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별리(別離)
이삭빛시인
모질게 돌아선 그대 뒷모습을 보며
눈 덮인 길 위로 맨발로 달려가 붙잡았습니다.
가지 마시라, 이 찬 바람 속에 어찌 홀로 가시냐고
소맷자락을 움켜쥐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손을 뿌리치는 그대 눈빛 속에서
나보다 더 시리게 떨고 있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대, 정녕 괜찮으신지요.
나를 버리고 가는 그 길 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얼음 가시가 되어 돋아나겠습니까.
그대여, 나를 떠나거든 차라리 나를 미워하십시오.
미안함조차 짐이 되어 그대 발걸음 무겁게 하지 말고
서슬 퍼런 미움 하나 등불 삼아 가십시오.
내 생의 가장 뜨거운 기도로
그대 가는 길목마다 쌓인 눈을 녹여둘 테니
그대여, 뒤돌아보지 말고 가십시오.
그대만 아프지 않다면
나는 이 겨울 한복판에 홀로 남겨져도 괜찮습니다.
[시평] 시린 겨울을 건너 꽃으로 피어나는 생의 마디
— <겨울 별리(別離)>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악수
시평 윤정 시인
이삭빛의 <겨울 별리>는 단순히 연인과의 헤어짐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이 시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빛나던 청춘’, ‘먼저 떠나간 소중한 꿈’, 그리고 ‘상처 입은 옛 자아’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이자 가장 뜨거운 포옹이다.
■ 맨발로 붙잡고 싶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연민
시 속에서 ‘맨발로 달려가 소맷자락을 붙잡는’ 행위는 우리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향한 간절함의 발현이다. 누구나 인생의 겨울목에서 소중한 것을 떠나보낼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 아픔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떠나가는 것들의 눈물을 발견해낸다. 이는 상실의 아픔조차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는 지극한 포용력을 보여준다.
■ 미움조차 등불이 되는 ‘치유의 역설’
‘차라리 나를 미워하시라’는 대목은 이 시의 가장 따뜻한 절정이다. 이는 나를 떠나가는 계절이나 상황이 미안함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스스로 모든 슬픔을 짊어지겠다는 성숙한 선언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과거를 미움이라는 등불로 태워버리고, 오직 앞날의 안녕만을 빌어주는 마음은 이삭빛 시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의 완성’이다.
■ 얼음 아래 흐르는 기도의 온기
시적 화자는 자신의 눈물과 기도로 상대가 가는 길의 얼음을 녹이겠다고 말한다. 이는 이별이 결코 ‘끝’이 아님을 의미한다. 추운 겨울 땅 밑에서 봄을 준비하는 씨앗처럼, 우리가 겪는 이별의 진통은 결국 더 단단한 내일을 만드는 양분이 된다.
결론적으로 <겨울 별리>는 인생의 겨울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다. 1월, 이 시가 울려 퍼지는 자리는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의 시린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는 치유의 광장이 될 것이다. 슬픔을 깎아 등불을 만드는 이 시의 선한 의지가 독자들의 가슴에 눈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길 소망한다.