는 작은애기봉(큰산)과 큰애기봉을 사진으로 남기고, 정자를 내려가자 거기서부터는 저 아래로 보이는 포장도로까지 나무계단이다. 다 왔다. 그 계단 끝이 문제의 펜션인데, 홍주를 가져다 다른 재료와 섞어 병입해서 칵테일로 판매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하루에 30병만 만든다고. 펜션에 걸린 광고를 보니, 알콜 13%에 8,000원이라는데, 우리가 필요한 건 홍주라, 펜션의 주인장을 찾았다. 그런데 없다. 연락처도 없고, 주인장도 없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낙담해서 아래 보이는 뻘건 버스를 향해 내려갔다. 그나마 다행은 첨찰산 쌍계사 주차장에서 아침으로 먹으려고 했던 라면과 김치 등이 남아 있어 점심까지 굶는 일은 없다는 거 정도! 동석산행이 끝난 시각으로 11시 12분이다. 마감인 1시 40분까지는 2시간 30분가량 남았다. 식당도 문을 안 열었는데 남은 시간은 뭘 하고 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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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짐칸에서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배낭을 꺼내고, 주차장 한편에 있는 수도에서 생수통에 물을 채워, 라면 끓일 준비를 마치고 식당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 주차장을 떠나 전망대로 향하는데 앞서 전망대로 내려갔던 진행이 흥분해서 전화했다. 매점이 문을 열었다는 거다. 해서 뛰다시피 내려가 보니, 진행의 말대로 문을 열었다. 먼저 확인한 건 메뉴다. 매점답게 컵라면도 판매하나, 직접 끊인 전복라면과 두부김치, 부침개, 등의 안주와 홍주, 소주, 맥주 등의 주류도 판매하고 있었다. 진도 맛집은 아니나,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 아점을 먹은 진행을 빼고, 전복라면 2개, 25도 홍주 작은 거 하나, 두부김치의 재료가 없어, 부침개 하나를 주문하고 바람이 안 부는 곳을 찾다가 흥수가 매점 옆 커다란 입간판 뒤로 가자고 해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짊어지고 다닐 배낭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잔뜩 넣고 온 것 중에 먼저 식탁을 꺼내 세팅하고, 의자도 3개 꺼내 그중 다리가 달린 건 레이디에게 퍼질러 앉는 두 개는 흥수와 내가 깔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과 같이 먹으려고 가져온 김치를 안주로 먼저 25도 사이비 홍주로 무사 산행을 축하했다. 그런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사이비 홍주를 비워 술을 사러 다시 매점으로 갔다. 40도짜리 진성 홍주가 있을 거 같아 찾아보니 있다. 큰 병은 감당을 못해 작은 병을 한 병 들고 와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앞에 보이는 섬에 관해 진도의 아들 흥수에게서 설명을 들으며 김치와 진도의 재료로만 만들었다는 빵을 안주로 홍주를 홀짝이고 있으려니, 드디어 주문한 전복라면이 나왔다.
흥수와 나는 산 두 개를 종주한 이후 처음으로 끼니를 때우며 홍주를 마시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마침 라면을 다 먹고 나자 주문한 부침개가 나왔다. 바싹하게 부친 거라 식감과 맛이 예술이다. 와중에 라면이 부족하다는 진행의 말에 우리가 들고 온 라면 두 개에 계란 두개를 넣고 마저 끓여 먹었다. 결과적으로 라면 4개, 부침개 하나, 25도 홍주, 40도 홍주를 마시고 술자리를 정리한 시각이 12시 48분이다. 마감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그 시각에 정리한 이유가 누군가 출발하자고 우리를 찾아왔던 거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안 난다. 어쨌든 우리가 있었다는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버스로 돌아가 배낭을 다시 짐칸에 넣고 자리에 앉아 바로 잠이 들었다. 그 시각이 12시 57분이다.
몇 시에 버스가 출발했는지 기억은 없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인돌휴게소다. 취중에 고창과 고흥을 혼동해 아니, 진도에서 서울로 가는데, 경상도를 거처야 하나? 라고 흥수에게 묻는 촌극을 벌이고 다시 버스에 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에는 천안삼거리휴게소다. 진도에서 서울, 휴게소를 두 번 들러야 할 정도로 정말 멀다. 휴식을 끝낸 버스가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이 가까워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된 게 평소 들고 다니던 우산을 이번 무게 무제한 산행에 빼놓고 오는 바람에 바람막이의 모자를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이다. 빼지 말아야 할 걸 뺐다. 어쨌든 수도권에 진입한 산악회 버스는 신갈과 죽전에 승객을 내려주고, 6시 56분에 양재에 도착했다. 사당으로 가는 흥수와 인사를 나누고 진행과 내가 내리자, 진행의 부군이 마나님을 모시러 마중나와 있어 인사를 하고 헤어져 집으로 향해 8시경 도착하는 거로 진도 첨찰산, 동석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두 번째 산행인 동석산도 산악회 계획에 의거 '종성교회 → 첫 번째 암봉 → 두 번째 암봉 → 미륵좌상 암굴 왕복 → 암봉 전망대 → 칼바위 전망대 → 동석산 정상 → 전망바위 → 삼각점봉 → 석적막산 → 가학재 → 작은애기봉 → 세방낙조 갈림길 → 큰애기봉 왕복 → 세방낙조 휴게소'의 6.31km(트랭글), 바위 봉우리와 흙산이 조화를 이룬 2시간 37분의 코스를 탐방했다. 이동 2시간 35분, 휴식 2분!
어느 산이나 그렇지만 낮이 아니면 조망이란 게 있을 수가 없는데, 첨찰산도 새벽에 올라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없었던 게 아쉽다. 위치로 봐서는 탁월한 조망처라 생각되는데!
생긴 모습에 비해 위험하지 않은 암봉과 암릉의 동석산은 무조건 올라봐야 한다. 기회가 되면 안전시설이 없는 칼바위 능선에 도전해 보고 싶다.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면 좋았을 진도라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